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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 2(2)

posted Oct 3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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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렌즈의 종류 

김을 다 구웠으니 하산해도 좋으냐 하면, 아직 좀 더 남았습니다. 가스레인지에 대해서도 말씀드려야죠.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렌즈의 특성에 대해서 모르면 SLR 카메라를 안다고 할 수 없어요. SLR 카메라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다양한 렌즈를 탈착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점이라는 건 이미 설명 드렸죠. 그렇다면 고이 붙어있는 렌즈를 왜 굳이 딴 놈으로 바꿔 끼워가면서 사진을 찍는 걸까요? 렌즈에 따라서 똑같은 피사체도 다른 영상이 되기 때문이에요. 

얘기가 너무 방대해지면 곤란하겠으니까, SLR 렌즈를 기준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렌즈는 크게  ① 단렌즈(Single Lens)와 ② 줌 렌즈(Zoom Lens)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단렌즈는 다시 ① 단초점(short focus) 렌즈, ② 표준렌즈, ③ 장초점(long focus) 렌즈 세 종류로 나눠볼 수 있어요. 물론 후진 렌즈와 좋은 렌즈로 나눌 수도 있고, 무거운 렌즈와 가벼운 렌즈라든지 값싼 렌즈와 비싼 렌즈로도 나눌 수 있겠지만, 역시 특성을 기준으로 나눠서 설명하는 게 좋겠지요. 렌즈의 특성이라고 말한다면 우선 초점거리(focal length)와 화각(picture angle)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초점거리와 화각이라는 게 도대체 뭐냐 부터 설명을 해야겠군요.

<초점거리와 화각>

초점거리란, 필름 위에 피사체의 상이 초점이 맞았을 때, 필름에서부터 렌즈 중심까지의 거리를 말합니다. 화각이란, 렌즈를 통해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시야의 범위를 각도로 표현한 겁니다. 그림으로 보면 단번에 이해가 됩니다. <그림>

사진기의 크기가 마구 변하는 게 아닌 이상, 초점거리와 화각 사이에는 일종의 반비례 관계가 성립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렌즈 중앙에서 필름까지의 초점거리가 길쭉해지면 화각은 뾰족한 예각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시야가 좁아지면 그만큼 적은 범위의 풍경으로 화면(필름)을 채워넣게 되니까, 당연히 화각이 좁아질수록 영상 속의 피사체는 확대되는 효과가 초래됩니다. <그림>

거꾸로 초점거리가 짱달막해진다면, 화각은 뭉툭한 둔각이 되겠죠. 화각이 커진다는 말은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입니다. 넓은 범위의 풍경을 일정한 크기의 필름 위에 다 집어넣으면 당연히 사물은 작게 보입니다. <그림>

초점거리와 화각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 건 굉장히 중요해요. 비록 '화각'이니 '초점거리' 같은 용어를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더라도 말이죠. 그러니, 만일 지금 이 부분이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림을 참조해 가면서 몇 반복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한 번 “아하!”하고 깨닫고 나면 엄청나게 간단하고 당연한 원리입니다. 자연의 모든 법칙이 그러하듯이.

자, 복습해 봅시다. “초점거리가 길어진다”고 말하면, 그 뜻은 “화각이 좁아진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고, “피사체가 확대(close‐up)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화각이 표준보다 넓다는 건? 그건 초점거리가 짧은 편이라는 얘기고, 피사체가 실제보다 자그맣게 나온다는 뜻이겠죠. 이제 ‘초점거리’와 ‘화각’이라는 렌즈의 핵심개념을 익히셨으니까 본격적으로 렌즈의 특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에는 조금 색다른 사연이 있으니까 (기대하시라) 우선 필름 카메라를 기준으로 설명하겠습니다.

<표준 렌즈>

표준 렌즈란, 사람의 눈으로 보는 시야와 비슷한 화각으로 보는 렌즈를 말합니다. 사람의 시야는 개인별로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녹내장에 걸리면 시야가 더 좁아집니다.) 표준렌즈라고 하면 초점거리가 38~58mm 사이의 렌즈를 말합니다. 35mm 필름용 SLR 카메라의 사용자들은 통상 ‘표준렌즈’ 하면 50mm (화각 46°) 렌즈를 말하는 걸로 통합니다. 50mm보다 살짝 더 가까이서 찍는 35mm 정도까지를 표준렌즈로 취급하기도 합니다만.

표준렌즈에 “표준”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이유는 다른 데도 있습니다.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에 작고 가벼우며, 매우 밝은 개방 조리개를 가진 렌즈도 저렴한 가격에 만들 수 있거든요.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렌즈의 개방 조리개가 밝으면 밝을수록 렌즈의 ‘성능’은 우수합니다. 표준렌즈는 설계 특성상 광학적 성능도 우수하고, 해상도와 콘트라스트도 훌륭합니다. 선명한 그림이 나온다는 뜻이죠.

우리가 실제로 바라보는 시야와 비슷하기 때문에, 표준렌즈는 사실주의적인 사진을 추구하는 작가들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습니다. 표준렌즈로 씩은 사진은 피사체의 원근감을 왜곡하지 않아요. 무슨 얘기냐 하면, 카메라에 가까이 있는 피사체와 멀리 떨어진 피사체의 상대적인 크기가 ‘정상적으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다른 렌즈들처럼 극적으로 피사체를 확대하거나 왜곡하지 않기 때문에 표준렌즈는 너무 밋밋하다는 사람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고전적인 사진작가의 흉내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표준 렌즈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연습을 하는 건 중요합니다. 렌즈가 제공하는 화려한 효과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진정한 사진의 미학에 빠져들 기회를, 표준렌즈는 선사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표준렌즈는 사진촬영의 기본입니다. 그림으로 치면 연필소묘이고, 이태리 요리로 치자면 (올리브 기름으로 볶기만 한) 스파게티 알라 올리오, 수험생으로 치자면 국․영․수, 옛날 술집으로 치자면 맥주 네 병에 마른안주 같은 거죠. 그게 돼야만 그 다음이 있다는 뜻입니다.

<단초점 렌즈 : 일명 광각렌즈>

우리는 지금 줌(zoom) 렌즈가 아닌 단(單)렌즈(single lens)에 대해서 알아보는 중이에요. 표준, 광각, 망원 렌즈들도 전부 단렌즈입니다. 이걸 다시 상기시켜 드리는 이유는 단렌즈를, 지금부터 설명하려는 단초점 렌즈와 혼동하지 마시라는 뜻에서에요. 단(短)초점 렌즈는 렌즈의 초점거리가 표준렌즈보다 짧은 렌즈를 말합니다.

복습삼아 다시 살펴봅시다. 초점거리가 표준렌즈보다 짧다면 화각은 표준렌즈보다? 네, 당연히 넓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몸통도 보통 작달막하죠. 귀엽게 생긴 이 렌즈들을 초점거리를 기준으로 부르면 ‘단초점 렌즈’가 되고, 화각을 기준으로 부르면 ‘광각(wide‐angle) 렌즈’가 되는 겁니다. 둘 중 어느 쪽으로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35mm 필름용 카메라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35mm, 28mm, 24mm, 21mm, 18mm, 14 mm 렌즈 등이 광각렌즈에 해당합니다. 14mm 렌즈는 114° 정도의 화각을 제공하는 초광각 렌즈에 해당하죠. 가장 극단적인 광각렌즈는 화각이 거의 180°인 어안(魚眼, Fish‐eye) 렌즈입니다. 실제로 물고기들이 이렇게 세상을 바라볼 것 같진 않지만.

광각 렌즈는 화각이 커질수록 당연히 더 넓은 범위의 풍경을 찍을 수 있게 해 줍니다. 널찍한 들판이나 가까이서 바라본 산봉우리 같은 풍경을 광각으로 찍어두면 탁 트인 느낌을 강조하는, 박진감 넘치는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좁은 공간에 모여 있는 인물이나 물건들을 찍더라도 광각 렌즈를 사용하면 제법 여유 있는 느낌으로 화면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광각 렌즈는 렌즈 몸통이 짧아서 비교적 많은 양의 빛을 통과시키므로 대체로 밝은 렌즈에 해당하고, 조리개나 셔터 속도를 조절할 여지도 비교적 많아요.

그런데, 화각이 커지면 발생하는 재미난 부수적 효과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거리의 왜곡입니다. 카메라로부터 가까운 물체와 먼 물체 사이의 거리를 실제보다 훨씬 더 멀어보이게 만드는 겁니다. 둘째로, 상(image)의 왜곡입니다. 화면의 중앙 부분에 위치한 피사체는 비교적 제대로 나오지만, 화면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물체들이 휘어보이게 됩니다. 셋째, 초점심도가 깊어집니다. 갑자기 웬 초점 심도?

