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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라인하트(Django Reinhardt)

posted Apr 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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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ango_small.jpg

 


기타를 잘 치기는 어렵다.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로 익히기는 쉬운 악기지만, 남을 감탄시킬 정도로 연주하자면 오히려 관악기보다 까다롭다. 장점이 많은 악기이긴 해도 음색이 다채롭지는 않아서,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연주를 창안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남들이 열 손가락을 가지고도 못하는 일을 여덟 개의 손가락으로 해낸 연주자가 있다. 미국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쟁고우 라인하트’라고 발음하고, 그가 살던 프랑스에서는 ‘좡고 레나-르트’라고 한다.

그는 열여덟 살 때 화재로 한쪽 다리와 두 손가락을 못 쓰게 되었다. 불구가 된 것은 왼손의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 기타에서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두 개의 손가락이었다. 여덟 손가락이 성하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검지와 약지 두 손가락만으로 연주를 해야 했던 셈이다. 그의 연주를 듣노라면 두 손가락만 사용한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그저 기타를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승리 드라마의 주인공 자격이 있었을 텐데, 라인하트가 이룩한 성과는 재즈의 흐름을 아예 바꿔버린 것이었다.

값싼 기타의 보급이 블루스를 낳았다고 할 정도로, 블루스에서는 기타가 언제나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관악기가 발전을 주도한 재즈에서 기타는 그저 높낮이를 갖춘 타악기처럼 취급되었다. 그나마 초기 딕시랜드 재즈에서 밴조와 더불어 사용되던 기타는 스윙 시대에는 거의 퇴출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이때 혜성과 같이 나타난 사람이 집시 태생인 장고 라인하트였다. 그는 집시 음악 특유의 유럽적 서정성을 재즈라는 언어로 번역했다. 애당초 재즈는 미국으로 건너온 아프리카 음악과 유럽 음악의 만남을 통해 탄생했다. 그러나 그 만남은 어디까지나 미국 땅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라인하트는 재즈의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첫 유럽인이 되었다.

1910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라인하트는 어려서부터 바이올린, 밴조, 기타에 재능을 보였다. 선술집에서 부모들과 함께 밴조와 기타를 연주하던 그는 1928년 화재사고를 당했다. 의사는 그가 다시는 기타를 칠 수 없을 거라고 했고, 다리의 절단을 권했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 다 거역했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음악을 향한 용기를 불러일으킨 것은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조 베누티(Giuseppi Venuti),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에디 랭(Eddie Lang) 등이 연주하던 재즈였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은 유명 재즈 연주자들을 유럽으로 데려다 주었다. 특히 파리는 상당 기간 동안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콜맨 홉킨스 등의 활동무대가 되어 주었다. 이들이 뿌린 씨앗에서 자라난 프랑스의 재즈는 이제 막 가장 특이한 열매 하나를 맺으려 하고 있었다. 라인하트는 스물한 살이 되던 1931년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그라펠리(Stéphane Grappelli) 등과 함께 ‘프랑스 핫 클럽 오중주단(Quintette du Hot Club de France)’을 결성하고 전 유럽에서 공연을 가졌다. 이른바 ‘집시 스윙’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었다.

라인하트의 연주는 집시의 슬픔과 낭만, 선율 중심의 유럽적 전통, 그리고 스윙의 경쾌한 세련미를 동시에 구현한다. 박자에서 벗어나는 프레이징, 유려한 옥타브 주법, ‘터미널 비브라토’라는 고유의 테크닉 등이 그의 독특한 자산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손가락 두 개를 잃어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에는 너클볼을 던지는 데 방해가 된다고 넷째 손가락을 스스로 잘라버리는 엽기적인 투수 조상구가 등장한다. 라인하트의 장애는 자해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의 연주가 독특하다는 사실과 그가 왼손의 제약 속에서 뭔가를 이루어야 했다는 사실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누구든, 무엇이든, 잃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법인지도 모르겠다.

라인하트의 명곡들 중에는 콜맨 호킨스 등 관악기 연주자들과의 협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기타와 관악기의 대등한 협주를 위해서는 역시 전자기타 연주자의 등장을 기다려야 했다. 라인하트의 연주가 가장 돋보이는 것은 현악 오중주에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1937년 녹음된 <In a Sentimental Mood>다. 이 곡의 다른 어떤 버전보다 품격이 높은 연주라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크적인 도입부도 멋있고, 그라펠리가 연주하는 바이올린과의 역할분담도 황금비율을 이루고 있다. 들을 때마다 놀라는 것은 라인하트가 그 시절에, 아무런 정식 교육도 받지 않고, 두 개의 손가락으로 그려내는 멜로디의 유려함이다. 특히 그가 본능에 의지해 짚어내는 경과음의 현대적인 느낌이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는 집시를 대규모로 살육했다. 그러나 파리에 머물던 라인하트는 용케 나치의 희생자가 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1946년 미국으로 건너가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특별 게스트로 활동했고, 카네기 홀에서 연주하는 영예도 누렸다. 그러나 그가 미국에서 받은 각광은 그가 장래의 연주자들에게 미친 영향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1년 후 파리로 돌아온 라인하트는 집시의 생활방식으로 되돌아갔다. 그것은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이었다. 그는 출연을 약속한 연주회에 나타나지 않고 해변을 거닐기도 했다.

그는 글을 읽고 쓰는 법도 어른이 되어서야 배우기 시작했고, 악보를 읽거나 쓸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Minor Swing>, <Daphne>, <Belleville>, <Djangology>, <Swing ‘42>, <Nuages> 등과 같은 스탠더드 곡을 작곡했다. 1953년 어느날 파리의 클럽에서 연주를 마치고 길을 걷던 라인하트는 쓰러져 뇌진탕을 일으켰고, 그 이튿날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라인하트는 생전에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연주를 담은 앨범은 대부분 사후에 만들어진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1949년의 <Djangology>만 하더라도, 어느 이탈리아의 재즈 팬이 나이트클럽 세션을 녹음한 것이었다. 이 앨범에 관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음질은 그다지 칭찬 받을만한 것이 못 되지만... 스피커 저편에서 당시 유럽 땅에 깔려 있었던 공기 같은 것이 직접 연결되어 온 방을 가득 채운다”고 썼다. 멋진 감상 태도이긴 한데, 그래도 깔끔하게 녹음된 앨범이 드물다는 사실은 여전히 아쉽다.

대중은 비교적 최근에야 그의 음악을 “재발견”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유명세를 타기 전에도, 재즈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연주자들을 거론하면서 그의 이름을 피해갈 도리는 없었다. 그는 재즈의 진화 과정에서 그리 흔치 않은 결정적 돌연변이들 중 하나였다. 재즈의 가장 큰 특징은 즉흥연주에 있다. 하지만 자유로운 즉흥연주의 전통은 모든 민속음악의 특질이기도 하다. 라인하트는 즉흥연주에 관대한 집시음악의 전통을 재즈와 이어주었다. 만약 라인하트 같은 중매쟁이들이 있었다면 세계 도처의 민속음악이 좀 더 일찍이 재즈에 녹아들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가 두 손가락으로 창안한 양식(idiom)은 재즈의 세계에 새로운 언어를 더해 주었고, 그 이후의 모든 연주자들이 그것을 사용해 전보다 더 많은 감정과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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