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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2-23 Pelabuhan Ratu

posted Oct 2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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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2-23 A night at a Queen's port

    이슬람 국가에서 외국인으로서 금식월인 라마단을 지내는 것은 늘상 특이한 경험이다. 사회 전체가 한달간 절제와 극기의 훈련 속에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더러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삼을 수도 있고, 더러는 위선의 효용에 대해서 찬반의 견해를 가져볼 수도 있으며, 또는 평소보다 덜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일상에 대해 짜증스런 불만을 느낄 수도 있다. 당신의 생각이 어느 쪽이든 상관 없이, 당신이 외국인이라면 라마단 기간중에는 최소한 겉으로는 이 사회의 관습을 진지하게 대하는 모습을 갖추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과 상관 없이 확실한 것이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라마단과 그에 이은 르바란 기간이 이슬람국가에서의 정착을 시작하기에는 대단히 불편한 시기라는 점이다.

    중동의 이슬람국가에서는 일년에 두 번 거대한 명절을 맞이한다. 한번은 봄철에 메카로 성지순례(하지)를 떠나는 Eid Al Adha라는 일주일간의 휴일이고, 또한번은 가을철 라마단 금식월의 종료를 기념하는 Eid Al Fitr라는, 이 또한 일주일간의 휴일이다. 이 기간중에는 모든 업종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 20년쯤 전 우리나라 추석기간중의 거리풍경을 상상하면 비슷하다고 할까.

    2002년 2월 우리 식구가 오만 공항에 발을 디딘 날이 Eid Al Adha가 시작하는 날이어서 하는 수 없이 일주일간 호텔에서 갇혀 지내는 것으로써 2년간의 체류를 시작한 쓰린 기억이 있더니만, 금년에는 이삿짐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채 인도네시아에서 이 길고 긴 휴일을 맞이하고 말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금식월 종료 휴일을 Idul Fitri 또는 Lebaran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인구밀도가 성긴 중동에서와는 달리 이 기간중에 거대한 규모의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진다. 대도시에서 지방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이 행렬 또한 우리의 추석을 생각하면 될 것이므로 긴 설명은 필요 없겠다. 세계최악의 교통정체로 악명이 높은 자카르타 시내가 일주일간 믿을 수 없을 만치 텅텅 빈다. 문제는, 자카르타의 도로상황(정체 및 운전매너), 치안, 어려운 시내지리(복잡한 일방통행로) 등 때문에 자카르타에 사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현지인 운전기사를 고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들 운전기사들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르바란기간중의 자카르타에는 도시운영의 '필수요원'들과, 일찌감치 발리든 외국이든 적당한 곳으로 휴가를 예약하지 못한 (우리같은!) 외국인들만 남는다. 발이 묶인 서투른 외국인들에게는 이 텅 빈 도로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고통이 선물로 주어진다. 태우고 다녀줄 기사도, 시내에는 갈 곳도 없는 한 주간.

    당초 2주전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이삿짐을 차근차근 풀 시간으로 아껴둔 일주일의 황금연휴건만, 우리 이삿짐을 실은 야속한 중국 국적의 화물선은 끝내 하선기일을 지키지 못하고, 이틀전 싱가폴에 도착했다는 전언만 보내왔다. 이런 우리를 구해준 건, 우리보다 좀 더 이곳에 일찍 도착한 사무실의 선배 동료 세 가정이었다.

    양선배의 차에 묻어타고, 우리 식구는 자바섬의 남쪽에 자리잡은 Pelabuhan Ratu에서의 1박 여행에 따라나섰다. Pelabuhan Ratu는, Sukabumi郡의 남단에 자리잡은 조그만 항구도시다. 얼마나 작은 도시냐 하면, 일단 가장 인기 있는 해외여행 가이드인 “세계를 간다”에 수록되지 않은 곳이다. 인터넷에서도 이곳의 지명이 포함된 지도를 찾기는 쉽지 않다. 자카르타에서 직선거리로 150킬로미터에 불과한 이곳까지 자동차로 오려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은 좁다란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돌아 네시간 남짓 운전을 해야만 한다. 미리 알았더라면 양선배는 운전할 엄두를 아마 못내셨으리라(나는 게을러서 아직 면허증이 없다...) 네 집 식구들중 세사람이 심각한 차멀미에 시달렸다.

