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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 Central Kalimantan

posted Feb 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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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칼리만탄
| 2007·12·27-29 |

■ Borneo Island

    등받이 고정장치가 망가진 비행기 의자가 앞뒤로 흔들렸다.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허리에 힘을 주고 버티고 있어야 하나? 낭패스러웠다. 2007년 12월말, 스마랑을 출발한 IAT 항공사의 ATR-42 쌍발 프로펠러기는 푸드덕 푸드덕 자바해를 가로지르며 중부 칼리만탄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중부 칼리만탄 아룻(Arut) 강 상류에 자리잡은 코린도(Korindo)사의 조림현장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자카르타에서 싱가포르까지는 비행기로 두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 거리의 절반 남짓밖에 되지 않는 중부 칼리만탄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카르타에서 우선 스마랑으로 간 다음 소형 비행기로 바꿔타야 한다.

    칼리만탄(Kalimantan)은 국제적으로 보르네오(Borneo)라고 알려진 섬의 인도네시아 영토를 일컫는 이름, 또는 인도네시아인들이 보르네오 섬 전체를 부르는 이름이다. 보르네오 섬은 남지나해와 자바해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그 면적이 743,330km² 니까, 남한 땅의 7.5배쯤이나 되는 셈이다. 해발 4천미터가 넘는 키나발루 섬을 정점으로, 이 섬의 북쪽을 가로질러 마치 등줄기 같은 산맥이 동서로 뻗어 있다. 이 산맥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가르는 유일한 육상 경계선이 되었다. 그래서 보르네오 섬에는 부르나이 왕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세 나라들이 깃들어 사는 곳이다. 이 섬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나누어 가지게 된 것은, 19세기에 영국이 보르네오의 북부지역을, 네덜란드가 중남부지역을 지배했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2차대전 중에는 일본이 이 섬을 가혹하게 지배했었고, 독립에 즈음해서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간 널리 알려지지 않은 각축이 벌어지기도 했다. 60년대 인도네시아에서 공산당이 세력을 넓히다가 수하르토 정권에 의해 철저히 붕괴되던 무렵에는, 칼리만탄의 삼림지역이 공산 반군의 활동무대가 되기도 했었다.

    보르네오는 아마존 지역에 버금가는 열대우림(rainforest)을 이루고 있다. 아직까지도 이곳은 지구상 최대의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있는 지역들 중의 하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알려진 바로는, 보르네오 섬에는 15,000여종의 꽃과 3,000여종의 나무, 221종의 육상 포유류, 420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세계야생생물재단(World Wildlife Fund)의 발표에 따르면 1996년 이후로도 보르네오에서는 361종의 새로운 동식물이 발견되었으며, 2005년 여름부터 2006년 겨울 사이에만도 52종의 새로운 생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보르네오 섬은 오랑우탄과 칼리만탄 코뿔소 같은 희귀동물의 최후의 피난처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러나 숲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삼림파괴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벌채다. 전 세계 연간 열대목재 생산량의 약 절반이 보르네오 섬에서 충당된다. 게다가, 이른바 바이오 에너지가 각광을 받으면서 야자유 채취를 위한 대형농장(plantation) 조성 때문에 엄청난 규모의 자연림이 훼손되고 있다. 바이오 에너지가 흔히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이라고 알려진 것은 아이러니다.

    90년대 말부터는 이른바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기온상승과 가뭄도 보르네오 숲을 망가뜨리는 데 큰 몫을 했다. 이 거대하고 기름진 섬의 많은 곳에는 거의 지표면에 노출되다시피 한 토탄층이 노천광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보르네오 섬의 가뭄은 무시무시하다. 화전민들의 방화건, 번개로 인한 자연발화건, 이곳의 숲은 불이 한 번 붙으면 사람의 힘으로 꺼뜨릴 수 없는 곳이 많다. 심지어, 수 년째 꺼지지 않는 지하 석탄 화재로 인해 버려진 땅도 있다. 흙도 돌도 전부 뜨겁고, 땅에서 일산화탄소 연기가 맹렬히 피어오르는 석탄화재 현장의 사진은 마치 지옥을 연상시킨다.