초점 심도는 조리개로 결정한다는 앞부분의 설명이 기억나시죠? 광각렌즈를 사용할 때도 여전히 조리개를 조이면 조일수록 초점 심도는 깊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같은 사진기에 같은 조리개를 놓고 찍어도 렌즈를 광각으로 바꾸면 초점 심도가 더 깊어진다 이겁니다. 일부러 배경을 아웃 포커스 시키기도 쉽지 않다는 얘깁니다. 24mm 렌즈 정도만 되어도, 상당히 가까운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이상 조리개를 다 개방하더라도 웬만해서는 배경을 “날리기”가 어렵습니다.

렌즈를 교환할 수 없는 똑딱이 카메라들은 흔히 표준 화각보다 살짝 넓은 각도를 가진 렌즈들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아마 초점 심도를 깊게 만들어서 아무렇게나 찍어도 초점이 잘 맞으라고 그랬던 면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컴팩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는 얼굴을 너무 가까이 들이대면 곤란했던 겁니다. 화면의 가장자리가 약간 휘어 보이는 왜곡 효과 때문에, 라면 두 개 끓여먹고 잠들었다가 바로 깬 것 같은 얼굴이 나오곤 하는 거죠. ‘셀카’를 많이 찍어본 사람들은 알 겁니다. 예쁘게 나오려면 너무 가까이서 찍으면 안 된다는 걸.

서 있는 사람을 눈높이에서 광각렌즈로 찍으면 영락없이 다리가 짧아 보입니다. 무릎을 살짝 꿇고 찍어주는 센스가 필요하죠. 광각렌즈를 가지고 인물과 풍경을 함께 찍으려고 할 때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거리 왜곡’ 효과 때문에 실제로 눈으로 보는 것보다 배경이 훨씬 조그맣게 나오기 때문이에요. 이럴 때는 뷰 파인더로 확인을 해 가면서 배경을 적당한 크기로 찍을 수 있는 장소에 우선 자리를 잡고, 그런 다음에 인물을 카메라와 배경 사이의 적절한 지점에 배치하면 됩니다. 인물의 자리를 먼저 잡으면 배경더러 오라 가라 할 수가 없으니까요.

24‐28mm 정도의 광각렌즈는 잘만 활용하면 실감도 나면서 박진감도 넘치는 사진들을 찍어낼 수 있습니다. 사진을 감상하는 사람의 시선을 사진가가 원하는 지점으로 확 끌고 오는, 재치 있는 효과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곳까지 (벽이 있다든가, 아니면 강변이나 절벽 끝이라든가) 물러섰는데도 피사체가 너무 커서 화면에 다 들어오지 않을 때도 광각렌즈는 유용합니다. 그러나 뭐든지 과하면 곤란한 법. 광각 렌즈를 지나치게 남용해서 찍은 사진들을 한 데 모아두면 도리어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장초점 렌즈 : 일명 망원렌즈>

장초점 렌즈는 표준렌즈보다 초점 거리가 길고 화각은 좁아져서 이미지의 배율이 커지는 렌즈를 말하겠죠? 단초점 렌즈를 광각 렌즈라고 부르니까, 장초점 렌즈는 ‘협각 렌즈’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은데, 다행히도 이런 이상한 이름은 쓰이지 않습니다. 먼 곳에 있는 피사체를 실물보다 확대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망원(telephoto) 렌즈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리죠. 35mm 필름용 카메라를 기준으로, 75mm, 85mm, 105mm, 135mm, 200mm, 250mm, 300mm, 600mm 등등 장초점 렌즈는 종류도 많고, 고배율로 끝까지 가자면 천체관측소의 허블 망원경까지도 일종의 망원 렌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300mm 카메라라면 렌즈의 초점 거리가 30cm나 된다는 뜻인데, 그러면 렌즈 자체의 길이가 최소한 30cm 이상은 되어야 할까요? 600mm 촛점거리를 가진 렌즈는 거의 바주카포처럼 생겼다는 뜻일까요? 물론 장초점 렌즈는 표준 렌즈에 비해 길고, 또 큽니다. 하지만 렌즈의 물리적인 길이가 초점 거리에 비례해서 늘어나는 건 아니에요. 설계를 교묘하게 해서 렌즈 통 내부가 아니라 바깥 지점(허공)에서부터 초점거리를 계산하게끔 만들 수도 있거든요. 렌즈 통 속에 작은 오목거울을 넣어서 빛을 렌즈 속에서 이리저리 반사시키면서 초점거리를 늘인 반사식(catadioptric) 망원렌즈도 있는데, 길이는 짧아지는 대신 몸통이 무척 굵어지죠.

엄밀히 말하면, 이런 식으로 렌즈의 몸체보다 초점거리가 더 긴 렌즈들만을 망원 렌즈라고 지칭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망원 렌즈가 아닌 장 초점 렌즈들(초점 거리가 50mm 보다는 크기만 렌즈 자신의 몸체보다는 짧은 것들)도 있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구분하기 시작하면 렌즈의 설계도를 펼쳐놓고 긴 얘기를 해야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대강 혼동해서 쓰듯이 그냥 장초점 렌즈라는 이름과 망원 렌즈라는 이름을 섞어서 쓰기로 합시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초보자를 위한 거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되도록이면 망원 렌즈라는 이름 보다는 장초점 렌즈라는 이름을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망원 렌즈가 아닌 장초점 렌즈들은 있지만, 장초점이 아닌 망원 렌즈란 없는 거니까요. 즉, 모든 망원 렌즈는 장초점이지만, 모든 장초점 렌즈가 망원인 건 아닙니다.

이제 표준 렌즈와 광각 렌즈가 뭔지 아셨으니, 장초점 렌즈의 특징도 대략 짐작하실 수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초점 거리가 길어질수록, 즉 화각이 좁아질수록 점점 더 좁은 범위의 영상이 일정한 크기의 필름(또는 센서)위로 비칩니다. 이 말은,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들이 확대되어 보인다는 말과 정확히 같은 뜻입니다.

도대체 뭐 하러 렌즈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는 걸까요?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에 가까이 다가가서 표준 렌즈로 찍은 사진과, 멀리 떨어진 채 망원 렌즈로 찍은 사진은 비록 주피사체(찍으려던 그 물체)의 크기는 비슷하더라도 아주, 매우, 완전히 다른 사진이 됩니다. 이것이 망원 렌즈 사용의 열쇠입니다. 광각 렌즈의 경우를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간단합니다. 광각 렌즈는 카메라에 가까운 물체와 먼 물체 사이의 거리를 실제보다 더 커보이게끔 왜곡한다고 설명 드린 거 기억나시죠? 망원 렌즈는 카메라에 가까운 물체와 먼 물체 사이의 거리를 실제보다 훨씬 더 가깝게 보이도록 왜곡합니다. 바꿔 말하면, 망원 렌즈는 사물을 일정한 정도로 확대시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멀리 있는 것일수록 더 크게 확대시키는 겁니다. 다음 사진을 보면서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 사진은 한 자리에 서서 찍은 것이고, 두 번째 사진은 인물이 일정한 크기로 나오게끔 점점 더 인물 가까이로 다가가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그림>

카메라 렌즈의 이런 특성은 당연히 영화촬영(cinematography)에서도 이용됩니다. 옆의 사진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9년 영화 <Black Rain>의 한 장면이에요. 영화 속에서 미국 경찰 역할을 맡은 마이클 더글러스는 범인을 잡으러 일본까지 옵니다. 골목에서 범인과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벌이던 그는 대로로 도주한 범인을 쫓아 골목 밖으로 뛰쳐나오죠. 길 한 복판에서 범인을 향해 사격자세를 취하던 그는 뒤에서 경적을 울리며 다가오던 거대한 트럭에 거의 치일 뻔 합니다. 그는 가까스로 트럭을 피하며 몸을 굴립니다. 이런 장면에서는 마이클 더글러스와 트럭의 거리가 아슬아슬할 만큼 가깝게 보여야 긴박감이 높아지는 법이죠. 바로 이런 장면에서 망원 렌즈의 특성이 잘 살아납니다.

광각렌즈는 피사체간의 거리를 과장되게 확대하기 때문에, 이런 장면을 광각렌즈로 찍었더라면 마이클 더글러스는 마치 별로 위험하지도 않은 차량 때문에 ‘할리우드 액션’을 취하는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망원 렌즈는 피사체들 간의 앞뒤 거리를 축소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화면은 거리감이 사라져 전반적으로 ‘납작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 장면을 찍기 위해 리들리 스콧 감독은 되도록 먼 곳에 카메라를 두고 망원 렌즈로 촬영했을 겁니다.

장초점 렌즈의 두 번째 특성은 (광각 렌즈와는 반대로) 초첨 거리가 길어질수록 초점 심도가 얕아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초점을 잘 맞추는 것이 아주 중요해집니다. 200mm 이상의 망원 렌즈를 사용하면, 조리개를 중간쯤에 놓고 찍더라도 초점이 조금만 벗어났다가는 흐릿하게 나와 버립니다. 원래 렌즈 통이 무거운데다가 먼 곳의 영상을 찍기 때문에 망원 렌즈는 삼각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초점을 세밀히 맞추기 위해서도 삼각대의 중요성은 이중으로 커지는 셈이죠.

