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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posted May 2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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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keEllington_small.jpg

 


학창시절 합창 써클의 정기 공연에서 솔로로 노래할 기회가 있었다. 선배들이 골라준 노래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Sir Duke>. 그것이 듀크 엘링턴에게 헌정된 곡이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1899년 워싱턴 DC에서 태어난 듀크 엘링턴은 독보적인 음악인이다. 그가 독보적인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작곡가라는 사실에 있다.

재즈는 작곡가가 정해준 대로 연주하는 세계를 박차고 나와 만들어진 해방구였다. 그곳의 언어는 즉흥연주였으며, 창작의 권한은 연주자들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전업 작곡가의 존재는 정의상 재즈라는 음악과 양립하기 어렵다. 그런 재즈에서 버젓이 작곡가의 명함을 달고 존경을 받는 이가 엘링턴이다. 시인의 공화국에 유일하게 시민권을 얻은 철학자랄까. 하긴 반란이 일어난 배에도 선장 역할을 할 사람은 필요한 법이다. 그가 작곡한 작품의 수는 1천여 곡을 웃돈다. 그것은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나머지 모든 재즈 음악가가 작곡한 곡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많은 수일지도 모른다.

엘링턴의 전성기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있었다. 단명하는 연주자들이 유독 많은 재즈의 세계에서, 그는 무려 50년 이상이나 왕성한 활동을 지속했다. 그는 딕시랜드에서부터 스윙, 비밥, 하드밥, 퓨젼은 물론 팝과 클래식 음악도 거쳤다. 아니, 이 모든 음악이 그를 거쳐갔다. 엘링턴은 자신의 음악을 재즈라고 부르기보다는 “미국 음악(American Music)”이라고 불렀다. 엘링턴의 음악세계가 재즈의 어느 특정 장르보다 폭이 넓은 것이 사실이고 보면, 미국 음악이라는 호칭은 적절한 것일지도 모른다. 재즈를 정의하는 모든 설명에서 논란의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내용을 다 털어내고 나면 오롯이 남는 것은 그것이 미국에서 탄생한 음악이라는 사실 뿐일 테니까.

그를 수식할 때는 언제나 우아함(elegance)이라는 표현이 따라온다. 그가 본명인 에드워드 케네디(Edward Kennedy) 대신 공작(公爵, Duke)으로 불리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서구의 전통 음악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즉흥음악이라는 혼돈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해준 작곡가였다. 그것만으로도 밴드를 이끄는 그의 모습은 재즈 바깥세상의 사람들에게 듬직해 보였을 터다. 그러나 그의 우아함은 기본적으로 그가 작곡한 곡들과 그의 연주 솜씨에 깃들어 있는 특질이었다. 그 우아함으로, 그는 재즈가 당당한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엘링턴의 부모는 둘 다 피아니스트였고, 그는 일곱 살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그는 비록 노예의 외손자였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를 귀족 같은 몸가짐을 갖도록 교육했다. 그가 듀크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데뷔 이후가 아니라 어린 시절이었던 것이다! 1914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열다섯 살의 엘링턴은 첫 작품인 <Soda Fountain Rag>을 썼다. 아직 악보를 쓸 줄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소년은 이때부터 마른 스펀지처럼 당대의 피아니스트들의 영향을 빨아들이며 실력을 키워나갔다.

열여덟 살에 그는 자신의 밴드를 조직했다. 워싱턴과 버지니아 일원에서 그의 밴드는 흑인과 백인 사교모임을 망라하며 연주하던, 드문 존재였다. 그는 1923년에 뉴욕으로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잠간이지만 전설적인 소프라노 색소포니스트 시드니 베쉐이(Sidney Bechet)도 엘링턴의 밴드에서 연주했다. 1927년부터 카튼 클럽에서 연주하면서 엘링턴의 입지는 확고한 것이 되었다. 초창기 엘링턴 밴드는 트럼본과 트럼펫의 끓는듯한 소리와 와와(wah-wah)의 사용, 블루스 톤이 강한 섹소폰 연주를 이용한 “정글 스타일”로 유명세를 얻었다. 물론 엘링턴이 편곡으로 이국정인 정취를 강하게 더한 것이었지만, 여기에는 버버 마일리(Bubber Miley)나 쿠티 윌리엄즈(Cootie Williams) 등 트럼펫 연주자가 기여한 부분도 컸다.

엘링턴은 작곡의 변화와 깊이를 더하고 아이비 앤더슨(Ivie Anderson), 소니 그리어(Sonny Greer) 등 보컬리스트를 기용함으로써 레코딩 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던 대공황 시기도 견뎌냈다. 대중은 춤출 음악을 원하고 있었지만 엘링턴 밴드의 장점은 풍성한 스타일의 작곡과 섬세한 분위기 조절에 있었다. 엘링턴은 “재즈는 음악이지만 스윙은 사업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스윙의 열풍과 정면승부를 벌이기보다는 밴드를 소규모 단위로 나눠 다양한 악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으로 독자성을 지켰다. 이를테면 소녀시대의 태티서 전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스윙의 제왕 베니 굿맨이 철저한 기강으로 밴드를 통제한 반면에, 엘링턴은 지휘봉을 사용하지 않고 피아노에 앉아 몸짓과 표정과 유머로 밴드를 이끌었다. 그것은 그의 별명과 어울리는 귀족적인 리더십이었다. 사람의 호칭은 그래서 중요한 모양이다. 남들이 그를 공작이라고 불렀을 때, 그는 정말로 공작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 시인의 노래는 보기보다 실용적인 지침이었는지도 모른다.

1933-1934년의 유럽 투어 이후 엘링턴은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다. 그의 작품들 중 <Mood Indigo>, <It Don't Mean a Thing (If It Ain't Got That Swing)>, <Sophisticated Lady>, <In a Sentimental Mood>, <Caravan> 등은 재즈를 대표하는 스탠더드가 되었다. 1939년에 합류한 피아니스트 빌리 스트레이혼(Billy Strayhorn)은 엘링턴의 표현처럼 엘링턴의 “오른 팔이자 왼팔, 내 뒤통수에 붙은 나의 눈”이 되었다. 클래식으로 훈련을 받고 작곡에 능한 스트레이혼은 엘링턴의 아바타와도 같은 존재였다.

1940년대 비밥의 열풍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던 엘링턴은 1956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을 계기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새로운 세대의 청중들이 그에게 열광했고, <Ellington at Newport>는 그의 베스트셀러 앨범이 되었다. 1960년에 이르면 한결 더 넉넉해진 엘링턴은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콜맨 호킨즈(Coleman Hawkins)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찰리 밍거스(Charlie Mingus) 등과도 함께 앨범 작업을 했다. 그래서 엘링턴은 1974년 폐암으로 사망했을 당시에도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즐겨 듣는 그의 음반은 베이시스트 찰리 밍거스(Charlie Mingus), 드러머 맥스 로치(Max Roach)와 함께 1962년에 녹음한 <Money Jungle>이다. “나는 우연한 음악에서 깊은 인상을 받지 않는다. 멋대로 하는 연주(doodling)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던 전통주의자 엘링턴과 프리 재즈의 선구자 찰리 밍거스의 협연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다. ‘우연한 음악’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젊은 두 연주자의 실험정신과 우아함으로 가득한 엘링턴의 연주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전위적 정신으로 충만한 후배들과 협연하면서도 엘링턴은 오갈 데 없이 듀크의 것임에 틀림없는 선율을 연주한다. 나는 특히 <A Little Max>를 좋아하는데, 듣다 보면 이거야말로 더도 덜도 아닌 재즈의 구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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