    석탄으로 옮겨붙지 않는다 해도, 최근까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칼리만탄 산악지대의 화재는 바다 건너 말레이 반도의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 주민들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연무(haze)에 수 주간 시달리게끔 만들고 있다. 겪어본 사람에 따르면, 서울의 4월 황사도 여기에 비하면 얌전한 지경이라고 한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특히 약 올라 하는 대목은, 연무가 정작 인도네시아 쪽으로는 가지 않고 바람에 실려 말레이 반도 쪽으로만 날아든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70-80년대에 걸쳐, 대대적인 인구이동정책(transmigration policy)을 시행했다. 세계에서 가장 과밀한 지역인 자바섬의 인구를 여타 인구 희소지역으로 분산시켜, 자바섬의 과밀도를 낮춤으로서 도시빈민의 양산을 억제하고, 다른 지역의 개발을 촉진하겠다는 양수겹장이었던 셈이다. 이 정책에 의해 보르네오 섬으로 이주해온 자바인들은 주로 가난한 농부들로서, 무서운 속도로 숲을 개간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원래 칼리만탄 지역에 살고 있던 까얀, 끄냐, 뿌난바, 쁘난 등 소수 종족은 물론 다수를 이루고 있던 다약족도 주로 강변에서 수렵채취에 기반을 둔 생활을 오래 유지해 왔었다고 한다. 이제 칼리만탄은 농업지역이 되었을 뿐 아니라, 90년대말의 '마두라족 학살사건'처럼 인종간 갈등의 개연성도 높아진 셈이다. 정부의 인위적인 대규모 이주정책이란, 거의 예외없이 치유하기 어려운 부작용을 가져온다.

■ Pangkalan Bun

    나는 인도네시아에 부임한지 일년 반만에 처음으로 칼리만탄 섬을 밟게 되는 것이다. 보르네오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국의 유명한 가구회사의 이름이다. 그 만큼 이 섬의 자양분으로 성장한 나무들은 바다 건너 우리의 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져 왔다. 내가 처음 방문하는 이 낯선 칼리만탄에서 싹을 틔우고 자랐던 아름드리 나무가 어린 시절 내 책걸상의 전생(前生)이었을지도 모를 노릇이 아닌가.

    비행기는 빵칼란분(Pangkalan bun)이라는 도시에 내렸다. 자바해 연안에서 40-50km 떨어진 빵칼란분은 도시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작은 마을이지만, 드넓은 칼리만탄 섬에서 이보다 더 큰 도시라고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 비행기의 엔진소리가 멎은 공항은 시골 버스 정류장보다 더 고즈넉했다. 여느 비행기라면 휴대화물이었을 배낭이 ATR-42의 짐칸에는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기다려 짐을 찾았다. 혹시 짐을 내려주지 않고 비행기가 다음 목적지인 폰티아낙으로 떠나버리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면서. (2002년 여름 이태리 여행때 우리 짐가방은 바레인까지 갔다가 겨우 돌아온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귀찮은 손님이었을텐데, 코린도 합판공장의 김준형 총무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런 데 오래 있다 보면 사람이 반갑십니더.”

    그는 시내 적당한 호텔을 소개해 달라는 나를 한사코 현장 안에 있는 직원용 숙소로 안내했다. 지방색이 강하고 그다지 푸근한 인상을 주지 않는 빵칼란분 시내를 나중에 둘러보고서야, 나는 못 이기는 척 코린도사에 폐를 끼치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이 대목에서 코린도사에 관해 잠깐 설명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인도네시아에서라면 저절로 느낄 수 있는 이 회사의 존재감을 다른 곳에서는 알기 어렵겠기 때문이다.

    1969년 창립된 코린도사의 이름은 물론 Korea와 Indonesia의 합성어다. 코린도사를 창립한 사람은 승은호 회장이고, 그는 현재 인도네시아 한인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인 투자회사 중 최대기업으로서 인니 재계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코린도 그룹은 2만5천여명을 고용하고 3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데다 연간매출 8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는 거대 기업집단이다. 여기에는 화학공장, 신발공장, 무역상사, 컨테이너공장, 금융서비스회사, 운송 및 창고업, 물류업 회사, 임대아파트, 증권회사, 보험회사, 자동차공장 등이 포함된다.

    코린도그룹의 전통적인 주력 업종은 합판생산이다. 칼리만탄 두 도시, 수마트라, 서부파푸아 주에 합판공장이 있는데, 이 네 공장에서 생산하는 연간 70만∼80만㎥의 합판은 인도네시아 전체 합판 생산량의 10 퍼센트에 달한다. 이 합판의 원목을 장차 제공할 조림사업도 진행중이고, 역시 원목을 이용한 제지공장도 코린도의 간판업종이다. 코린도 제지공장은 인도네시아 국내 신문용지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수많은 외국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문을 닫던 90년대말 외환위기때에도 코린도 그룹은 한 군데도 문을 닫지 않은 채 버텨냈다.

