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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일본

posted Dec 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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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전, 성게알젓 얘기를 쓰면서도 예상 못했던 일이지만, 어쨋든 일본으로 왔다. 성게알젓의 나라로. 이웃나라를 잘 모르면서 국제관계를 말한다는 게 늘 좀 부담스럽게 생각되던 터였는데, 이제야 이웃을 배울 기회를 얻었다. 와보고 나서야 충격적으로 깨달은 점이 있다. 일본을 좀 아는 축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 일본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낯익고 친숙하기도 하지만,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낯설고 이국적이기도 하다는 점.

유럽, 북미, 중동, 동남아 등지에서 최소 2년 이상씩 생활해봤지만, 사람 사는 모습들은 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이 더 많았다. 피부색이 다르고 쓰는 말이 달라서 그렇지, 사람들의 행동은 대략 비슷한 범위 안에서 예측가능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한자를 쓰고 말의 구조도 우리와 비슷하지만,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과도 다르게 행동한다. 그들의 생각도 그만큼 다른 건지는 좀 더 살아봐야 알 수 있겠지만.

공자는 오늘날 형식주의자였다고 자주 비판을 받지만, 나는 공자의 사상의 아름다움이 바로 그 형식주의에 있다고 믿는다. 다른 성인들은 인간을 좀 더 나은 존재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설파했다. 해탈이든 구원이든. 따지고 보면, 칼 마르크스도 그랬다. 사바세계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인간이 그런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보기에, 공자는 사람을 바꿀 수 없다는 전제 위에 서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런 면에서 아담 스미스는 공자의 후예다!) 인간이 초인이 될 수 없다면, 초인의 경지를 흉내내면 된다. 군자를 흉내내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가 그저 생긴대로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보다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니겠는가. 禮와 樂으로 仁과 義에 수렴할 수 있다는 공자의 사상의 핵심은 거기 있다. 형식주의적이라고? 당연히 형식주의적이지. 위선이라고? 당연히 위선이지. 당신 같으면 위선적으로 점잖은 사람들 틈에서 살고 싶은가, 그렇지 않으면 위악적으로 제멋대로인 사람들과 섞여 살고 싶은가?

그런 면에서 (그리고 단지 그런 면에서만) 어쩌면 일본은 공자의 사상을 가장 충실하게 체현하고 있는 국민들이 모여 사는 나라인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지키는 예의는 얼마나 철저한지 심지어 처절하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다. 실제로 겪어보니 이들처럼 행동할 수는 도저히 없겠다는 좌절감이 앞선다. 이방인인 나로서는 그런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아마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본에 처음 오는 모든 이방인들이 느낄 법한 스트레스다. 한국인들은 흔히, 일본인의 혼네와 타테마에, 그러니까 본심과 언행이 다르다고 불평한다. 가까운 친구로 사귀는 어려움도 토로한다. 아마도 사실일 가능성이 많은데, 그래도 나는 공자의 실험이라는 관점에서 이 사회를 좀 더 유심히 지켜보려 한다. 배울 점이 많으리라고 믿는다. 혼네와 타테마에가 달라서 곤란함을 느껴야 할 정도로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은 소수일 것이고, 내가 살면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게 전혀 상관없다는 점에서, 나는 지금도 예의를 지키는 일에 큰 가치를 두고싶다. 우리 집에 물건을 배달하러 오는 사람, 내가 어쩌다 접촉사고를 일으킨 상대방 차량의 운전자, 내 주문을 받는 서비스 업종의 종사자, 어쩌다 같은 버스의 승객이 된 사람들. 내가 그런 사람들의 혼네를 알아서 뭐하느냐 말이다. 길에서 슬쩍 부딪혀도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사회, 교통사고가 나면 아직도 큰 목소리로 떼를 쓰는 사람에게 유리한 사회에서 살다 온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아주 중요한 실험이 될 것만 같다.

일본사람들을 관찰하는 내 마음은 이랬다 저랬다 할 것이 틀림없다. 좋아 보이기도 하고, 나빠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결산은 이곳을 떠나면서 해야 할 것이다. 일본사회는 요즘 와서 부쩍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노령화, 경제적 침체, 정치적 지도력의 문제, 국제정치적 전환기의 영향 등등이 원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혹시 일본인들이 일정한 예의범절과 규칙 안에서 생활하면서 야수적 생존의지를 잃어버린 탓도 있는 것이 아닐까? 전국민의 초식계화? 섣부른 의문이지만,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예의바른 사회가 가지는 중요한 결함일 수도 있겠다. 일본이 야수적이었을 때 어떤 이웃이었던가를 돌이켜 보면 다행스러운 면도 있지만.