장초점 렌즈로는 일부러 배경을 흐릿하게 ‘날려버린’ 멋진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습니다. 일부러 흐릿하게 만든 배경을 가리켜 ‘보케(bokeh)’라고도 부릅니다. 보케는 원래 일본어 ‘ぼけ(흐려지다)’라는 말에서 나온 말인데, 이제는 초점이 맞지 않는 영역의 흐려지는 모양을 나타내는 사진 용어로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스시’나 ‘스모’ 따위야 일본에서 나온 거니까 일어 표현이 굳어진 게 당연하지만, ‘쓰나미’나 ‘보케’ 같은 표현으로 세계 언어의 표현력을 풍부하게 만드는 기여를 했다는 점은 일본 사람들을 칭찬해도 좋을 대목이라고 봅니다.

‘아웃 포커스(out‐focus)’라는 영어 표현도 있지만 이건 반드시 일부러 흐릿하게 만든 것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초점이 맞아야 하는 곳이 실수로 흐려진 것도 포함하니까 보케와 정확히 똑같은 뜻은 아닙니다. 아웃 포커스가 되면, 사진 속에 찍힌 광원(예를 들어 가로등이나 전구 등)의 형체는 렌즈 속에 달린 조리개의 모양과 비슷하게 사진에 찍힙니다. 조리개가 둥글면 광원도 흐릿한 동그라미로, 팔각형이면 광원도 팔각형으로 나오는 거죠. 렌즈 속에 조그만 둥근 거울이 들어 있는 반사식 망원렌즈의 경우는 광원이 반지처럼 속이 빈 둥그라미 모양으로 나옵니다. ‘보케’에 해당하는 우리말로는 ‘빛망울’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빛망울은 아웃포커스된 사진 속에 찍혀 나오는 광원의 모양새를 일컫는 말로서, 이 또한 ‘보케’와 정확히 동일한 뜻이라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보케’는, 일부러 초점 심도를 얕게 만듦으로써 아웃 포커스되어 밝게 표현된 부분을 포괄적으로 부르는 용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뭘 좀 아는 척 하는 사람들은 “흠... 망원 렌즈에 조리개를 넓혀서 찍었나요? 보케가 부드럽게 나왔군요.” 따위로 말하곤 하는 거죠. 하긴 뭐, 쓰임새로만 보자면야 “배경을 적당하게 날리셨군요.”라고 말하는 것과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뭉갠다’든지 ‘날린다’는 표현은 속성상 좀 과격한 동사이다 보니 점잖은 자리에서 쓰긴 좀 주저되는 바가 없지 않아요.

그걸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 아웃 포커스 시키건, 빛이 망울지게 찍건, 보케를 주건, 배경을 날리건 ‐ 초점 심도를 얕게 만들면 초점이 맞은 피사체만을 흐릿한 배경 위에 둥둥 뜬 것처럼 두드러져 보이게 만들 수 있다 이겁니다. 이건 참 매력적인 효과인데, 이것도 과하게 사용했다간 식상한 느낌을 주게 됩니다. 세상에 과해서 좋을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장초점 렌즈는 먼 곳의 피사체를 확대해서 찍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매우 유용합니다. 도저히 더 가까이는 다가갈 수 없는 강 건너편의 피사체를 당겨서 찍는다든지, 지저귀는 작은 새를 확대해서 찍기 위해서는 장초점 렌즈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말씀 드렸다시피, 장초점 렌즈는 초점 심도가 얕습니다. 장초점 렌즈를 사용하면서 적절한 깊이의 초점 심도까지 얻고 싶다면 (조리개를 팍팍 줄여줘야 하니까) 그만큼 셔터 속도가 느려져야만 합니다. 멀리 떨어진 물건을 확대해서 느린 속도로 찍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삼각대가 없으면 아주 곤란해지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장초점 렌즈의 어쩔 수 없는 단점을 꼽아보자면, 우선 크고 무겁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좋은 사진은 발품을 팔아야 나오는 것이므로, 들고 다닐 물건이 크고 무겁다는 건 큰 단점에 해당합니다. 게다가, 긴 렌즈통을 통과하느라 빛의 양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밝고 성능 좋은 렌즈를 만들기가 기술적으로 어렵습니다. 밝은 고배율 망원렌즈의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어둡고 초점심도가 얕기 때문에 조리개와 셔터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여지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굳이 따지자면 단점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런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장초점 렌즈가 아니었다면 찍을 수 없는 사진을 찍어놓고 보면 그 둔탁하고 무거운 렌즈가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몰라요.

평균적으로 볼 때, (망원 렌즈는 아니지만) 장초점 렌즈들 중 가장 널리 사랑받는 건 85mm와 105mm가 아닐까 싶더군요. 개인적으로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니콘 105mm f/2.2 접사 겸용 렌즈를 무척 사랑합니다. 무척 밝고 가볍고, 접사 겸용이라 쓰임새도 많고, 자동초점용이어서 DSLR과 SRL 양쪽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등의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인물사진을 찍을 때 105mm 렌즈는 진가를 발휘합니다. 50mm 표준 렌즈로 찍을 때에 비해서 모델로부터 좀 더 멀찍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사진기 앞에 서서 찍히는 사람들은 105mm로 찍을 때 사진기와의 거리를 심리적으로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고들 하더군요.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표준 렌즈로 찍었다면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 모습을 보였을 인물들의 표정도 105mm 렌즈 정도로 떨어져 찍으면 한결 편안하게 되곤 합니다. 아기나 연인, 배우자 등 아마추어 모델을 주로 찍고 싶은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렌즈 교환형 SLR 카메라의 경우, 카메라와 표준렌즈 사이에다가 일종의 빈 연결통을 끼워서 초점거리를 인위적으로 늘여주어도 망원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사용하는 빈 통을 망원 링, 망원 컨버터, 텔레컨버터 등으로 부르죠. 급한 대로 쓸 수는 있겠지만 화질이 떨어져 선명한 사진을 얻기가 어렵다니, “그런 물건도 있구나”하고 참고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기타 특수 렌즈>

외과 수술용 렌즈, 적외선 렌즈, 천체관측용 렌즈 등과 같이 아주 유별난 렌즈들을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몇 가지는 설명해볼까 싶습니다. 피사체의 윤곽선이 부드럽게 표현되는 연초점(soft focus) 렌즈라는 것이 있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쓰입니다. 상업사진을 찍는 작가가 아니라면, 이런 효과는 대게 SF(Soft Focus) 필터를 사용해서 얻고들 있습니다. 또, 틸트‐쉬프트 렌즈라는 것도 있습니다. 건물을 밑에서 올려다보면서 찍으면 밑은 넓고 위는 좁게 찍히는데, 렌즈통을 조금 어긋나게 만들어 초점 위치를 변경함으로써 이런 시각적 효과를 바로잡아 건물이 수직으로 찍히게끔 만드는 것이 쉬프트 기능입니다. 틸트 효과는 렌즈통을 비틀어 초점심도를 극단적으로 얕게 만드는 겁니다. 거리 풍경을 조금 높은 곳에서 틸트 쉬프트 렌즈로 찍어놓으면, 부자연스런 초점심도 때문에 마치 정교한 미니어처를 찍은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이런 효과는 사후에 포토샵 등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죠.

특수 렌즈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걸 꼽는다면, 접사용 렌즈를 들 수 있습니다. 접사(macro photography)라는 건, 피사체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찍는 사진을 말해요. 곤충이나 꽃을 찍기 위해서는 보통 렌즈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초점이 맺히는 접사 렌즈를 사용해야 합니다. 급한 대로 일반 렌즈에 돋보기를 대고 찍을 수도 있지만, 화질은 접사 렌즈를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접사 렌즈는 주로 작은 물건들을 찍기 때문에 마이크로(micro) 렌즈라고도 부르고, 작은 물건들을 크게 확대해서 찍는 것이기 때문에 매크로(macro) 렌즈라고도 불러요. 마이크로와 매크로는 반대말이지만, 렌즈에서는 ‘미시 렌즈’나 ‘거시 렌즈’나 똑같은 물건을 일컫는 이름이 되어버렸죠.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부디 화내지 마시고,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예전에 이것 때문에 무척 혼란스러웠던 경험이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필름에 실제로 비치는 영상의 크기가 피사체의 절반(1/2) 내지 피사체와 같은 크기 정도가 되면 고전적 의미의 '접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고배율로 확대시켜 찍더라도 접사 말고 달리 부를 말이 없긴 하죠. (물론, 미생물 사진 정도가 되면 그건 접사라기보다는 현미경 사진이라고 불러야겠습니다.)

