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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펫 재즈

posted Feb 0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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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펫을 불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것은 어려서부터였다. 그 꽉 찬 소리의 질감과 합주에서도 두드러지는 리더쉽이 멋져보였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있는 듯 없는 듯 섞이기를 잘하는 나의 습성 때문에 어쩌면 나는 트럼펫의 당당함을 더더욱 동경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1998년 나는 뉴욕으로 부임했다. 외환위기 직후였기 때문에, 급여와 수당을 미화로 환전하고 나면 외식 한 번 제대로 할 여유가 없을 만큼 주머니 사정은 어려웠다. 나는 맨해튼 48가에 있는 샘애쉬(Sam Ash) 악기상의 쇼윈도우를 기웃거리며 날렵한 악기들을 구경하고 군침을 흘리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가끔 시간이 남으면 가게에 들어가서 악기들을 만져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함께 근무하던 선배가 트럼펫을 배워보는 게 오랜 꿈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싸구려 악기를 임대해서 맨해튼 동부의 터틀베이 음악학원에 등록했다. 주 1회 점심시간 한시간동안 수업을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업무도 바쁘고 수업료도 만만치 않아서 한두달 배우다가 말았는데, 이것이 어린시절부터의 열망을 잠재우기는커녕 불을 붙였다. 나는 악기상에 가서 은빛 찬란한 새 트럼펫을 사버렸다. 2004년이던가? 작은 아마추어 공연이기는 했지만 무대에서도 불어봤으니까 완전한 낭비였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내 불쌍한 트럼펫은 그 뒤로 가방 속에서 나이만 먹어가는 중이다.

트럼펫의 아름다움은 단순함에 있다. 트럼펫이라는 악기는 구부려뜨린 금속파이프에 피스톤 밸브를 세 개 달아놓은 게 전부다. 트럼펫, 트롬본, 튜바 등 컵처럼 생긴 마우스피스(mouthpiece)를 사용하는 악기들을 ‘금관악기(brass)’라고 부른다. 오보에, 클라리넷, 섹소폰처럼 마우스피스에 갈대를 깎아 만든 리드(reed)를 끼워서 사용하는 악기는 ‘목관악기(woodwind)’라고 부른다. 목관악기의 소리는 풀피리처럼 리드가 떨려서 나는 소리를 나무나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 만든 관이 증폭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목관악기들은 악기 고유의 음색이 있다. 똑같은 제조사에서 만든 똑같은 모델의 악기라도 각각의 소리가 조금씩 다르다. 목관악기는 가격 차이에 따른 성능 차이도 확연하다. 좋은 목관악기는 리드도 좋아야 하고, 마우스피스도 좋아야 하고, 관과 키(key)도 좋아야 한다.

좋은 악기가 좋은 소리를 내는 거야 금관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금관악기의 음질은 악기보다 사람이 훨씬 더 많이 좌우한다. 부부젤라를 불어본 사람이라면 알테지만, 금관악기의 마우스피스는 요령 없이 불면 바람만 훅훅 들어가지 아예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2002년 우리 집에 놀러왔던 BBC 교향악단 수석 트럼페티스가 시범을 보여준 것처럼, 트럼펫을 정말 잘 부는 사람들은 물 뿌리는 고무호스(hose)만 가지고도 훌륭한 악기처럼 연주한다. 연주자의 입술이 떨리는 소리가 바로 트럼펫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불 때는 버스 경적 같은 소리만 내던 내 트럼펫을 집어들더니 그걸로 천상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 집의 아이들은 BBC 오케스트라 합주를 들어도 자기 아빠의 트럼펫 ‘목소리(voice)’를 뚜렷이 구별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밸브가 달랑 세 개밖에 없는 걸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트럼펫의 밸브는 미세음을 조절하는 용도만 있다. 높고 낮은 음은 사람이 입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밸브를 특정하게 누른 하나의 ‘포지션(position)’에서 대략 7개 정도의 높고 낮은 음을 (고음에 능한 고수들은 그 이상을) 낼 수 있다. 도-솔-도-미-솔-시b-도- 하는 식이다.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면, 원래 밸브가 없는 먹통 나팔(뷰글: bugle)로 연주했던 군대의 기상나팔, 취침나팔 같은 멜로디는 트럼펫으로 불 때도 밸브를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고 한 포지션으로 부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령 색소폰 같은 악기에 비하면 악기보다 연주자의 역량에 의존하는 바가 더 크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재즈 발생 초기부터, 트럼펫은 재즈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북전쟁 후 군대에서 쓰다 남은 악기들을 버리거나 불하하자 트럼펫은 흔한 악기가 되었다. 트럼펫이 뉴올리언즈 지방의 음악에 합류하면서 블루스 위주의 재즈에 군악대풍의 행진곡 분위기가 덧씌워졌다. 초창기 트럼펫 연주자인 버디 볼든(Buddy Bolden)은 천둥같은 음량과 특이한 박자감각을 자랑했다.(나중에 쓸 ‘스윙’ 참조) 그 이후 줄곧 트럼펫은 재즈 밴드에서 독보적인 독주악기로 위치를 굳혔고, 기라성 같은 연주자들이 배출되었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은 재즈를, 나아가 현대음악을 자기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눌 정도의 성취를 이루었으며,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 해리 에디슨(Harry 'Sweets' Edison),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등 걸출한 연주가들이 트럼펫 음악을 깊고 다채롭게 만들었다.

재즈 밴드에서 트럼펫 연주자는, 야구로 치자면 투수요, 축구팀으로 치면 최전방 스트라이커고, 발레로 치면 프리마돈나다. 두드러지는 음색으로 멜로디 라인을 정의하는 악기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의 개성이 팀의 색깔을 많이 좌우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다양한 재즈곡을 들으면서 트럼펫 연주자들의 개성을 발견하고 비교하는 것은 언제나 큰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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