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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즈 체험기 : 야마시타 요스케(山下洋輔)

posted Mar 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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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키 므네토시(野崎宗利) 후지TV 국제부장은 첫눈에 기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적은 말수와 수줍은 듯한 눈매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보다 서너 살은 많다는데, 자전거로 단련된 호리호리한 몸매 때문인지 그는 오히려 나보다도 젊어 보였다. 2011년 2월 어느 날, 함께 근무하는 선배와 노자키 부장의 저녁식사 약속에 따라 나갔다.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 후, 노자키 부장은 우리를 신주쿠의 재즈 클럽으로 안내했다. 책상물림 같은 인상과는 딴판으로, 노자키 부장은 학창시절 재즈 밴드에서 트럼펫도 연주했었다는 재즈 팬이었다. 그는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의 연주의 어떤 점이 좋으냐는 나의 물음에는 이렇게 답했다. “브라운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그가 거기에 진심을 담아서 마음으로 연주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연주의 진정성이라... 어쩐지 일본의 재즈팬에게서가 아니라면 듣기 어려운 대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덩이’라는 뜻의 피트 인(Pit Inn)이라는, 그 이름만 들으면 담배 연기 가득한 재즈 팬들의 소굴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가 보니 이 업소의 분위기는 ‘소굴’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많은 의자들이 소극장처럼 전부 무대를 향해 정렬되어 있었고, 각자의 자리 앞에 재떨이는 있었지만 거기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없었고 공연장 뒤편의 바 앞에서만 한두 명씩 번갈아 담배를 피울 뿐이었다.

공연 시작 전에는 문 앞에 길게 선 줄을 보면서 놀랐다. 홍대 앞이나 이태원, 압구정동의 재즈 클럽을 다녀 보았지만 거기는 단지 음악만을 들으러 오는 청중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토록 재즈 열성팬들이 많다는 것이 부러웠다. 그러고 보니, 동경에는 이자카야를 가건, 스시집을 가건, 철판구이집을 가건 열에 아홉은 재즈를 배경음악으로 틀어두고 있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나는 또 놀랐다. 두 번 휴식시간이 있는 3막의 공연이 세 시간 넘게 진행되는 동안 중간에 그 딱딱한 의자를 떠나는 청중은 없었다. 재즈라는 것은 편한 의자에 기대어 앉아 담배나 술 따위를 마시면서 옆사람과 이야기도 해 가면서 듣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신기한 체험이었다.

그날 공연의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야마시타 요스케 씨였다. 1942년생인 그는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 노자키 부장의 설명이었다. 알고 보니 야마시타는 재즈 연주자일 뿐만 아니라 작곡가와 수필작가로서도 유명했다. 그는 17세이던 1959년부터 직업적 연주활동을 시작했으며, 쿠니타치 음악대학을 졸업했다. 1963년에 발표한 첫 앨범을 통해, 그는 프리 재즈 스타일 아방가드(avant-garde) 연주의 선구자로 자리매김 했다. 그는 1969년 이래 여러 명의 멤버들과 함께 트리오로 활동했으며, 1994년에는 카네기 홀에서 개최된 버브(Verve) 재즈 레이블 발매 50주년에 초대되어 연주하기도 했다. 1998년 이래 그는 영화음악에 심취해 있다고 한다.

과연 그의 연주 스타일은 독특했다. 아방가드의 선구자라는 호칭에 어울리게, 그는 때로 과장된 몸짓을 써가며 팔꿈치와 주먹을 사용해서 피아노를 후려치기도 했다. 그러나, 프리 재즈라는 사전의 설명에 내가 다소 겁을 먹었던 것에 비하면 그의 연주는 온건했고, 대중적이었다. 2부에서 그는 전국 빅밴드 경연대회 수상자인 두 명의 젊은 연주자,  요네다 유우야(米田裕也, 알토 색소폰), 쿠마모토 히로시(熊本比呂志, 퍼커션)를 소개하고 이들과 함께 자신의 자작곡인 <Eria> 등 영화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는데, 확연히 대가적인 풍모가 엿보였다. 그의 곡은 일본적인 발라드와 현대적인 재즈가 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선율의 곡들이었다. 놀라운 것은 두 젊은이들의 기량이었다. 아직 새 잎사귀처럼 어린 생김새를 벗지도 않은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연주의 완성도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목격하기 어려운 광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쇠한 대가와 젊은이들의 협주가 언뜻 어딘가 불균형한 느낌도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재즈의 세계에서 이런 일은 늘상 있어왔다. 젊은 시절의 대가들의 이름이 그 이전 시대의 연주자의 앨범 속에 슬며시 포함되어 있는 일 말이다.

그 외에도 알토 색소폰에 이케다 아츠시(池田篤), 트럼펫에 아카츠카 켄이치(赤塚謙一), 피아노에 사야마 마사히로(佐山雅弘), 베이스에 카네코 켄(金子健), 드럼에 타카하시 토오루(高橋徹) 등의 멤버 함께 연주를 펼쳤다. 한결같이 최상급의 연주실력을 보여주었고, 특히나 스즈키 코우지(鈴木孝二), 시미즈 마키오(淸水万紀夫) 두 사람의 연륜이 깃든 클라리넷 2중주는 일품이었다.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게 생긴,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외모의 노인분들이 그런 연주를 펼쳐 보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뭐랄까, 시샘어린 부러움이 앞섰다. 내가 얼굴을 알고 있는 한국의 연주자들이나 서양인들의 연주를 보았을 때 느끼지 못했던 낯설음 때문에 그랬나보다

전체적인 느낌은, 진지했다는 것이다. 연주자도 진지했고, 청중들도 몹시 진지했다. 하긴 일본인들은 음식을 만들 때도 진지하고, 물건을 고칠 때도 진지하고, 이사를 할 때도 진지하다. 그 특유의 진지함으로, 이 나라의 재즈 연주자와 팬들은 일본열도를 이미 본산지에서조차 예전시대의 음악이 되어버린 재즈의 박물관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 글의 배경에 흐르는 음악은 야마시타 요스케의 앨범 Resonant Memories중의 첫 곡 'Round Midnigh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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