50–60mm 접사 렌즈는 연필이나 동전 따위의 물체들을 가까이서 확대시키기에 적합하고, 90–105mm 접사용 렌즈로는 주로 곤충이나 꽃 따위를 찍습니다. 150–200mm 접사 렌즈는 조금 더 멀리 떨어진 채로 확대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일반 SLR 카메라에다가 표준 렌즈를 거꾸로 대고 찍어도 피사체 크기가 필름에 그대로(1:1) 옮겨지는 접사가 가능합니다. 렌즈를 거꾸로 끼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링 장치(이른바 ‘접사 링’)도 있긴 한데, 렌즈의 민감한 부위가 밖으로 드러나는 셈이라서 자주 쓰도록 권할만한 방법은 아니에요.

<줌(zoom) 렌즈>

자, 이제까지 단초점, 표준, 장초점 렌즈 등 단렌즈(Single Lense)의 종류와 특징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카메라는 한 대 뿐이고 광각과 망원 사진을 수시로 바꿔 가면서 찍어야 한다면? 매번 여러 개의 렌즈를 가지고 다니면 무겁기도 하거니와 갈아 끼우는 일도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에요. 성가신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렌즈를 갈아 끼우는 사이에, 포착할 순간이 지나가 버린다는 점이겠죠. 이럴 때 사용하라고 개발된 것이 줌 렌즈(Zoom Lens)라는 물건입니다.

주밍(zooming)이라는 말은 동영상에서 피사체를 점차로 확대하는 영상기법을 말합니다. 사진으로야 점차로 줌‐인(zoom‐in) 또는 줌‐아웃(zoom‐out)하는 효과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만큼, 줌 렌즈는 엄밀히 말한다면 ‘초점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variable focal length) 렌즈’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언어는 늘 경제적인 표현을 쫓아 대중화되는 법이어서, 줌 렌즈는 가변초점거리 렌즈를 부르는 일상용어가 되었습니다.

60년대 중반에 처음 개발되었을 때만해도, 줌렌즈는 단렌즈에 비해서 화질이 너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렌즈 설계기술의 꾸준한 발전과 광학기술의 개선으로 80년대 후반부터 줌 렌즈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죠. 최초로 줌렌즈를 제작했던 니콘은 물론, 캐논, 미놀타, 펜탁스 등 카메라 제조업체와 시그마, 토키나, 탐론 등 렌즈 전문 회사들이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와 성능의 SLR용 줌 렌즈를 생산하고 있는 중입니다.

줌 렌즈의 최단 초점거리로 최장 초점거리를 나눈 ‘줌 비(zoom ratio)’로 줌 렌즈의 배율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가령, 35‐70mm면 2배 줌, 70‐210mm면 3배 줌이 되는 거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줌 비가 너무 크면 화질이 나쁘다는 것이 상식처럼 통용되었는데, 요즘은 18‐200mm, 28‐105mm, 35‐300mm 등과 같은 고배율 줌 렌즈도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기술의 진보로 양질의 렌즈를 예전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만들 수 있게 된 덕분이라고 하네요.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줌 렌즈의 장점은 편리성입니다. 어떤 곳을 처음 여행하게 될 때, 우리는 그 곳에서 어떤 피사체를 만나게 될 지 미리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일정이 여유롭다면 표준 렌즈를 지참하고 여행을 하면서, 거리나 각도가 마음에 들 때까지 피사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거나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발품을 들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일행들에게 매번 여정을 지체하도록 폐를 끼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사진촬영이 여행의 주목적이라면 다양한 렌즈를 가방에 챙겨 넣고 떠나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전업작가가 아닌 이상 사진 가방만 한가득 챙겨 들고 떠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럴 때 줌 렌즈는 아주 요긴합니다. 광활한 들판이 나오면 광각으로 주욱 펼쳐주었다가, 먼 풍경을 확 끌어당겨 찍을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날 때 애용하는 렌즈는 니콘 18‐200mm 줌렌즈입니다. 낯선 곳에서 가족들도 돌봐야 하는 가장이 그럴듯한 풍경이 나타날 때마다 카메라 가방을 뒤적이면서 이 렌즈 저 렌즈를 뺐다 끼웠다 하는 건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도, 여행의 재미를 위해서도 별로 추천할 만한 일이 못되더군요. 이런 사실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큰 맘 먹고 성능이 제법 좋은 18‐200mm 줌 렌즈를 구입한 뒤로 우리 가족의 여행은 훨씬 알찬 것이 되고 있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는 게 가족여행의 전부는 아닌 법이니까요.

최근에는 줌 렌즈가 SLR 카메라의 기본사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세를 이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공평하다는 이치는 여기서도 어김없이 작용해요. 우선, 줌 렌즈는 단 렌즈에 비해 크고 무겁습니다. 줌 기능이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바보같이 무거운 렌즈를 일부러 들고 다닐 필요는 없다는 뜻이죠. 게다가, 줌 렌즈는 (고가의 고급 사양이 아닌 이상) 단렌즈보다 어둡습니다. 렌즈로서의 성능이 떨어진다는 뜻이죠. (성능을 개선하면 무게는 더 무거워집니다.) 줌 렌즈 속에는 단 렌즈에 비해서 많은 숫자의 유리부품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줌 렌즈로 찍은 사진은 단렌즈로 찍은 사진에 비해 선명도가 떨어집니다. 이건 결정적인 약점입니다. 렌즈의 성능에 관해서는 뒤에 좀 더 설명하겠습니다.

아무리 고급 줌 렌즈를 쓰더라도 단렌즈로 찍은 사진의 화질을 따라올 수 없다는 게 정설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사진을 찍기 원한다면 단렌즈를 쓰면서 발품을 팔 생각을 해야지, 비싼 줌 렌즈를 사려고 지갑을 비울 일이 아니라는 거죠. 줌 렌즈는 더 나은 화질의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줌 렌즈는 사진가들이 ‘시간’이라는 상대와 싸우는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질을 양보하는 대신, 소중한 순간을 좀 더 기민하게 포착하고 싶을 때 집어 드는 무기인 거죠.

인생사가 전부 그러하듯이, 결국은 선택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단 렌즈와 줌 렌즈는 꼭 어느 쪽이 더 우수하다고 비교할 물건들이 아닙니다. 화질을 원하면 단 렌즈가, 단시간에 기회를 잡아야 한다면 줌 렌즈가 진가를 발휘합니다. 사진을 주로 찍기 위한 여행에는 단 렌즈 위주로 짐을 꾸리고, 회의를 위한 출장이라든지 여러 사람들과의 여행을 떠날 때는 자기가 좋아하는 줌 렌즈를 챙겨 가는 식이 좋겠죠. 결국 어떤 렌즈가 자기한테 가장 잘 맞는지는 스스로 찾아야 하는 해답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고작 2배율 정도의 확대/축소 효과를 얻자고 줌 렌즈를 쓸 필요야 있을까 싶네요. 흔히 쓰이는 35‐70mm의 경우라면, 최단과 최장 초점거리의 차이란 게 고작 사진기를 들고 불과 몇 걸음만 걸어도 해결될 정도에 불과하거든요. 제가 애용하는 18‐200mm(11배율)이라든지, 하다못해 70‐210mm(3배율) 정도는 되어야 줌 렌즈를 써서 화질을 양보하는 보람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예술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는 더러 “피사체를 존중하는 진지한 자세로 촬영에 임하기 위해서는 단렌즈를 사용해야만 한다. 줌 렌즈는 사진가의 이기적인 편리함에 봉사하는 렌즈이고, 줌 렌즈에 의존하는 사진가는 게으른 사진가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주장이 부분적으로만 옳다고 생각합니다. 단렌즈를 사용해서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서 사진을 찍는 편이 더 진지한 자세에 해당하고, 작품의 결과도 더 좋을 거라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사진 공부의 기본 중의 기본은 단 렌즈, 그중에서도 표준렌즈의 사용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전업 사진작가처럼 사진촬영에 무한정 시간과 정력을 쏟아 부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곁을 스쳐가는 무수한 시공의 어떤 단면을, 줌 렌즈 덕분에 우물쭈물 놓치지 않고 포착할 수 있었다면, 줌 렌즈의 빛나는 공로는 또 그것대로 인정되어야 마땅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2‐12 렌즈의 성능

<빠른 렌즈, 느린 렌즈?>

렌즈에도 좋은 렌즈가 있고, 별 볼일 없는 렌즈가 있겠죠. 성능이 좋은 렌즈를 “밝은 렌즈”라고도 하고, “빠른 렌즈”라고도 부릅니다. 성능이 좋지 못한 렌즈는 “어두운 렌즈”, 또는 “느린 렌즈”라고 불러요. 렌즈가 뜀박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렌즈에 달려 있는 자동초점(AF) 조절 장치가 휙휙 빠르게 움직인다는 뜻도 아닙니다. 렌즈가 빛의 투과율이 좋아서 많은 양의 빛을 통과시키면, 자연 그 렌즈를 통과한 영상은 “밝아지게” 되겠죠. 따라서 (조리개 상태가 동일하다면) 어두운 렌즈에 비해 빠른 셔터 속도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른” 렌즈라는 뜻이에요.