    평안도 정주 출신으로 1951년 목재회사 동화기업을 창업했던 승상배씨는 승은호 회장의 부친이다. 그가 1970년에 설립한 ‘인니동화회사’는 한국남방개발과 경남기업에 이어 세 번째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이업이었고, 코린도사의 전신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코린도사는 1975년 인니동화가 부도를 맞은 후 빈손으로 시작했으니 승은호 회장을 무임승차한 재벌2세 쯤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코린도사 임원들의 젊은 시절 회고담은 전쟁 종군기를 방불케 한다. 밀림을 헤집고 다니면서 ‘나무 지도’를 그리며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 보고서에 따라 벌목 생산팀이 나무를 베어나왔다. 벌에 쏘이고, 뱀에 물리고, 오랑우탄이나 호랑이가 달려드는 밀림속에서 땀을 흘려본 사람들에게서는 극한상황의 두려움과 벗삼아 본 사람들만이 풍기는 단단한 냄새가 난다. 요즘도 대졸 신입사원을 뽑으면 무조건 첫 몇 년간은 밀림 속 현장에 배치한다. 코린도사는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관리직원들도 현지인으로 대체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데, 인도네시아인들도 관리직에 응모한 대졸자들은 산간지역근무를 마다하는 통에 한국인을 인니인으로 바꿀래야 바꾸기도 어려운 면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코린도사의 직원들을 만나면서 어찌 존경의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30대 총각인 김준형 총무와 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어쩐지 군부대에 놀러 간 철없는 학생이 된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 Tanjung Puting

    중부 칼리만탄의 남단, 빵칼란분에서 머지 않은 탄중 뿌띵(Tanjung Puting)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얼마 남지 않은 야생 오랑우탄을 만나볼 수 있는 국립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인들 사이에는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고, 널리 알려진들 크게 각광을 받을만한 목적지도 아니지 싶다. 하지만 서양의 가이드북에는 빠짐없이 기록된 곳이고, 실제로 오가는 길에서 적지 않은 서양인들이 배낭을 짊어진 관광객의 행색을 하고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소박한 eco-tourism은 이제 검소함보다 선진성의 상징이다. 오만에서 도보로 사막횡단을 감행하던 독일 청년들을 보면서도 느꼈던 사실이다. 칼리만탄 도착 첫날의 오후를 허비하는 대신, 야생 오랑우탄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저도 세 번 가봤는데, 거길 도대체 왜들 가는지 이해를 못하겠던데요.”

    김준형 총무는 돌려서 말하는 법을 몰랐다. 강원도 산골로 생태관광을 온 서울사람을 보면서 전방 철책선에 근무하는 군인이 함직한 얘기였다. 그 덕분에, 한국인의 여행패턴 선진화의 첨단을 걷고 있다고 들떠 있던 나는 ‘보보’스러운 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보 말고 보보. 데이빗 브룩스가 <보보스(Bobos in Paradise)>라는 책에서 설명한 그 겉멋 들린 신흥계층 말이다. ‘부르주아’의 자본주의와 ‘보헤미안’의 반문화를 동시에 지향하고 심지어 갈구하는, 그때문에 다소간의 정체성의 모순을 안고 사는 현대식 중상류 계층을 브룩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Bobos (Bourgeois+Bohemian) 라고 유머러스하게 명명했었다.

    오랑우탄을 만나러 가는 보보. 그것도 시적인 면이 없진 않다.(보보는 원숭이 한 종류의 이름이기도 하다.) 말레이-인도네시아어에서 오랑(orang)은 ‘사람’을 뜻한다. 한국인은 ‘오랑 코레아’, 한 사람은 ‘사뚜 오랑’ 하는 식으로. 그리고 후탄(hutan)의 뜻은 ‘숲’이니, 오랑후탄은 ‘숲 사람’을 뜻한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빵칼란분 시내를 살짝 벗어나 아룻강변에 있는 선착장을 찾아갔다. 원래 이곳에서 승선허가증, 국립공원 입장권, 보트 대여증 등 각종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모터보트와 배를 모는 소년들이 평상 위에 앉아 두런두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정작 매표소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손님도 별로 없고 해서 아마 그냥 퇴근했을 거란다.