어쨋든, 당분간은 적지 않은 업무와 씨름하면서 말을 배우느라 만만치 않은 나날들을 지내게 되겠지만, 뭐든 배우는 건 즐거운 일이다. 다양한 종류의, 좋은 품질의 성게알젓을 짬짬이 먹어가면서 잘 들여다 봐야지. 사족으로 몇 가지 인상비평.

1. 이곳에 집을 정해 이사 들어가는 날. 나는 내가 한국인임을 재확인했다. 답답해서 죽을뻔했거든. 9시에 인터넷과 케이블TV 업체, 10시에 이사짐 도착, 11시에 커튼 업체의 작업 순서로 스케줄을 잡았다. 인터넷과 케이블TV를 달아주는 업체의 직원이 오더니만 빠른 손놀림으로 배선을 연결하고 확인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다. 이 직원이 나를 붙들고 두 시간 이상동안 놔주려들지 않았다. 웬 설명이 그리도 많고 질문도 그리 많은지. 그만 하면 됐다는 나를 붙들고 리모콘 사용법까지 다 알려준 다음에야, 그는 설명을 다 들었다는 내 서명을 받고 물러났다. 막 집안으로 들어오는 이삿짐때문에 정신 없어하면서 짜증내는 나한테 그는 어쩌면 그렇게도 집요하고 그렇게도 한결같이 친절한가. 이사짐 업체는 현관부터 이사짐의 모든 통로에다가 널찍한 플라스틱 보호장치를 부착한 다음에야 작업을 시작했다. 짐을 옮기면서는 또 얼마나 조심스러워들 하는지 내가 대충 하라고 재촉했을 정도다. 커튼 업체 직원도 꼼꼼나라 대마왕처럼 커튼을 달기 시작하더니, 침실에 침대가 놓여 있어서 커튼을 못달겠단다. 밟고 올라가서 달면 되잖냐는 멍청한 물음에 똑똑한 대답이 돌아왔다. 남의 침대를 어떻게 밟느냐고. 한참 난처해하던 그는 밖으로 나가더니 깔고 작업할 종이들을 한아름 안고 와서야 그걸 침대에 깔아놓고 작업을 했다. 전구를 달겠다고 온 관리실 직원은 사다리를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면서 사과의 절을 삼백번 쯤 하더니만, 괜찮다고 이걸 쓰라며 아내가 내준 의자를 밟고 올라가 전구를 달고 있었다. 자기가 목에 걸치고 왔던 수건을 발 밑에 가지런히 깔아놓고서. 이튿날, 자동차 보험회사 직원이 회사로 찾아와서는 또다시 두 시간쯤 설명과 질문을 쏟아놓더니,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불법 농지 매매시에나 필요할 법한 분량의 서류에 내 서명을 받고 주소를 쓰고 각각 따로 봉인을 하고 법석을 떨었다. 차분하면서도 친절하게. 이런 일을 두달 내내 겪었다.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으면서는 반나절이 걸렸고, 가져온 달러를 엔화로 바꾸는 데는 달러화를 창구직원에게 건넨 시점부터 이십분이 걸렸다. 10월에는 회사에서 큰 행사가 있었고, 일본 이벤트 업체가 기획을 담당했다. 행사 일주일 전 이들이 가져온 두터운 매뉴얼에는 행사장의 계기별 동선이 도면으로 표시되어 있고 행사 시나리오가 빽빽히 적혀있었다. 당연히 우천시 계획까지. 식당에 가면 웨이터가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이 있는지까지 물어본다. 아이고. 내가 혀를 내둘렀던 영국에서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이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2. 집에 입주해 보니 집주인이 웬 폴더를 한 권 건네준다. 열어보니 설명서 모음이다. 보일러 설명서, 가스렌지 설명서, 냉장고 설명서, 욕조 사용 및 청소 설명서, 다락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설명서, 에어컨 설명서, 집 설비 및 자재 설명서, 변기에 달린 비데 설명서, 환풍기 설명서 기타등등 기타등등. 한 손에 묵직하게 잡히는 두터운 폴더다. 부동산 직원은 이사짐이 들어오기 직전에 집에 오더니 나를 데리고 집을 돌아다니며 못자국이며 마루바닥 흠집, 심지어 다락 위의 얼룩까지 전부 점검하고 그림을 그렇넣더니 내 확인을 받고 갔다. 살면서 흠집을 하나라도 더 만들었다간 보증금에서 깎일 터였다. 그 대신, 예전부터 있던 흠집을 내 탓이라고 집주인이 우기던 예전 어느 임지에서와 같은 경험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거겠지. 어느 쪽 스트레스를 더 싫어할 것인지는 각자의 자유다. 어찌 보면 조삼모사 비슷한 얘기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위험기피형(risk-avoider)과 복불복형(risk-taker)이라고 구별해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어쨋든 그 다음날 저녁, 자전거를 사러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자동차 계약서만큼 서류를 작성하고 도난등록까지 마친 후에야 자전거를 차에 실을 수 있었다.

