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lcome Page
    • drawing
    • photos
    • cinema
    • essay
    • poems
    • music
    • toons
    • books
    • mail

아무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 1

posted Oct 31, 20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제 1 장  사진이 좋은 취미인 이유

  “나는, 만일 내가 사진으로 찍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보지 못했을, 그 뭔가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1‐1. 왜 사진을 찍나?

싸이월드니 페이스북이니 사진으로 소통하는 SNS가 보편화되면서 사진 찍히기를 즐기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다니다 보면, 핸드폰을 멀찍이 들고 눈을 치켜뜨는 ‘셀카의 여왕들’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사진 찍히기를 즐기는 건 아닙니다. 즐기는 게 다 뭡니까. 카메라만 들이대면 질색을 하며 피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즐겁게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역시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닌 모양이에요. 

카메라 뒤에 서는 일은 그보다 훨씬 쉽습니다. 요즘 카메라들은 워낙 첨단기술을 집약적으로 담고 있어서 손가락 까닥거릴 기운만 있으면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반나절쯤 투자해서 TV 리모컨 조작법을 익히는 정도의 정성만 들인다면 제아무리 복잡한 카메라의 기능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기능들을 다 사용하느냐는 별문제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누구나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아무나 전문 사진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확실히 허풍이겠지요. 하지만 사진을 찍는 데 장애가 되는 건 오로지 당신 자신 밖에 없습니다. 사진 촬영은 두 종류의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첫째는 사진 속에 바깥세상을 담아 넣는 재미고, 둘째는 자기가 말하고 싶은 걸 사진 위에 쏟아내는 재미입니다. 자신이 본 것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는 강렬합니다. 2차원 평면에 창의성을 발휘하고 싶은 미적 욕구는 인류의 진화 과정 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거죠. 알타미라 동굴 속의 벽화, 애리조나 평원 바위에 숯으로 그려진 미국 원주민들의 그림, 울진 반구대의 암각화들이 다 그 증거물이에요.

요컨대, 사진을 찍는 이유는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는 기록을 위한 ‘쓸모’이고, 다른 하나는 미적 욕구를 달래기 위한 ‘창작’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완벽하게 구분될 수 있는 특징은 아니에요. 잘 찍혀진 기록사진은 아름답기 마련이고, 제아무리 추상적으로 표현된 사진이라도 실물을 기록하고 있는 거니까요. 기록 사진 따로 있고, 예술 사진 따로 있는 게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이제 막 취미로 시작하려는 당신에게 저는 그 두 가지를 달리 취급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마치 기록을 위해 찍는 사진과 아름다움을 위해서 찍는 사진이 따로 따로, 서로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상상하면서 사진을 찍다 보면 도움이 될 겁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도움이 되냐고, 굳이 물으신다면, 

첫째, 사람들은 대부분 기념이 될 만한 그 어떤 공간을 배경으로 두고 일행을 가운데 배치한 '증명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죠. 세상에 이것처럼 지루한 사진은 없어요. 지금 이 순간을 함께 나눈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면 사람들의 얼굴을 좀 더 크게 찍어두는 편이 좋겠죠. 한편, 이국적인 풍경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형상화하고 싶다면 그 한가운데 꼭 여행자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을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지금 찍는 사진이 기록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그림을 위한 것인가?"를 한 번쯤 고민해 본 사진가는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증명사진을 촬영하는 습관을 벗어나, 한 발짝 더 내딛게 됩니다.

둘째로, 이거냐 저거냐 마음을 정하려고 애쓰다 보면, 내가 어느 쪽에 더 끌리는지를 알게 됩니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이는 사진 찍는 일이 멍청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그럴듯한 일이라고 생각하죠. 일단 이 글을 읽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사진을 좀 더 잘 찍고 싶은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거예요. 그 중에도 어떤 사람은 사진이 순간을 꽁꽁 얼려놓는 기록이라서 좋아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미학적 잠재력에 매력을 느낄 겁니다. 나중에 어떤 경지에 오르게 되면 모든 길은 다시 하나로 통하겠지만, 나의 취향과 욕구와 장점이 어떤 방향인지를 일찍 알아채는 건 유익해요. 낭비를 줄일 수 있으니 유리하기도 하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지 않습니까? “너 자신을 알라”고.