    탄중 뿌띵 국립공원은 숲속을 거닐며 새를 관찰하듯이 오랑우탄을 찾아서 구경하는 곳이 아니다. 그렇게 하기란 쉽지도 않거니와, 몹시 위험한 짓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매일 오후 두 시경이 되면 정해진 장소에 국립공원측에서 제공하는 먹이를 먹기 위해 모여드는 오랑우탄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시간이 열두시 경이고, 선착장에서 탄중 뿌띵까지 한시간 반 쯤 걸린다는 사정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현지인 운전기사는 침착한 안색을 바꾸지 않고 보트를 모는 소년 하나를 차에 태우더니만 매표소 직원인 공무원의 집을 찾아나섰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건가? 시골길을 30분쯤 되짚어 매표원 나으리의 집을 찾아가 그의 거실에서 각종 티켓을 발급받고 값을 치렀다. 미리 말하자면, 그 덕에 탄중 뿌띵에 배를 내려 오랑우탄의 오찬장까지 2km 정도를 숨이 턱에 닿도록 종종걸음으로 달려야 했다. 이젠 나도 경험을 통해 이 나라 사람들이 여간한 일로는 조급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터득하고 있다. 설령 시간을 놓쳐서 허탈하게 오랑우탄이라고는 그림자조차 못보고 먼 길을 헛걸음 했다손 하더라도 현지인 가이드는 ‘그게 뭐 대수냐’는 표정을 지었을 게 틀림없다. 만일 그랬다면 혼자 바보가 된 것처럼 느꼈겠지. 보보 말고 바보.

    밀림지역이라서 그럴까? 한낮의 햇살을 받은 강변의 공기는 자카르타보다 무겁고 무더웠다. 소형 쾌속정 삯을 지불하고 뒤우뚱거리며 나누어 탔다. 보트가 아룻(Arut)강의 물살을 앞지르며 하류 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니 비로소 후덥지근한 짜증을 바람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 폭이 백여 미터는 족히 되는 강변을 한 시간 쯤 달리던 보트는 샛강으로 머리를 틀었다. 샛강으로 들어선 것을 보니 필시 탄중 뿌팅에 가까와지고 있었다. 탄중(Tanjung)이란, 인니어로 ‘곶’을 뜻하니까, 보트가 바다 쪽으로 내려가다 말고 작은 반도의 중심부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었다. 넓은 강물이 흙빛이길래 나는 상류쪽에서 무슨 준설공사라도 하기 때문이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샛강으로 들어왔는데도 마치 탕약처럼 검붉은 물 색깔이 선명하다. 아마도 밀림의 나무뿌리들을 휘돌아 모인 강물은 이런 색을 띠는 모양이다. 연못물처럼 고요한 샛강의 표면은 마치 검게 다듬어진 청동거울처럼 보였다. 한 치 앞도 들여다 보이지 않는 이 강물 속에 수많은 악어들이 산다고 보트를 모는 청년이 주의를 준다.

    구불구불 나무 사이로 보트를 타고 가다 보니 강 양 쪽으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 사이로, 제 힘을 못 이겨 쓰러진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등걸들이 있었고, 더러 새파란 긴 꼬리를 가진 새가 수면을 스치며 날기도 했다. 우리 보트가 앞질렀던 서너 척의 배는 길이가 15미터쯤 되는 2층짜리 목선이었는데, 선실은 모기장으로 둘러쳐 있었고 갑판에는 서양 사람들이 편안한 자세로들 앉아 있었다. 배를 여러 날 동안 세내어 이른바 ‘크루즈’ 관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많았다면 밀림 속 아룻강은 쾌속정보다는 저렇게 통통배로 보는 것이 제격이었을 터이다. 밀림 속에서 며칠씩 시간의 흐름을 잊어보는 사치를 은퇴하기 전에야 누려볼 리가 만무하겠지만 말이다.

    귀를 먹먹하게 울리던 모터 소리가 잦아들면서 보트는 좁다란 나루로 다가섰다. 주변에 혹시 악어가 보이나 기웃거릴 참이었는데, 국립공원 직원처럼 보이는 노인이 뭐라고 한다.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표정과 몸짓으로 미루어, “당신들 오랑우탄 보러 온 거 맞지? 식사시간이 거의 끝나가니까 오랑우탄들 보고 싶거든 빨리 가야 해”이거나 그 비슷한 뜻임에 틀림이 없었다. 인도네시아인으로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긴장하는 편이 이롭다. 그건 뭔가가 정말로 급하다는 뜻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밀림의 무더위 속을 2km 쯤 속보로 걸으며 땀을 한바탕 쏟으니 숲속의 조그만 개활지에 도착했다. 안내인 영감님이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었다. 헉헉거리던 나는 얼어붙었다. 거기 있었다. 바나나로 한창 식사중인 숲 사람들이.

