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lcome Page
    • drawing
    • photos
    • cinema
    • essay
    • poems
    • music
    • toons
    • books
    • mail

스탄 게츠(Stan Getz)

posted Jun 25, 201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StanGetzSmall.jpg

 

누군가 내게 묻는다 치자. “재즈는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워서 좋아한다는 말을 선뜻 못하겠더라. 하지만 이제부터 좀 들어보고 싶은데... 뭐부터 들으면 좋을까?” 이런 질문을 받는 고수 분들께서는 저마다 신입 신도들을 재즈의 열반으로 인도할 나름의 비방을 가지고 계실 줄로 안다. 나야 일천한 지식을 가지고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인도할 처지는 못되지만, 그래도 내 친구가 그런 질문을 해온다면 아마도 스탄 게츠(Stan Getz)의 1987년 앨범 <Serenity>를 권해줄 것 같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편안하기 때문이다. 요란한 ‘명반 100선’ 같은 목록에는 들지도 않는 앨범이지만 마치 최면술에 이끌리듯, 나는 편안하고 나른한 그 한 장의 CD를 시작으로 재즈의 넓고 깊은 바다로 항해를 시작했다.

스탄 게츠의 연주는 참 수월하다. 단순하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 할머니께서 이미자를 가리키며 “어쩌면 저렇게 쉽게 노래를 부르니” 하실 때의, 그 수월함이다. 저렇게 멋진 연주를 저렇게 힘들이지 않고 하다니.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뭔가를 남달리 쉽게 해내는 달인의 솜씨는 실제로 쉽게 하는 게 아니라 쉬운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사실을. TV에서 친근하게 유화를 가르쳐 주던 밥 로스 아저씨도 그랬다. 그가 “어때요, 참 쉽죠?”라며 시침을 뗀다고 해서 자기도 쉽게 유화를 그릴 수 있으리라고 착각한 시청자는 아마 없었을 거다.

게츠의 색소폰 음색은 유난히 감미롭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빙 크로스비(Bing Crosby)처럼 속삭이듯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을 여느 가수들과 구분해서 크루너(crooner)라고 부른다. 스탄 게츠는 가히 색소폰의 크루너라고 부를만 하다. 신통한 일이다. 마우스피스 악기인 트럼펫이 사람마다 현저히 다른 음색을 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리드 악기인 색소폰은 다른 사람이 분다고 해서 크게 다른 소리를 내지는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탄 게츠의 감미로운 음색의 정체도 실은 음색이라기보다는 그의 능란한 기교가 빚어내는 인상일 것이다.

1927년 필라델피아의 우크라이나 출신 유태인 가정에서 출생한 스탄 게츠도 많은 유명 연주자들처럼 음악 영재였다. 고교시절에는 학생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면서 뉴욕필하모니의 바순 연주자로부터 사사받기도 했다. 16세가 되던 1943년에 프로 연주활동을 시작하더니 스윙 시대를 주름잡던 배니 굿맨(Benny Goodman) 밴드와 우디 허만(Woody Herman) 밴드를 거쳤다. 50년대에는 자신의 밴드를 만들어 리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가 전성기를 맞이하려면 더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

우디 허만 밴드 시절부터 오랜 세월 게츠와 친분을 유지한 주트 심스(Zoot Sims)는 게츠를 가리켜 “여러 명의 괜찮은 친구(nice bunch of guys)”라고 불렀다. 마치 다중인격자처럼 행동의 변화 폭이 컸던 탓이다. 성품이 불안정했던 건지, 세상에 불만이 많았던 건지, 게츠는 십대부터 약물과 알콜을 남용했다. 1954년에는 모르핀을 구하려고 약국을 털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아무리 연주 실력이 출중하대도, 이래가지고서는 스물일곱 살 청년의 앞길이 밝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약물중독을 극복하려고 그가 내린 선택은 덴마크로 떠난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그가 화려하게 돌아온 것은 비밥이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음악처럼 들리지 않게 되어가던 1950년대 말이었다. 이제 청중의 귀는 좀 더 편안한 음악을 원하고 있었고, 게츠는 쿨재즈 연주자로 명성을 얻어갔다. 1960년대 초 보사노바(Bossa Nova)라는 음악이 재즈에 접목된 것은 그런 배경 속에서 필연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감미로운 소리로 연주하던 스탄 게츠는 보사노바 재즈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도 같은 형국이었다.

