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lcome Page
    • drawing
    • photos
    • cinema
    • essay
    • poems
    • music
    • toons
    • books
    • mail

요츠야(四谷) 스시쇼(すし匠)

posted Nov 05, 20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sushisho3.jpg

 

sushisho4.jpg

 


스시(すし)는 젓갈과 조카와 삼촌 사이 정도의 혈연관계를 갖는 음식이다. 스시를 寿司라고 쓰는 것은 한자를 이두처럼 음으로 읽는 표기법이다. 뜻으로 쓸 때는 鮨, 또는 鮓 라는 글자를 사용하는데, 둘 다 물고기로 만든 젓갈을 뜻한다. (오사카를 포함한 관서지방에서는 鮓 자를 쓰는 경우가 많다.) 젓갈의 기원은 동남아시아 지방이다. 태국이나 베트남, 라오스 같은 나라에서는 지금도 생선 젓갈이 중요한 요리 재료로 사용된다.

발명의 모친은 필요라고 했던가. 더운 지방에서는 자연히 생선처럼 잘 상하는 단백질 공급원을 오래 보관하는 일이 큰 숙제가 된다. 어패류를 염장해서 찌거나 삶은 곡물과 함께 보관하면 곡물이 발효하면서 분비되는 시큼한 유산균이 생선의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해 부패를 막는다. 메조를 가자미와 함께 염장하는 우리 전통음식 가자미 식해에 이런 요리방식은 잘 남아 있다. 일본에서도 초창기의 나레즈시(熟寿司)는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인 날생선을 밥과 함께 나무상자에 넣고 그 위에 무거운 돌을 며칠간 올려놓아 먹기 알맞게 발효시킨 다음 밥은 버리고 생선만 먹는 것이었다고 한다. 비와호(琵琶湖) 주변의 오오미(近江) 지방에서는 요즘도 붕어를 밥에 절이는 나레즈시 방식으로, 천년 전통을 자랑한다는 후나즈지(鮒寿司)를 만들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으로부터 타이, 라오스로 이어지는 지역의 원주민과 보르네오 화전민들은 요즘도 이와 비슷한 전통음식을 먹는다. 중국에서도 남송 시대에는 육류, 어류, 야채, 심지어 곤충을 초밥으로 만들어 먹었다는 설이 있다. 알고 보면, 일본 고유의 음식으로 알려진 스시에도 남의 것을 들여와 개량하는 일본인 특유의 재능이 십분 발휘된 셈이다. 유독 일본에서만 생선절임이 지금의 스시와 같은 형태로 발전한 데는 두 가지 배경이 작용했던 것 같다. 중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1200백년 동안이나 대다수 사람들이 육식을 삼갔기 때문에 생선의 중요성이 그만큼 컸다는 점. 그리고 남아시아와는 달리 자포니카라는 쌀로 만든 차진 밥을 즐겨 먹었다는 점이다.

무로마치(室町)시대인 16세기 이후에야 식초의 양조법이 진보하면서 맛이 좋은 식초로 밥과 생선의 발효 시간을 줄이는 스시가 등장했다. 상자에 생선과 밥을 넣고 돌로 누른다 하여 오시즈시(押し寿司)라고도 부르는 관서 지방의 상자초밥(箱すし)은 이렇게 탄생했다. 지금과 같이 손으로 쥐어서 초밥을 만드는 니기리즈시(握り寿司)는 지금의 도쿄인 에도 지방의 발명품이다. 에도 앞바다의 수산물을 이용한다 해서 에도마에즈시(江戸前寿司)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 니기리즈시는 관동대지진 때문에 폐업한 에도 지방의 스시 요리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전국적 음식으로 탈바꿈 했다고 한다.

값싼 냉동 및 냉장기술이 보급된 1950년대 이후부터 스시는 발효나 숙성이 거의 생략되고 날생선 위주로 변신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 그 이후이다 보니, 스시라고 하면 신선한 날생선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스시는 단순히 식초 뿌린 밥 위에 날생선을 얹어 먹는 음식은 아니다. 스시의 뿌리가 젓갈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서는 왜 전문가들이 지금도 스시를 “만든다(作る)”고 말하지 않고 “담근다(漬ける)”라고 말하는지, 스시 식당의 주방을 왜 “담그는 장소(つけ場)”라고 부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고 보면, 숙성과 발효를 기본으로 여기는 스시와 사시미에 산뜻한 간장이 어울리는 반면 활어를 먹는 개념인 우리식 생선회에 초고추장이 어울리는 것도 자연스럽다. 비록 오늘날의 스시는 젓갈처럼 발효시키는 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숙성과정은 여전히 중시된다. 즉석에서 만드는 음식처럼 변해버린 오늘날의 스시 요리법을 거부하고 전통적인 숙성과정을 고집하는 스시 식당이 신주쿠에 있다.