렌즈의 성능은 조리개를 활짝 다 개방했을 때 조리개 구경 수치가 얼마나 낮아지는가로 따집니다. f 수치가 작을수록 ‘밝은’ 렌즈이자, ‘빠른’ 렌즈고, 성능이 우수한 렌즈라고 보면 됩니다. 사람의 성과 이름을 쓰는 법칙이 있듯이, 렌즈의 이름을 쓰는 데도 법도가 있습니다. 보통 제조사를 먼저 쓰고, 그 다음에 렌즈의 초점거리, 렌즈의 밝기(조리개 최대 개방시 구경 수치) 순서로 표시합니다. 그 뒤에 붙는 기호들은 제조사마다 자체적으로 표기하는 여타 성능 및 제원의 설명입니다. 가령, Nikon 50mm f/1.4 렌즈는 니콘에서 제작한 초점거리 50mm 표준렌즈이며, 조리개를 최대 f/1.4까지 개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렌즈의 밝기가 f/1.2 또는 f/1.4라면 현존하는 렌즈들 중 가장 밝은 것들이에요.

렌즈 통이 길어지고 유리 부품이 많이 들어가는 장초점 렌즈로 갈수록 어둡게 되어가고, 배율이 큰 줌 렌즈일수록 어두워지는 게 일반적입니다. 매우 밝은 장초점 렌즈나 줌 렌즈가 없다는 뜻은 아니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줌 렌즈의 경우, 가령 75‐300mm f4‐5.6이라는 표기는 75mm 초점거리로 놓았을 때 조리개를 다 열면 4가 되고, 300mm 로 놓았을 때는 조리개 최대개방 수치가 5.6이라는 뜻입니다. 

성능 좋은 렌즈를 찾아서 가산을 탕진하는 식으로 사진에 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렌즈의 f값(=렌즈의 밝기, 또는 성능, 또는 최대개방 조리개 값)이 5.6 정도보다 크다면 그런 렌즈로는 (너무 어두워서) 다양한 작업을 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f값이 큰 (=어두운, 또는 느린) 렌즈는 아마도 값싼 줌 렌즈이거나 망원 렌즈일 공산이 큰데, 그런 렌즈에 혹하느니 차라리 건실한 (F2.8 이하의 밝기를 가진) 단렌즈에 매달리는 쪽이 사진 공부의 발전이 빠를 겁니다.

<수동 렌즈와 자동초점(AF) 렌즈>

단렌즈(광각 렌즈, 표준 렌즈, 망원 렌즈)냐 줌 렌즈냐와 관계없이, SLR용 렌즈들은 수동 렌즈와 자동 렌즈 두 종류로도 나눌 수 있습니다. 수동이냐 자동이냐는, 자동초점장치로 작동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자동초점(auto‐focus)장치란, 셔터를 반쯤 누를 때 카메라가 저 혼자 알아서 앞에 있는 물체에다가 초점을 맞추는 기능을 말합니다. 이제부터 그냥 AF 기능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수동식 카메라에는 수동식 렌즈를 장착하건 AF 렌즈를 장착하건 상관없이 손으로 조작을 해야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AF용 카메라에는 AF 렌즈를 끼워야만 자동초점 기능을 사용할 수 있고, 수동식 렌즈를 끼우면 그냥 수동식 카메라처럼 사용하는 수밖에 없겠죠.

카메라에 가장 가까운 물체에 초점을 맞추고 싶을 때, AF 기능은 참으로 편리합니다. 요즘 AF용 SLR 카메라들은 초점을 맞추는 시간도 매우 짧아서 순간포착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카메라에 가장 가까운 물체보다 뒤쪽에 있는 피사체에 초점을 맞춘다든지, 또는 뷰 파인더의 구석자리에 있는 피사체에다가 초점을 맞출 때는 되려 AF 기능이 성가실 때도 있어요. 그러니까 AF 렌즈를 사용하더라도, 순간적으로 수동 초점(manual focus)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연습을 해 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일단 한 번 익혀 두면 전혀 어려울 건 없습니다. 초보자들에게 매우 편리하고 유익한 “반셔터”라는 필살기도 있는데, 이건 좀 뒷부분에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제조사별 렌즈 특성 표기>

SLR 렌즈를 들여다보면 이름이 꽤나 깁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애용하는 니콘 줌 렌즈의 정식 명칭은 Nikon 18‐200mm f/3.5‐5.6 G ED‐IF AF‐S VR DX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호들이 각각 다 뭘 의미하는지 외우고 다닐 필요는 전혀 없어요. 하지만 알아두면 편리한 것도 사실이죠. 참고삼아 주요 제조사들이 사용하는 렌즈 명칭 기호들을 한 번 나열해 보겠습니다.

니콘(Nikon) 렌즈 

● ED (Extra‐low Dispersion): 렌즈의 색수차를 줄이기 위해서 특수 유리를 가공하여 만든 렌즈를 말합니다. 이런 렌즈를, 캐논에서는 UD(Ultra‐low Dispersion),  미놀타에서는 AD(Anomalous Dispersion), 탐론에서는 LD(Low Dispersion), 토키나는 SD(Super‐low Dispersion), 마미야에서는 ULD(Ultra Low Dispersion)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 IF(Intenal Focus, Inner Focus) : 내부초점방식. 보통 렌즈들은 초점링을 돌리거나 줌링을 돌릴 때 렌즈의 길이에 변화가 생기지만, IF 방식은 렌즈의 외형적 길이에 변화가 없고 내부에서 각 구성렌즈의 조합이 변화되면서 조절됩니다.
● AF‐S (Auto Focus‐Silent motor) : 저소음 모터내장형 렌즈를 말합니다.
● AF‐I (Auto Focus‐Internal motor) : 초점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모터가 내장된 렌즈를 말합니다.
● VR(Vibration Reduction: 손떨림 감소 기능을 말합니다.
● DC (Defocus Image Control) : 렌즈를 조작해서 초점면을 제외한 전후 흐림을 조절할 수 있는 렌즈로서, 초점 심도를 조리개가 아닌 렌즈로 조절하는 것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Ai (Automatic Indexing): 조리개가 열린 상태로 있다가 촬영하는 순간 지정된 구경(f값)만큼 닫히는 기능을 말합니다.
● D (Dimension) : 니콘의 3차원 8분할 측광을 지원하는 렌즈의 명칭입니다. D 렌즈가 개발되기 전에 나온 5분할 측광 지원 렌즈들은 편의상 구분하기 위해 S(Segment) 렌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캐논(Canon) 렌즈 

● EF (Electric Focus) : 자동 초점 렌즈를 말합니다. 니콘의 AF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 USM (Ultra Sonic Motor) : 저소음, 고속 조작을 위해 초음파 모터를 장착한 렌즈를 말합니다. 
● L (Luxury) : 그 이름처럼 명품을 지향하면서 온갖 특수 재료와 기능을 장착한 렌즈죠.
● IS (Image Stabilizer) : 렌즈 내부의 자이로스코프 센서로 떨림을 방지하는 기능으로, 니콘의 VR과 같습니다.
● TS‐E (Tilt & Shift for EOS) : 앞에서 설명한 틸트, 시프트 효과를 낼 수 있는 특수렌즈입니다. 

펜탁스(Pentax) 렌즈 

● SMC (Super Multi Coating) : 색수차와 난반사를 막기 위해 7겹 코팅을 한 렌즈를 말합니다.
● M (Manual) : 수동렌즈
● A (Automatic) : 자동 노출을 지원하는 렌즈
● F 또는 FA : 펜탁스의 자동 초점용 렌즈
● AL(Aspherical Lens) : 구면수차를 줄이기 위해 렌즈의 곡면을 비구면으로 깎아서 만든 렌즈

미놀타(Minolta) 렌즈 

● xi zoom : 미놀타의 xi 기종(7xi, 9xi)을 위한 자동렌즈
● G : 캐논의 L 렌즈처럼 고급 기종을 지향하는 미놀타식 표기
● APO (Apochromatic) : 색수차를 보정한 렌즈

< 디지털 카메라용 렌즈의 기구한 사연 >

자, 여기까지의 렌즈 이야기는 필름 카메라용 렌즈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디지털 SLR(이하 DSLR) 카메라용 렌즈에는 좀 더 복잡하고 기구한 사연이 있습니다. DSLR 카메라가 양산되기 시작하면서, 카메라 제조사들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에는 필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CCD 또는 CMOS라는 이미지 센서가 장치되어 있어요. 필름이 빛에 반응하는 것처럼, 이미지 센서가 영상을 디지털 신호로 바꾸어 주는 거죠. 그러나 필름이 감광되는 원리와 반도체 센서가 영상을 해석하는 원리가 똑같은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과연 이미지 센서의 크기를 35mm 필름(이른바 135 규격)과 똑같이 만들 필요가 있을까?” 라는 것이 제조사들의 맞닥뜨린 고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DSLR 제작사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왜냐? 첫째, 반도체로 이루어진 CCD 또는 CMOS는 크기가 커질수록 가격이 큰 폭으로 비싸집니다. 둘째, 이미지 센서의 크기가 작아진다면 카메라 몸체의 부피와 무게를 줄일 수 있고, 렌즈도 작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대중적 카메라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보급형 DSLR이 거의 필름용 카메라와 유사한 크기나 무게를 가질 수 있게 된 건 이미지 센서를 필름보다 좀 작게 설계함으로써 가능했던 셈이에요.

