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는 엑스트라였는데 어디였냐 하면
척 노리스가 기관단총을 들고 모퉁이를 돌때쯤
죽어간 십 수명중 가장 큰 반원을 그리던
가죽점퍼 차림이었지
감히 주인공에게 총을 들이밀다가는
당연스레 쓰러진 그의 주검을
라스트 씬 까지는 잊고 있다가
척 노리스 모양 극장문을 박차고 나오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4-5초간 마주친 그의 삶과
애도하지 않는 나의 삶이
그래서 얘긴데
그는 추위 잘타는 뉴욕 시민이었을 수도 있고
불효자식일수도 후례자식일수도 있겠지만
이태원에서 가죽잠바 사 걸치고
껄렁하게 싸움도 더러 하고
소주도 곧잘 사곤 하다가
외롭게 이민간 내 친구였을수도 있지 싶었을땐
뭐라 할 말이 없더군
누군들 단역으로 남고 싶겠나
그저 공허하게 반원을 그리며
스크린에서 사라지고 싶겠나
휘적휘적 돌아가는 길에서 얼핏
그를 본 듯도 하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듯도 하군 그래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