3. 일본에 주방가구를 납품해본 친구가 동경에 살고 있다. 그는 단언했다. 일본 사람들은 가격에 품질을 맞추는 일에 무능하다고. 가격을 정해놓고 시작해도 항상 과잉품질로 끝이 난단다. 제품 박스에 바코드 스티커가 좀 비뚤게 붙었다고 반품을 시키는 사람들. 1층 주방가구 뒷면에 실수로 잘못 구멍을 뚫었다가 플라스틱으로 막아놨으면, 2층 주방가구에도 똑같이 구멍을 뚫었다가 막으라고 요구하는 사람들. 가구에 쓰는 독일제 경첩이 같은 회사의 같은 제품인데도 독일회사가 시즌별로 금형을 바꾸는 바람에 모양이 미세하게 달라지는데, 그것도 계약위반이라며 따지는 사람들. 서랍을 잡아 뺄 때 바람이 푹 들어가는 소리가 안나면 불량으로 친다는 사람들. 그래도 그런 사람들 덕분에 이곳에 처음 살기 시작한 나는 계속 감탄을 하는 중이다. 휙 내리면 쾅 하고 닫히기 직전에 스르르 속도가 줄어드는 변기뚜껑. 문이 벽에 가서 부딛히지 말라고 바닥에 있는 멈춤쇠가 평소에는 바닥면과 똑같이 쑥 들어가 있다가 문이 가까이 오면 자석으로 튀어나오는 것. 평소에는 손잡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 한 번 눌러줘야 손잡이가 튀어나오는 옷장. 비스듬한 계단 경사 때문에 열 수가 없을 것처럼 생긴 화장실 문이 절반은 바깥으로 절반은 안으로 열리는 광경. 좌악 찢어내면 결을 따라 신나게 찢어지다가 속에 든 제품 직전에서 딱 멈추도록 만들어둔 플라스틱 포장용기. 모르긴 해도, 전쟁중에 폭탄까지 일렬로 줄을 세운 다음에야 쐈을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 게 대단해 보인다는 걸 보면 나는 일본 생활에 맞는 거라고, 내 친구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4. 지난 주말에 애들을 데리고 극장에 갔다. 영화는 시시했고, 일본인들의 완벽주의를 떠올리면 의아할 만큼 의자도 불편했다. (하긴, 완벽주의도 일본 사람들의 장기이지만, 검소하고 소박한 면도 그들의 특징이긴 하다.) 영화가 끝났다. 그리고 나는 질렸다. 엔드 크레딧이 다 끝나고 자막이 Kodak과 DTS 마크를 끝으로 마감될 때까지 극장은 깜깜했고, 일어나서 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화 애호가로서 나도 알고 있다. 문화적으로 앞선 나라일수록 엔드 크레딧을 관심 있게 보는 관객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러나, 미국에서도, 영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극장 안을 끝까지 이렇게 깜깜하게 놔두고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극장을 나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이건 도대체 뭘까. 다들 좋아서 그럴 리는 없는데. 이렇게까지 규칙 순응적인 사람들이라는 존재는 나로선 초면이고, 따라서 좀 난감하다. 이러니 어떻게 내가 일본을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말씀이다.

5. 내가 업무로 비교적 주기적으로 전화를 거는 대상은 대략 서른 개 남짓한 사무실들이다. 이를테면 나의 거래처라고 할 수 있겠다. 비록 아직은 일어가 익숙지 못하지만 전화로 누구를 바꿔달라는 얘기 정도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여보세요. 저는 어디어디의 아무개인데요, 아무개씨 부탁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전화를 받는 상대방은 (그 서른 곳이 예외도 없이) "잠간만 기다리세요" 또는 "바꿔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반드시, 그리고 매우 자연스럽게 "오세와니 나리마스(신세를 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도대체 자기가 나한테 무슨 신세를 지고 있다는 얘긴가. 처음 방문하는 연구소에서 약도를 팩스라도 받을라 치면, 약도 위에는 "평소에도 많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만" 어쩌구 인사말이 써 있다. 일면식도 없는데 평소 신세는 무슨. 이를테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췌사인데, 이걸 흉볼 생각은 없지만 내가 2-3년 안에 이런 걸 따라 하게 될 자신은 별로 없다.

6. 그래서 얘긴데, 공자 얘기를 하면서 글을 시작했지만 공자도 중국 사람인 만큼, 이런 지경까지를 상상했을 리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자의 현대적 샘플은 중국 사람들이 경이롭게도 깨끗한 도시를 이루고 사는 싱가폴에 오히려 가까우려나? 하지만 싱가폴의 질서와 청결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자발성이 아니다. 그곳의 질서는 유가보다는 도리어 법가의 사상을 연상시키지 않던가. 그렇다면 일본 사람들의 예절은 과연 얼마만큼의 자발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일까. 내재적인 획일화의 욕구에 의한 자기규제는 자발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내 경험도 아직 일천할 뿐더러, 여기서부터는 아마도 철학의 영역일 테니까.

