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집
소철나무 한 그루 가마득히 높아
용두산 기슭의 외가집 마당은
대나무 담장 아래 南國이었다.
뒤뜰에서 끓던 추어탕 비록
장국은 익숙해도 산초향 간질간질 낯설듯이
동백나무 발치에 숨어 쉼 없이 소곤대던 팬지꽃들
여기는 異國이야 남쪽 나라야
짙은 볕 옅은 꽃잎 다 흩어지고
사이좋던 외삼촌들 시애틀로 광안리로 용산으로
그 아이들은 홀씨처럼 더 멀리 뿔뿔이
흩어질 힘 있는 것 다 흩어진 뒤에도
새벽마다 총채로 없는 먼지 털어내시며
깔깔깔 소녀처럼 잘 웃으시던 외할머니
치매로 고생하시는 동안 총채처럼 메마르고
동광동 산마루의 화초들도 메말랐다
이제 나는 다 자라 내 씨앗들을 보듬은 채
물처럼 흐르던 시간 물처럼 고이는
이국에서 외할머니의 메마른 부음을 받았다
용두산을 그리워하지 않고 사는 법
이제 거반 익혀가지만
나도 홀씨 터칠 날을 향해 익어가지만 그래도
흩을수록 고이는 것들이 있다
여름 뿐인 남의 땅 南國에 와서
나는 내가 되돌아갈 곳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외할머니의 추어탕처럼 진하고 뜨거운 이곳
앞마당 해그늘에 잠간 쉬어 가던 높바람
그 가늘고 기다란 바람 속의 대꽃 향기여
자카르타의 소철이여
한가로이 익히지 못할 깔깔깔
웃음소리여
20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