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버지니아의 여름은 길다
입추가 지나도 풀벌레 울지 않는다
문득
유지태가 이영애를 원망하던 영화를 떠올린다
그는 잊혀질까봐 괴롭고
당초 잊혀질 의미조차 없었을까봐 괴롭다
그 두 가지는 별반 다르지 않으므로
그의 눈물은 편집증이다.
집에 돌아오면 계절이 바뀌고
매미들 일제히 운다
그는 잊으려고 애쓰고
잊을까봐 몸부림친다
그 두 가지의 차이는 크므로
그의 괴로움은 분열증이다.
긴 여름이 오고 간다 함은
보이지 않는 지구의 다른 편
내가 모르는 어느 영혼에는
봄날이 가고, 또 온다는 뜻이려니.
누군가는 누군가를 기억하고
누구든
모두를 잊는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