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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하 팬그램(pangram)

posted May 0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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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하(イロハ)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게 뭔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이로하는 우리말의 ‘가나다’ 또는 영어의 ‘abc’와 같은 뜻이다. 요리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한테 “요리의 ‘이로하’를 모른다”라고 말하는 식으로도 사용한다. 사지선다형 시험문제나 음식점의 메뉴에도 이, 로, 하가 사용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일본어에는 48개 음이 있기 때문에 이로하라는 표현은 때로는 50여개나 되는 많은 수를 일컬을 때 쓰이기도 한다. 토치키현(栃木県)의 산속에는 주젠지호수(中禅寺湖)라는 커다란 호수가 있는데, 호수까지 가려면 50굽이나 되는 언덕길을 굽이굽이 올라야 한다고 해서 그 길을 이로하언덕(いろは坂)라고 부르는 식이다.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배워본 사람이라면, 어째서 아이우에(アイウエ)도, 아가사다(アカサタ)도 아니고 이로하냐는 궁금함을 느낄 것이다. 일어의 가나(仮名)를 지금과 같은 50음도의 순서로 표기하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 유신 후 교육의 근대화 정책의 결과였다. 그 이전에도 글자를 외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영어의 알파벳 송처럼 노래를 만들어 불렀는데, 그것이 이른바 이로하 노래(いろは歌)였다.

그러니까, 이로하 노래는 가나에서 ‘ん’을 제외한 모든 문자를 한 번 씩만 사용하여 만든 노래다. 이 노래는 중세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일본 전역에서 널리 이용되었다. 이처럼, 모든 문자를 한 번씩만 사용해서 만든 문장을 팬그램(pangram)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The quick brown fox jumps over the lazy dog”이라는 문장 속에는 모든 알파벳이 사용된다. 하지만 두 번 이상 사용되는 글자도 몇 개 있기 때문에 진정한 팬그램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자로 만든 천자문도 팬그램에 가깝지만 한자의 수는 1천개를 훨씬 넘는데다, 천자문 속에도 중복되어 사용된 글자들이 있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 팬그램은 일본의 가나처럼 자음과 모음이 한 글자를 이루는 소리글자로만 가능하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이로하 노래를 소리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いろはにほへとちりぬるを (이로하니호헤토치리누루오)
        わかよたれそつねならむ (와가요다레소츠네나라무)
        うゐのおくやまけふこえて (우위노오쿠야마케후코에테)
        あさきゆめみしゑひもせす (아사키유메미시예히모세즈)

이것을 뜻으로 적으면 아래와 같다. 중세의 흔적답게, 불교적 무상감이 물씬 풍겨난다.

        色は匂へと散りぬるを (아름다운 꽃도 언젠가는 져버리거늘)
        我か世誰そ常ならむ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누군들 영원하리)
        有為の奥山今日越えて (덧없는 인생의 깊은 산을 오늘도 넘어가노니)
        浅き夢見し酔ひもせず (헛된 꿈 꾸지 않으리 취하지도 않을 테요)

자모가 한 글자를 이루는 소리글자라는 것은 생각보다 흔치는 않은데, 지금은 말만 남고 글은 사어가 된 인도네시아의 자바어가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당연하다는 듯이, 자바어의 알파벳도 한 편의 멋들어진 시를 이룬다.

        하나짜라까
        다타사와라
        파다자야나
        마가바따냐

        용사들이 있었네 (하나 - 있었다, 짜라카 - 용사)
        그들은 서로 증오를 품었지 (다타- 가지다, 사왈라-다른 생각)
        그들의 힘은 비슷해서 (파드하- 같은, 자야나-그들의 힘)
        둘 다 죽었네 (마가-둘 다, 바따냐-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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