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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2002)

posted Sep 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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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꽃미남 한류스타가 된 유승호(兪勝豪)의 최고의 작품은 아홉 살 때의 데뷔작 <집으로>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도 어찌나 도회적인 세련미를 강하게 풍기는지, 시골에서 낙담하는 연기의 진정성이 표정만으로도 느껴지더군요. <집으로>는 2002년에 만들어진 한국 영화로는 매우 특이한 존재입니다. 스타급 배우가 출연하지 않으며 (아예 출연 배우 자체가 몇 되지 않습니다), 빠르지도 않고, 강렬한 드라마를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2002년 상반기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지요. 이 영화가 가장 한국적인 시골의 풍경과 가장 만국공통적인 정서를 함께 담고 있는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어린 상우가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산골 마을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정황으로 보아, 상우는 홀어머니와 도시에서 살았고, 지금 그의 어머니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시골의 외할머니에게 상우를 맡겨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상우는 처음 보는 시골 풍경과 TV도 나오지 않는 초가집이 싫어서 견딜 수 없습니다. 혼자 살고 계신 외할머니는 허리가 많이 굽었고, 말을 하지 못합니다. 상우는 할머니를 ‘바보’라고 부르면서 심술궂은 투정을 부립니다. 상우가 프라이드치킨을 먹고 싶다고 떼를 쓰니까 할머니는 닭을 잡아 백숙을 만들어 주는데, 상우는 ‘이게 뭐냐’며 불만을 쏟아놓습니다.

<집으로>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고, 관객을 놀래키는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끝날 무렵 눈시울이 젖지 않기란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나 외할머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성권리의 신장으로 요즘은 친할머니와 외활머니의 처지가 예전처럼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할머니는 자기 딸을 남의 집에 시집보내고 그 딸의 생활에 별로 관여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손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내가 어머니를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빼앗아 온 셈이랄까요? 그런데도 외손자를 끔찍하게 사랑해 주지 않는 외할머니는 없습니다. 나는 방학 때마다 고향을 찾아갔기 때문에, 나의 외할머니는 내가 일 년에 딱 두 번 만나는 분이었습니다. 언제나, 나의 외할머니는 나를 “내 첫사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7남매의 맏이라서, 내가 외할머니께서 처음 보신 손자였거든요. 늘 부지런하고, 소녀처럼 깔깔 잘 웃으시던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치매로 고생하신 것은 가슴 아픈 경험이었습니다.

<집으로>에서 상우의 외할머니 역할을 맡은 김을분씨는 연기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촌로입니다. (그래서 말을 못하는 장애인 역할로 출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할머니의 얼굴에는 곱게 늙은 어떤 배우에게서도 볼 수 없는 깊은 주름이 참 많이도 있습니다. 실제 이 영화를 찍을 때, 연기를 하기 싫다고 투정부리는 유승호에게 김을분 할머니는 감자와 고구마와 옥수수를 간식으로 주면서 손자처럼 대해주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1964년생인 이정향(李正香)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었습니다. 한국 영화아카데미 출신인 이감독은 1998년 자신의 각본으로 연출한 데뷔작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청룡영화상, 대종상 등 여러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집으로>는 4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한국 대종상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각본상, 기획상, 여우 신인상(김을분)을 받았습니다. 이감독은 금년에는 송혜교 주연의 <오늘>이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폭력과 비속어가 넘쳐나는 최근의 한국영화 속에서 <집의로>가 거둔 성과는 눈부시고, 의미도 깊습니다. 한국의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외국인에게 가장 꺼리낌 없이 권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입니다. <집의로>의 성공은, 영화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우리가 갈망하면서도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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