이렇게 필름보다 작은 이미지 센서를 가진 카메라를 일컬어 “크롭 팩터(crop factor)” 카메라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일반 필름 카메라용 렌즈보다 작은 화면을 만드는 “크롭 팩터용” 렌즈도 생겨나게 된 겁니다. 크롭 팩터 렌즈는 모두 DSLR용이니까, 수동 렌즈는 없고 전부 자동초점용 렌즈에요.

크롭 팩터 방식은 DSLR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거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부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는 벌써부터 작별을 고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2005년경만 해도, 필름과 크기가 같은 (135 규격) 이미지 센서를 DSLR에 채택한 회사는 캐논 한 곳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2007년부터는 니콘에서도 135 규격 센서를 기본사양으로 하는 DSLR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런 카메라를 “풀 프레임” 방식이라고 하는데, 여러 제조사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보급형” DSLR은 크롭 팩터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풀 프레임용 DSLR이나 필름 카메라에다가 크롭 팩터 렌즈를 끼우면 풀 프레임용 렌즈를 사용했을 때보다 피서체가 조그맣게 찍히기 때문에 사용이 곤란합니다. 거꾸로, 작은 이미지 센서가 달려 있는 크롭 팩터 DSLR에다가 일반 필름 카메라용 AF 렌즈를 끼우게 되면 이미지 센서는 렌즈가 비추는 화면 중 일부만 인식합니다. 즉, 화각이 더 줄어들고, 초점거리가 늘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기는 거죠.

카메라 회사마다 조금씩 다른 크기의 이미지 센서를 채택하고 있는데, 니콘의 경우는 필름보다 1.5배 작은 센서를, 캐논은 1.6배 작은 센서를 사용합니다. 니콘에서 제작하는 크롭 팩터용 렌즈는 DX 포맷이라고 부르고, 캐논의 경우는 EF‐S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죠. 필름의 크기가 36mm x 24mm니까, 니콘 DX렌즈가 만드는 상의 면적은 23.6 x 15.8mm정도이고, 캐논 EF‐S 렌즈가 만드는 상은 22.7mm x 15.1mm정도가 된다는 뜻입니다.

센서가 1:1.5 규격에 해당하는 니콘 DSLR에 일반 필름 카메라용 렌즈를 장착하면 렌즈 초점거리가 1.5배 증가하여 (즉, 화각이 1.5배 줄어서) 망원효과가 생깁니다. 필름 카메라용 50mm 렌즈를 니콘 DSLR에 장착하면 마치 75mm 렌즈가 된 것처럼 사진이 찍힌다는 얘깁니다. 저처럼 필름 카메라용 105mm 렌즈를 니콘 DSLR에 끼워서 사용하면 마치 158mm DX 렌즈처럼 찍히는 거죠.

복잡하고 성가신 내용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DSLR이 대중화되면서 예전에 쓰던 (또는 다른 곳에서 값싸게 구입한) 필름 카메라용 AF 렌즈를 DSLR에 끼워서 사용하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 꼭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귀찮긴 하지만. 제조사들이 크롭 팩터라는 경제적 지혜를 발휘한 덕분에 DSLR이 지금처럼 대중적인 가격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도 인정해 줘야겠지요.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덕분에 보급형 DSLR도 풀 프레임 기종이 대세가 되어버리면, 크롭 바디 카메라가 어쩔 수 없이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크롭 바디 DSLR과 전용 렌즈들이 워낙 다양하게 개발되고 시판되었기 때문에, 크롭 바디 DSLR은 생산라인이 중단되는 한이 있더라도 긴 세월동안 유통되고 거래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DSLR을 새로 장만하시는 초보자 분들이 굳이 풀 프레임 기종을 구하려고 엄청난 가격을 무릅쓸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이 정도로, 렌즈에 대한 설명을 대략 마친 셈 치겠습니다.

2‐13 기계는 바보다 

카메라는 기특할 만큼 정교한 기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카메라가 기계 이상의 존재인 건 아닙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시는 대로, 기계라는 것은 바보입니다. 사람이 가르쳐주는 것 이상은 하지 못하는 거죠. 만일 카메라가 바보가 아니었다면,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애쓰는 짓 따위는 아무도 하지 않을 겁니다. 사진가는 카메라의 도움을 늘 받지만, 좋은 사진을 찍는 건 사람이지 기계가 아니에요. 다음 장에서 이점을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제2장에서는 셔터, 조리개, 필름, 렌즈 등 카메라의 기계적 원리를 가급적 쉽게 설명해 보려고 나름대로 애썼습니다. ‘기계를 사용해서 사진을 찍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하기 전에, 기계가 저 혼자는 알아서 못하는 재주를 몇 가지 폭로해야겠습니다. 간단한 몇 가지 기능을 잘 이해하고 사용하면, 카메라는 한결 더 똑똑한 기계가 됩니다.

<노출보정>

자동 노출에 관한 얘길 좀하겠습니다. 똑딱이 필름 카메라나 디지털 카메라, 또는 AF 기능을 갖춘 대부분의 SLR 및 DSLR에 전부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노출을 수동으로 맞추어야 하는 카메라라면, 카메라에 내장된 노출계에 관한 이야기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수동 카메라에 내장된 노출계는 필름의 감도와 셔터 속도, 그리고 조리개 등을 감안할 때 지금 렌즈를 통해 비치는 영상이 너무 어두우면 어둡다고, 너무 밝으면 밝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면 손으로 노출계가 “적정” 눈금을 가리킬 때까지 셔터 속도나 조리개 구경을 조절하면 되는 거죠. 자동 카메라들은 ‘적정노출’ 상태가 되도록 자기가 알아서 셔터 속도나 조리개를 조절합니다.

자동 카메라의 경우, 촬영 모드가 “셔터 우선(S)”으로 되어 있으면 카메라는 사용자가 셔터 속도를 바꾸기 원치 않는다고 이해하기 때문에, 어두우면 조리개를 더 열고 밝으면 닫습니다. “조리개 우선(A)” 모드에 놓은 상태로 찍으면 카메라는 화면이 어둡다고 생각하면 셔터를 느리게 만들고 밝다고 생각하면 빠르게 만들죠. 카메라에 내장된 노출계는 중간 색조(회색)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보통은 그게 무난하기 때문이에요.

크리스마스 날 이른 아침, 창문을 여니까 창 밖에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는 풍경이 당신을 맞이했다고 칩시다. 당신은 기쁨의 탄성을 지르며 자동 카메라를 들고 설원으로 변신한 공원 풍경을 찍는다고 칩시다. 흰 눈 밭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당신 카메라는 “어이쿠, 이건 너무 밝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리개를 한껏 조이고 셔터 속도를 빠르게 만들 거에요. 당신을 감동시킨 하얀 눈밭이 희끄무레한 회색조로 보일 때까지. 이건 당신이 원하는 사진이 아닐 거에요. 흰 설원을 찍으려면 당신은 카메라를 강제로 노출 과다로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카메라에게 “바보야, 이건 눈부시게 밝은 게 정상이야”라고 알려줘야 하는 거죠.

이번에는 어느 오후, 어두운 색 담장을 배경으로 검은 옷을 입은 모델을 찍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럴 땐 거꾸로 카메라의 노출계는 검은 정장이 회색으로 보일 때까지 자꾸만 “어둡다”고 주장할 겁니다. 검은 옷이 멋들어진 검은색으로 찍히게 만들려면, 카메라를 강제로 노출부족 상태로 만들어주어야만 합니다.

수동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을 믿고 노출을 조절할 겁니다. 그거야말로 사진촬영의 매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느낌을 신뢰할 정도로 경험을 쌓지 못한 사람은 노출계가 평균색으로 인식하는 “회색카드(Grey Card)”를 사용하면 됩니다. 예컨대, 눈밭에서 회색 카드를 (눈밭의 조명과 동일한 조명 아래서) 카메라에 들이대고 그 카드가 적정노출이 되도록 조리개와 셔터를 맞추는 거죠. 그런 다음에 카드를 치우고 눈밭을 비추면 카메라의 노출계는 너무 밝다고 아우성을 치겠지만, 무시하고 찍으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 됩니다.

