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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드럼

posted Mar 0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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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저녁, 귀가하시던 아버지는 잠간 내려와 보라며 식구들을 불러내셨다. 집 앞에는 웬 픽업 트럭이 서 있었고, 그 위에는 드럼 세트가 있었다. 어머니는 질색을 하셨지만, 그래도 드럼을 실은 트럭을 그대로 돌려보내지는 않으셨다. 아버지는 누군가 지인으로부터 드럼을 처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 길로 그걸 사서 집으로 가져오신 거였다. 한강을 마주보던 동생 방 바깥쪽의 베란다가 드럼의 자리로 정해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드럼을 가진 집이 되었지만,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셨던 건지는 잘 알 수 없었다. 12층 아파트의 5층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은 애당초 드럼 같은 걸 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드럼 연습을 하느라 아파트에서 쫓겨날 수는 없었으므로, 우리집 '베란다의 드럼'은 간혹 주말의 낮 시간에 삼형제가 짤막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대상에 불과했고, 결국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사라질 운명을 맞았다. 그때 아버지의 심정을 내가 절절히 알게 된 것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인 2005년경이 되어서였다.

당시 나는 미국 워싱턴에 근무 중이었는데, 뉴욕에서처럼 가끔 악기점을 들러서 구경하다가 불현듯 드럼을 갖고 싶었다. 집에 있는 두 아들이 드럼을 치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  쓴 웃음이 나왔다. 그 바로 전해에 암으로 투병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25년 전에 머쓱한 얼굴을 하고 픽업트럭을 앞세워 귀가하시던 그날이 떠올랐다. 두어 달 벼르던 끝에 나는 지역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찾아가 제이 로젠탈(Jay Rosenthal)이라는 청년 드러머로부터 드럼 수강을 받기 시작했다. 한 달째 수업을 마치던 날, 소질이 있다는 그의 칭찬을 우군 삼아 드럼을 사버렸다. 전문 드러머인 제이의 소개 덕분에 상당히 할인을 받은 가격으로 롤랜드 V6 드럼 세트를 샀다. '베란다 드럼'의 뼈아픈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헤드폰을 끼우고 집에서도 얼마든지 연주할 수 있는 디지털 드럼으로 샀다. 그걸 자동차 트렁크에 우겨 싣고 귀가했는데, 집에 들고 들어갈 일이 걱정이었다. 초인종을 누르니 아내가 나왔다. 내가 말했다. "여보, 사랑해." 아내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더니 허리춤으로 손이 올라갔다. "이번엔 또 뭘 산거야, 당신?"

25년 전 나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내는 화를 무척 냈지만 드럼을 집어 던지거나 하진 않았다. 그 뒤로도 두 달간 나는 스스로의 게으름과 싸워 가며 제이로부터 수업을 들었다. 미국인 교회에서 CCM 밴드의 드러머 노릇을 하기도 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가지고 놀아본 악기들 중에서 드럼이 가장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서울이나 일본처럼 작은 집에서는 드럼을 끄집어내어 놓을 공간이 없기 때문에 지금은 창고 속에 있지만, 어딘가 다른 임지로 가게 되면 또 연습을 시작해볼 기회가 있기를 고대하는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드럼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팔과 다리가 따로 놀면서 서로 잘 도와야 한다. 그러나 드럼을 '잘' 연주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시계의 초침처럼 정확한 박자감각이다. 밴드의 음악을 들을 때 청중들이 일차적으로 듣는 것은 드럼 소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드럼은 지나치게 화려한 연주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드럼이 박자 감각을 잃고 빨라지거나 느려지기 시작하면, 곡은 대책 없이 망가진다. 내가 연주하던 밴드에서도 리더인 앤디의 표정이 난처해질 때는 어김없이 내가 좀 욕심을 부려서 화려한 연주를 시도할 때였다. 나는 초보자였으므로, 화려해지면 박자가 얼그러졌던 것이다. 다른 멜로디 악기들이 밴드의 '돛'이라면, 드럼과 베이스는 '닻'이다. 드럼이 표류하기 시작하면 밴드는 금세 갈 길을 잃는다.

