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막에 서서
1.
늙고 병든 당나귀 한 마리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 위를 걸어
정해진 곳으로
정해지지 않은 길로
사구(砂丘) 위를 걷는 짐승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하니
못 견디게 그리워하는 이
한명쯤 있기를
에워싼 지평선이 붉게 타고
해상도 높은 달 뜰 때
앉아 쉬는 곳 거기가
네가 소유한 황량함의 무게중심
여기도 가을은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너도 나도
우리 흔적도 여기에는 없겠지만
귀 먹는 이 적막함은 몹시도 그리우리
늙음도 병듦도 감싸안는
눈부신 유성(流星)의 음량 없는 군무가
협소한 잠자리에 누운 너를
한없이 뒤척이게 하리
2.
청년 하메드는 양고기를 구우며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아이가 아플 때 우리 외할머니가 삼신할미를 비난하듯이 그가 북을 칠 때 사막은 방음장비가 된 녹음실처럼 북소리를 빼앗았다 휘아만 일라, 알라의 평화 속에 가거라 신은 평화를 원하는가 그가 원하는 것은 순종이 아니던가 하메드의 일제 사륜구동차가 제 갈 길로 떠나고 깨닫는다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나는 춤추는 별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음을 약함이여 약자의 비겁함이여 고독은 느낌이 아니라 성격이고 운명이다 드넓은 모래여 아아 빼앗길 소리를 가지지 못한, 어찌 할 수 없음이여
3.
사막을 가로질러 도착한 알 아스카라
낙타들이 낙조를 바라보며
해변을 걷는 곳, 어쩌다 여기가
이승과 닿았을까
이곳 낙타들의 걸음은
보이는 것보다 두 배쯤 빠르다
파도는 힘들게 시간을 낳고
사막은 크로노스처럼 시간을 먹어치우는
그 오래된 싸움의 간격을 메우는
알 아스카라 낙타의 걸음걸이
겅중, 한박자
겅중겅중, 두박자
20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