    오랑우탄들의 생김새는 비슷한듯 하면서도 각자 개성들이 있었다. 안내인 영감님은 그 중 암컷 한마리와는 오랜 안면이 있었는지 어깨동무를 하며 서로 반기는 ‘묘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뻣뻣하게 긴장해서 낮은 소리와 단호한 손짓으로 움직이지 말라고 했을 때, 나는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의 눈길을 따라 쳐다보니 내 등 뒤쪽으로부터 수컷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이름이 ‘톰’이랜다), 어찌나 몸집이 거대한지 무슨 코뿔소나 코끼리 같은 다른 짐승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녀석의 볼은 수컷 특유의 검은 살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었다. 바나나를 먹던 오랑우탄 무리들이 더러는 후다닥, 더러는 슬금슬금 숲 속으로 달아났다. 내가 느낀 공포가 착각이 아니었는 뜻이다. 톰이 천천히 눈길을 돌려 마침내 바나나 더미 쪽으로 발을 내딛기까지는 뭘 어째야 좋을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는 찰라의 시간이었고, 녀석의 동작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는 점에서는 제법 긴 시간이었다.

    오랑우탄은 암수간 체격의 차이가 가장 크게 나는 포유류에 속해서, 다 자란 수컷은 암컷보다 키나 몸무게가 거의 2-2.5배에 달하게 된다. 오랑우탄은 오직 다 자란 수컷만이 자기 영역을 주장한다. 영감님이 긴장할 법도 했던 것이다. 오랑우탄의 화석은 베트남과 중국에서도 발견된다지만, 자연 상태의 오랑우탄이 지구상에 현존하는 땅은 보르네오와 수마트라 섬 뿐이다. 광활한 보르네오 섬 전체에 약 5만 마리 정도만이 살아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랑우탄은 가령 고릴라나 침팬지와는 달리 집단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 암수도 짝짓기를 할 때만 함께 지내고, 어미는 새끼를 보통 6-7년 돌본 후 헤어진다고 한다. 독립심이 강한 인류의 가까운 친척들이 이제 광활한 터전을 잃고 관광객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바나나를 얻어먹고 있는 것이었다. 예전에 네바다의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나치면서 느꼈던 것과 흡사한 서글픔이 잠시 온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오랑우탄의 멸종을 재촉하고 있는 원인은 많지만,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인간’이다. 인간이 벌이는 여러 가지 활동 중에서 오랑우탄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을 딱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야자유 생산을 위한 대규모 농장건설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무늬만 ‘친환경적인’ 팜오일은 바이오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각광받고 있어 국제시세도 좋은 편이므로 야자수 농장은 날로 그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물론, 밀렵꾼들의 더 직접적인 위협도 여전히 오랑우탄들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저녁식사까지 아예 해결을 할 참이었던지 바나나를 욕심 사납게 챙겨서 자리를 뜨던 암컷, 국립공원 사무소 근처를 배회하며 불량배처럼 고양이를 못살게 굴던 어린 수컷, 어미의 그늘진 품에 안겨 사람들을 똘망똘망 신기하게 구경하던 젖먹이 녀석. 저들은 앞으로 얼마나 오래 후손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인지.

■ Korintiga Hutani

    빵칼란분 시내의 코린도 합판공장 숙소에서 첫날 밤을 보내고 다시 스피드 보트를 탔다. 어제와는 반대로, 강의 상류쪽으로 두 시간 반 북상해서 코린도사가 자랑하는 10만 헥타의 조림현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시내의 강변에 자리잡은 주거지역을 강에서 바라보며 지나갔다. 이른 시간에 출발한 덕분에 강변에서 하루 일과를 준비하는 현지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아룻강은 그들에게 뱃길이자 놀이터였고, 상수원이자 하수도였다.

    이를테면 우리는 그들의 욕실 안쪽을 침범하면서 뱃길을 갔던 셈인데, 집집마다 자그마한 나루터를 가지고 있었고, 강 위로 뻗어나온 그 좁고 기다란 마루의 끝에는 어김없이 화장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루 위에 앉아 더러는 칫솔질을, 더러는 세수를, 더러는 목욕이나 빨래를 하고 있었다. 얼른 봐서는 더없이 비위생적으로 보였는데, 조림현장의 이호영 본부장님에 따르면, 아마도 강한 자외선의 소독 덕분인지 수인성 돌림병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느린 물살의 붉은 강물을 두 시간쯤 거슬러 가다 보니 강폭이 현저히 좁아지면서 굽이치는 정도도 심해졌다. 목적지인 숲에 가까왔다는 뜻이다. 드디어 강 언덕에 아무렇게나 지어놓은 것 같은 접안장소가 보이고, 마중나온 분들이 보였다. 코린도 조림현장의 이호영 본부장과 현장소장이셨다. 내가 조림사업에 관해 아는 게 전혀 없다는 사실이 갑자기 생각났다. 배우고 싶으면 솔직한 편이 낫다.