셋째, 기록으로서의 사진과 미학적 수단으로서의 사진 중 과연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많은 실질적 차이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카메라의 종류와 부속 장비들과 촬영의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도구와 과정을 추구하게 될 테니까요. 기록사진에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라면, 좀 더 편리하게 정확한 기록을 남길 카메라를 찾겠죠. 그는 움직이는 사람들의 표정과 동작을 더 신속히 잡아낼 장비들에 마음을 쓰게 될 테고, 좀 더 뜻 깊은 장소와 인물들을 찾아가게 될 거에요. 그러다 보면,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기록이 친숙한 도시 속의 낯선 풍경인지, 운동경기나 무대예술의 장면인지, 역사적 사건인지, 여행의 줄거리인지, 또는 주변 인물들의 삶인지를 좀 더 분명히 알게 됩니다.

아름다움을 주로 추구하기로 마음먹은 경우라면, 자기가 원하는 종류의 아름다움을 더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장비를 찾을 겁니다. 그는 더 섬세하고 충격적인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낼 수 있는 장치와 도구에 관심을 기울일 테고, 객관적이고 산문적인 의미를 담은 피사체 대신, 주관적이고 시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대상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될 거에요. 그건 비 오는 날 길 위 물웅덩이에 비친 흐릿한 네온사인일 수도 있고, 느린 궤적을 그리며 빈 하늘을 가로질러 떨어지는 낙엽 한 장이 될 수도, 또는 얼핏 너른 바다처럼 보이는 수많은 비닐하우스들의 지붕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주관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다니며 카메라에 담다 보면,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이 인물인지, 풍경인지, 정물인지, 추상인지를 좀 더 쉽게 알아낼 수 있을 터입니다.

의미 있는 기록을 추구하느냐 아름다움을 추구하느냐 하는 질문은, 사진을 진지하게 찍어보려는 모든 사람 앞에 놓인 첫 번째 갈림길이랄 수 있습니다. 둘 중 어느 한 길을 간다고 해서 다른 쪽의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 건 물론 아니죠. 하지만 지금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면서 찍으려는 사진이 그 둘 중 과연 어느 쪽에 해당하느냐 고민하면서 찍은 사진은 좀 더 보기에도 즐겁고 기록으로서도 더 나은 것이 되어줄 것입니다.

1‐2 기록으로서의 사진

기록으로서의 사진촬영에 임하겠다면, 우선 부지런해지겠다는 각오를 하는 편이 이롭습니다. 사진은 그저 카메라로 찍는 줄만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좋은 사진은 손발로 찍는 겁니다. 찍으려는 사진의 종류가 뭐든 지간에, 피사체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발품을 마다하지 않는 노력은 반드시 보답을 받습니다. 더군다나, 뭔가를 기록하겠다는 마음으로 사진촬영에 임한다면 현장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가 되겠죠.

놀랍게도 사진은, 사진가가 현장에서 느꼈던 충격과 감상을 솔직하게 전해줍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목숨을 건 종군사진기자 따위의 직업은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사진가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은 대상에 대한 애정입니다. 자기가 기록하려는 것이 전쟁의 흉포함에 시달리는 사람들이건, 남대문 주변 풍경의 변천사건, 또는 늦둥이 아들딸의 성장기록이건, 사진은 대상에 대한 사진가의 애정을 담아내는 절묘한 요술을 부리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연애를 하는 젊은이들이나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사진 연습을 할 절호의 기회를 누리는 셈입니다. 다만, 당신의 연인이나 아이가 모델 노릇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미리 경고를 드려야겠네요. 경험에서 우러나는 조언이니 모쪼록 흘려듣지 마시길 빕니다.

누구를 찍든지, 뭘 찍든 지간에,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을 찍는 데서부터 사진을 시작하는 건 바람직한 출발입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어린 자녀를 촬영했는데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으면, 사진가는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부모로서도 고민하면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이죠.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노출? 셔터속도? 렌즈? 필름감도? 광원? 그런 고민이 있을 때만, 실패는 발전의 어머니가 됩니다.

