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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 굿맨(Benny Goodman)

posted Apr 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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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밴드를 좋아한다. 특이하고 유머러스한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흐트러지지 않고 절도 있는 연주를 한다는 사실이다. 장기하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이 “딱딱 맞는 연주”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딱딱”이라는 대목을 힘주어 말하며 그는 손날로 아래를 내리치는 시늉을 했다.) 물론 장기하 밴드가 세상에서 가장 절도 있는 연주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가 그 사실을 콕 집어냈다는 점은 괴팍함에 가려진 그의 음악의 중요한 일면을 말해준다. 아마추어 밴드라도 해 본 사람은 안다. 여러 사람이 한 몸처럼 “딱딱” 맞추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재즈는 태생부터 자유로운 즉흥연주 중심의 음악이라서 빅밴드의 틀에 가두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자유로운 모던 재즈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빅밴드의 연주를 폄훼하는 경향마저 있다. 하지만 빅밴드의 스윙 음악이 없었다면 재즈는 전성기를 가져본 적이 없는 음악이 되었을 것이다. 주류음악의 자리에 서본 적이 없었다면, 재즈는 사라지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최소한 지금보다 훨씬 빈약하고 기괴한 음악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마치 유년기에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어른처럼.

한때, 재즈는 베니 굿맨(Benny Goodman)이라는 인간 그 자체였다. 재즈가 곧 스윙을 의미하던 시절에 그는 명실공히 “King of Swing”이었으니까. 그 시절은 재즈가 가장 세련되었던 시절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가장 많은 청중을 보유했던 시절이었다. 수많은 빅밴드가 명멸하는 와중에 그가 제왕의 칭호를 얻은 비결 중 하나가 바로 “딱딱 맞는” 연주였다. 그는 뛰어난 실력과 까칠한 리더쉽으로 십수 명의 단원을 통솔해 완벽한 팀웍을 일구어냈다. 무서운 선생님이 조는 학생을 잡아내듯이, 그는 자신이 원하는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단원이 있으면 그를 한참동안 무섭게 쏘아보곤 했다. 단원들은 굿맨의 그런 눈초리를 “the ray”라고 불렀다. 눈에서 광선이 쏟아져 나온다는 뜻이다. 그가 교수님(The Professor)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베니 굿맨 밴드는 다른 유수한 빅밴드와 비교해 보더라도 연주의 규율이라는 면에서는 단연 발군이었다. 그는 재즈의 역사에서 유일하게 밴드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전히 통제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휘자였던 셈이다. 굿맨 밴드가 구현한 극강의 스윙감은 여러 명의 연주자가 클래식 오케스트라만큼이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한 몸처럼 강약의 타이밍을 조절한 데서 나왔다. 그 결과물은 단원들의 재능의 산술적 합계를 넘어서는 화학적 상승작용이었고, 독특한 개성을 지닌 빅밴드였으며, 몸치조차 절로 꿈틀대게 만드는 스윙,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기와 명성이었다. 베니 굿맨은 1931년부터 1953년까지 무려 164곡을 챠트에 진입시켰다. 산술적으로 평균하면 23년간 7.1곡을 매년 히트시킨 셈이다. 베니 굿맨 밴드는 재즈의 가장 쾌락주의적인 현신이었다.