1962년에 녹음한 <Jazz Samba>가 히트하면서 게츠의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Antonio Carlos Jobim)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1963년 앨범 <Desafinado>가 백만 장 이상의 판매 기록을 세웠고, 같은 해의 <Jazz Samba Encore!>도 백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내친 김에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주앙 지우베르투(João Gilberto),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Astrud Gilberto) 등과 함께 <Getz/Gilberto>를 녹음했고 이 앨범에 수록된 <The Girl from Ipanema>는 라틴 재즈를 대표하는 불멸의 히트곡으로 자리를 잡았다.

간단히 말하면, 보사노바 재즈란 쿨 재즈와 브라질 삼바의 이종교배로 태어난 우성의 돌연변이 같은 음악이다. 전 세계 온갖 민속음악이 재즈와의 교배를 시도했지만 보사노바만큼 성공적인 돌연변이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삼바는 이를테면 남미대륙의 재즈였던 것이다. 리듬과 선율 중심의 민속 음악에 정복자들이 가지고 온 유럽의 화음이 더해지고, 여기에 아프리카 음악의 영향도 가미되었다. 그러니 재즈와 삼바는 마치 배 다른 형제와도 같은 유사성을 지닌 셈이었다. 게다가 브라질의 독특한 지방색은 삼바에 뛰어난 생존력과 경쟁력을 제공했다. 음식이든 음악이든,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하지 않던가.

게츠가 주앙 지우베르투의 아내였던 아스트루드와 염문을 뿌리면서 화려하던 삼인조의 활약은 1964년에 막을 내렸다. 아마 게츠 속 “여러 명의 괜찮은 친구” 중 하나가 샘솟는 연정을 참지 못했나보다. 그 뒤로 게츠는 보사노바 보다는 쿨 재즈에 더 치중했다. 사실 나는 스탄 게츠를 보사노바 재즈의 대표 연주자로 꼽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라는 의구심을 가졌었다. 확실히 보사노바에는 조빙과 지우베르투 같은 브라질 음악가들의 함량이 더 진하게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사노바 재즈를 창시한 공로는 카를루스 조빙에게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언젠가 영화 <Black Orpheus>를 다시 보다가 생각이 달라졌다. 1959년에 프랑스 감독이 브라질을 배경으로 만든 이 영화가 바로 미국과 유럽에 보사노바라는 음악을 처음 본격적으로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의 음악을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빙이 맡았다. 다시 본 영화의 내용도 음악도 여전히 훌륭했다. 그런데 어라? 영화의 주제곡은 재즈가 아닌 민속음악이었다.

게츠의 손길을 거치지 않았다면 보사노바는 어쩌면 오늘까지도 멋진 민속음악으로만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춘수 시인이 꽃에게 이름을 붙여준 것처럼, 삼바와 재즈 사이의 그 묘한 중간지대를 섬세한 감각으로 이어준 사람이 바로 스탄 게츠였다. 그의 감각적인 연주 덕분에 브라질의 민속 음악은 시침을 뚝 떼고 재즈의 한 장르로 변신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게츠 이전에 라틴 재즈를 게츠처럼 연주하는 사람은 없었다. 게츠 이후에는 누구나 게츠처럼 연주한다.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느낀 걸까? 게츠는 60년대 후반부터 한동안 무대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는 80년대 중반부터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스탠포드 대학에서 재즈를 가르쳤다. 앞에 소개한 앨범 <Serenity>는 게츠의 영혼이 마침내 평온함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1987년에 녹음된 것이다. 그 앨범에 담긴 곡들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닌지도 모른다. 4년 뒤인 1991년, 그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232 New Kid In Town file 2017.05.02 345 2
231 Tequila Sunrise file 2017.05.02 76 2
230 걱정 말아요 file 2017.05.02 103 3
229 Crossroads file 2017.05.02 64 1
228 Wanna Go Home file 2017.05.02 68 1
227 고등어 1 file 2017.05.02 124 3
226 Have You Ever Seen The Rain file 2017.05.01 5875 1
225 In My Life file 2017.04.29 83 1
224 Till There Was You file 2017.04.22 7765 1
223 Isn't She Lovely - 콩돌이 file 2015.08.17 718 12
222 April Come She Will - 콩돌이 file 2015.02.04 745 25
221 덱스터 고든(Dexter Gordon) file 2014.09.12 891 22
220   →오랜만이다 2014.09.13 490 25
219 Play Something We Know - 콩이 & 콩돌이 file 2014.08.03 575 26
218 First Day of My Life - 콩돌이 file 2014.08.03 484 28
217 The Boxer file 2014.07.30 511 27
216 키스 자렛(Keith Jarrett) file 2013.08.14 1035 41
215   →후기 2013.08.14 628 34
» 스탄 게츠(Stan Getz) file 2013.06.25 906 45
213   →나도 그 음반이 제일 좋다 2013.06.28 670 4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3 Nex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