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lcome Page
    • drawing
    • photos
    • cinema
    • essay
    • poems
    • music
    • toons
    • books
    • mail

찰리 크리스쳔(Charlie Christian)

posted May 06, 20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CharlieChristian_small.jpg

 


2005년 어느 화창한 여름날, 나는 오클라호마시티를 방문한 적이 있다. 시내를 관통하는 인공 운하 주위로 브릭타운(Bricktown)이라는 상가가 조성되어 있었다. 관광객을 태운 보트가 예쁘게 꾸며놓은 인공운하 위로 물살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브릭타운에는 찰리 크리스쳔 애비뉴(Charlie Christian Avenue)라는 도로가 있다. 오클라호마시티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음악인 중 한 사람을 기념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다. 거기서 그의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1916년생인 찰리 크리스쳔이 태어난 곳은 텍사스였지만, 그를 음악인으로 길러준 곳은 오클라호마였다. 그는 열두 살부터는 기타를 배워 길거리에서 연주하며 푼돈을 벌기도 했다. 십대 후반부터는 벌써 중서부 지역의 여러 도시에서 그곳의 밴드와 함께 연주했다. 그는 독특한 전자기타 솔로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그의 연주는 두 가지 의미에서 새로운 현상이었다. 첫째, 당시만 해도 재즈 밴드에서 흔히 볼 수 없던 전자악기가 나이 어린 달인과 함께 등장한 것이었다. 둘째, 기타로 연주하는 솔로의 참신함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타는 리듬에 맞추어 코드를 반주(backing)하는 악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 두 현상은 필연적으로 함께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기타는 다른 악기에 비해 음색이 부드럽고 음량이 작기 때문에, 픽업을 장착하고 앰프에 연결됨으로써 비로소 리듬섹션을 벗어나 솔로 악기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서부 지방에서 커지기 시작한 젊은 기타리스트의 명성은 레코드 제작자 존 해먼드(John Hammond)의 귀에도 들어갔다. 1939년 해먼드는 베니 굿맨에게 스물세 살의 청년 크리스쳔을 소개했다. 하지만 굿맨은 밴드에 기타를, 그것도 전자악기를 도입하는데 별 관심이 없었다. 해먼드는 굿맨과 상의하지 않고 LA 레스토랑의 공연에 크리스쳔을 데려와 밴드 스탠드에 앉혔다. 기분이 상한 굿맨은 크리스쳔이 틀림없이 모를 것으로 생각하고 <Rose Room>이라는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솔로 차례가 돌아오자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이 벌어졌다. 크리스쳔은 이제껏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는 기타솔로로 모두를 놀래켰다. 이날 <Rose Room>의 연주는 도합 사십 분간이나 계속되었다.

이로써 크리스쳔은 라이오넬 햄튼(Lionel Hampton, 비브라폰), 플레쳐 핸더슨(Fletcher Henderson, 피아노), 아티 번스틴(Artie Bernstein, 베이스), 닉 파툴(Nick Fatool, 드럼)과 함께 베니 굿맨 육중주단의 어엿한 일원이 되었다. 이것은 하루 2불 50센트를 벌던 연주자가 매주 150불의 급료를 받게 되었다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비로소 주류 재즈에 전자악기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것이었으며, 재즈에서 기타가 솔로악기로 공인받게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941년에 굿맨은 밴드를 해체하고 스타급 연주자들을 모아 육중주단을 재조직했다.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피아노), 쿠티 윌리엄즈(Cootie Williams, 트럼펫), 조지 올드(Georgie Auld, 테너색소폰), 데이브 텁(Dave Tough, 드럼) 등 기라성 같은 연주자들을 용케도 모은 밴드가 탄생했다. 굿맨은 여기에도 크리스쳔을 기용했다. 이 육중주단은 그해 재즈 연주계를 평정하다시피 했다. 크리스쳔은 단지 새로운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만이 아니었다. 그의 연주는 많은 평론가들이 “비밥(bebop)의 씨앗”이라고 평하는 현대성을 품고 있었다.