    하룻밤 우리가 머물면서 극진한 대접을 받은 댁에 대해서는 아무리 길게 고마움을 표해도 충분치 않겠으나, 그집을 웹상에 이런 여행의 숙박지로 널리 소개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잘 판단이 안 서서 그만두기로 한다. 그냥 잘 먹고, 잘 잤다는 점만 일단.

    Pelabuhan은 항구, Ratu는 여왕이라는 뜻이므로 이 소도시의 이름은 Queen's Port라는 의미가 되겠다. 여기서 여왕이란, 이 지역에서 섬기는 바다의 여신을 뜻한다. 이 지역에서 제일 큰 관광호텔의 308호실은 '여왕'의 사당으로 영구히 배정되어 있다. 정말이다. Lonely Planet이라는 가이드북에는 여신이 녹색을 좋아하므로 여신의 평생 친구 물귀신이 되기 싫거든 바닷가에 초록색 옷을 입고 가지는 말라는 이 동네의 미신까지를 소개하고 있었다.

    바다를 굽어보는 산기슭을 내려가 산책해본 바닷가는, 이 나라의 많은 바닷가가 그러하듯, 용암이 바다로 흘러내려 굳어진 기암괴석의 해변이었다. (여기서도 나는 굳이 태종대를 떠올리지 않으면 안되었던가?) 아마도 르바란 기간중이어서 휴무인 것처럼 보이는 동네 바닷가 노천식당들은 한결같이 "Ikan Bakar"(생선구이) 표지판을 내걸고 있었다.

    기어이 바닷물에 뛰어들어 옷을 적셔버린 아이들을 겨우 수습해서 차에 태우고 Cisolok 시내로 들어가 어시장을 구경했다. 세계 어느 곳을 가건, 어시장은 살아 있는 것과, 살려는 것과, 산다는 것의 그 모든 욕구를 박진감 넘치게 보여준다. 피를 흥건히 내면서 해체되고 있는 거대한 가오리를 바라보면서, 고등학교 2학년때 끄적였던 시 한수를 떠올렸다.

    자갈치에서

    재첩국 사소 재첩국 사소
    영도다리 새벽달이
    해를 두고 내 안에서
    재첩국 사소
    아까모찌 사소
    짤막하게 토막나는 모든 것들
    갯바람이 숨에 차다
    눈을 감는다

    도마 위를 꾸무적대는 어진 목숨들
    시장에서 춤추면
    창자같은 어패류를 내 비로소
    사랑하노라 한다
    숨쉬는 비린내와
    살아있다는 약간의 행복
    바다는 뱃길을 열고
    날더러 눈뜨고 살아라 한다

    먼 새벽
    잠 아닌 잠에서 깰 때
    낯익은 파도가 해를 두고 내 안에서
    재첩국 사소
    아까모찌 사소
    아득하게 불러댄다
    사소
    사소

    시장을 돌아서서 나올 때 눈 마주친 노점상인 앞에 놓인 갈치들이 눈부시게 싱싱했다. 어시장에서 팔고 사는 행위는 살아가는 행위와 맞먹는다.  문득, 시장에 막 접안하는 한 척의 통통배 위로 뛰어올라 낚시하러 나가고 싶다, 저무는 바다로.

    차를 좀 더 몰아 동네 어귀로 접어들면, 현지인들이 Goa Lalay라고 부르는, 동굴이 있다. 전장 3킬로미터 정도에, 사람이 걸어들어갈 수 있는 거리는 45미터 정도 된다는 이 커다란 동굴은 그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입주자들 때문에 유명하다. 건기에는 동쪽으로, 우기에는 서쪽으로 해저물기 직전 일정한 시간이 되면 먹이를 찾아 일제히 동굴 밖으로 나서는 약 10억마리의 박쥐들이 그 주인공이다.

    박쥐를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동굴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어서 별 기대 없이 도착한 그곳에서 구경한 것은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정확히 가이드가 예견한 대로 4시 45분이 되자 동굴 안에서 뭔가가 퍼드덕대더니 하늘을 까맣게 덮는 박쥐떼들이 한시간 가까이 쏟아져 나왔다. 그저 쏟아져 나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동굴 밖으로 나온 박쥐떼들은 파도처럼 바람을 타면서 5미터 남짓한 폭으로 열을 지어 동편 하늘 저 어딘가의 일정한 소실점을 향해 날아갔다. 일정한 폭으로 끝없이 짙게 타오르는 연기처럼.

