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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음식의 지방색

posted Mar 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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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일본을 가리켜 ‘섬나라’라고 부른다. 그것이 버젓한 사실이므로, 일본인 스스로도 일본의 이러저러한 특징을 섬나라이기 때문에 생겨난 습관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본은 그냥 섬나라라고 불러 버리기에는 좀 너무 넓다. 일본의 면적은 약 38만 평방킬로미터로, 남한의 네 배에 가까운 넓이이고, 남북한을 합친 면적의 1.7배에 해당한다. 동남아시아에서도 일본보다 영토가 큰 나라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정도뿐이다. 나는 2011년 여름, 자동차를 몰고 도쿄에서 하코다테(函館)까지 여행을 다녀왔다. 도쿄 이남의 관서지방은 다음을 위해 남겨두었고, 하코다테 이북의 홋카이도는 너무 멀어 포기했다. 그런데도 도쿄와 하코다테 사이의 직선거리 695km에 달한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의 직선거리보다 먼 거리인 것이다. 이어령 선생도 명저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일본인의 의식 속에 자신의 나라가 섬나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세계 지도가 보급되고 서구 문명과 접촉한 이후에 보편화된 이미지일 것이다. 일본인의 특성을 ‘섬나라 근성’이라는 말로 표현한 최초의 사람은 메이지 유신 후 유럽을 순유하고 돌아온 구메 구니다케라고 한다. 그것도 오늘날과 같이 쩨쩨하고 작다는 뜻을 지닌 섬나라 근성이 아니라 넓은 바다로 나가는 넓은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실은 일본이 좁은 나라, 바다에 둘러싸인 섬나라라고 감각적으로 느껴질 만큼 그 땅덩어리가 작은 것이 아니다. 대륙에 접해 있다고는 하나 세계 3위의 산악국이며, 좁은 분지의 한국보다 더 널찍한 공간, 소위 지평선이 보이는 곤센겐야와 무사시노의 들을 가진 나라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의 눈에 일본인의 행동이 쩨쩨하고 속 좁아 보인다면 그것은 일본이 섬나라라는 사실 이외의 어딘가에서 비롯되는 특징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인은 치밀하고, 자세하고, 세밀하고, 응축되고, 작은 것을 사랑한다. 그리고 일본인의 그런 특징은 그들의 음식에서 더없이 잘 드러난다. 아니, 내 일본인 친구의 말처럼 요리라는 행위 자체가 주어진 행동반경과 재료가 뚜렷이 제한된 행위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그처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면서 집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 요리의 뚜렷한 특색 중 한 가지는 지방색이 강하다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43개의 도도부현(都道府県)으로 나뉘어 있는데, 저마다 특색이 분명한 음식과 특산물을 자랑한다. 아마도 섬나라라는 명칭이 연상시키는 고정관념보다는 넓은 나라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겠는데, 음식의 지방색에 대한 일본인의 사랑과 자랑은 일본열도의 넓이보다 훨씬 더 크고 깊어 보인다. 특산물이 없다면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는 식의 집착이 엿보일 정도다.


일본의 국토가 작지만은 않다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반대로 43개 도도부현이 그토록 서로 차별화될 정도로까지 넓은 것은 아니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현민성(県民性)’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토치키(栃木)현 사람들은 소박하고 성실하며, 이바라키(茨城)현 사람들은 고집이 세고, 군마(群馬)현 사람들은 성미가 급하고, 야마나시(山梨)현 사람들은 억척스럽고, 니이가타(新潟)현 사람들은 참을성이 강하고, 토야마(富山)현 사람들은 근면하고, 후쿠이(福井)현 사람들은 인정이 많고, 시즈오카(静岡)현 사람들은 실험정신이 강하다는 등등.


어쩌면 일본인들은 큰 것은 덜 크게 나누고, 덜 큰 것은 작게, 작은 것은 더 작게 분류를 하고 거기에 분명한 특징과 이름을 부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미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치밀하고, 세밀하고, 자세한’ 일본 음식의 특성은 공간적으로 보자면 지역마다 특징이 뚜렷하다는 데서도 드러나는 측면이 있다.


일본의 역사나 지역감정이 그러하듯, 일본의 요리도 관서와 관동이 가장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만, 이웃하는 도도부현 사이에서도 차이점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그것도 바쁜 업무에 메여있는 처지에 모든 지방의 음식을 맛보는 사치를 경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사유로 방문해 본 지방의 음식을 가급적 많이 소개하려 한다. 일본 음식의 전국적 풍모가 일본의 전모를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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