크리스쳔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장고 라인하트의 연주를 곧잘 외어서 연주하기도 했다. 30년대 말에는 크리스쳔 이외에도 전자기타로 재즈와 블루스를 연주하던 레너드 웨어(Leonard Ware), 조지 반즈(George Barnes), 플로이드 스미스(Floyd Smith) 등 다른 연주자들도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크리스쳔만큼 혁신적인 스케일을 구사하지 못했을 뿐이다. 크리스쳔은 에디 랭(Eddie Lang)이나 로니 존슨(Lonnie Johnson)과 같은 전 시대 기타 연주자들을 답습하기보다는 레스터 영(Lester Young)이나 허셀 에반즈(Herschel Evans)와 같은 관악기 연주자들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그의 연주는 동시대의 기타리스트에 비해 유난히 관악기의 진행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만약 오늘날 그의 연주가 충격적일만큼 새롭게 들리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그가 등장한 이후 모든 재즈 기타리스트들이 그를 교과서로 삼았기 때문이다. 오스카 무어(Oscar Moore), 레스 폴(Les Paul), 타이니 그라임즈(Tiny Grimes), 바니 케셀(Barney Kessel), 허브 엘리스(Herb Ellis),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 등 후대의 기타리스트의 연주에서는 언제나 크리스쳔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기타 연주자들만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찰리 파커(Charlie Parker)와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가 꽃피운 비밥에서도, 심지어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나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더 현대적인 연주에서도 크리스쳔이 뿌린 씨앗의 흔적은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씨앗을 뿌린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비밥의 싹을 틔운 장본인도 크리스쳔이었는지 모른다. 1939년에 그가 미네소타에서 녹음한 <Stardust>, <Tea for Two>, <I've Got Rhythm>과 같은 곡들은 후대의 비밥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하는 곡이 되었다. 1941년 굿맨 밴드는 새 앨범을 녹음했다. 당시 스튜디오에서 크리스쳔을 비롯한 일부 연주자들이 굿맨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연습 삼아 연주한 <Blues in B>와 <Waiting for Benny>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완결된 비밥 잼 세션이었다.

크리스쳔이 자기 이름을 걸고 리더로서 녹음한 음반은 없다. 남아있는 그의 연주는 밴드의 일원이거나 다른 연주자의 찬조출연자로서 연주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참가한 모든 곡에서 찬란한 빛을 발한다. 나는 컴필레이션 앨범인 <Swing to Bop>을 즐겨 듣는다. 이 앨범에는 굿맨 밴드의 콜럼비아 레코딩, 민튼스 플레이하우스에서의 연주, 39년 카네기 홀 공연에서의 연주 등이 담겨있다. 타이틀 곡인 <Swing to Bop>을 들어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든다. 그 짧은 솔로 속에서 크리스쳔은 블루스라는 재즈의 어제, 스윙이라는 오늘, 그리고 비밥이라는 내일을 모두 표현하고 있다. 이 곡의 원래 제목은 <Topsy> 였는데 레코드 회사가 바꾼 것이다. 크리스쳔의 솔로만 놓고 보자면 더 없이 적절한 제목이다.

너무 일찍 만개했던 탓일까? 크리스쳔은 1942년 불과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뉴욕의 요양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40년도 결핵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지만 휴식을 취하지 않고 무리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굿맨 밴드에 막 합류해 재즈의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가 명성을 떨친 것은 불과 3년이 채 못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건만, 어떤 사람에게 3년은 불멸의 스타로 기억되기에 충분한 시간인 모양이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212 뉴욕의 재즈 : 송영주 Blue Note 공연 (2012년 가을) file 2013.05.14 1011 50
211 나윤선 2013.03.27 752 58
210 Sprawl II by 콩돌이 file 2013.03.24 780 62
209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file 2012.11.26 1079 61
208   →고생 2012.12.01 731 54
207     →근사한 얘기다. 2012.12.01 684 58
206 취미의 경지 file 2012.08.07 793 46
205 쳇 베이커(Chet Baker) file 2012.06.03 1277 55
204   →쳇 베이커를 만든 사람들 2012.06.04 686 50
203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file 2012.05.20 1032 54
202   →그의 작곡 스타일 2012.05.22 949 55
201   →다섯 가지 2012.05.22 702 49
» 찰리 크리스쳔(Charlie Christian) file 2012.05.06 906 51
199   →새로운 창조 2012.05.06 742 55
198   →와우! 2012.05.06 738 49
197 장고 라인하트(Django Reinhardt) file 2012.04.29 1018 50
196   →글 넘 잘 쓰셨는데요 2012.04.30 775 50
195   →모두다 아주 좋은 말 2012.04.30 787 42
194 윈튼 마살리스(Wynton Marsalis) file 2012.04.18 883 56
193   →싫고 좋은 문제 2012.04.30 727 5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3 Nex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