    “본부장님, 그러니까 조림이라는 건... 나중에 벌목할 나무들을 농사 짓듯이 심는 거죠, 결국?”

    검게 그을은 얼굴과는 좀 부조화스러울 만치 학교 선생님처럼 조용조용한 음성을 가진 이 본부장께서는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 줘야 할지 잠시 망설이는 눈치였다.

    “이제는 원목을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요. 기초원자재인 원목의 가격이 오르는 거죠. 하지만 인류가 아직 나무 없이 살 수는 없잖습니까?”

    코린도사는 수하르토 대통령 시절,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10만 헥타르의 임야를 불하받았다. 그게 얼마만한 넓이인지 가늠이 잘 안된다면 10km x 100km 짜리 사각형을 상상해 보면 된다. 당시 이곳은 마구잡이 벌목이 행해진 후 아무도 조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불모의 땅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중의 약 6만 헥타르에 달하는 구릉지역에 코린도사의 직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심은 나무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자라나고 있다. 내년쯤 부터는 6-8년생 나무들을 중심으로 수확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본부장의 계산에 따르면 이 나무들은 웬만한 지하자원이나 농산물보다 부가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가장 먼저 심어진 “코린도 모델 나무”를 소개해 주었다. 거기서 줄자를 꺼내어 나무 둘레를 재 보이며 그는 어느새 열띤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가족들과도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고, 여기 산골에서 불편한 것도 있지만, 평생 목재 관련 일을 하다가 이제 여기서 자라는 나무들을 보면서 꿈을 이루어 가는 보람을 느낍니다.”

     나는 옷깃을 여며야 했다. 그건 힘겹게 꿈을 이루며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사람들만 보여줄 수 있는 종류의 열의였던 것이다. 전망대를 보여주겠다는 이 본부장님을 따라 가면서 나는 망루처럼 높다란 건물을 상상했는데, 자동차가 도착한 야트막한 언덕 위에는 2층짜리 정자가 있었다. 그 위에서 한 바퀴 돌며 내려다 보니, 눈이 닿는 사방 끝까지가 줄지어 심어진 나무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장관을 기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습을 당하듯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게 다 일일이 사람들이 심은 나무들이란 말인가.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고, 실패도 많이 했어요.”

    여러 번의 실험 끝에 현장에서는 두 가지 수종으로 조림목을 압축했다. 유칼립투스 펄리타와 아카시아 망기움. 당신이 유칼립투스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면, 그건 코알라가 그 잎을 먹는다는 동물의 왕국에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대체로 호주가 원산지인 유칼립투스에는 700종 이상의 종류가 있으며, 필리핀과 뉴기니, 인도네시아에도 그 일종이 서식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캘리포니아나 아프리카 등지까지 퍼져나가기도 했다. 가구나 바닥재로 쓰이는 고급수종인 유칼립투스는 높고 곧게 자라면서 스스로 잔가지를 떨구는 특징을 가졌다고 한다. 이 나무는 한 해에 7미터씩 자란다고 하니 하루에 2-3cm는 생장한다는 뜻이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라나는 움직임이 눈에 보이리라.

    뿌리가 깊은 우리나라의 아카시아와는 달리 열대 아카시아는 천근종으로, 이 또한 생장률이 좋아 합판이나 펄프재료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조림현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유칼립투스에는 비밀이 있다. 다년간의 연구 끝에 코린도사는 생장률이 좋은 묘목들을 가려냈고, 경쟁을 통해 선발한 가장 우수한 품종 단 세 그루만을 복제하여 조림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림 초창기에 심어진 8년생 유칼립투스를 훨씬 웃자란 4-5년생 클론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더 굵고 곧기도 했다. 소름이 끼쳤다. 세 그루의 클론이 줄지어 가득 채우고 있는 드넓은 숲! 생물학적으로 번식과 생장을 깔끔하게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긴 하다. 특히 식물에 관해서는 그러하다. 그러나 한 개의 생식세포에서 시작되는 반복적 생활환을 가지지 않는 세포의 유사분열은 진정한 의미의 번식이 없는 생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체세포의 복제를 통해 생장한다면, 진화의 시계는 이윽고 멎을 터이다. 6만 헥타르에 달하는 불임의 숲! 이 숲 전체를 세 개의 개체로 보아야 하나? 다시 한번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양묘장으로 내려와서 똑같은 크기와 높이로 한 가득 자라고 있는 묘목들을 보았을 때, 영화 <아일랜드>의 복제인간 제조시설이 장면이 잠간 떠올랐다. 뭔가 좀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다.