나카자와 게이지(中澤圭二)씨의 가게 스시쇼(すし匠)는 좌석이 11개밖에 없는 작은 가게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 안내서 ‘자가트 서베이(Zagat Survey)’ 도쿄판에서 전체 1위를 차지한 곳이다. 요츠야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 식당은 예약 손님만 받는다. 월수금에는 점심에만, 화목토에는 저녁에만 영업을 한다. 저녁 식사비는 일인당 무려 2-3만엔을 웃도는데도 날마다 만원사례라고 한다. 가격대가 부담스러워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점심때는 비록 밥그릇 위에 여러가지 재료를 얹은 바라치라시(ばらちらし) 한 종류만이지만 1,500엔에 판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출장 온 후배를 데리고 갔다. 정갈한 카운터 너머로 무려 네 명의 조리사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카운터의 유리진열장 속에는 흰 거즈로 덮인 재료들 옆으로 생선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흔히 보는 희거나 선홍빛 생선이 아니라 하나같이 검붉은 갈색을 띄고 있었다. 생선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열흘 이상씩 숙성을 시키면 그런 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나중에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니, 나카자와씨는 “과거엔 기술이 없어서 생선을 숙성시켰지만, 제가 생선을 숙성시키는 것은 맛을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음식의 맛을 묘사하는 표현 중에는 맵고 짜고 달고 신 맛 외에 “우마미(旨味)”라는 것이 있다. 흔히 우리말로 감칠맛이라고 번역되지만, 별로 감칠맛 나는 번역은 못된다. 저 ‘우마’라는 글자를 자세히 보면 젓갈을 뜻하는 스시(鮨)의 오른쪽 변과 같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유산균이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시켰을 때 나오는 글루타민산의 오묘한 맛이 바로 우마미에 해당한다. 우마미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할 기회가 잇겠지만, 나카자와씨가 말하는 ‘맛’이란 아마도 그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지 싶다. 스시쇼에 관한 조선일보의 기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카자와씨가 생선을 숙성시키는 기간은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생선에 따라 다르다. 참치는 큰 덩어리로 다듬어 서늘한 곳에서 열흘 정도 숙성시킨다. 고등어, 전어 따위 등푸른 생선은 소금에 절여 식초로 씻는다. 광어 같은 흰살생선은 다시마로 감싸 수분을 제거하고 감칠맛을 증가시킨다. 소금과 쌀을 섞은 용액(시오코지)에 담가두기도 한다. 그는 생선 숙성을 극한(極限)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나카자와씨가 냉장고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쿰쿰한 냄새가 퍼졌다. ‘시오코지(쌀과 소금을 섞은 용액)에 다섯 달 숙성시킨 참치입니다. 3년 숙성시킬 계획입니다.’”

우선 맥주 한 잔으로 입맛을 돋우며 기다리고 있자니, 유일한 점심 메뉴인 바라치라시가 등장했다. 밥 그릇 위로 생선이 솟아나올 만큼 그득히 들어 있는 보통의 치라시즈시와는 딴판이었다. 보석상자를 열어본 느낌이랄까. 작은 크기로 썰어 놓은 은빛 물고기 절임, 구운 붕장어, 찐 전복, 성게알, 표고버섯, 부친 계란 조각 등의 재료 위로 연어알이 점점이 뿌려져 있었다. 이 집의 본격적인 니기리즈시를 맛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바라치라시즈시를 장식하고 있는 생선에서도 범상치 않은 깊은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곁들여 나온 재첩국도 일품이었다.

먹어보고 나니, 스시쇼의 월수금 점심 메뉴는 장사라기보다는 일종의 팬서비스 같은 봉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식당을 이렇게 소개하는 것은 주인장의 뜻에는 별로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스시쇼의 연락처는 03-3351-6387이고, 주소는 동경도 신주쿠구 요츠야 1-11(東京都新宿区四谷1-11)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