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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8.9. Earthquake, Jakarta

posted Aug 0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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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테블릿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요. 갑자기 멀미가 났습니다. 저녁때 소주를 반 병쯤 마시기는 했는데, 이미 서너시간이 지난 뒤여서 이럴 리가 없는데, 몸이 좀 안좋은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것과, 방 안의 가구들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거의 동시였습니다.

    지진? 이라는 단어가 막 떠올랐을 때, 아파트 11층인 집의 바닥이 마치 RV를 타고 포장도로를 막 벗어나기라도 하려는 듯이 떨려왔습니다. 벌떡 일어났더니 종로에서 광화문으로 접어드는 버스 안에서처럼 중심이 얼른 안잡히고 한쪽 무릎이 구부러졌습니다. 거실에 매달린 전등은 기운 넘치는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깨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컴퓨터의 모니터는 ‘맞아’라고 맞장구 쳐주듯이 크게 한번 껌-벅 하고 꺼졌다가 다시 켜졌습니다.

    2007년 8월 9일 새벽 12시 04분, 강도 7.0-7.6의 지진이 자카르타에서 멀지 않은 자바섬 서북부 찌르본-인드라마유 근해 75km, 깊이 286km 지점에서 발생했습니다. 주섬주섬 자다가 옷을 챙겨 입은 아이들을 데리고 아파트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저의 재산 1호가 뭔지 잘 아는 작은 아들 녀석은 “아빠, 카메라는 가지고 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고 뒤를 돌아보며 물었지만, 카메라 같은 것이 문제였겠습니까. 저는 앞뒤 경황이 없어서 식구들을 승강기에 태우고 내려갔는데, 내려와서 보니까 서양인 거주자들은 안전수칙대로 비상계단을 이용해서 내려오고 있더군요.

    아파트 옆 공터에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동료들 식구들이 하나 둘씩 다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늦은 밤이었지만, 전화로 확인해본 족자카르타, 수카부미 등지에서도 다행히 동포들의 피해소식은 없었습니다. 한시간쯤 밖에서 서성이다가 여진이 없어서 다시 귀가해서 잠을 청했지만, 여간해선 잠이 오지 않더군요. 원래 움직이지 말아야 할 집이라는 장소가 놀이기구처럼 좌우로 흔들릴 때의 이상스러운 난감함이란.

    58초간 계속된 그 진동이 얼마나 길고 긴박하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날이 새고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만 더 가까운 곳의 지표면에서 그런 지진이 났었다면 “아이들을 깨워야 한다”는 생각이 제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일 수도 있었겠다는 사실에 새삼 몸서리를 쳤습니다. 하루 하루가 다 귀중합니다. 실은 우리 인생 속에 허비해 버려도 아깝지 않은 순간이란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죠. 오늘은 아이들 얼굴이 더 살가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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