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외근황(塞外近況) 3

posted Jul 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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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외근황(塞外近況) 3


1. 겨울


불을 켜도 어두워 창을 열어보니

낮은 구름으로 닫힌 거리

익숙한 겨울과 달리

비 자주 내려 축축한 추위

예의바르게 고요한 삼각지붕들


푸른색이 필요하다 각성제처럼

묵묵히 먼지 모으고 있던

초현실주의자의 화집을 찾아 펼치면

시계들 윤곽을 이룰 용기를 잃고

형상들은 더 큰 형상의 일부임을

알지 못한다


어떤 일이든, 일어났어야만 될 이유가

어딘가에 있다 필시

이곳, 우연히 마주친 겨울에도

더 큰 윤곽의 전말(顚末)을 미처 모르는

무슨 막막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여, 너도 속주(速奏)하라

숨가쁜 비밥(Be-Bop)을 크게 틀어 놓고

소파 위에 눕는다

날이 춥다보니 몸 웅크려지고

물음표처럼


2. 사랑


호르몬이 주연하는 생화학적 춤판

부른 적 없이 함께 오고

함께 가는 식욕과 성욕

달리 방법 없이 질긴 핏줄

발에 맞는 구두 같은 익숙함 또는

비정상적인 부재

아니, 가엾은 결심

설명이나 설렘 굳이 필요 없는 약속


3. 詩作의 始作


그리거나 연주할 여유가 있었다면

시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사못처럼 조여진 정신으로

달리 무엇을 연습할 수 있으랴

나사못처럼 방치되고 잊혀질 때까지


대안 없이 쓰다 보면

어떤 詩는 노래 부르듯

어떤 詩는 그리듯 써지고

더러

저 혼자 써지는 것도 있다


세상의 모든 시는 연시(戀詩)다

애틋한 마음 없이 누가 무엇하러

시 같은 것을 쓰려 하겠는가

위안을 주는 것이 시인지 시간인지

때로 분명치 않다 해도


삼각지붕들의 이마가 어두워지더니

반짝이며 열리는 하늘

초현실의 첫 눈, 11월


 

20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