    “본부장님, 저희는 어제 청승맞게 보호되고 있는 오랑우탄들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조림이 경제적으로 훌륭한 사업이라는 점은 잘 알겠습니다만, 생태적으로는 어쩐지 불임의 땅처럼 메마른 인상을 줍니다. 예컨대 오랑우탄 같은 야생동물이 오로지 천연림에만 깃들고 인공조림현장에 살 수 없는 것은 숨어지낼 공간도 없고 유실수도 없어서 먹이를 구하지 못해서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렇다면 환경보호론자들의 눈에는 팜 오일 플랜테이션과 마찬가지로 못마땅해 보이겠는걸요?”

    나의 질문에 대해 “저는 이렇게 봅니다”라며 이 본부장께서 설명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현실적으로 인간이 나무를 아껴 쓸 수는 있지만 나무 없이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디선가 목재는 나와야 한다. 조림목의 환경적 가치는 불모지를 녹지로 바꾸었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얼른 눈에 띄지는 않지만 조림사업이 진정으로 환경에 기여하는 이유는 그것이 천연림의 시장가치를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데 있다. 천연림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책이자 거의 유일한 길은 벌목자들에게 그것을 ‘어렵사리 접근할 값어치가 없는’ 숲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부수적인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1) 인도네시아 경제현실의 역학관계를 감안할 때, 조림을 하지 않는다면 그 대안은 이 땅이 더 가파르게 불모지로 변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2) 10만 헥타르가 엄청나게 커 보이지만, 칼리만탄 북부를 중심으로 보호되어야 할 원시림의 전체규모를 감안하면 코린도 조림현장은 지도상에서 찾기도 어려울 만큼 작은 땅에 불과하다. (3) 조림현장은 팜 농장에 비해 나무의 식생밀도도 높고 토지의 비옥화 효과도 크다. (4) 나무는 생장하는 초기 10년간 가장 왕성하게 탄소를 배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림사업은 기후변화 예방에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렇구나. 문제는 조림이라는 특수한 경제행위 자체에 있다기보다, 그것을 얼마만큼 잘 관리할 수 있느냐는 governance에 있을 터였다. 다시 말해서, 합리적이고 분별력 있는 인허가, 효율적인 위치선정 등 관리행정 하에 시행된다면, 조림이야말로 꺼져가는 지구의 심폐기능을 소생시키는데 작지 않은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사업일 것이다. 코린도사는 머잖아 조림목으로 합판공장의 자재를 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내친 김에 펄프 공장도 구상중이라고 한다. 나무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산업화하는 것이다. 그리 되면 칼리만탄 산간 오지에서 흙과 나무와 부대껴온 조림현장의 직원들은 바깥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가슴 뿌듯할 터이다. 최근 들어 조림업자에게는 나무의 탄소배출량을 계산하여 환경기여기금을 받을 수 있는 국제협약이 논의되고 있다니 그리 되면 보람은 더 커질 것이다.

    Korintiga Hutani, 줄여서 KTH라고 불리우는 이 유칼립투스 삼림의 현장본부에는 15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그 중 한국인은 14명(4 가족)이 상근하고 있다. 요즘 외진 곳에 위치한 우리 업체 현장의 안전에 대해 갈수록 걱정이 커지고 있는데, 다행히 이곳에는 코린도사가 터를 잡은 역사가 오래되어 주민들과의 관계는 좋은 상태라고 한다. 조림현장 한켠에는 소들이 200여 마리 방목되고 있었는데, 이것은 이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대민관계 강화 목적이라고 한다. 지난 연말 이슬람 명절 때에도 15마리를 도축해서 인근 마을에 돌렸다고 한다.

    일본인도, 중국인도, 심지어 인도네시아인들도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칼리만탄의 조림사업부문에서 한국인들이 땀흘려 가꾼 결실을 바라보면서, 이곳에 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빵칼란분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KTH로 올라오던 길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강바람을 쐬면서 별 생각 없이 올라왔던 길을 이번에는 육로로 내려간다. 숙연한 감동을 품고.

■ Kordo 합판공장

    소박한 소도시 빵칼란분도, 숲에서 돌아와 보니 제법 번화한 도심처럼 보였다. 빵칼란분에서 다시 하루밤을 보냈다. 마침 자카르타에 출장중이던 합판공장 허광복 본부장께서 돌아오셔서 칼리만탄의 메기구이와 닭튀김으로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칼리만탄에 관해서, 조림지에 관해서, 그리고 합판사업에 관해서도. 마침 동부 칼리만탄의 발릭빠판(Balikpapan)에 있는 코린도사의 다른 합판공장 직원들도 빵칼란분에 출장을 와 있어, 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좀 더 입체적인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발릭빠판은 대도시인데, 이곳 촌구석으로 출장들 와서 불편이 많구만.”
    “웬걸요, 본부장님. 도시만 번화하면 뭐합니까. 발릭빠판 현장 숙소는 공장과 붙어있는데다가 협소해서 여기가 한결 더 좋습니다.”
    “허허, 그럼 여기 와서 지내던가.”