자동 카메라에서는 좀 더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어요. ‘반셔터’를 사용하는 겁니다.

<반셔터>

일단 ‘반셔터’라는 게 뭔지를 알려드려야겠네요. 카메라의 전원을 켠 상태에서 셔터를 끝까지 다 누르지 않고 반쯤만 살짝 눌러보세요. 그럼 뭔가 느낌이 오도록 되어있습니다. 그 느낌이라는 건, 셔터가 눌려지는 감촉이 중간에서 한번 달라지던지, 아니면 카메라가 작은 소리로 ‘지‐잉’하면서 초점을 맞추던지, 또는 뷰 파인더 안에 반셔터가 작동중임을 알리는 녹색 불 따위가 켜지던지 하는 따위입니다. 자동 카메라들은 셔터가 절반만 눌려진 상태에서 두 가지 작업을 해요. 첫째는 미리 프로그램 된 방식으로 렌즈의 초점을 맞추는 일이고, 둘째는 화면의 밝기를 평균 내어(평균 내는 방식은 제조사마다 다릅니다) 적정한 노출 상태로 셔터속도나 조리개, 또는 그 둘을 다 조절하는 일입니다. 기특하지요? 당신이 무심코 셔터를 꾸욱 누르는 동안에도 카메라는 의외로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초점부터 살펴보죠.

웬만한 DSLR 카메라 같은 고급 카메라는 선택 가능한 여러 개의 초점 영역을 갖추고 있습니다. 초점 영역(focus area)이란, 뷰 파인더를 들여다보면서 반셔터를 눌렀을 때 자동초점을 맞추는 기준점을 말하는데, “측거점”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보통은 가장 가운데 있는 측거점을 사용해서 초점을 맞추는데, 초점을 맞추려는 피사체가 늘 사진의 한가운데에 오라는 법은 없잖습니까? 이런 경우, 측거점을 변경할 수 있는 카메라라면 자기가 원하는 구석에 있는 측거점을 활성화시켜서 그곳을 기준으로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그러니까 측거점이 많을수록 초점을 정교하게 맞출 수 있겠죠. 어떤 카메라가 “15개의 초점영역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면, 뷰 파인더의 사각형 안의 열 다섯 개 지점 중 하나를 마음대로 측거점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보급형 DSLR의 경우는 측거점이 서너 개밖에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똑딱이 카메라의 경우에는 뷰파인더의 중앙부에만 초점이 맞도록 고정되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땐 바보 같은 기계가 사진가의 의도를 알아채도록 재주를 좀 부려야만 합니다. 그럴 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게 반셔터 기능이에요.

내가 초점을 맞추고 싶은 피사체를 카메라의 정 중앙에 놓은 상태에서 반셔터를 눌러줍니다. 그러면 카메라는 뷰 파인더 중앙에 놓인 피사체를 기준으로 초점과 노출을 고정합니다. 그리고 반셔터를 누른 상태 그대로 카메라를 살짜기 옆으로 움직여 구도를 조정한 후 셔터를 마저 누르면 초점은 피사체에 맞은 상태에서 원하는 구도의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카메라를 살짝 옆으로 움직여 구도를 바꿀 때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에는 변화가 없어야겠죠.

반셔터를 이용하면 노출도 편리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아주 밝은 배경 속에 역광으로 서 있는 인물의 표정을 촬영하고 싶다고 해 봅시다. 자동으로 그냥 찍었다가는 카메라는 자기가 찍어야 할 대상이 인물의 표정이 아니라 뷰 파인더 속에 널찍하게 보이는 밝은 배경이라고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카메라가 눈부시다며 조리개를 한껏 조이는 바람에, 밝은 배경이 보통 노출로 찍히고, 정작 인물의 표정은 컴컴하게 찍혀버리는 거죠. 카메라에게 “임마, 정신 똑바로 차리고 피사체를 찍어”라고 알려주려면, 피사체를 정 중앙에 놓은 채로 반셔터를 눌러줍니다. 이렇게 하면, 싸구려 똑딱이 카메라라도 배경보다 어두운 인물의 표정을 찍으라는 뜻인지를 알아챕니다. 그 상태 그대로 구도를 조정한 다음에 셔터를 마저 눌러주면 화면의 평균 밝기보다 더 밝은 사진이 찍혀서 인물의 표정이 살아날 겁니다.

고급 DSLR에서는 반셔터를 쓸 수도 있고, AFL(Auto‐focus Lock: 초점 잠금)과 AEL(Auto‐exposure Lock: 노출 잠금) 이라는 별도의 단추가 오른손 손가락으로 조작할만한 자리 어딘가에 달려있는 것들도 많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원리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반셔터와의 차이점이라면, AEL이 노출만, AFL이 초점만 따로 고정시키는 반면, 반셔터는 노출과 초점을 함께 고정한다는 점이에요.

<브라케팅>

DSLR의 사랑스러운 점은, 대부분 노출 브라케팅(bracketing) 촬영을 지원한다는 점에도 있습니다. 브라케팅이란 건 또 뭐냐?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모듬’ 또는 ‘묶음’이라는 뜻이 되겠는데, 사진촬영에서는 카메라가 이해하는 정상노출 상태로부터 정해진 정도만큼 노출을 가감해 가면서, 설정된 숫자만큼 연속사진을 촬영하는 기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 편이 쉽겠군요. 가령, 내가 역광 속에 자리 잡은 꽃 한 송이를 찍고 있다고 해 보죠. 앞서 설명한 카메라의 노출계와, 초점 영역(측거점)과, 반셔터와, AEL 등을 십분 활용해서 셔터속도 1/60초와 조리개 4.0으로 촬영하는 것이 아마도 정상적인 노출일 것 같다는 짐작이 듭니다. 하지만 그 노출이 내가 원하는 밝기로 꽃송이를 찍어낼 거라는 확신은 들지 않아요. 좀 자신이 없는 거죠. 어떻게 할까요? 정상적인 노출보다 한 단계씩 점차로 어두워지는 사진을 몇 장, 점점 밝아지는 사진을 몇 장씩 더 찍어보는 게 안전할 겁니다. 이게 바로 “브라케팅”한 사진을 찍는 겁니다. 요즘 DSLR들은 워낙 똑똑해져서, 노출을 몇 단계씩 조절할지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고, 몇 장 브라케팅을 할지도 조절할 수 있어요. 연속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라면, 브라케팅 상태로 지정해 놓고 셔터를 한 번만 길게 누르고 있으면 “쉬익‐ 척, 척, 척, 척, 척” 여러 장이 조금씩 다른 노출상태로 촬영이 가능합니다. 물량공세랄까요, 여러 장을 조금씩 다르게 찍어서 마음에 드는 걸 고르는 작전이죠.

물론 브라케팅은 수동 카메라로도, 필름 카메라로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동 카메라로 브라케팅을 하자면 일일이 조리개를 조절해 가면서 여러 장을 찍어야 하므로 번거롭고, 모터 드라이브라는 약세서리를 장착하지 않았다면 빠른 속도로 연속촬영도 안 되기 때문에 움직이는 피사체를 브라케팅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다가, 필름 사진을 브라케팅하면 쓰지 않을 사진들도 죄다 현상하고 인화해 봐야 결과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죠. 그래서 프로 작가들은 폴라로이드나 디지털 카메라로 테스트를 해본 뒤에 필름에 찍곤 하죠.

DSLR의 진정한 장점이 이 대목에서 발휘됩니다. 절약정신에 투철한 사람이라도, DSLR로는 매번 여러 장씩 브라케팅을 편안한 마음으로 해 볼 수 있으니까요.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은 LCD로 결과를 확인한 뒤에 지워버리면 그만이에요.

브라케팅을 버릇처럼 남용한다면 올바른 노출상태를 조심스럽게 감각으로 익히는 훈련은 게을러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놓치면 다시 찍기 어려운 피사체를 반드시 잘 찍어야내야만 하는 경우라면, 자동 브라케팅 기능은 구세주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스트로보>

흔히들 ‘플래시’라고 부르지만, 사진촬영에 사용되는 보조광원은 ‘스트로보’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스트로보의 효과적인 사용법을 익히려면, 그것만 해도 책 한 권 분량의 설명서가 필요할 정도겠지만, 여기서는 몇 가지 요긴한 활용비결만 알려드릴까 싶습니다.

