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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생

posted Dec 0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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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클리포드 브라운 올린 거 보고 이사가고 이제 좀 편안해 졌나 싶었다.

나는 빌리 홀리데이를 아직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내가 많이 불편해하는 건 델타블루스 같은 소박한 거지 (좋아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어쩌면 그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불편해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 사람이 불편했던 거 같기도 하고) 빌리 홀리데이는 그래도 서비스 마인드가 있는 것 같아서 라디오에서 나오면 끝까지 귀기울여 잘 듣는 편이다. 그리고 그런 말이 상처가 되기에도 너무 고생을 안해본 거 같다.

사실 고생스러운 것은 음악 틀어주는 술집 같은 데 가서 주구장창 블루스를 신청곡으로 넣는 그런 사람들과 (위에 저 불편한 사람) 술 마실 때인데 "난 어릴 때 고생을 안해봐서 블루스 안 좋아하니까 적당히 좀 해요." 라는 식으로 두고두고 잘 써먹어온 이야기라 고마운 마음이 꽤 크다. 아무래도 그냥 블루스가 싫다 그러는 거 보다는 그 사람에게도 상처가 덜 되지 않았을까.

어릴 때부터 스윙음악은 꽤 좋아했고 듣기도 많이 들었었는데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스윙을 연주하던 그 멤버 그대로 그렇게 청승맞은 음악을 할 수 있다면 둘 중 하나는 거짓이 아닐까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고생스럽고 고되다는 생각이 들면 디스코나 80년대 영국 뉴로맨틱 밴드를 꺼내 들으며 꽤 큰 위로를 받는다. 아마도 어릴 때 좋아하던 음악이어서 그런 것 같다. 만일 어린 시절 많은 고생을 해서 어린 시절에 대한 좋은 기억도 없고 그 때 블루스만 많이 들었던 (또는 연주했던) 사람이 있다면 나이를 먹고 고되고 힘들 때면 도대체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하는 걸까. 돈을 벌기 위해서 어린 시절의 괴로움을 자꾸 되살리는 노래를 계속 불러야 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싶은 생각도 든다. 어릴 때 많이 듣던 음악을 듣게 되었을 때 어린 시절의 괴로움이 생각난다면 정말 괴로울 것 같다. 빌리 홀리데이가 꼭 그랬을 거란 이야기는 아니지만 음악은 어릴 때 좋아하던 게 그냥 끝까지 가는 거 같다. 약을 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빌리 홀리데이란 이름을 처음 본 것이 월간 팝송에 짜투리로 나온 유명 음악가의 어록을 모아놓은 기사였는데 "처음 성관계를 한 것이 8살이었고, 그것은 강간이었다." 였던 것 같다. (예명 치고는 정말 탁월하다. 한번만 보거나 들어도 기억나는 이름) 빌리 홀리데이가 누군지도 모르던 국민학교 5학년 때 본 이야기라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지도 자신이 없는데 아마 맞을 것이다. 빌리 홀리데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이 그런 다크사이드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 때문이었던 것 같고 (고생을 안해봐서 다크사이드가 뭔지 잘 몰라 그런지 안 그런지 확실치 않음), 90년대 cf에서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이 소비되던 모양새에 대한 기억까지 겹쳐지면 지금도 차마 따로 시간을 내서 자세히 들어 볼 엄두가 안 난다. 빌리 홀리데이처럼 자라났지만 노래도 안되고 이쁘지도 않았던 여자들도 많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숙연해지기도 하고 효도해야 겠단 생각도 든다.  

음악과 그것을 만들거나 연주한 사람을 떼어놓을 수 있을까? 떼어놓을 수 있다면 그 음악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그 음악이 그 음악일까? 머리 아프다.

                                                                                                                                                  -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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