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구의 여름휴가 반환점은 홋카이도 남단에 위치한 하코다테(函館)였다. 이곳은 내가 가 본 일본의 도시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이었다. 아오모리를 출발한 페리선이 3시간 넘도록 바닷길을 지나서야 하코다테 항구에 도착했다. 도쿄를 출발해 무더위 속을 뚫고 여기까지 왔는데, 살갗에 닿는 홋카이도의 바람은 낯선 서늘함을 담고 있었다. 하코다테는 에도 바쿠후 말기인 1859년에 미일 수호통상조약에 의해 일본 최초의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하여 외국인 거류지가 설치된 도시다. 그래서 모토마치(元町) 이남의 구시가지에는 지브롤터처럼 바다를 향해 툭 불거진 하코다테산의 비탈을 배경으로 개항 당시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들이 즐비하다. 1859년 창건한 일본 최초의 러시아 정교 교회당이 휘영청 밝은 달을 배경으로 서 있던 모습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정취를 자아냈다.

하코다테산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내려다보는 도시의 야경은, 일설에 따르면 나폴리, 홍콩과 함께 세계 3대 야경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좁다란 곶 위로 불을 밝히고 늘어선 시가지의 동서 양편으로 바다가 바짝 다가서 있다. 도착 첫날 저녁 우리 식구는 모토마치에서 가리비밥과 임연수 구이로 유명하다는 사라노츠키(沙羅の月)라는 식당을 찾아갔는데, 아쉽게도 그날따라 일찌감치 영업이 끝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