    낮으막한 경상도 억양으로 짧게 끊어 말하는 허 본부장의 음성은 특이하게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딱 꼬집어 왠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어딘지 대대장 또는 연대장의 풍모를 가졌다고 느꼈다. 그러고 보면 허 본부장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제조업 전체를 군사작전에 비유할 수 있다면, 여기야말로 최전선이라고 부르기 적당한 곳이 아닐까.

    한국 남자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 모인 곳이라면 거기가 어디든지 군대에서의 경험이 일종의 표준화된 소통을 위한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 물론 그것은 편리한 면과 불합리한 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 평소 나는 한국 조직사회의 문화가 비민주적인 이유의 적어도 일부는 성인 남성들이 공유한 군대 경험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곳 발릭빠판처럼 ‘야전(野戰)’의 분위기가 짙은 곳에서 최전방 GP의 느낌을 되새겨 보는 일은 일종의 비장미조차 느껴지는 것이었다. 상명하복의 엄격한 분위기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받은 느낌은 다음과 같은 것들의 한 덩어리였다. 질박하고 불편한 생활여건, 감상보다는 임무와 책임을 중심으로 오가는 의사소통방식, 가족과 오래 떨어진 채 사명감이라는 연료로 움직이고 있는 사나이들.

   이튿날, 합판공장을 견학할 수 있었다. 나는 막연히, 합판이라는 것은 넓적한 나무 판자들을 겹쳐서 만든다고만 상상하고 있었다. 나무 먼지 자욱한 합판공장에서는 입구에서부터 놀라운 구경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드리 자연목들은 일정한 길이로 잘려진 다음, 연필이 깎이듯 돌면서 얇게 깎여졌다. 기계의 뒷편으로는 마치 끊어지지 않고 벗겨낸 사과껍질처럼 돌려깎여진 나무의 얇은 판들이 콘베이어 벨트를 타고 공장 안쪽으로 운반되었다. 요즘은 기계도 발달하고, 지름이 큰 원목도 귀해져서 새로 나온 기계들은 다 깎고 남은 목재의 지름이 불과 18cm가 될 때까지 얇게 여러 겹을 깎아낼 수 있다고 한다.

    이 나무판들을 가로 세로결이 엇갈리도록 홀수겹으로 겹친 다음 표준 너비로 재단하고, 아교로 붙여서 압착하고, 말리는 과정을 구경했다. 이곳 공장에서는 주로 콘크리트 거푸집으로 쓰일 특수합판을 다량 제작하고 있어서, 합판 표면에 특수코팅처리를 하고 있었다. 이 합판들은 요즘은 주로 건축수요가 큰 중동지역, 특히 두바이로 다량 수출되고 있다. 그랬었군. 두바이에 방문할 때마다 지칠줄 모르고 솟아오르는 고층건물을 보며 감탄했었는데, 그 수많은 공사현장들에서 이 합판들이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공정에서 발생하는 자투리 목재들은 자체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용 땔감으로 쓰이고 있었다. 이 공장은 인근 주민들에게 전기도 나눠주고 2천여 근로자들의 일자리도 주고 있으니 과연 발릭빠판의 동력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귀로

    또다시 쌍발 프로펠러기를 타고 스마랑을 거쳐 귀가했다. 스마랑까지는 발릭빠판으로 귀임하는 코린도 직원들과 함께 왔다. 상식적으로 볼 때, 빵칼란분에서 발릭빠판으로 가는 길은 칼리만탄을 벗어나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한참 떨어진 자바섬을 거쳐 가야 할 만큼 인도네시아의 국내 노선은 낙후되어 있는 것이다. 일껏 자바섬까지 나왔다가 다시 동부 칼리만탄행 비행기를 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자카르타의 내 생활여건이 얼마나 화려무쌍한 것인지를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걸 잊는다면 저분들에게 미안해질 것이니.

    집으로 돌아왔다. 또 한 해가 저문다. 마흔을 넘긴 뒤로 세월은 한층 더 속도를 내고 있다. 따라잡으려면 쉼 없이 뛰어야 할 판이다. 오늘도 키를 3cm나 더했을 칼리만탄의 유칼립투스 나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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