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에서

posted May 1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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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聖地)에서

- 우하(愚下)에게

 

조바심을 죄처럼 품고 살다가

오늘 드디어 요단강을 건넜다.

이승의 검문소에서 네시간

뙤약볕 받으며 서서

어릴 적 녹번동 우리 집 앞을 흐르던

실개천을 닮은 저 강물이

고달픈 모래바람 속에 파묻히면 어쩌나

걱정했다.

저승의 검문소에서 다시 두시간

 

쿠오바디스

옛 도성에서도 나는 主의 자취를 찾지 못하고

포장지로 싼 전설들이 좌판에 놓인 좁은 길을 걸었다.

걷다가

초록색 모자를 떼지어 눌러쓴 성지순례단

동포 아주머니들의 사진기 셔터도 눌러주고

목마른자가 되어

플라스틱 통에 든 생수를 마셨다.

문득

여권과 지갑과 영국에 두고 온 아들

오늘 밤 등짐 속에 다시 챙겨야 할 내 잘잘못들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