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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튼 마살리스(Wynton Marsalis)

posted Apr 1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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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생인 윈튼 마살리스는 재즈의 고향인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났다. 그는 재즈와 클래식 연주자이자, 작곡가이고, 뉴욕 링컨센터의 아트 디렉터다. 그러나 이러한 직함들은 오늘날 재즈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역할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그는 스윙 시절의 댄스홀이나 비밥 시절의 나이트클럽을 알지 못하는 세대, 재즈를 어렵고 괴팍한 음악으로 생각하는 현대의 세계인에게 재즈를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많은 팬과 많은 적을 동시에 만들었다.
  
그의 가족은 명실공히 재즈 패밀리다. 그의 아버지 엘리스(Ellis) 마살리스는 음악 교수이자 재즈 피아니스트이고, 그의 형제 브랜포드(Branford), 델피보(Delfeavo), 제이슨(Jason)은 각각 섹소폰, 트롬본, 드럼에서 한 가닥씩 하는 연주자들이다. 예전 시대의 거장들처럼, 윈튼도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드러냈다. 여덟 살에는 교회에서 재즈를 연주했고, 열네 살에는 뉴올리언즈 필하모닉과도 공연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다양한 밴드와 함께 재즈와 클래식, 심지어 펑크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술과 마약의 함정에 빠져 자신을 망가뜨렸던 과거의 거장들과는 달리, 그는 고등학교를 3.98의 우수한 평점으로 졸업하고 줄리어드 음대로 진학했다.
  
1980년 아트 블래키(Art Blakey)의 밴드인 “The Jazz Messengers”에 합류한 열아홉 살 청년은 사라 본(Sarah Vaughan),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해리 에디슨(Harry Sweets Edison), 소니 롤린즈(Sonny Rollins), 허비 핸콕(Herbie Hancock) 등 수많은 현대의 대가들과 함께 공연하며 그들의 유산을 전수받았다. 이것은 흡사, 청년들이 전부 도시로 떠나고 한 명만 남은 농촌에서 인근 마을의 어르신들이 모여 농사에 각별한 재능을 보이는 젊은이에게 자신들이 평생 익힌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는 것과도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공동작업이었다.
  
1995년 PBS TV는 마살리스가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함께 교육하는 “Marsalis On Music” 시리즈를 방송했고, 같은 해 NPR 라디오도 그가 출연하는 반년짜리 시리즈 “Making the Music”을 내보냈다. 그는 재즈에 관한 다섯 권의 책도 집필했다. 이는 그가 21세기 지구인에게 재즈를 가르치고 설명하는 교육자의 길에 들어섰음을 의미했다. 그는 아트 디렉터로 일하면서 링컨 센터를 현대 재즈의 새로운 메카로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재즈의 연습과 녹음과 방송과 공연이 수시로 이루어진다.
  
전통주의자인 마살리스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그가 60년대 후반 이후의 아방가드와 퓨전을 진정한 재즈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즈의 역사와 이론에 관한 그의 설명이 자상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은, 그가 재즈를 특정한 시기의 음악으로 한정하여 정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누구도 허락한 적이 없는 권한을 행사한 셈이었다. 예컨대 그는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가 70년대부터는 재즈를 “떠났다”고 생각하는데, 1986년에는 밴쿠버에서 데이비스의 공연장을 찾아갔다가 데이비스로부터 “꺼지라”는 심한 소리도 들어야 했다. 키스 자렛(Keith Jarrett)은 마살리스를 “의미를 담을 줄 모르는 재능”이라고 평하고 “재주 있는 고교생” 같다고까지 폄하했다. 만일 재즈의 근본이 성장과 혁신에 있다고 본다면, 특정 시기의 재즈를 반복하는 것은 재즈의 흉내일 뿐, 정작 재즈의 정신은 배척하는 것이 된다.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것이 재즈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면, 마살리스는 재즈를 마치 박물관의 유물처럼 설명함으로써 이미 죽어버린 음악으로 취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혁신을 추구하는 음악인들을 존경하고, 그중 여러 명은 좋아하기도 한다. 하지만 재즈의 변신에 모든 것을 바친 그 누구도 재즈를 자신만의 전유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 어떤 음악도 대중의 버림을 받으면 결국 잊혀진 음악이 되고 만다. 음악은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는 예술이지 종교재판이나 교리논쟁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재즈의 시장을 넓힌 마살리스의 공로는 비난보다는 감사를 받아야 마땅하겠다.
  
전위적인 연주와 난삽한 비평이 난무하는 현대 재즈에 주눅들고, 상처받고, 소외된 청중들은 그의 따뜻한 안내에 의지해 오늘도 재즈라는 대양으로 항해를 떠난다. 1995년 타임(Time)지는 그를 표지 인물로 다루었고, 1997년에 그는 재즈 오라토리오 <Blood on the Fields>를 작곡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로써 그는 지금껏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마지막 재즈 연주자이자, 퓰리처상을 수상한 첫 재즈 연주자가 되었다. 그는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30여개국을 여행하며 연주했고, 그의 음반은 5백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나는 그의 1991년 앨범 <Marsalis Standard Time - Volume 2: Intimacy Calling>을 즐겨 듣는다. 고도로 훈련된 그의 기량과 절제는 놀랍고, 대가들의 스탠더드를 깔끔하게 현대화한 이 앨범을 나는 명반으로 꼽고 싶다. 짓궂게도, 그가 구사하는 연주의 현대적인 느낌은 마일즈 데이비스가 구현한 현대성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살리스가 마약에 쩔어 요절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그의 연주가 클래식처럼 너무 깔끔해서 “영혼이 없는” 연주로 느껴진다면, 누구든 그의 연주를 듣지 않을 무한한 자유를 누리면 된다. 그러나 재즈를 정신으로 설명하는 대신 음악적 체계로 설명해 줄 사람, 그런 해석에 기초해서 연주하는 유명 연주자가 한 명쯤 있다는 것은 역시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차피 딕시랜드에서 프리재즈까지, 모든 것을 담고도 남을 만큼 재즈의 바다는 넓고 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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