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외근황(塞外近況) 21
성급한 봄의 아침이여 훈련소의 신병들처럼 머리를 깎고 도열한 나무들이여 철없이 소란스레 물오르는 연녹빛 싹들이여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다만 헤어짐이다 물가에 남겨진 발자국 속 지난 밤 일몰이 휘황하게 그려 놓은 몇 조각 붉은 기운 같은 헤어짐이 아니라 차마 기약은 못하고 돌아보는 비리고 여린 저 바람 같은 헤어짐이 아니라 가지런한 것들을 다 흩고 찢어 사바세계를 더럽히고 어지르는 헤어짐이다 맞닿은 인과(因果)를 베어내는 날선 칼이다 예고 없이 찾아와 머무는 이여, 답 없는 질문을 견디며 쉬지 않고 날 위에서 꿈꾸는 자여, 춤추는 자여
20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