사진은 내 눈 앞에서 벌어지던 사건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생생하기로야 동영상이 낫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사진은 평면 속에 얼려진 순간의 기록이라서 오히려 동영상으로는 도저히 전할 길이 없는 순간포착 효과가 있습니다. 동영상도 어느 대목을 ‘캡처’해놓고 보면 색다른 느낌을 주지 않습니까? 우리 눈으로 움직이는 영상 속의 사물들을 찬찬히 훑어보기는 매우 버거운 일입니다. 눈이라는 기관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에만 순간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고기능성 카메라기 때문이죠. 사진은 정지된 영상이므로, 우리 눈은 비로소 그 속의 인물과, 풍경과, 배경이 가지는 의미를 찬찬히 즐기고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박제된 기록은 적절한 설명이 붙을 때 한층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좋은 사진을 좋은 글과 함께 남기는 건 좋은 습관입니다, 라고 써놓고 보니 필요 없는 잔소리 같기도 하네요. 기록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메모하는 습관쯤은 벌써 가지고 있을 테니까 말이죠.

이런 설명에 마음이 끌린다면 당신은 포토 에세이나 포토 르포타쥬, 포토저널리즘이라는 멋진 세계 속으로 벌써 한 걸음 내딛고 계시는 셈입니다.

1‐3 예술로서의 사진

잠간만 곁길로 샐 터이니 참아 주십사. 

음악에도 전위음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불협화음, 심지어 악기 이외의 온갖 소리들을 악보에 담아 음악의 지평을 넓히려는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이런 전위음악은 음악의 주류가 아닙니다. 현대에도 전통적인 대위법과 화성을 사용해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음악들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술의 경우는 좀 특이합니다. 현대미술은 난해한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예술을 어지간히 애호하는 사람들조차 미술관에 갈 때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벽에 걸린 변기에서부터, 백지 캔버스에 심오한 제목을 붙여둔 작품처럼, 당최 심미적 만족감을 주지 않는 추상화와 오브제들이 오늘날 미술의 주류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애당초 미술은 '그림'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평면에 베껴내고 싶은 강렬한 원초적 욕구의 발현입니다. 그래서 미술학도들은 데생 훈련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미술교육은 전통적으로 혹독한 데생 연습을 시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죠. (요즘은 갈수록 덜 그렇습니다만.) 혹자는 이런 풍토가 창의성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개탄하는 모양인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창의성이 없는 것은 창의성이 없는 것일 뿐, 기본기가 충실한 데서 비롯되는 현상이 아닐 터입니다.

저는 그림을 좋아하지만 현대미술의 전위적 풍토 때문에 자주 곤혹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의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뭐가 미술이고 뭐가 미술이 아닌지 나만의 기준을 정해버렸습니다. '美術'이라는 이름에 들어맞는 것만 미술로 대하자, 하는 것이죠. 미술(Fine Art)은, 첫째 아름다워야(Fine) 할 겁니다. 아무리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더라도 감동을 불러오는 아름다움이 없다면 그건 제게는 미술작품이 아닙니다. 저 혼자 그렇게 정해버린 겁니다. 

둘째, 미술은 術(Art)이니까, 장기간의 반복적인 노력으로 익힌 기술(craftsmanship)의 결과물이어야 할 거 아니겠습니까?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우연의 결과이거나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거라면 미술로 치지 않기로 마음먹은 거였습니다. 데생도 제대로 못하는 화가가 철퍼덕대며 그려낸 추상화라면 그걸 어찌 미술작품이라 하겠냐 이거죠. 그렇게 정리하니 한결 편한 마음으로 미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더군요. 에프라임 키숀의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를 읽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반가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미술 평론가로서 보다는 <가족>, <동물 이야기> 등 독특한 유머 소설로 이름난 키숀은, 현대미술이 작가와 평론가들의 협잡에 농락당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추상예술을 뒷받침하는 튼튼한 논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사실, 서양의 모든 사상적 모험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차에 관한 각주에 불과하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말을 좀 바꿔봤습니다.) 자연계를 되도록 충실히 관찰하고 모방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은 대체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반면, 현실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진정한 아름다움은 관념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플라톤의 사상에서 흘러나온 지류입니다. 하지만 플라톤적인 예술관의 연장선상에 선다면, ‘공화국’에서 예술가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관념을 그리는데 주력하는 미술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모순에 빠지고 맙니다. 이런 저의 생각이 옳건 그르건, 현대미술이 관념주의(conceptualism)에 너무 깊이 매몰되어 감상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마치 주지주의 이후의 현대시가 노래로부터 너무 멀리 가출하는 바람에 스스로 외로워진 것처럼 말이죠.

