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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시부야구(渋谷区) 아후리(阿夫り)

posted Jan 0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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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오래된 식당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음식 맛은 오래된 식당이라야 맛있는 건 아니다. 도쿄 중심부인 에비스(恵比寿)역 근처에는 2003년에 개업하여 8년이 넘도록 뜨거운 인기를 모으고 있는 아후리(阿夫り)라는 가게가 있다. 이 가게의 간판 스타는 유자맛 소금국물 라면, 즉 유즈시오멘(柚子塩麺)이다.

그러니까 이 가게도 묵직한 전통의 맛으로 승부하기보다는 창의적인 실험으로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라면을 개발해 낸 신세대 라면집이다. 그러나 아후리의 유자 라면이 전통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미미한 정도에 불과하고, 이 가게가 일구어 낸 맛의 성과는 찬란하다.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하면 라면에 유자 향기를 접목시킬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일까? 우선 그 왕성한 탐구심에 갈채를 보내고 싶다.

전날의 과로로 뒷목이 뻣뻣하던 토요일 오전, 집 안에 누워서 뒹굴라고 속삭이는 나의 게으름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심정으로 운동화를 꺾어 신고 밖으로 나왔다. 아후리의 소문을 듣고 언제 한 번 찾아가야지 미루고 있던 터였다. 에비스 역 근처에서 아이폰의 지도를 보면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도쿄에서 맛있는 식당을 찾기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열두 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줄지어 선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얼마나 멀리서들 온 것일까. 겉으로 봐선 가늠이 되지 않아도 최소한 일부러 여기 찾아와 이렇게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리 넓지 않은 가게는 주방을 중심으로 카운터에만 24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입구에 놓인 자판기를 보니, 간판 요리로 명성이 자자한 유즈시오멘(ゆず塩麺, 850엔) 말고도 시오라멘(塩らーめん, 750엔), 쿠레나이시오멘(紅塩麺, 880엔), 쇼유라멘(醤油らーめん, 750엔), 유즈쇼유멘(ゆず醤油麺, 850엔), 쿠레나이쇼유멘(紅醤油麺, 880엔), 단 맛, 유자 맛, 매운 맛 국물에 찍어 먹는 츠케멘(つけ麺)도 몇 종류가 있다. 볼 것 없이 일단 유즈 시오멘을 주문했다. 차례가 되니 황금빛 투명한 국물 속에 약간 얇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국수가 담겨 나왔다.

라면 위를 장식하고 있는 계란 반숙의 노른자는 절묘한 상태까지 익어 있었다. 그보다 특이한 것은 절인 돼지고기인 챠슈였다. 가만 보니 가게 한 쪽에서는 담당 점원이 계속해서 돼지고기를 한 장씩 숯불에 굽고 있었다. 숯불 구이로 기름기는 빼고 그을린 풍미는 더한 챠슈의 맛도 훌륭했다. 이 가게에서 사용하는 물은 카나가와현(神奈川県) 오오야마의 아후리산(阿夫利山) 기슭에서 나오는 향이 좋은 우물물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게 이름이 아후리다.) 산뜻한 맛을 자랑하는 다른 시오라멘 처럼, 아후리의 유자 라면의 국물도 닭고기를 우려낸 맛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유자 시오라멘은 라면 한 그릇 먹자고 멀리까지 온 보람을 충분히 주었다.

나중에 유자 쇼유라멘도 먹어보았는데 그 또한 훌륭했다. 하지만 역시 누군가에게 한 가지만 권한다면 소문대로 유자 시오라멘 쪽이다. 국물은 기름기가 조금 덜한 단레이(淡麗)와 닭기름을 살짝 더 넣은 마로아지(まろ味)가 선택사양이다. (마로아지는 짐작컨대 부드러운 맛이라는 뜻의 마로야카나 아지를 뜻하는 것 같다.) 그 두 가지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으니, 어느 쪽이든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문하면 그만이다.

영양 과잉의 시대라고 할 수도 있는 현대에는 돈코츠 라면이 어딘가 좀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평소에 하던 터였다. 그런데 아후리의 시오라멘처럼 깔끔하고 담백한 맛의 라면이라면 가히 라면의 신세대를 이끌 선두주자의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아후리의 주소는 동경도 시부야구 에비스 1-1-7(東京都渋谷区恵比寿1-1-7)다. 연중무휴고 오전 11시부터 새벽까지 영업을 하지만 예약은 받지 않는다. 가서 즐거운 마음으로 줄을 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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