재즈의 드럼에는 다른 대중음악의 드럼과 확연히 다른 기법이 사용된다. 보통 네박자 곡인 락(Rock)은 첫 박자와 세 번째 박자에 강세가 주어지지만 재즈에서는 보통의 경우 두 번째와 네 번째 박자가 강세다. 이것이 재즈 특유의 '스윙'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비결 중 하나다. 여느 대중음악에서는 쉴 새 없이 박자를 지키는 빠른 음표들을 보통 하이햇(high-hat)이라고 부르는 두 장의 접혔다 열렸다 하는 심벌로 연주하지만, 재즈에서는 라이드(ride)라고 부르는 열린 심벌을 더 많이 사용한다. 하이햇 대신 라이드를 사용하면 곡은 끊어지는 느낌보다 이어지는 느낌이 강해진다. 드럼이 첫 비트의 '쿵' 하는 강렬한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에, 큰북인 베이스드럼의 크기도 재즈에서는 작아진다. 재즈에서 드럼은 단순한 박자 지킴이가 아니라 다양한 강세(accent)를 만들어내는 악기이기 때문에 베이스드럼도 마치 작은 북처럼 정교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된다. 때로 조용한 분위기의 곡을 연주할 때는 깃털로 북을 치는 것처럼 살살 친다 하여 '페더링(feathering) '이라는 기법으로 발을 놀리기도 한다.

드럼 스틱을 잡는 방법도 다양한데, 그 중에서 전통적 그립(Traditional Grip)이라고 부르는 방식은 재즈 드러머들이 더 애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왼손 새끼손가락 쪽으로 스틱이 뻗어나가도록 잡고 손바닥을 위로 향해서 치는 방식이다. 옛날 군악대에서는 어깨에 작은 북을 들쳐매고 연주했는데, 이렇게 하면 보통 북의 오른쪽은 위로 올라가고 왼쪽은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에 생겨난 방식이다. 이렇게 스틱을 잡으면, 왼손이 담당하는 작은북(snare drum)을 좀 더 정교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은 일반론이고, 사람에 따라서 습관도 다르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나은 방식이라고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재즈 드럼에서는 유독 스틱 대신 브러쉬(brush)가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느린 곡을 반주할 때 철사를 여러 개 엮은 '붓'으로 북의 표면을 긁거나 치거나 하여 잔잔하고 애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브러쉬로 연주할 때의 드러머를 멀리서 지켜보면 마치 커다란 항아리로 끓이고 있는 묘약(potion)을 국자로 젓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와 함께 연주하던 밴드의 동료들은 브러시로 연주하는 대목을 '국 끓인다'고 장난스레 부르기도 했다.

한 후배는 비틀즈가 위대한 밴드가 된 것은 링고 스타의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음악을 연주해본 사람이라면 피부에 닿는 이야기다. 존 레넌,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이 각자 자신의 곡을 연주하고 큰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링고 스타는 '비틀즈의 좀 모자라는 멤버' 취급을 받기가 일쑤다. 보통의 경우, 이렇게 멤버들 간의 존재감이 차이가 커지면 여간해서는 하나의 밴드로 지속되기 어려운 상태가 오기 마련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묘해서, 누구나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법이다. 그런데도 링고는 비틀즈가 해체되는 순간까지 자신의 역할을 다했고, 따라서 비틀즈의 존속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이야기다.

재즈의 역사에서 뛰어난 드러머로 기억되는 연주자의 수는 다른 악기의 경우처럼 많지는 않다. 명곡들 중에서 드럼의 명연주를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다. 재즈에서 드러머가 자기 이름으로 앨범을 내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드러머로서 스윙 밴드를 이끌었던 칙 웹(Chick Webb)을 제외하면 스윙 이전 시대의 드러머로서 일반인들이 들어서 이름을 금세 알 만한 드러머는 많지 않고, 모던 재즈에서도 버디 리치(Buddy Rich)와 아트 블레키(Art Blakey) 등이 독보적인 경지를 구축했을 뿐, 다른 연주자의 이름은 매니아 층에서나 회자되는 정도다. 드럼이라는 악기는 곡중 솔로도 자주 맡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럼이 빠진 재즈연주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드럼의 묘한 매력이다. 그는 관악기와 현악기 연주자들 뒤에, 그것도 드럼이라는 커다란 악기 뒤에 가려지지만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가장 큰 지배력을 누린다. 그가 빨리 가면 빠른 곡이 되고, 그가 천천히 가면 느린 곡이 된다. 나는 서툴게나마 스틱을 잡아보았던 덕분에, 곡을 들을 때 드럼의 소리가 귀속으로 선명하게 뛰어든다. 드럼의 역할에 신경을 쓰면서 듣는다면 누구나 그것을 경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독특하고도 즐거운 음악감상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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