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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f Pi (2012)

posted May 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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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우의(寓意, allegory)로 환원되는 것일까요? 하긴, 제가 아는 한 우화(parable)를 가장 솜씨 좋게 구사했던 스토리텔러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Life of Pi>을 쓴 캐나다인 작가 얀 마르텔은 자신의 소설을 신앙이라는 인간의 정신활동에 관한 철학적 우의로 설계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 파이를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 작가 자신의 노트로 시작하죠. 그는 파이가 들려주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는데, 파이의 이야기는 그의 이야기가 거짓일 수도 있다는 암시로 마무리됩니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믿을 것인지는 결국 선택의 문제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파이의 난파기는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그 중 어느 것을 믿을 것인지의 선택은 이야기를 들은 사람 개인의 몫입니다. 인간과 신의 관계가 그러하듯.

그래서 <Life of Pi>는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경영하던 가족이 동물을 싣고 캐나다로 항해하던 도중에 풍랑을 만납니다. 간신히 구명정에 올라탄 소년 파이는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 호랑이와 항해를 시작하지만, 다른 동물들은 다 죽음을 당하고 파이와 호랑이만 남아서 표류를 계속합니다. 마침내 멕시코만에 도달한 파이가 보험회사 사람들에게 표류기를 들려주자 사람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파이는 사람들이 좀 더 믿기 쉬운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새로운 이야기 속에서 다리를 다친 얼룩말은 항해사, 오랑우탄은 파이의 모친,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물어 죽인 하이에나는 요리사로 바뀝니다. 그렇다면 파이는? 바로 호랑이가 파이 자신의 알레고리였던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소설로 읽는 독자들의 머리 속에서는 두 번째 버전의 이야기를 접하는 순간 앗, 하고 인식의 돌파가 이루어집니다. 동물들과의 표류기를 읽으며 그 그림을 머리속으로 상상했기 때문에 스스로 재구성하던 상상 속의 그림이 허물어지는 배신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바로 그 배신의 충격이 소설 <Life of Pi>가 종교에 관해 진지하게 제기하는 질문의 실마리입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소설이 영화로 바뀌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도저히 실사로는 찍을 수 없었을 이야기를, 이안(Ang Lee) 감독은 도저히 CG같지 않은 멋진 화면으로 옮겨놓았습니다. 그 화면이 너무나도 화려하고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파이의 이야기의 두 번째 버전은 좀처럼 파괴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인간은 남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의심하도록, 그리고 자신이 눈으로 본 것은 확실히 믿도록 진화되어 왔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든지 “Seeing is Believing”이라는 금언은 그래서 탄생한 것입니다.

영화 <Life of Pi>가 가진 가장 훌륭한 부분은 멋진 화면입니다. 그렇게 멋진 그림을 보여줘 놓고 나서, ‘자 그것은 거짓일 수도 있다’라고 말하면 그 이야기를 글자나 말로 전해 들었을 때처럼 스스로 구축한 이미지가 붕괴되는 경험을 하기는 어려운 법이지요.

그러고 보면, 영화 <Life of Pi>는 믿음에 관한, 한 겹을 더 두른 알레고리인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눈으로 봤다고 해서 다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요.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직찍’보다 더 실감 나는 ‘합성’ 사진, 버츄얼 리얼리티, 컴퓨터 그래픽, 스페셜 이펙트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진화는 한 단계 더 회의적인 도약을 해야 하려나봅니다. 직접 본 것을 의심해야 하는 세상은, 기억마저 조작하는 ‘토털 리콜’의 세상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 <Life of Pi>는 합성된 직접경험이 대량생산되는 시대를 위한 알레고리인 셈입니다. 직접 본 걸 의심해야 한다면, 그러면 우리가 틀림없는 것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믿음은 예전보다 더 무조건적인 것이 되어야 할까요? 첨단과학의 시대인 21세기에 신앙인들의 종파분쟁이 크나큰 살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상은 어쩌면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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