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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재즈

posted Mar 2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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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재즈를 생음악으로 감상할 곳을, 나는 세 곳밖에 알지 못한다. 우선 압구정동이다. 원스인어블루문(Once In A Blue Moon)이 제법 오랫동안 영업중이고, 그 밖에도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알 수 없는 재즈 클럽들이 몇 개 있다. 이곳의 특징은, 일껏 찾아갔다가 재즈가 아닌 음악을 듣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1976년에 이태원에 문을 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 클럽, 올댓재즈(All That Jazz)다. 이곳은 ‘커버 차지(cover charge)’라고 부르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음료수를 한 잔씩 받는, 서양식 재즈 바이고, 언제나 양질의 연주자와 재즈를 들을 수 있으며, 그것을 원하는 손님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음악 감상을 방해하는 취객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설이 열악하고 자리가 좁아서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는 점은 못내 아쉽다. 내가 즐겨 찾는 곳은 홍대 앞이다.

홍대 앞에는 데 솔라(de Sola)(구 워터콕Watercock)나 클럽 에반즈(Club Evans)처럼 훌륭한 재즈 클럽이 있는데, 사실 이 클럽들도 얼마나 오래 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인정하기 가슴 아프지만, 재즈는 어제의 음악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1998-2001년간 뉴욕에서 근무하면서 매일 출퇴근길에 즐겨 듣던 FM 재즈 채널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도 경험해 보았다. 재즈의 본고장에서도 그러하거늘, K-pop이 아닌 음악은 방송을 타기도 어려운 우리나라에서 생음악 재즈 클럽이 오래 가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 ‘걸 그룹’이 선도하는 한류 열풍의 눈부신 성공 뒤에는 좋게 말하면 ‘선택과 집중’이요, 속되게 말하면 ‘몰빵’에 익숙한 한국의 대중문화 자본과, 음악적 다양성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박탈당한 한국의 대중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왕년의 ‘쎄씨봉’ 통기타 가수들에게 중장년층이 그토록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그들이 평소에 무엇을 잃고 있었는지를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널찍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좋아서 내가 애착을 가지고 찾는 홍대 앞 재즈 클럽은 문글로우(Moon Glow)다. 이곳의 주인은 한국 재즈 1세대에 속하는 피아니스트 신관웅 씨다. 연륜이 깊은 연주자가 직접 운영하는 덕분에 영원히 갈 것만 같던 문글로우도 재즈의 사양길을 피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2011년초, 신관웅 사장은 경영난으로 클럽의 문을 닫겠다고 선언했다. 이 소식이 언론 보도와 트위터 등을 통해 알려지자 단골손님들과 재즈계는 깜짝 놀라 ‘문사모’라는 후원회를 결성하고 모금에 나섰고, 사정을 들은 건물주도 월세를 동결해줬다고 한다. 그 덕분에 문글로우는 일단 영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문글로우는 여느 클럽과는 좀 다르다. 스스로가 한국 1세대 재즈 연주자에 속하는 신관웅 사장은 매주 목요일마다 1세대 연주자들의 공연을 열어 온 덕분에, 이곳은 척박한 토양 속에서 한국 재즈의 명맥을 지켜왔던 1세대 연주자들의 사랑방 구실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주를 여러 차례 들어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세련된 맛은 적지만, 이 땅에서 팬 층도 그리 두텁지 못한 재즈를 한 평생 가꾸고 다듬어 온 노익장의 연륜을 느낄 수 있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연상시킨다고 할까. 1946년생인 신관웅 사장이 막내 격인 문글로우의 1세대 팀은 홍덕표(1930-2007, 트롬본), 최세진(1931-2008, 드럼), 강대관(1933, 트럼펫), 이동기(1936, 클라리넷), 김수열(1941, 색소폰)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쇼맨쉽이 뛰어나 트롬본의 슬라이드를 발로 연주하며 장난기를 발산하던 이 팀의 좌장 홍덕표 씨가 2007년 4월에 별세했다. 국방경비대 군악대에 입대해서 트롬본을 박격포처럼 짊어지고 신의주까지 진격했던 6.25 참전용사. 미8군 악단, 이봉조 악단, TBC 악단, KBS 악단 등 여러 밴드에서 활약했던 노 연주가가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던 무대가 바로 홍대 앞 문글로우였다.

1931년생인 드러머 최세진 씨도 2008년 77세의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 생전에 ‘한국 최초의 재즈 드러머’이자 ‘한국의 최고령 재즈 드러머’였던 그는 어린 시절 클라리넷을 불다가 ‘폐가 좋지 않아서’ 드럼을 시작했다. 1947년에 열여섯의 나이로 가수 김정구 씨에게 발탁돼 프로로 데뷔한 그는 홍콩에서 16년간 눌러앉아 살면서 재즈 악단을 창단한 적도 있었다. 라디오로 미8군 방송을 들으면서 재즈 드럼을 배운 한국 소년은 그곳에서 셀로니어스 몽크와도 잼 세션을 가지는 프로페셔널로 성장했던 것이다. 76년 홍콩 영주권을 버리고 영구귀국한 이래 한국 재즈의 융성을 꿈꾸며 후진 양성에 힘쓰던 그가 매주 한 번씩 섰던 무대도 문글로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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