첫째, 플래시는 어두울 때만 터뜨리는 걸로 알고 계시는 분이 많은데, 밝은 날에도 스트로보를 잘 사용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이를테면,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기 때문에, 스트로보는 잘만 사용하면 좋은 ‘붓’ 역할을 합니다. 인물이 태양을 직사광으로 받으면 사진은 의외로 밋밋하고 평평한 느낌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빛을 등지고 역광으로 촬영을 하면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역광으로 촬영을 할 때의 문제는 배경과 인물 사이의 노출의 차이입니다. 배경을 살리려고 노출을 줄이면 인물이 시커멓게 나오고, 인물을 살리려고 노출을 늘이면 배경이 온통 하얗게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죠. 이럴 때 스트로보를 사용하면 인물의 디테일과 배경을 다 살리면서 역광의 효과도 적당히 얻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역광 사진에 관해서라면 스트로보 보다는 반사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둘째, 아주 깜깜한 곳에서 큰 물체를 촬영하는 경우라면, 셔터를 B로 개방해 둔 상태에서 스트로보로 이곳 저곳을 비춰가며 촬영을 하는 기법도 사용해 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스트로보 빛으로 ‘붓칠’을 하듯이 사진을 찍는 건데, 쉬운 테크닉은 아니지만 재미있으니 기회가 닿으면 실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같은 인물이 자리를 바꾸어 스트로보 세례를 받으면 한 장의 사진에 쌍둥이처럼 찍히기도 합니다.

셋째, 스트로보는 아주 가까운 곳의 피사체만 비춰주는 보조광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하면 스트로보의 빛을 받은 피사체만 사진 속에서 두드러져 마치 동동 뜬 것처럼 튀어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트로보를 사용할 때는 가급적 조리개를 많이 열고 셔터속도를 느리게 해서, 사진이 스트로보의 빛에 덜 의존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자연스러운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리개를 열고 셔터를 느리게 설정하면, 똑똑한 요즘 스트로보들은 발광량을 알아서 줄입니다.) 예컨대, 야경을 배경삼아 인물을 찍는다면, 가까운 피사체의 모습을 스트로보로 필름에 기록한 다음에도 셔터를 조금 더 오래 개방해 놓으면 먼 곳의 배경도 좀 더 또렷이 찍히죠. 인물만 훤하게 나오고 배경은 온통 컴컴해서야 야경 사진을 찍은 보람이 없을 테니, 배경의 불빛을 기준 삼아 조리개와 셔터 등 노출을 설정하면 되겠습니다.

넷째, 스트로보를 사용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 중에서는 셔터와의 동조(synchronization)라는 게 있습니다. (에잇! 또 복잡한 용어가 등장하고 말았군요.) 스트로보는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섬광이므로,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스트로보가 ‘번쩍’ 하는 순간 셔터가 다 열려 있어야만 스트로보의 빛이 필름이나 CCD에 기록된다는 뜻이죠. 스트로보 동조 최대속도는 카메라에 따라서 좀 다르지만 1/60 내지 1/250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는, 셔터의 원리를 알고 나면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최대 동조속도’란, 그 카메라가 셔터 전체를 활짝 열었다가 닫을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라는 뜻입니다. 그것보다 셔터속도를 더 빠르게 설정하면 어떤 현상이 생긴단 말일까요? 

카메라는 일종의 트릭을 씁니다. 최대 동조속도보다 빨리 셔터가 여닫히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 카메라는 셔터 전체를 더 빨리 움직이는 대신 셔터를 일부분만 열어서 작은 틈으로 들어온 빛이 필름(또는 CCD) 위를 훑고 지나가게 만드는 겁니다. 셔터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그 틈은 더 작아진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최대 동조속도보다 빠른 셔터속도에서 스트로보를 사용하면 사진 위의 일부분에만 띠 모양으로 스트로보의 빛이 기록되는 요상한 일이 발생합니다. 이런 걸 일일이 다 기억할 필요는 없겠지만, “스트로보를 쓰려면 카메라 설명서에 나오는 최대 동조속도보다 느린 셔터속도로 찍어야 한다”는 정도는 기억해 두는 게 유익합니다.

다섯째, 스트로보는 상황에 따라 광량을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스트로보의 설명서에 나오는 도표를 참조해 가며 이리저리 실험을 해 보는 게 좋습니다. 실제로 실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광량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게 뭔 말인지 어렴풋이 라도 알 도리가 없으니 말입니다. 괜찮은 스트로보 제품들은 친절한 도표(가이드 넘버: GN)를 제공하고 있으니, 피사체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 되면 조리개를 몇 정도에 놓으라는 기본 정보는 그걸 참조하면 됩니다.

<필터>

렌즈의 바깥쪽에 여러 가지 종류의 필터를 끼우고 사진을 찍으면 의외의 시각적 효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빛깔을 왜곡하는 필터를 남용하면 사진이 우스꽝스럽게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진지한 사진가들은 필터의 사용을 그다지 권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러나 적재적소에 양념처럼 잘 사용된 필터는 사진촬영의 창의성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려 줄 수도 있습니다. 초보자들이 필터를 사용하는 재미에 빠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할 전문가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만, 그게 재미있게 느껴진다면 싫증날 때까지 가지고 놀아보는 것도 좋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자주 쓰이는 필터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 클리어 필터 및 자외선(UV) 필터
클리어(clear) 필터란, 빛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는 투명한 필터로, 렌즈의 앞면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합니다.
자외선 필터는 UV 필터, 또는 Skylight 필터라고도 부르는데, 가시광선은 다 투과시키면서 자외선만 막아줍니다. 필름은 사람의 눈과 달라서 사람이 보지 못하는 자외선도 필름에는 흐릿하게 흔적을 남길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렌즈 보호를 겸하여 항상 자외선 필터를 끼워둔 채 카메라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편광(Polarization : PL) 필터
편광 필터는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빛만을 통과시킵니다. 보통은 2중의 링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바깥쪽 링을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 카메라가 받아들이는 빛의 방향을 조절할 수 있도록 되어 있죠. 일정한 방향의 빛만 받아들이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 우선, 유리창이나 흐르는 시냇물을 향해서 각도를 잘 조절하면 유리나 물에 반사되는 빛을 대부분 제거하고 창문 속이나 물속이 더 잘 들여다보이게 됩니다. 하늘의 푸른 색조가 짙어져 하늘과 구름의 대비(contrast)가 뚜렷해지기도 합니다. 대기 중의 아지랑이(haze)나 난반사된 광선들이 제거되니까, 컬러 사진에서는 전반적으로 색상의 채도가 증가하고, 흑백사진에서는 흑백대비(contrast)가 증가합니다.

● 뉴트럴 덴시티(ND) 필터
색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빛의 투과량을 줄이는 필터입니다. 빛을 흡수하는 양에 따라서 ND2, ND4 따위의 이름이 붙습니다.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최대한 바꿨는데도 여전히 과다노출이 되는 경우, 초점 심도나 셔터의 속도를 포기하지 않고 빛의 양을 줄이려면 ND 필터를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 흑백사진 콘트라스트 조절용 필터
황색 계열(Yl, Y2, Y3) 필터는 자색, 청색을 흡수하여 푸른색이 어둡고 짙어보이게 됩니다. 하늘을 배경으로 선 인물이 또렷하게 대비되어 보이게끔 만들어 주죠. 오렌지 계열(O1,O2) 필터는 녹색의 일부까지 흡수하므로 대조가 좀 더 강렬하게 되고, 적색계열(Rl, R2) 필터는 거기에 더하여 황색의 일부까지 흡수하기 때문에 가장 강한 콘트라스트가 생깁니다.

● 색온도변환 (Color Conversion) 필터
푸른 색 계열의 필터는 색 온도를 높여주고, 황색 계열의 필터는 색온도를 낮게 보정해 줍니다. 아침과 저녁에 푸른 계열의 필터를 사용하면 대낮에 찍은 사진처럼 나오고, 한낮에 황색 계열 필터를 사용하면 이른 아침이나 저녁나절의 분위기가 나는 거죠. 노란 색 텅스텐 가로등 아래서 찍을 때 푸른 계열 렌즈를 사용하면 지나치게 노란 색깔을 좀 중화해 주기도 해요. 색 온도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 연조(Diffuser) 필터 
영상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 필터로서, 그 특성에 따라 소프트 포커스(SF), 포그(fog), 디퓨저(diffuser), 파스텔(pastel) 등의 종류가 있습니다. 대체로 다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외에도, 광원을 열십자 따위로 표현해 주는 크로스 스크린(CS) 필터, 필름은 특성상 형광등의 색깔을 녹색으로 인식하는데, 형광등 빛을 태양광 색으로 표현하도록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보라색조의 형광(FL : Flourescent) 필터도 있죠. 중심부만 선명하고 주변부는 흐리게 만드는 센터 포커스(Center Focus) 필터, 접사를 위해 돋보기처럼 사용하는 접사(Close‐up) 필터, 상단부에서 하단부로 가면서 점차로 색조 또는 투과율이 달라지도록 만들어진 계조(階調: Graduation) 필터, 부족한 색조를 보태거나 과한 색상을 감소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색상의 색보정(Color Compensating) 필터 등등, 다양한 필터가 있습니다.

필터를 실험해보는 건 재미난 짓이 틀림없지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좋을 뻔 했던 사진들도 망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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