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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 바이더벡

posted Feb 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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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더글라스(Michael Douglas)의 아버지 커크 더글라스(Kirk Douglas)가 34세 되던 1950년에 만들어진 <Young Man with a Horn>이라는 영화가 있다. 일찍 부모를 여윈 릭 마틴(Rick Martin)이라는 소년은 교회 빈민 구호소에서 찬송가의 피아노 반주를 듣고 음악에 매료된다. 교회 안으로 숨어 들어간 릭은 혼자 딩동거리며 피아노를 만진다. 그날이 다 가기 전에 그는 자기가 들었던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천재적인 귀를 가진 것이다. 그는 볼링장에서 동전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트럼펫을 산다. 흑인 트럼펫 연주자 아트 해저드(Art Hazzard)의 눈에 띄어 그로부터 트럼펫을 배운 릭은 실력 있는 연주자로 성장한다. 청년이 된 릭(커크 더글라스 분)은 필 모리슨(Phil Morrison) 악단에서 유명세를 타고, 그 밴드의 가수인 조던(Jordan, 도리스 데이 Doris Day 분)은 릭에게 연정을 품는다. 그러나 그는 조던의 친구인 에이미(Amy 로렌 바콜 Lauren Bacall 분)와 사귀고 결혼한다. 오로지 음악만을 사랑하는 릭이나 조던과는 달리, 에이미는 복잡하고 뒤틀린 내면세계를 가진 여성이다. 결국 두 사람의 결혼은 파국을 맞고, 릭은 좌절 속에서 트럼펫을 놓고 거리의 부랑자가 된다. 그의 옛 친구 윌리(Willie)와 조던은 그를 부랑자 알콜중독 치료소에서 찾아내 간호하고, 그는 다시 연주자로서의 명성을 되찾는다.

<Young Man with a Horn>은 할리우드가 본격적인 예산을 투입해 재즈를 소재로 만든 최초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소설가 도로시 베이커(Dorothy Baker)가 쓴 코넷 연주자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의 전기에 느슨하게 바탕을 두고 있다. 커크 더글라스는 음악에 모든 것을 바친 청년의 열정을 호소력 있게 연기한다. 그는 트럼펫 고수의 호흡과 입술모양(Embouchure)을 상당히 그럴듯하게 흉내 내고, 너무 곧게 펼치는 손가락이 서툴게 보이긴 하지만 운지(fingering)는 그런 대로 설득력 있게 연기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릭 마틴이 연주하는 음악이 바이더벡의 연주와 흡사할 거라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주인공 릭 마틴의 트럼펫 소리는 당시 유명한 스윙밴드 리더이던 해리 제임스(Harry James)가 녹음했다. 해리 제임스는 현란한 곡중간주(bravura) 스타일로 유명한 연주자였는데, 그가 극중에서 연주하는 음악은 50년대 스타일 재즈다.

빅스 바이더벡은 1903년에 태어나 1931년에 28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음악은 재즈가 아직 유년기에 머물던 30년대의 음악이었다. 그는 트럼펫이 아닌 코넷 연주를 고집했다. 트럼펫은 관의 크기가 일정하고 날카롭고 깨끗한 소리를 내지만 코넷은 관이 점점 더 넓어지게 만들어져 일반적으로 트럼펫보다는 좀 더 무거운 소리를 낸다. 그런 코넷을 가지고도 바이더벡은 달콤하고 감칠맛 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재즈 기타리스트 에디 콘돈(Eddie Condon)은 바이더벡의 코넷 음색을 가리켜 “남자의 청을 수락하는 여자의 대답(Like a girl saying 'Yes')” 같은 소리라고 말했다.