저는 현대미술이 이렇게 볼품없는 관념적 결벽증에 빠진 중요한 원인들 중 하나가 사진기술의 발달에 있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화가들은 자신보다 훨씬 더 대상을 잘 묘사할 수 있는 기계의 도전을 받게 되었던 겁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카메라 이전의 화가와 카메라 이후의 화가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는 결코 똑같은 것일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미술에 종사하는 화가들은 대체로 플라톤의 추종자가 되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베끼는 것은 천박한 일"이라고 치부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사람보다 더 멋진 곡을 즉흥연주하거나 작곡할 수 있는 기계의 도전을 아직 받지 않고 있는 음악가들은 행복한 예술가들인 셈이네요.

사진촬영은 당당한 예술행위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한 마디를 설명하느라고 이야기가 갓길로 많이 돌아와 버렸습니다. 사진은 3차원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평면에 옮겨 주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 작가가 창의성을 발휘하는 시각예술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존했더라면, "이거야 말로 진정한 자연미를 추구하는 고급 예술이다"라고 찬탄했을 지도 모를 노릇이지요.

"사진촬영은 기계를 이용하는 당당한 예술행위"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이 말 속에는 몇 가지 구체적인 숨은 뜻이 담겨있어요.

첫째, 사진도 ‘예술행위’이므로,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진작품이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감성적 충격을 불러일으켜야 마땅합니다. “이야! 나도 저런 곳에 가봤으면 좋겠다”라든지, “세상에 저런 것이 다 존재하나?”, 또는 “저 이상한 건 또 뭔가?” 등등의 느낌을 줄 수 있으면 되겠습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말로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는 그 어떤 느낌을 담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도르노라는 미학자는 “사유 앞에서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었죠. 현대 추상미술처럼 오로지 관념적 사유에만 호소하려 드는 것도 시각미술로서의 본분을 지나치게 어기는 거라고 보지만, 거꾸로 말로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그림이나 사진이라면 그걸 예술작품이라고 부르기 좀 뭣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그림을 우리는 흔히 '이발소 그림'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둘째, 기계의 도움을 받는 걸 조금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얘깁니다. 사진이 담아내는 것도 자연이지만, 카메라가 작동하는 교묘한 과학적 원리도 자연법칙의 일부거든요. 사진가는 자기가 기계와 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사진가와 카메라의 관계는 연주자와 악기 사이의 관계와도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붓을 가리지 않는 명필과는 달리, 사진가나 악기 연주자들은 어쩔 도리 없이 어느 정도는 페티시스트적인 면모를 갖게 됩니다. 고급사양의 기계에 대한 물신숭배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와는 정 반대로 자동노출이나 자동촛점장치 등 첨단기술의 도움을 멸시하는 태도도 바람직한 건 아닙니다. 카메라라는 물건은 현대의 광학, 물리, 기계, 화학, 전자 기술을 집약한 첨단장비입니다. 어차피 그런 기계를 사용하는 처지에 수동 조리개나 수동 초점만 고집한다면, 그런 태도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랄까, 자동차를 얻어 타고서도 "폐를 끼칠까봐" 짐은 머리 위에 이고 있었다는 어떤 시골 할머니의 일화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는 겁니다.

셋째, 사진으로 미학적 만족감을 충족시키기란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사진촬영이란, 앞에서 말한 첫 번째와 두 번째 특징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만만치 않기 때문에 한 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기계를 사용해서', '감성적 메시지를 담아내야' 하므로, 사진가들이 발휘하는 창의성의 공간은 화가들이 누리는 것보다 오히려 더 비좁습니다. 다른 사람이 찍었더라도 비슷하게 나왔을 법한 사진을 통해서, 사진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지레 너무 겁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부 다 다릅니다. 같은 동호회의 회원들이 비슷비슷한 카메라를 들고 같은 장소로 출사를 나가더라도, 똑같은 사진을 찍어오는 경우는 없는 법입니다.

