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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그 넓고 깊은 바다

posted Oct 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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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다른 어떤 음악과도 다르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래서 재즈를 좋아하고, 재즈를 싫어하는 사람도 그래서 재즈를 싫어한다. 트럼펫 연주자이자 재즈 이론가인 윈튼 마살리스(Winton Marsalis)는 재즈를 가리켜, “복수의 연주자가 한 자리에서 즉흥 예술을 창조하는 과정이자,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서 끊임없이 예술이라는 의제를 협상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면, 협상이라는 말은 의외로 재즈에 잘 어울린다. 재즈의 역사 속에는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와 부자의 이야기, 아프리카의 목소리와 유럽의 목소리, 행복과 슬픔, 남자와 여자, 도시와 지방의 분위기가 다 담겨 있다. 그중 어떤 목소리가 얼마만큼의 크기를 가질 것인지는, 재즈가 연주되는 순간마다 달랐다. 의식적이든 아니든, 그 밀고 당기는 과정을 협상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을 터이다.

재즈는 20세기의 음악이다. 19세기가 끝날 무렵에 탄생해서, 20세기가 저물 무렵에는 만약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주류로서의 의미 있는 성장을 멈춘 음악이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 이유가 재즈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고, 나로 하여금 재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그리고 안타깝지만 앞으로 재즈가 화려한 부활을 시도하기 어렵게 만든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재즈의 특징은 즉흥연주가 중시된다는 데 있다. 나는 정치학도라서 사회과학 용어를 빌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볼까 한다. 원래 음악이라는 예술의 분야에서 창의성은 작곡가의 몫이었다. 연주자는 작곡가의 의도를 수행하는 도구인 셈이다. 연주자의 자유는 색다른 해석 정도의 폭 만큼만 허용되는 것이었다. 공급자인 예술가는 언제나 자신의 제품의 질을 높이고 싶어 하고, 수요자인 감상자는 언제나 자신의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원한다. 이 수요와 공급곡선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주류예술이 탄생하는 지점이 된다. 수 세기동안 서양음악에서는 전통적으로 작곡자들이 창조행위의 주인공이었고, 그들이 어떤 작품을 생산할 것인지를 결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재즈는 서양음악사의 혁명이었다. 그러므로 재즈의 탄생의 계기가 아프리카로부터 잡혀왔다가 해방된 노예들에 의해 마련되었다는 사실은 상징성이 크다. 재즈 연주자들은 창작의 권한을 작곡가로부터 탈취했다. 그리하여 재즈는 다른 어떤 분야의 음악보다 생기발랄하고, 예측불가하며, 정의하기 어려운 음악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재즈의 힘찬 동력이자 독특한 매력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바로 재즈의 한계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의 장점은 바로 그 사람의 단점이다. 온화한 사람은 우유부단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은 독선적이다. 진지한 사람은 덜 쾌활하고, 쾌활한 사람은 덜 진지하다. 정확한 사람은 덜 빠르고, 빠른 사람은 덜 정확하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재즈라고 해서 자신의 장점이 곧 단점이 되고 마는 운명의 예외가 되기는 어려운 게 아니었을까.

소수의 작곡가의 전유물이던 창작행위가 다수의 연주자에게 허용되는 순간, 재즈는 이미 어떤 지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연주자들은 숫자가 많으므로 작곡가에 비해 다채롭고 풍성한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그들은 콘서트 홀이나 클럽을 채울 관객보다 더 많은 팬을 갈구하지는 않는다. 클래식 작곡가들이 대기업의 CEO라면 연주자들은 대리점의 사장이라고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연주자들은 고리타분한 법칙에 구속되지 않는 한, 최대한 자신의 기량을 뽐낼 수 있는 곡을 좋아한다. 자연히 차별화를 위한 극심한 경쟁이 벌어지기 마련이고, 그들이 생산하는 작품은 점차 다른 연주자가 흉내 내기 어려운 것이 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독창적인 작품이 쏟아져 나오겠지만, 다른 연주자가 따라 하기 어려운 음악이란, 다수의 대중이 흥얼거리며 즐기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술가가 된 연주자들은 점차 난해한 곡을 만들면서 대중과 괴리되고, 그들의 작품이 마침내 주류의 지위에서 밀려나는 대목에서 그들은 자기 성공의 희생자들이 될 터였다. 그것은 예견할 수 있는 과정이었고, 재즈의 역사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예술을 사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벌거벗은 임금님'의 새 옷을 찬탄하는 지경에 빠지는 것은 곤란하다. 최근의 현대미술처럼 재즈도 일반인들에게 '어렵다'는 인상을 주고는 있지만, 재즈에서는 적어도 아직 아방 가드가 주류 행세를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실험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전문가로 훈련을 받은 사람들만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예술이 주류가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아름다움을 즐길 권리를 부당하게 빼앗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재즈를 즐기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막연한 인상이야말로, 재즈 애호가들이 앞장서서 없애야 할 장벽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쨌든, 재즈의 쇠퇴 과정을 통해서 대중음악 시장은 또 한 가지의 교훈을 얻은 것처럼 보이고, “연주자에게 얼마만큼의 자유를 허락할 것이냐”는 문제에 관해 나름대로 긴장된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이 문제는 과연 철인(哲人)들이 만든 이상적인 공화국에서 시인(詩人)을 추방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플라톤의 심각한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반복되지만, 재즈는 연주자들의 음악이다. 시인이 지배하는 공화국이다. 재즈는 혁명이고, 재즈는 자유다. 영원한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자유는 많은 사람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같은 이유로 재즈는 난해하며, 처음 즐기기 위해서는 길잡이가 필요하다는 인상을 주고, 그래서 아마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어려운 음악이기도 하지만, 이런 단점이 재즈의 매력과 한 동전의 다른 면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불평할 일은 아닐 것이다. 재즈가 ‘어제의 음악’이라는 주장 속에는 분명 어느 정도의 진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는 지금도 그것이 연주되는 매일 밤 완연히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제의 음악’ 치고는, 재즈는 참으로 턱없이 넓고 깊은 바다다. 나는 그 위를 행복하게 표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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