1909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베니 굿맨은 러시아에서 온 가난한 유태인 가정의 아홉째였다. 아홉 살부터 유대교 회당에서 클라리넷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어려서부터 재능을 드러냈고, 시카고에 활동하던 뉴올리언즈 출신 연주자들의 실력을 어깨너머로 익혔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전업 밴드의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을 시작했고, 열여섯살에는 시카고 일류 밴드이던 벤 폴락(Ben Pollack) 오케스트라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대에 접어들자 굿맨은 뉴욕으로 활동무대를 옮겨, 젊고 재능 있는 세션 연주자로서 여러 유명 연주자의 녹음에 참여했고, 1934년부터 NBC 라디오 프로그램이던 “Let's Dance”의 밴드에서 일하게 되었다. 매주 연주할 편곡이 필요했던 그가 평생 음악 동지가 될 아틀란타 출신 편곡자 플레쳐 헨더슨(Fletcher Henderson)을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유태인답다고 해도 좋을까. 베니 굿맨은 뛰어난 사업가이기도 했다. 1929년 대공황의 여파로 플레쳐 헨더슨 밴드가 경영난에 시달리자, 굿맨은 헨더슨의 모든 저작권을 구입하고 헨더슨 밴드의 흑인 연주자들을 고용했다. (후일 핸더슨은 자신의 밴드를 해체하고 굿맨의 전업 편곡자로 일했다.) 그리하여 베니 굿맨 밴드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흑백 연주자 혼성 밴드가 되었다. 굿맨은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인종차별의 벽을 허무는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굿맨의 음악은 큰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1935년 무렵에 이르러서는 그 역시 운영난을 면하기 어려웠고, 실의에 빠져 밴드를 해산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스윙 시대의 꽃이 피어난 것은 그런 상황 속에서였다. 그것은 극적인 사건이었다. 굿맨 밴드가 전국 투어를 하다가 오클랜드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연주하던 극장은 평소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광란의 춤판이 되었다. 놀란 것은 연주자들 자신이었다. 그들이 뉴욕의 늦은 밤시간 라디오 프로그램 “Let's Dance”에서 연주할 때 그 음악에 열광하던 서부의 젊은이들이 드디어 자신들의 우상을 만난 것이었다. 서부지역의 시간대는 동부보다 늦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LA에서는 뜨거운 반응 속에서 3주간이나 공연을 했다. 후에 “Jitterbug”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역동적인 춤이 여기서 생겨났다.

그 후 굿맨 밴드는 시카고에서 연주하며 라디오 스타로 인기를 굳혔고, <If I Could Be With You>, <Stompin' At The Savoy>, <Goody, Goody> 같은 곡들을 전국적으로 유행시켰다. 굿맨은 할리우드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King of Swing”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리고 마침내 1938년, 베니 굿맨 밴드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열었다. 카네기홀에서 재즈를 공연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굿맨 자신도 적잖이 긴장했다. 이 공연은 그때까지 술집과 나이트클럽의 음악이던 재즈를 마침내 “존경해도 좋은” 음악의 반열에 올리는 사건이었다. 평론가 프리드월드는 이 공연을 가리켜, “굿맨과 그의 단원 15명이 치밀하고 대담하게 미국산 밀수품을 유럽의 고급문화 속으로 들여왔다”고 평했다.

카네기 홀에서 굿맨 밴드는 오프닝으로 <Don't Be That Way> 등 세 곡을 연주한 다음, 예전의 딕시랜드 재즈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후일의 히트곡들을 연주했다. 그때까지 존재해 왔던 역사상의 모든 재즈 선배들을 대표해서 그 자리에서 섰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는 듯이. 내가 <Carnegie Hall Jazz Concert>에서 가장 즐겨 듣는 곡은 <Sing, Sing, Sing>이다. 불세출의 드러머 진 크루파(Gene Krupa)의 드럼 도입부가 시작되면 아무리 우울한 날에도 가슴 속 먹구름은 어디론가 떠밀려 사라지기 시작한다. 연주의 말미에 자신감을 찾은 굿맨은 곡의 전개가 마무리된 뒤에도 여러 멤버에게 즉흥연주 기회를 주며 곡을 연장한다. 거기에는 스윙 밴드가 뜨겁게 달궈진 상태에서 발휘하는 최고의 기량이 녹아 있다.

77세이던 198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베니 굿맨은 음악을 놓지 않았다. 그는 40년대 후반부터는 비밥 연주도 시도했고, 클래식 연주자로서도 활동했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그를 스윙의 제왕으로 기억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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