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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posted Nov 2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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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ieHoliday_small.jpg

 

■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열아홉 살 이래 절친하게 지내온 내 친구 C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다. 얼마 전 술잔을 함께 기울이던 C가 불쑥 나에게 말했다.
  “옛날에 내가 블루스는 어디가 좋은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네가 그건 내가 고생을 안하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말했었잖냐.”
  “내가 그런 소리를 했었어?”
  “응. 가끔씩 생각해 봤는데, 내가 블루스를 안 좋아하는 건 정말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그런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스무살 무렵에 했던 말인 모양인데, 그런 얘기를 몇 년씩이나 곱씹어봤다니 참으로 미안한 노릇이다. 아마 나로서는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거나, 잘난 체하고 싶어서 반사적으로 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난들 무슨 대단한 고생을 알고 자랐나? 부지불식간에 친구에게 모진 지적을 했던 셈이다. 미학적인 평가에 관한 한 나는 내 느낌보다 C의 ‘촉’을 훨씬 더 신뢰한다. ‘블루스는 고난을 알아야 사랑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도식적인 이야기는 아무나 주워 섬길 수 있다. 어린 시절의 나도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되풀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C가 몇 년 동안 되새겨보고 내린 결론이 그렇다면, 그건 그런 거다. 블루스에는 분명 음표들로 표현되지 않는 뭔가가 들어있다. 유머러스하고 체념적인 분위기가 깃들어 있기는 하지만, 우리 식으로 굳이 설명하자면 그것은 마치 한(恨)과 비슷한 그 무엇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즈 역사상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꼽히는 빌리 홀리데이는 블루스 가수라고 해도 좋다. 아니, 그렇게 불러야 마땅하다. 홀리데이는 1915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집에서 쫓겨난 열세 살의 미혼모였다. 홀리데이는 볼티모어에 사는 어린 이모 집에 맡겨져, 이모의 계모가 그녀를 키웠다. 홀리데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20대 초반의 어머니와 함께 일을 했고, 열한 살 때는 이웃집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소년원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열두 살의 홀리데이는 모친과 함께 성매매로 돈을 벌었고 그러다가 체포되어 두 번이나 감옥에도 갔다.

그녀가 엘리노라 해리스라는 본명을 버리고 빌리 홀리데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고른 것은 감옥에서였다. 빌리 더브(Billie Dove)는 그녀가 좋아하던 여배우였고, 클라렌스 홀리데이(Clarence Holiday)는 그녀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있는 사내의 이름이었다. 감옥에서 나온 열네 살의 소녀를 구원한 것은 음악이었다. 클럽을 전전하며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녀는 점차 명성을 얻게 된다. 열일곱 살에는 할렘의 클럽에 전속가수로 데뷔했고, 그녀의 노래를 들은 유명 제작자 존 해먼드(John Hammond)가 그녀와 베니 굿맨(Benny Goodman)이 함께 연주하는 음반을 제작했다. 빌리 홀리데이의 인생역정을 살펴보면 그녀의 목소리에서 구구절절한 사연이 느껴지지 않을 도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홀리데이는 자신의 불행을, 빼앗긴 어린시절을, 억울한 고통을, 노래로 승화시켰다. 그녀의 재즈에 블루스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그래서다.

빌리 홀리데이는 한 소절만 들으면 냉큼 그녀의 노래인지 알 수 있는 특이한 목소리와 창법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목소리를 재즈 악기처럼 사용했고, 그녀의 노래를 음표로 정확히 옮기기란 불가능했다. 모든 위대한 재즈 연주자들이 그랬듯이, 홀리데이는 창의적인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이후의 음악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노래를 부른다는 행위의 의미에 관해서 전과는 다른 느낌을 가지기 마련이었다. 비록 악보를 쓰거나 읽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몇몇 노래를 작곡하거나 편곡하기도 했고, <God Bless the Child>, <Don't Explain>, <Lady Sings the Blues> 같은 곡들은 불멸의 스탠더드가 되었다.

빌리 홀리데이는 피아니스트 테디 윌슨(Teddy Wilson)과 함께 연주하며 많은 재즈 명곡들을 탄생시켰고, 섹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Lester Young)과도 깊은 음악적 교분을 나누었다. 홀리데이에게 ‘Lady Day’라는 별명을 선사한 것이 레스터 영이었고, 영에게 ‘Prez’라는 별명을 선사한 사람이 홀리데이였다. 1937-38년간 그녀는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와도 함께 공연을 했다. 칙 웹 밴드의 엘라 피츠제럴드와 라이벌이자 친구가 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그러나 빌리 홀리데이는 나긋나긋한 연예인은 아니었다. ‘태도문제’ 때문에 카운트 베이스 밴드에서 해고당한 홀리데이는 1938년 아티 쇼(Artie Shaw) 밴드의 유일한 흑인 멤버로 활동했다. 그해 겨울, 흑인은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는 공연장 규정에 반발하며 밴드를 그만둘 때까지.

홀리데이는 언제나 가난에 쪼들렸다. 가난이 그녀를 떠나려 하자, 그녀는 가난을 다시 곁으로 불러들였다. 유명 밴드와 공연을 하면서부터 홀리데이는 일주일에 1천불 이상을 벌었지만 그 대부분을 헤로인 구입에 탕진했다. 그녀의 메니저였던 조 글레이저(Joe Glaser)가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1947년 5월, 홀리데이는 뉴욕의 아파트에서 마약소지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홀리데이는 탈진상태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치료를 받은 후에 감옥에 수감되었다. 성매매 혐의로 모친과 함께 수감되었던 때로부터 불과 10년 후의 일이었지만, 이제 홀리데이는 몸 파는 흑인 소녀가 아니라 전국적인 스타였다. 얄궂게도, 1947년은 홀리데이가 가수로서는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1948년 모범수로 석방된 홀리데이는 주저하던 끝에 카네기홀에서 재기공연을 가졌다. 공연은 2700매의 티켓이 예매되는 기록적인 성황을 이루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던가. 40년대 후반이 되자 관객과 평론가들은 홀리데이의 변함없는 스타일에 식상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공연들은 여전히 성공적이었지만, 라디오에서는 점점 더 홀리데이의 노래를 듣기 어려워졌다. 어지러운 그녀의 사생활에도 팬들은 염증을 느꼈다. 5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홀리데이는 마약을 끊지 못했고, 거친 사내들과 짧은 애정관계를 이어가며 건강을 해쳤다. 목소리는 윤기를 잃고 갈라졌다. 나는 1958년에 발매된 앨범 <Lady in Satin>을 즐겨 듣는다. 이 무렵의 빌리 홀리데이는 40년대와 같은 화려한 기교는 잃었지만, 지치고, 상처받고, 그래서 더 절실한 아픔을 노래한다.

1959년 홀리데이는 간경화 진단을 받았는데도 술을 끊지 못하다가 병상에 들고,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그녀의 병상으로 경찰이 들이닥쳐 마약소지 혐의로 체포영장을 제시했고, 그해 여름을 넘기지 못한 그녀가 폐수종 증상으로 숨을 거두기 몇 시간 전까지도 경찰이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대스타 홀리데이의 사망 직후 그녀의 통장 잔고는 딸랑 70센트였다. 빌리 홀리데이는 행복해지고자 몸부림치며 살았지만 행복해지는 법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 홀리데이의 노래에는 그녀의 고통이 살아서 꿈틀대고, 그 노래를 듣는 어느 누구도 그 고통을 외면할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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