내가 사진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과연 뭔가? 사진을 찍기 전부터 그 해답을 아는 사진가는 없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줍니다. 그러니까 사진 촬영은 내가 미처 몰랐던 나와 만나는 길이기도 한 거죠. 사진촬영은 즐거운 자기 발견의 과정이라는 얘깁니다. 저는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이 즐거움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혹독한 수련을 거치는 미술학도들과는 달리, 선천적으로 멋들어진 선과 색을 그려내는 손재주를 타고 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사진은 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창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몸이 마음을 따라가 주지 않는 예술 애호가들에게, 카메라만한 축복은 어디에도 없는 거죠.

1‐4 누가 사진을 찍나?

기계 조작에 유난스런 애착을 가진 사람, 미술작품 감상을 즐기면서 언젠가 나도 회화적 창작물을 만들 수 있었으면 하는 갈망을 품어왔던 사람, 뭐든 기록해 두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 호젓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남달리 좋아하는 사람, 넉살이 좋아서 사람들과 쉽게 사귀는 사람,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 등등.

짐작컨대, 이런 분들은 사진촬영이라는 취미에 쉽게, 그리고 빠르게 빠져들 가능성이 많을 걸로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옆에서 다른 누군가가 확신을 북돋아주지 않았더라도 진작 사진촬영을 즐기고 있을 공산이 큽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만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을 굳이 읽기 시작하는 정도의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은 사진을 찍는데 가장 필요한 자질을 갖고 계신 셈입니다. 그건 바로 ‘관심’입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한꺼번에 필름 수 십 통을 현상해야만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최고급 기종의 카메라를 가져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매주 꼬박꼬박 야외 출사를 나가야만 사진을 취미로 삼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기한테 맞는 적당한 카메라를 구입할 정도의 예산과, 사진을 아주 잊고 지내지는 않을 만큼의 심적 여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수준급의 사진을 찍어낼 수 있습니다. 이 점이 바로 사진예술의 묘미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고, 어떤 사람은 그러지 않습니다. 그들을 구분하는 차이가 바로 ‘관심’입니다.

관심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에 의지해서 넘어야 할 약간의 장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심이란, 애정의 씨앗입니다. 사진촬영에 필요한 사전지식이란 건 그리 어렵거나 성가신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관심이나 애정 또는 욕망 (그걸 뭐라고 부르건 간에) 같은 것이 아예 없다면 에베레스트 산 정상만큼이나 넘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리는 거죠. 하긴, 따지고 보면 그게 또 사진의 매력이기도 해요. 누구나 다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도 어떤 사람들은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절대로 노력하지 않거든요. 모든 사람이 다 나보다 사진을 멋지게 찍는대서야 그걸 시작할 엄두가 어디 나겠습니까?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379 Hotel Aman jiwo, Yogyakarta file 2006.10.31 135715 10
378 Yamagata City file 2019.02.24 57057 0
377 Lakes I met on the road file 2006.08.02 30503 15
376 Okayama file 2019.03.06 29363 0
375 Mt. Rushmore file 2006.08.03 27622 17
374 Langkawi, Malaysia (2007.3.27-29) file 2007.04.02 22829 9
373 Shiogama file 2018.07.22 21228 1
372 2011.8. Morioka + Matsushima + Fukushima file 2011.08.16 20832 9
371 Brooklyn Museum file 2015.01.08 20481 18
370 Lakes I met on the road (1) file 2006.08.02 19463 16
369 Splash file 2006.06.22 19019 10
368 Kurashiki file 2019.03.06 18435 0
367 Tanjung Lesung, West Java file 2008.03.29 17388 42
366 Spain(1) Madrid file 2015.10.17 16134 32
365 Fatahillah Square file 2008.07.27 15795 9
364 Osaka file 2019.03.06 15419 0
363 Autumn and Winter in Tokyo file 2012.02.12 15147 16
362 2010.12. 지브리 박물관 file 2010.12.30 14926 20
361 Naoshima file 2019.03.06 14810 0
360 Sendai Aquarium file 2019.01.04 14231 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9 Nex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