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lcome Page
    • drawing
    • photos
    • cinema
    • essay
    • poems
    • music
    • toons
    • books
    • mail

외가집

posted Sep 14,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외가집


소철나무 한 그루 가마득히 높아

용두산 기슭의 외가집 마당은

대나무 담장 아래 南國이었다.

뒤뜰에서 끓던 추어탕 비록

장국은 익숙해도 산초향 간질간질 낯설듯이

동백나무 발치에 숨어 쉼 없이 소곤대던 팬지꽃들

여기는 異國이야 남쪽 나라야


짙은 볕 옅은 꽃잎 다 흩어지고

사이좋던 외삼촌들 시애틀로 광안리로 용산으로

그 아이들은 홀씨처럼 더 멀리 뿔뿔이

흩어질 힘 있는 것 다 흩어진 뒤에도

새벽마다 총채로 없는 먼지 털어내시며

깔깔깔 소녀처럼 잘 웃으시던 외할머니

치매로 고생하시는 동안 총채처럼 메마르고

동광동 산마루의 화초들도 메말랐다


이제 나는 다 자라 내 씨앗들을 보듬은 채

물처럼 흐르던 시간 물처럼 고이는

이국에서 외할머니의 메마른 부음을 받았다

용두산을 그리워하지 않고 사는 법

이제 거반 익혀가지만

나도 홀씨 터칠 날을 향해 익어가지만 그래도

흩을수록 고이는 것들이 있다


여름 뿐인 남의 땅 南國에 와서

나는 내가 되돌아갈 곳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외할머니의 추어탕처럼 진하고 뜨거운 이곳

앞마당 해그늘에 잠간 쉬어 가던 높바람

그 가늘고 기다란 바람 속의 대꽃 향기여

자카르타의 소철이여

한가로이 익히지 못할 깔깔깔

웃음소리여


2006.11.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6 늦가을, 출근길 2008.06.24 1039 27
115 새외근황(塞外近況) 1 2008.06.27 921 26
114 새외근황(塞外近況) 2 / Letter to a friend 2008.06.29 1060 24
113 2008.07.04 1039 25
112 2005년 減量記 2008.07.07 971 26
111 새외근황(塞外近況) 3 2008.07.14 942 25
110 을유년(乙酉年) 겨울 저녁 2008.07.16 1041 21
109 귀 / The Ear 2008.07.22 1023 35
108 아내 2008.07.23 1073 24
107 새외근황(塞外近況) 4 / Winter Solstice 2008.07.24 1204 26
106 겨울비 2008.07.30 915 27
105 불확정성의 법칙 / Indeterminacy Sonnet 2008.07.31 3141 59
104 문 리버 2008.07.31 964 27
103   →feedback 2008.07.31 999 29
102   →feedback 2008.07.31 1011 31
101   →feedback 2008.07.31 1054 25
100   →feedback 2008.07.31 1090 36
99   →feedback 2008.07.31 997 26
98 feedback 2008.07.31 1025 27
97   →feedback 2008.07.31 1041 2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