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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6-17 Pulau Putri

posted Dec 2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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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천 섬(thousand islands)'이라고 하면, 오대호 중 Ontario 호수에서 발원하여 미국과 카나다의 접경지역을 흐르는 Saint Lawrence 강 위의 섬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연 365일간 수면 위에 있는 육지를 기준으로 세었을 때 섬의 개수는 1,865개에 이른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뉴욕주에 속하는 이 섬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작은 섬에서부터 제법 큰 섬들에 이르기까지 평방 100km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촘촘한 육지의 송이송이로 장식하고 있어 관광지로 인기가 높다.

    이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인도네시아에도 ‘천 섬’이 있다. 자카르타 북쪽 해안 바깥으로 50km에서 100km 정도 구간에 펼쳐져 있는 128개의 산호초 섬들을 이곳에서는 Pulau(섬) Seribu(천)라고 부른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는 아름답다. 도시의 앞바다는 내륙에서는 볼 수 없는 특유한 활력을 시민들의 삶에 제공해 준다. 그러나, 불행히도, 자카르타의 앞바다는 그 오염 정도가 인천이나 부산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삶이 아직 각박한 곳에서, 깨끗한 놀이공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의 광활한 국토를 생각하면, 자카르타에서의 생활은 믿기 어려울 만큼 갑갑하다. 자카르타의 생활을 때로 폐소공포적(claustrophobic)으로까지 만들곤 하는 이 갑갑함의 책임은 아마도 도심을 벗어나기 좋아하는 나와, 벗어남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자카르타가 나누어 져야 할 것이다. 자카르타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은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 가히 내가 여지껏 겪어본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교통정체다. 자동차가 없는 새벽이라면 한 시간 거리에 불과한 자카르타 근교의 산으로 주말에 여행을 떠났던 선배 한 분은 토요일 이른 아침에 자동차 속에 세 시간 반 동안 갇혀 있다가 절반도 못가고 돌이켜 귀가한 경험이 있다.

    둘째, 자동차가 적다손 치더라도 반둥, 보고르 등 인근 대도시를 넘어서면 뚝 끊어지다시피 하는 고속도로망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자카르타 수도권은 고대적 도로망 속의 섬과도 같다. 당초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국토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 실감나게 상상해보고 싶은 분들께, 서부 자바 일주를 권한다.

    셋째, 치안의 불안이다. 혹시 오해가 없도록 덧붙이는데, 나는 인도네시아가 강도떼나 산적이 들끓는 무법천지의 나라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자바인들은 허례허식이라고 할 정도로 예의와 체면치레와 겸손과 온유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법 집행기관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곳에서, 사람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만날 각오를 더 자주, 더 진지하게 해야만 한다. 자바 북부도로를 따라 산길로 수라바야에 다녀오던 동료 한 명은 저녁무렵 인적 드문 산길에서 몇몇 사내들이 차를 가로막았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고 했다. 산림벌목인부들인 이 사내들은 통행세 삼아 푼돈을 요구하더라고 한다. 아마도, 이런 사내들의 기분이 늘 좋은 것은 아닐 터이고, 지나다니는 여행객들이 (내 동료처럼) 더 큰 돈을 수월하게 뜯기지 않을 만큼 강단 있어 보이기만 하는 것도 아닐 터이다.

    이런 사정을 접하고 보면, 유럽의 고대로부터 중세로의 진입은 종교, 사회, 문화, 인종 그 어떤 다른 요소보다도 로마 세계의 치안질서가 무너졌다는 점이 그 방향을 크게 결정지었는지도 모른다. 내해(mare nostrum)라고 불리웠던 과거가 무색할 만큼 해적이 들끓게 된 지중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던 긍지는 간 곳 없이 도적들이 출몰하고 돌보는 이 없어진 도로망은 동맥경화처럼, 한 지방에서 다른 지방으로 옮겨지는 상품과 사람과 정보의 양을 급격히 줄이고, 도시들을 '거점'이 아닌 '섬'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섬이 되어버린 도시에서 제각기 왕 노릇을 하는 영주가 봉건적 질서를 이루는 것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곁길로 샜지만, 결론은 자카르타에서의 생활이 - 골프에 탐닉하지 않는다면 - 무척 따분하다는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Pulau Seribu의 존재는 빛난다. 굳이 외국여행을 떠나듯 비행기를 타고 족자나 발리, 롬복 등까지 가지 않더라도 깨끗한 바다와 수려한 자연, 인도네시아의 때 묻지 않은 본모습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이 작고 귀여운 섬들은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크기가 고만고만한 Pulau Seribu의 섬들은 평균적으로 해안을 따라 섬을 한바퀴 도는 시간이 불과 20-30분 소요될 정도로 작은 크기들이고, 산호초에 둘러싸여 있다. 그 이름에 크게 못미치는 이 섬들의 숫자는 아쉽게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UNESCO의 연구에 따르면, 이 보석같은 섬들은 육지로부터의 오염, 지구온난화에 따른 강우 주기의 변화, 섬의 개발에 따른 오염 침전물 증가 및 해안선 침식, 불법어로행위(폭발물 또는 독극물 사용) 등으로 점점 크기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고, 1901년부터 1982년 사이에 실제로 아홉 개의 섬이 지도상에서 지워졌다고 한다. 쯧쯧. 귀하고 아쉬운 것들은 뭐든 닳고 작아지고 사라진다.

