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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데이비스

posted Feb 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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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겨울. 오만의 수도 머스캇에 근무하고 있던 나는 런던으로 출장을 떠났다. 머스캇에서 영국으로 가자면 이웃나라 UAE의 두바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이 가장 빠르다. 용케 내가 출발하던 날에는 비행기를 바꿔 타지는 않고 두바이에 기착만 하는 항공편이 있었다. 남반부의 공항에서는 비행기들이 좀처럼 점잖은 시간에 떠나거나 도착하지 않는다. 내가 머스캇에서 한밤중에 올라탄 비행기가 두바이 공항에 기착했을 때는 캄캄한 새벽녘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머스캇에서 런던으로 직행하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나를 포함한 두세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승객들은 두바이에서 내렸다. 이제 두바이에서 런던으로 가는 승객들이 다시 비행기를 채울 때까지, 두어 시간 남짓 을씨년스럽게 텅 빈 비행기 속에 앉아 있어야 했다.

한밤중의 공항에 엔진을 끈 채 멎어 있는 비행기 내부에는 어둑한 실내등만 켜져 있었다. 냉방기도 가동을 멈추어 바깥의 더운 공기는 유리창 안쪽을 점점 더 뿌옇게 만들고 있었다. 창밖으로 한산한 공항이 신기루처럼 어른거렸다. 기내를 청소하는 항공사 직원들의 빗자루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다. 잠은 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기내의 스피커를 통해 나지막한 선율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를 잊을 수 없다. 내가 이 곡을 번잡한 카페 같은 곳에서 들었다면 이토록 사랑할 수 없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플라멩코 스케치(Flamenco Sketch)>였다.

이 곡은 데이비스의 1959년 앨범인 <Kind of Blue>에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은 데이비스 뿐 아니라 알토 색소폰에 줄리안 ‘캐논볼’ 애덜리(Julian "Cannonball" Adderley), 테너 색소폰에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피아노에 빌 에반즈(Bill Evans), 베이스에 폴 체임버스(Paul Chambers), 드럼에 지미 코브(Jimmy Cobb) 등 초일류 연주자들이 한 데 모여 밀도가 더 이상 높아질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이루어낸 명반이고,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음반이기도 하다. 특히 앞서 소개한 <플라멩코 스케치>를 연주하면서, 데이비스는 독특한 음색을 내는 하몬(Harmon) 약음기를 끼우고, 그의 다른 어느 앨범에서보다 여유 만만한 연주실력을 구사한다. 그 여유로움으로, 그는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우수를 자아낸다. 9년 전 텅 빈 비행기 안에서 나를 찔렀던.

마일즈 데이비스는 재즈 트럼펫의 대명사와도 같은 존재다. 그는 1926년 일리노이주에서 치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 여느 흑인들과는 달리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3세에 아버지로부터 트럼펫을 선물 받았다. 16세부터 밴드 활동을 시작했으므로 그의 음악활동은 장장 반세기에 걸친 것이었으며, 그 동안 그는 비밥(bebop), 하드밥(hard bop), 모달재즈(modal jazz), 퓨전(fusion) 등과 같은 재즈의 새로운 장르를 창시했거나, 창시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특히 쿨 재즈(Cool Jazz)라는 장르는 그의 앨범 <The Birth of Cool>을 기원으로 삼는다는 데 누구도 이견이 없다.

40년대에 뉴욕의 줄리어드 음대로 유학을 간 그는 뉴욕에서 전설적인 섹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와 함께 연주활동을 하면서 비밥의 발전을 주도했고, 파커가 약물 남용으로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큰 뜻을 품은 젊은 작곡가들과 함께 새로운 음악을 모색했다. 이때 그가 녹음한 음반이 쿨 재즈의 탄생을 알리는 <The Birth of Cool>이다. 비밥이 격정적인 리듬 속에서 진행되는 난해한 스케일의 속주를 특징으로 삼는다면, 쿨 재즈는 그 이름처럼 좀 더 절제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이전의 트럼펫 연주자들과는 달리, 마일즈 데이비스는 어려서부터 비브라토를 삼가는 깔끔한 연주를 몸에 익혔기 때문에 그의 음색은 도시적인 냉철한 분위기의 음악과 더없이 잘 어울렸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는 ‘차도남’이니 하는 야릇한 표현이 유행하고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데, 이들에게라면 데이비스의 연주가 ‘차가운 도시의 트럼펫’ 소리라고 설명하는 편이 이해를 돕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40년대 중반에 그는 프랑스 순회공연 때 만난 배우 쥘리에트 그레코와 염문을 뿌렸고, 프랑스에 남으라는 주변의 유혹을 뿌리치고 뉴욕으로 돌아와서는 깨어진 사랑과 연주생활의 슬럼프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는 자신의 선배 찰리 파커처럼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는 뉴올리언즈의 아버지 집으로 가서 스스로를 감금하고 괴로운 금단현상을 다 이겨낸 후에야 마약을 끊을 수 있었다. 1954년의 일이었다. 이 무렵부터 그는 하몬(Harmon) 약음기를 끼우고 마이크 가까이에서 연주하는 저 특유의 음색으로 연주하기 시작한다.

비밥 보다는 느리고 쿨 재즈보다는 비트가 강한 블루스 풍의 하드밥(Hard Bop) 재즈도 마일즈 데이비스가 선두에 서서 일구어낸 새로운 장르였다. 그는 재즈가 대중적인 사랑을 잃어가기 시작할 무렵에도 음악적 실험을 계속했고, 전자 악기들과 함께 재즈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주도 자주 했다. 그가 1970년 녹음한 앨범 <Bitches Brew>는 로큰롤의 영향도 마다하지 않는 싸이키델릭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누구와도 친근하게 지내지 못해 언제나 외로웠고, 언제나 작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낮보다는 밤에 활동하기를 즐겨 ‘어둠의 왕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으며, 자신의 삶을 편안하게 끌어안기 보다는 그것과 신경질적으로 싸우듯 한 평생을 지냈다. 그런 그의 태도는 개별성과 독자성을 지향하는 그의 연주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는 고독하고, 이지적이고, 콧대가 높으며, 냉철하다. 그는 재즈를 탄생시킨 세대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재즈가 아직 청년기의 발전단계에 있던 시절에 등장하여 재즈의 성장과 노쇠 과정에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재즈는 어느 한 두 사람이 만들어낸 음악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지구상에 마일즈 데이비스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듣고 있는 재즈는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데이비스는 1991년 9월, 폐렴과 심장마비 합병증세로 산타 모니카 자택에서 6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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