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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재즈 : 송영주 Blue Note 공연 (2012년 가을)

posted May 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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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노트(Blue Note)’란, 서양식 온음계(Diatonic Scale)의 화음에 잘 쓰이지 않는 단3도, 단5도, 특히 단7도의 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방색 짙은 민요에서는 이런 음들이 종종 쓰였다. 특히 아프리카 음악에서 유래한 블루스(Blues)에는 이 음의 사용이 긴요하기 때문에 블루 노트라는 이름이 붙은 모양이다. 한편, ‘블루 노트’는 1939년에 알프레드 라이언(Alfred Lion)과 맥스 마걸리스(Max Margulis) 두 사람이 설립한 레코드 회사 이름이기도 하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블루 노트 레이블은 특히 하드밥 계열의 명반들을 세상에 많이 내어 놓았다.

그런가 하면, ‘블루 노트’는 맨하탄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 있는 재즈 클럽의 이름이기도 하다. 1981년에 개점한 이 클럽은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재즈 클럽이 되었다. 매일 저녁 8시와 10시 반에 두 차례 공연을 하는데, 거의 언제나 만석을 이룬다. 지금은 일본 도쿄와 나고야, 그리고 이탈리아의 밀라노에도 지점을 영업 중이다. 2001년에는 하프 노트 레코드(Half Note Records)라는 자체 레이블도 설립했다. 그러니까 블루 노트 레이블은 블루 노트 클럽과는 무관하다.

1998년 처음으로 뉴욕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찾아간 곳이 블루 노트 재즈 클럽이었다. 기타리스트 알디메올라(Al Di Meola)의 공연이었다. 이런 거물들이 수시로 들러 공연을 하는 곳이니 어찌 유명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가서 멋진 재즈 공연을 감상했다. 하지만 시설이 특별히 좋은 것은 아니었다. 좁은 탁자에 여러 사람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했기 때문에 편한 자세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주말에 가면 관광객 행색의 일본인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어쩐지 탐탁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시샘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2012년 여름, 생각지도 않게 두 번째로 뉴욕에 근무를 하게 되었다. 재즈 피플의 김광현 편집장께서는 “재즈에 더 깊숙이 들어가시게 되겠네요. 피아니스트 송영주씨가 연주자로 뉴욕에서 활동 중이니 보실 수도 있겠네요”라며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감사하다고는 했지만 내가 송영주씨의 연주를 감상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울성 싶었다. 그런데 사람 일은 참 알 수 없다. 뉴욕에 도착해 둘째 아이 전학도 시키고, 살 집도 구하고 중고 자동차도 장만하고 신분증도 만들어 이제 정착단계가 다 끝나 갈 무렵이던 2012년 10월 1일, 추석을 맞았다. 사무실의 선배가 공연 티켓이 있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못 가게 되었다며 가겠느냐고 그날 오후에 물어보는 것이었다. 때마침 저녁시간에 별 일이 없어서 대뜸 가겠다고 했다. 한국 문화원 후원으로 추석을 기념해 블루 노트에서 개최되는 피아니스트 송영주 연주회였다.

13년만에 다시 찾아간 블루 노트는 변치 않은 모습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자리는 여전히 비좁았고, 불편했다. 순서지 뒤쪽에 적혀 있는 그저 그런 메뉴도 그대로인 것 같았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청년으로 장성한 아들을 대동하고 갔으니 말이다. 연주를 감상하기도 전에, 예고 없이 가슴 한 쪽이 찡해 왔다. 세 살짜리 꼬맹이가 열일곱 청년이 되는 동안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재즈의 메카 역할을 해 온 이 허름한 클럽. 이 장소는 앞으로도 이렇게 재즈의 산실이 되어줄 터였다.

우리는 구석자리에 앉아, 김광현 편집장의 예언대로 송영주씨의 연주를 들었다. 송영주는 클래식 피아노를 바탕으로 90년대 초부터 CCM 뮤지션으로 활동하다가 이제는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는, 자랑스런 한국인 재즈 피아니스트다. 1996년 숙명여대 피아노과를 졸업했고, 7년간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2001년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맨하탄 음대(Manhattan School of Music) 콘서트 밴드에서 수석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세계적인 대가들과도 함께 연주했다. 2004년에 귀국한 뒤로는 국내에서 각광을 받으면서 활발한 작곡과 연주 활동을 펼쳤다.

그렇게 다시 7년을 보낸 송영주는 철밥통이라는 전임교수직도 내려놓고 홀연히 뉴욕으로 건너왔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연주자들의 정글, 뉴욕으로 떠나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그녀는 “실력이 늘지 않길래”라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수줍은 미소를 지닌 외모와는 달리, 그녀는 끊임없이 발전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욕심꾸러기였던 것이다. 다시 7년 후의 그녀의 모습을 기대해도 좋은 이유가 거기 있다.

추석날 블루노트의 공연은 훌륭했다. 뉴욕에서 5집 앨범 <Tale of A City>를 녹음할 때 “평소 존경하던 아티스트라 덜덜 떨면서 참여를 부탁했다”던 스티브 윌슨(Steve Wilson)의 색소폰은 과연 정상급 수준이었다. 아담 크루즈(Adam Cruz)의 드럼과 데이빗 왕(David Wong)의 베이스도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송영주씨는 차분하면서도 스윙감 있는 개성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그녀가 클래식 피아노부터 기본기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흔적을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이 반드시 약점인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그런 벽을 넘어서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것이리라. 송영주의 가장 큰 장점은 그녀의 작곡 능력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자작곡들은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나라가 성장하는 데는 핸드폰이나 자동차의 수출도 중요하지만 문화의 폭과 깊이가 늘어나는 것이 그보다 더 중요하다. 요즘 한국의 팝음악과 드라마가 세계 무대에서 선전하고 있긴 하지만, 문화는 모든 부문이 고른 성장세를 보일 때 비로소 한 단계 높이 도약하는 법이다. 블루 노트에서 만난 한국인 연주자 송영주씨는 나의 2012년 추석을 흐뭇한 기분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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