    합리적이게도, 이 마을 사람들은 해충들을 박멸해주다시피 하고 있는 이곳의 박쥐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넋을 놓고 하늘을 덮은 박쥐떼를 바라보고 있자니, 저만치서 매 세 마리가 나타나 박쥐들의 대열을 흩으면서 먹이를 사냥하고 있었다. 박쥐떼의 코밑에서 천적의 눈길을 피한 모기 몇 마리가 내 다리를 물고 있었다. 무방비 상태로, 나는 갑자기 내 주변을 둘러싼 먹이사슬이 짙고 굵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입을 벌리고 위를 쳐다보며 박쥐를 구경하던 우리 중 몇 명은, 출격에 앞서 몸을 가볍게 하려는 박쥐들의 분비물 세례를 받았다. 나와 내 사진기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게 때맞춰 내리는 빗방울인줄만 알았던 걸 보면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와서 도회지 촌놈 행세를 톡톡히 한 셈이다. (에퉤퉤-)

    여담이지만, 이 박쥐동굴로 중국인들이 간혹 찾아온다고 한다. 와서 박쥐똥을 한가득 수거해 간다고... 직접 보진 못했으니 요즘도 그런 일을 하는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적어도 예전엔 그렇게 했었던 모양이다. 왜냐고? 박쥐 배설물을 물에 잘 풀어서 걸러내면 박쥐의 속에서 흡수가 되지 않은 모기눈알들이 다량으로 얻어진다고 한다. 최고급 산해진미중의 하나라는 이른바 모기눈알요리의 재료인.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는 얘긴데, 여기 와서 박쥐의 액체 배설물을 몸소 맞아가며 그 얘길 들으니 한결 실감이 났다. 전에 그냥 얘기로만 들었을 때에 비해서 그 음식을 한번쯤 맛보고 싶다는 생각은 훨씬 덜했지만.

    화산대 위에 자리잡고 있는 인도네시아에는 도처에 분화구요, 사방에 온천이다. 하룻밤 잘 쉰 우리 일행은 이튿날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온천계곡, Cipanas에 들렀다. 북한산 계곡처럼 생긴 그곳의 계곡 곳곳에서는 온천수와 수증기가 맹렬히 뿜어나오며 무지개를 그려내고 있었다.

    아이들과 남자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엉금엉금 계곡을 내려가 지구가 갓 게워내고 있는 따끈한 지하수의 세례를 받았다. 조심해야 했다. 계곡물의 어느 부분은 차가왔고, 어느 부분은 발을 델 정도로 뜨거웠다. 발을 델 정도가 아니지. 한켠에선 현지인들이 달걀을 삶고 있었으니까. (기분 좋으면 닭도 삶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반쯤 익힌 달걀을 이른 점심삼아 먹으.....려다가, 조류독감을 우려하는 부인네들의 성화에 부응하여, 숙소로 돌아와 더 익힌 달걀을 나눠먹고 다시 자카르타로 긴 여정을 돌아왔다.  운전하신 분들한테는 죄송한 얘기지만, 길은 보고르를 지날 때까지 장장 다섯시간 내내 뒷골목과 시장통을 돌아 돌아 오는 것이어서,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비교적 낱낱이 구경한 느낌이었다.

    땅도 넓고, 자원도 많고, 인구도 많은 나라. 그러나 이들이 살고 있는 모습은, 자카르타의 초현대식 쇼핑몰과 호텔 몇 곳을 제외하면 어느 구석을 보아도 우리네의 60-70년대를 닮아 있었다. 불결한 위생과 저소득, 거기에 더하여 자연재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대다수의 백성들. 이들이 가지지 못하고 우리가 가졌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걸어온 길 중 괜찮은 부분을 이들이 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쉽게 생각하면 자명할 수도 있는 이런 질문의 해답은, 그러나 간단한 것일리만은 없다. 이것이 아마도 앞으로 한 이태 동안 내게 주어진 퀴즈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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