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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달 재즈(Modal Jazz)

posted Oct 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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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달 재즈(Modal Jazz)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Kind of Blue> CD를 틀어놓고 소파에 기대어 앉아서 듣노라면 가슴에 물파스를 바른 것처럼 서늘한 느낌이 엄습해 온다. 왜일까?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라서 그럴 것이고, 데이비스가 차가운 음색으로 펼치는 절제된 연주 탓이겠다. 그 외에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이 음반은 이른바 모달 재즈(Modal Jazz)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였다. ‘모드’라는 음악적 수단이 그렇게 차분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모드에 대해서 소개를 해볼까 한다.

음악은 시대에 따라서, 지역색에 따라서, 또는 그 밖의 온갖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음악을 분류하는 한 가지의 특이한 방식은 그것이 선율에 치우친 것이냐 또는 화성(화음)에 치우친 것이냐로 구분하는 것이다. 자, 여기 여러 개의 음표들이 있다. 그걸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놓으면 음악의 재료가 된다. 다만, 그것을 어떤 간격으로 늘어놓을 것이냐에 따라 곡의 분위기는 완연히 달라진다.

첫 번째 방식은 (피아노 건반을) 한꺼번에 눌렀을 때 어울리는 소리를 내는 음들을 골라내서 그것으로 곡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영어로는 토날리티(tonality)라고 부르고, 이렇게 만든 음악을 토널 뮤직(tonal music)이라고 부른다. 여러 개의 음표가 모여 이루는 화음은 코드(chord)라고 부른다. 코드는 그 나름의 독특한 논리를 지닌다. 그 논리를 벗어나게 되면 어색한 느낌이 든다. 논리를 따라 코드가 바뀌는 것을 진행(pregression)이라고 부른다. 코드의 종류는 무수히 많은데, 중요하게는 ‘도’에서 시작하는 장조(major)와 ‘라’에서 시작하는 단조(minor)가 있다. E 음을 ‘도’로 삼아서 시작하면 E메이져, G를 ‘라’로 삼아 시작하면 G마이너가 된다. 각각의 코드를 기준으로 논리적으로 진행되는 음들을 한 줄로 가지런히 세워둔 것을 음계, 또는 스케일(scale)이라고 부른다.

스케일은 그 자체로 화성을 이루는 건 아니지만, ‘화음(코드)의 진행’이라는 독특한 논리에 부합하는 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논리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스케일은 장조와 단조로 나뉠 뿐 아니라, 펜타토닉(Pentatonic), 블루스(Blues), 헥사토닉(Hexatonic), 크로마틱(Chromatic), 하모닉(Harmonic), 멜로딕(Melodic) 등의 여러 종류가 있다. 음계를 이루는 음들이 살짝살짝 반 칸 또는 한 칸씩 움직일 뿐인데도 각각의 음계가 풍기는 분위기는 절묘하게 달라진다. 왜 이렇게 잡설이 긴 것이냐고?

모드(mode)라는 것도 한 줄로 주욱 늘어선 음표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드는 우리 말로 선법이라고 부른다. 한 자리에 놓고 마구 섞어두면 음계(스케일)과 선법(모드)은 구별해 내기가 쉽지 않다. 모드를 스케일의 일종이라고 설명하는 무책임한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토널 뮤직을 구성하는 음계가 코드의 진행이라는 논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모달 뮤직을 구성하는 선법은 화음의 논리를 철저하게 무시한다. 모달 뮤직에는 선율의 진행이 있을 뿐이다. 서구음악의 모드의 종류에는 이오니안(Ionian), 도리안(Dorian), 프리지안(Phrygian), 리디안(Lydian), 믹소리디안(Mixolydian), 에올리안(Aeolian), 로크리안(Locrian) 등이 있다. (참고로, 스케일에서는 3도, 5도, 7도 간격의 음이 애용되지만, 모드에서는 2도, 4도 간격의 음이 자주 사용된다.)

선법에 따라 만들어진 모달 뮤직은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음악 속에서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왜 하필 전통음악이냐 하면, 선율을 강조하는 음악은 아무래도 반주가 중시되지 않는 음악(주로 노래)일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러 악기가 합주를 하기 시작하면 악기들이 내는 여러 소리들이 화음을 이루게 되고, 그러면 화성의 논리를 무시하기 어렵게 된다. 토널 뮤직이 되는 것이다.

모드에 관한 예를 들면, 중세 유럽 교회에서 부르던 무반주 단선율 음악인 그레고리안 성가는 그레고리안 선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타를 집어 들고 그레고리안 성가의 반주를 한번 해 보시라. 코드를 전혀 바꿀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게 될 것이다. <한 오백년> 같은 우리 노래도 마찬가지다. 중동에서 하루에 다섯 번 씩 기도시간에 울려퍼지는 ‘쌀라’의 선율도 그렇고, 오카리나의 구성음을 빼닮은 오키나와의 전통음악도 그렇고, 하모닉 마이너 스케일과 살짝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인도의 전통음악도 그렇다.

1940년대 재즈에서는 콜맨 호킨즈(Coleman Hawkins)가 낳고 찰리 파커(Charlie Parker)가 키운 비밥(Bebop)이 대세였다. 비밥은 복잡한 스케일과 빠른 코드의 진행을 특징으로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화려한 변화의 극치였던 셈이다. 비밥 시절에 연주활동을 하고 있던 마일즈 데이비스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그가 자신의 음색에 맞추어 단조로우면서도 품격 있는 음악을 모색한 결과가 바로 모달 재즈이고, 앞서 말한 <Kind of Blue>는 그 시제품이다. 이 앨범에 실려 있는 <So What>은 자타가 공인하는 모달 재즈의 대표곡이다. 데이비스 이후로는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이 <A Love Supreme>으로,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이 <Maiden Voyage>로 모달 재즈가 다다를 수 있는 높은 경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콜트레인은 섹소폰을 선(禪)의 경지로 승화시킨 ‘구도자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자, 이제 내가 마일즈 데이비스를 들으며 가슴이 서늘해 지는 이유가 설명된 셈이다. 누운 사람을 앉히고, 앉은 사람을 일으키고, 일어선 사람의 몸이 리듬을 타게 만들던 비밥과는 달리, 화성의 현란한 변화가 없는 모달 재즈를 듣다 보면 넥타이를 절로 풀게 되고, 곧추 앉았던 몸을 등받이에 기대게 된다. 음표들이 자리를 조금씩 바꿈으로써 마술과도 같은 조화를 부리는 셈이다. 몽환적인 경건함을 담은 그레고리안 성가라든지, 깊은 슬픔을 노래했던 낯선 나라의 민요들과 계통을 같이 하는 ‘선법’이 곡을 이끌어가는 음악, 그것이 모달 재즈다. 긴 말 필요 없이, 지금 바로 <So What>을 한 번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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