http://www.unesco.org/csi/act/jakarta/pulau.htm

    산호초(coral reef)는 사람의 눈에는 그냥 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아서 움직이는 환경체계(eco-system)이고, 물의 과영양화와 같은 오염 앞에서 연약하다. 기 소르망이 그의 저서 "진보와 그 적들"에서 잘 지적한 대로, 환경을 지키는 일이 목전에서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마도 위험한 허위의식이겠지만,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실은, 경제와 환경이 서로를 더 잘 지키고 키울 수 있는 선순환의 상태에 이를 정도까지 경제를 빨리 키우는 것이 환경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길이다. 대체로 못 사는 나라들에서 환경은 더 빠르고 철저하게 파괴된다.

    자그마한 산호초 위에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행위도 환경친화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우리 식구들의 Pulau Seribu 여행도 아마 섬들의 고생 위에 한 톨 무게를 더하는 일이었겠지만, 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심중에 있는 무거운 것들을 많이 씻어내려 주었다.

    12월 16일 주말을 이용해서 동료 한 가정과 함께 Pulau Seribu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중 하나라는 Putri 섬을 이틀 코스로 찾아갔다. 뿌뜨리는 인도네시아 말로 "공주"라는 뜻이다. 우리는 자카르타 북부의 항구인 Ancol Marina에서 이른 아침에 만나, 조금은 비좁고, 선풍기 하나 쯤은 달려있었으면 더 좋을 것 같은 배를 탔다. 30여명의 현지인 주말여행객들과 함께.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바다는 잔잔했다. 한 시간 반쯤 물살을 가르던 배가 뿌뜨리 섬의 조그만 선착장에 옆구리를 댔을 때, '쿵'하는 작은 진동이 모터의 소음과 답답한 선실의 공기에 취해 비몽사몽을 헤매던 우리를 깨웠다. 바다의 푸른 얼굴은 한가지 색깔이 아니다. 특히 산호초에서 바라보는 섬의 해안은 옅은 옥색과 청색과 녹색이 잘 어우러진 푸르름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도시인의 회색빛 가슴속을 채색해 준다.

    섬의 규모를 감안할 때, 생각보다 제법 격식을 갖춘 호텔의 프론트에서 방갈로를 배정받아, 역시 생각보다 제법 깔끔한 방 두 개짜리 독채 가옥에 짐을 풀었다. 늦은 아침 뙤약볕이 좀 마음에 걸렸지만 저녁 다섯시 이후에는 낚시배가 없다고 해서 차라리 아침나절에 낚시를 하기로 했다.

    4인용 모터보트를 타고 나갔던 조과(釣果)는 보잘 것 없긴 했어도, 빈손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내 욕심의 크기를 드러내는 큰 낚시바늘 덕분에 나는 현지인 보트기사보다 훨씬 적은 수의 고기만을 낚아올렸다. 바다낚시를 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물고기도 밥시간이 따로 있다. 대체로 때를 가리지 않고 작은 바늘에 덤비는 고기들은, 작고 부지런해서 밥상에 올리기 약간 아쉬운 크기의 것들이다. 그래도, 개중 큰 우럭(중국 말로는 석반어, 아랍어로는 하무르) 한 마리는 내가 낚았다. 양동이를 반쯤 채운 이 생선들을, 호텔에서는 저녁식사때 큰 접시 가득 튀겨주었다.

    가도 가도 무릎 깊이인 해변의 나무그늘 아래 앉아 물장구를 치다가 머리 위를 문득 쳐다보니, 말로만 듣던 코모도 도마뱀 한 마리가 배부른 표범같은 자세로 나뭇가지 위에서 오수를 즐기다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지구상에 인도네시아의 코모도 섬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현존하는 파충류 중에 가장 큰 공룡의 자손을 나는 이렇게 만나보았다.

