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제에서
아들아, 다 태워다오
저 푸른 불 꺼지거든
그래도 재가 남거든
너의 뜨거운 품으로
남는 것까지 다 태워
뜻하지 않은 뭔가를
남기지 않게 해다오
비우고 갈 수 있도록
비 오고 나는 가도록
젖은 언덕길 오르며
네 품마저 불사르렴
벽제에서 의정부로
일산으로 화정으로
아니 낯선 대륙으로
불길이 옮아 붙어도
돌아보진 않으련다
내가 물려준 손발과
흉중의 아픔이 너를
군마처럼 도울테니
달리렴 멀리 그러나
도주하는 법은 없이
때이른 멈춤도 없이
너의 아들이 또 너를
불로 지워줄 때까지
저 철없는 오월달의
물 오르는 잎새에도
발정하는 꽃잎들의
광기어린 잔치에도
섣불리 혹할 건 없다
내가 세상에 남기는
기록과 항변은 너다
아들아, 너로 족하다
20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