그의 연주곡들 중 하나만 고르라면 1927년에 녹음된 <Singin' the Blues>를 꼽고 싶다. 짧은 전주로 곡이 시작되고 나면, 절제된 기타 반주 위로 지미 도르시(Jimmy Dorsey)의 아름다운 클라리넷 선율이 흐른다, 이것을 이어받아 바이더벡의 달콤한 코넷이 주제를 변주한다. 이 곡은 당시 유행하던 것보다 느린 박자의 곡으로, '재즈 발라드'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시초가 되었다. 이 곡에서 보여주는 바이더벡의 솔로연주 속에는 50년대에 가서야 탄생할 쿨 재즈의 씨앗이 들어 있다. 초창기의 위대한 재즈 연주자들 중 루이 암스트롱과 빅스 바이더벡이 종종 비교되곤 한다. 암스트롱이 곡중에서 언제나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바이더벡의 연주는 곡 전체의 속으로 녹아들어가고 숨어들어간다. 블루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흑인 연주자들과는 달리, 바이더벡은 라벨이나 드비시 같은 작곡가들로부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말하자면, 루이 암스트롱의 즉흥 연주는 ‘즉흥연주이기 때문에’ 기발한 특이성이 돋보이는 반면, 바이더벡의 즉흥연주는 그것이 ‘즉흥연주임에도 불구하고’ 미리 작곡된 선율을 연주하는 것처럼 정연한 논리를 갖추었다는 점이 돋보이는 것이다.

바이더벡은 세 살 부터 엄마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일곱 살이 되었을 때는 벌써 고향인 아이오와(Iowa)주 데븐포트(Davenport)에서 “듣는 음악은 죄다 연주하는 신동”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영화 <Young Man with a Horn>의 주인공 릭처럼, 그는 어린 시절 귀로 듣고 코넷을 배웠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전통적 운지법과는 다른 자신만의 운지를 사용했는데, 그것이 그의 특이한 음색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믿는 평론가들이 많다. 그가 너무 음악에만 빠져 지내자 그의 아버지는 그를 시카고 근처의 기숙사 학교로 보냈지만, 그는 거의 매일 기숙사를 몰래 빠져나와 흑인들의 클럽에 가서 음악을 즐기곤 했다. 그는 자기 형에게 쓴 편지에서 “형, 나는 훌륭한 밴드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지옥에라도 갈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퇴학을 당했고, 학교를 나와 곧장 전업 연주자가 되었다. 바이더벡은 뉴욕의 폴 화이트맨 밴드에서 유명세를 타지만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음주의 습관 때문에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어, 결국 젊은 나이로 불꽃같은 삶을 접었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자. <Young Man with a Horn>에서 내 눈에 가장 돋보이던 사람은 커크 더글러스도, 도리스 데이도, 로렌 바콜도 아니었다. 그것은 주인공 릭 마틴의 오랜 친구 윌리 ‘스모크스’ 윌러비(Willie 'Smokes' Willoughby)를 연기하던 호기 카마이클(Hoagy Carmichael)이었다. 극중에서 그는 끊임없이 줄담배를 피워대면서 “사람들이 왜 내 별명을 ‘스모크스’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다”고 농을 한다. 이 영화는 카마이클이 연기하는 윌리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호기 카마이클은 1930-1950년대에 여러 편의 영화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던 중견 배우지만, 20년대부터 명성을 떨치던 재즈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미간에 인상적인 일자 주름을 가지고 퇴폐적이지만 정감 있는 피아니스트 역할을 영화에서 멋지게 소화하던 카마이클이 바이더벡을 처음 만난 것은 1924년경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바이더벡이 죽을 때까지 종종 함께 연주를 하면서 우정을 나누었고, 바이더벡이 마지막으로 녹음한 것은 카마이클의 곡이었다. 카마이클은 자기 친구의 자전적 영화에 출연해 그의 삶을 기렸던 셈이다. 알콜중독자 치료소로 찾아가 침상의 릭 마틴에게 안타까운 눈빛을 보이던 ‘스모크스’가 돋보였던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흑백 영화 속의 픽션이 현실 세계와 만나는 통로였던 셈이다. 비록 영화 속의 릭과는 달리, 알콜 중독과 폐렴으로 쓰러진 바이더벡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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