    다 자라면 길이가 3미터 이상이 되는 덩지로 멧돼지를 즐겨 잡아먹고 간혹 산에서 내려와 어린아이를 반찬으로 삼기도 한다는 이 녀석을 예상지 못한 곳에서 만나고 아연 긴장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 섬에는 최소한 서너마리의 코모도 도마뱀들이 강아지처럼 돌아다니며 뿌뜨리의 객식구로 살아가고 있었다. 사진기를 들이대자 좌우로 뒤뚱거리며 도망가는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 사람들한테 치인 모양인지, 아니면 길이 들었다고 해야 할지... (파충류도 길이 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영화 킹콩에 확대판으로 소개되었던 이 괴물을 실물로 만나보니 과연 그 자태가 장엄하긴 했다.

    코모도 왕도마뱀은 그 외모가 웅변으로 말해주듯이, 진화의 곁길을 묘하게 돌아서 오늘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한 신기한 생물이다. 화산과 지진이 난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의 멸종기를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강산성 바다도 헤엄쳐 건널 수 있었던 그 피부 덕분이라고 한다. 15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체구를 가지고도 시속 50킬로미터 정도의 최고속도를 낼 수 있는 이 녀석의 침은 세균과 여러 종류의 효소로 이루어진 독액이어서, 한 번 물린 먹잇감은 도망 다니다가 결국 폐사하고 만다고 한다. 이 도마뱀은 먹이를 씹을 때 자신의 잇몸을 함께 씹어 박테리아가 번성하기 좋은 구강구조와 환경을 유지한다고 한다. 이런 생물과의 조우는, 오래 전에 잊혀진 고대와의 만남이라고 가히 과장할 만 한 것이었다.

    오리발과 물안경과 빨대로 무장하고 스노클링을 하면서 들여다 본 물속은 더없이 깨끗했다. 원래는 자카르타 항구도 이런 모습이었을 텐데. 살 익는 줄 모르고 바다 위를 떠다니다 보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 오후에는 낮잠을 잤다. 낮잠이 꿀처럼 달았던 것은 이른 아침부터 햇볕 아래 돌아다닌 피로 탓이었을 수도 있고, 파도를 겁내어 귀 뒤에 붙인 멀미약 때문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 이유가 뭐였든지간에, 열대의 섬과 파도와 나무그늘. 여기에 낮잠이 빠질 수는 없다. 순대에 당면이 빠질 수 없듯이.

    눈 비비고 일어난 저물녘에 유람선에 올라 섬과 섬 사이를 돌아보며 구경한 자바海의 일몰은 이번 주말여행의 절정이었다. 서녁을 유화물감처럼, 아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불꽃처럼 물들이던 석양은 스러지고 난 뒤에도 가슴을 먹먹하게 적셨다. 그림으로 그린다면, 저 붉은 빛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선상에 더러 앉고 더러 선 승객들은 다들 말이 없었다.

    저녁 식사시간에는 야외 식당의 무대 위에서 6인조 밴드가 공연을 했다. 놀라운 것은, 여성 리드 싱어는 낮에 유니폼을 입고 접시를 나르던 웨이트레스였고, 기타리스트는 유람선 보조기사, 하는 식으로 1인 2역들을 하고 있는 알찬 멤버들의 공연이었다는 점이다. 무대 위에서 현란한 몸짓과 빼어난 가창력으로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모습에서 낮 시간의 종업원의 얼굴을 찾아보기란 어려웠다. 그 밴드의 모습에서는 그저 무대에 익숙한 프로들의 태도에 뭔가 더해진 어떤 느낌, 조금은 숙달되고 조금은 피로한,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그런 냄새가 났다. 밤마다 羽化하지만 登仙하지 않고 해가 뜨면 애벌래로 돌아가는 이상한 나비들처럼.

    이튿날 오전을 다시 바다에서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수월하지 않았다. 뿌뜨리가 상징하는 휴식과 결별하기 싫은 마음 절반, 이 뙤약볕에서 벗어나 집 안의 욕조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은 마음 절반. 돌아오는 뱃길은 어제에 비해 두배나 길게 느껴졌고, 실제로 두배는 더 무더웠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처럼, 휴가로부터의 귀가길은 늘 가파르다. 일상으로 돌아오려는 마음, 우리는 그것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그것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새총의 고무줄을 있는 힘껏 뒤로 잡아당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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