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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외근황(塞外近況) 4 / Winter Solstice

posted Jul 2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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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외근황(塞外近況) 4


1. 불면증


아이들이 우리말 책을 멀리하고

아내의 어투가 드라마를 닮아 가면

가족들의 외국생활이 이번에도

익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뒤집으면,

다시 옮길 날이 다가온다는


이사는 고르고 가르는 일

늘 연습이 필요하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으면

음험한 중개인으로 변신하는 세간들

모질게 다스려야 하므로

끈질기게 돋는 잔뿌리 자주

솎아낸다


밤이 성가시게 길어진다 자주

양초에 불 붙여본다

불꽃이 몸 흔들며 내는 작은 소리

아무도 의도한 적 없는 위해(危害)

나는 기억한다 자판 위에서

미음(微音) 비읍(悲泣)한다


뒤집으면,

컴퓨터 앞에 앉아

운율 없는 운문이나

쓴다는 얘기다 나는 나대로

표나게 익어 가는 연습한다는


2. 일지


출근길,

느린 차선만 골라 타고 유난히

끼어드는 차들이 많아 지각했음

성질내다 생각해 보니

운전중 딴 생각 많았다는 이야기임

오전 내내

산문의 중력으로부터 자꾸 도망가는

보고서를 몇 번 고쳐 달래며

시가 되어보지 못할 낱말들의 한숨소리

안쓰럽고

점심시간, 책가게에 들러 책을

산다, 라기 보다는 저 무수한 사람들 제각각

딴 생각하고 산다는 적잖은 위안

퇴근길,

처음 만져보는 악기를 사버렸음

나는 우리 아이들처럼

외국어로 감탄사를 내뱉을 줄 모르므로


3. 나의 고향에게


꿈속에서 다시 찾았을 때 그대는 과거형 문장 속에서만 내 이름을 언급했다 신경의 날이 예리하게 벼려지는 날에도 대체로 기억이란 남더라도 다른 항목으로 전용(轉用)할 수 없는 예산 같은 부조리여서 내 한 쪽에서 남고 한 쪽에서는 늘 모자랐다 교감할 길 없으므로 그리움은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어도 관계없었다 몰관계 몰염치 괜찮다 괜찮아 대체로 그리움이란 물건처럼 분실할 수는 없지만 물건처럼 폐기될 수는 있는 법 무의미 무책임 어 그늘이다 그늘 조석으로 음양의 조화를 넘나들며 무상무상 자격 없이 전전하다 보면 떠오를 것이다 나를 반기는 그대의 세부사항 혹 그 전에 보일지도 조심성 없이 떨군 아쉬움의 파편들, 모르지


4. 동지(冬至)


부를 이름 없이 지낸다고 하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입자나 세균처럼

발굴되지 않는 화석처럼 조용히

방해받지 않고

알려지지 않을 법칙을 따라


구름처럼 지낸다고 해보자

이마에 묻어날 듯한 적란운(積亂雲)처럼

찬 공기가 더운 공기와 만나듯 가령

옳은 것과 아름다운 것이 만나

화해하지 않더라도 기껏해야

뜬구름으로


수수한 정신 차림새로

물리화학의 법도에 대한

기준치 이하의 확신만 가지고도

긴긴 겨울을

날 수 있다고 하자


우주는 폭발로 태어나

여지껏 맹렬히 팽창중이라는데

무명의 뜬구름이 이고 질 하늘이

따로 있으랴

태양이 조금 멀어지고

밤이 몇 분 길어졌기로서니


그리움의 밀도나 슬픔의 질량이

손톱만큼 

늘어났기로서니

 

 

2005.12.

 


 

Winter Solstice


Suppose being nameless,

like a particle or a bacteria yet to be discovered or

an unearthed fossil hushed and untouched,

governed by a law of anonymity


Imagine being a cloud

the cumulonimbus that smears one's forehead

Resembling an encounter of cold and warm air,

virtue and beauty may never reconcile

only to give birth to mere drifting clouds all the same


Pretend that a frugal discipline of mind

endures this long winter

with even a deficient confidence

in the laws of physics and chemistry


The universe was begotten through an explosion

and expanding rigorously to this day, they say

Would this anonymous, sailing cloud still have

a sky to claim as its burden?


Does it matter if the sun is a bit further away

and the night outstretched by a few minutes?

What's a slight increment in

the density of longing and

the mass of grief?


 

20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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