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lcome Page
    • drawing
    • photos
    • cinema
    • essay
    • poems
    • music
    • toons
    • books
    • mail

자카르타에는 오리가 산다

posted Sep 14,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자카르타에는 오리가 산다


자카르타시(市)는 올해 우기에도 잠수했습니다

이번에는 북쪽 제방 옆 저지대부터 키높이 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일 년 내내 유연휘발유의 기름때와 매연을 잘도 참아내는

자바의 신령(神靈)들이 용하다 싶은 생각이 들 즈음이 되면

그건 이 도시의 토박이 천만 인구가 일제히 물오리떼로 변신해

서산 간월도 겨울 갯벌에서처럼 가지런한 날갯짓을 보여주는 행사가

가까웠다는 신호입니다


식수가 스스럼 없이 오수와 몸을 섞고

작은 쓰레기들 동동 띄운 흙빛 바다는 더 큰 쓰레기 더미를 삼킵니다

아이들은 어장으로 변한 철공소 자리에서 투망질을 하고

교통체증 몸살을 앓던 시가(市街)는 지질학적 시간을 거슬러

밀림의 습지로 돌아옵니다 물오리떼는 아무도 화내는 일 없이

서로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인사합니다


갈라진 땅으로부터 불을 뿜어올리는 하늘을 두려워하는 법이나

그 속에 누이와 자식을 묻어본 슬픔 따위를 배우지 못한 나는

배기관을 하늘로 치켜든 대형트럭의 지붕위로 달아나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다가 뒤늦게야 발견합니다

이번에도 저 이쁜 군무에 끼이지 못하고 컹컹

젖은 털로 늪지를 배회하는 몇 마리 외래산 뭍짐승들의

성마른 경계자세만 취하는 나의 찌푸린 문명(文明)을


그러나 아니야 아니야 그것도

아무 일도 아무 일도 남십자성 아래

흐드러진 천리향 꽃잎 자꾸만 떨리게 만드는 저 거대한 물오리떼의

날개 바람

 

2008.3.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36 새외근황(塞外近況) 5 2008.08.04 1035 26
35 새외근황(塞外近況) 6 2008.08.12 921 30
34 새외근황(塞外近況) 7 2008.08.29 916 28
33 새외근황(塞外近況) 8 2008.08.29 917 25
32 새외근황(塞外近況) 1 2008.06.27 921 26
31 서울의 공휴일 2010.06.06 1053 54
30 손해사정인 2008.09.14 1060 43
29 숨은 그림 찾기 2008.08.06 1032 20
28 스쳐가는 날의 노래 2008.08.24 928 24
27 아내 2008.07.23 1073 24
26 아내 2 2008.09.14 11156 38
25 아무 데도 가지 않는 날의 노래 2008.08.29 1051 21
24 안 어울리는 날의 노래 2008.09.02 917 26
23 안면도에서 2008.09.02 646 29
22 외가집 2008.09.14 1070 41
21 을유년(乙酉年) 겨울 저녁 2008.07.16 1041 21
20 이사(移徙) 2008.06.04 1222 34
19 일기예보 2010.06.06 1089 71
18 일산(一山)의 달 2008.05.12 1293 20
» 자카르타에는 오리가 산다 2008.09.14 1146 5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