7. 나처럼 한일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동경을 방문했다. 동경 시내는 대충 관광한 적이 있다는 그를 데리고, 그가 가본 적이 없다는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봤다. 주말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와 있었고, 입장료가 800엔이나 하는 전시관 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 전시관 안에서는 객관성 따위는 개의치 않겠다는 듯이, 이들만의 가상의 역사가 숨쉬고 있었다. 대동아전쟁의 정당성과 그 영광을 자랑하는 전시물들. 이 사람들과 과연 진정한 협력이 가능할 것인가? 일본이 아시아에서 진정한 이웃나라가 될 수 있는 걸까? 대명천지에, 동경 한복판에 잘 지어지고 정성껏 보존되는 이런 시설이 버젓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일본의 또다른 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 준다. 물론, 야스쿠니로 상징되는 일본의 국수주의적 면모는 일본인구의 작은 일부만을 대표한다. 그 점을 과장해서는 안되겠다. 하지만, 이런 게 여기 이러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8. 조금 아까 집에 오다 보니 저녁식사 자리가 늦게 파해서 마지막 지하철을 간신히 탈 수 있었다. 내 목적지는 전철의 종점인데, 내리면서 보니까 칸칸이 피로에 젖었거나 취해서 잠을 깨지 못하는 승객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그러면 그렇지, 여기라고 연말에 몸을 못가누는 취객 하나 없을 소냐. 안심을 하면서 승강장을 걷다 보니 역무원들이 승객들을 마저 깨우고 있었다. 그러더니만, 여성부터 시작해서 술이 떡이 된 사람들을 휠체어에 옮겨 싣고 역 사무실 쪽으로 모셔가는 게 아닌가. 마치 민방공 대피훈련 시범처럼 현실감을 밑도는 광경. 허락을 받을 수만 있다면 사진이라도 찍어놓고 싶은 진풍경이더라.

9. IT와 지식산업이 주종을 이루는 '세계화 이후의 세계'에서 젊은 창업자가 큰 성공을 거두는 일은 낯설지 않다. 토마스 프리드만이 갈파했듯이, 세계화 시대는 슘페터식의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가 극한에 달하는 시대다. 가차없는 경쟁 속에서 비효율적인 기업은 하루아침에 망해버리는 시대. 그러나 그 대신 다시 일어서기도 쉽고, 성공은 크게 보상받는 시대. 그 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한없이 달려야만 하는 무한경쟁의 시대. 이런 시대에 관심의 촛점이 될만큼 큰 성공을 거두고, 다시 망하는 젊은 기업가의 스토리는 일상사가 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미국에도, 중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고, 한국에도 많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런 얘기를 들어보지 못하고 있다. 한국계로서 큰 성공을 거둔 소프트뱅크의 손정희 사장이 거의 유일한 예이지만 그는 신규진입자도 아니고 젊은이는 더더욱 아니다. 어쩌면 일본인들의 위험기피적 본능이 카지노를 닮아가는 세계화의 성공신화와는 체질적으로도 잘 안맞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인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처럼 보인다. 해 오던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 태도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보수주의일 터이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인은 훨씬 더 '몰빵'과 '올인'에 능한 것 같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K-POP의 열풍도 risk-taking의 체질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십수년간 연예인 훈련에 올인하는 수많은 젊은이들과, 장사가 되는 아이돌 음악에 전념하는 방송사들이 빚어낸 합작품이 최근의 한류가 아니겠는가. 그 덕에 한국의 다른 대중음악은 다 말라죽어가고 있긴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는 이런 식의 위험선호적 태도가 성공의 지름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선 지구 어느 구석에서는 새로운 것을 경멸하면서 해 오던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는 축이다. 그렇다면 여기 오길 잘 한 셈인가?
* 참고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1/19/2011011902357.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3

10. 1월 17일, 조선일보에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일본 최고의 한국학자로 통하는 오코노기 교수는 1.18 퇴임강연을 끝으로 은퇴할 예정이다.  기자가 그에게 "요즘 일본인들 중에는 한국 젊은이들은 활력이 있는데 일본 젊은이들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하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한국 젊은이들은 활력은 있는데 행복하지 않다. 반대로 일본 젊은이들은 활력은 없는데 행복하다고 한다. 사회적 조화에 대한 일본인과 한국인의 감각이 다르다. 일본인은 원칙이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빨간 것, 파란 것, 노란 것,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중간적인 것을 선호한다. 반면 한국은 원색의 사회다. 정치도 극단적 대조를 통해 정권교체를 하지 않나. 치열한 마찰이 한국의 프로세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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