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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오구(中央区) 긴자(銀座) 경양식집 렌가테이(煉瓦亭)

posted Jan 3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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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에는 경음악이라는 것이 있었다. 자신의 음악이 그렇게 분류되는지 알지도 못했을 폴 모리아(Paul Mauriat) 악단의 작품들을 위시해서 가사가 없는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계열의 대중음악을 그렇게 불렀다. 음악에 경음악이라는 것이 있듯이, 경양식이라는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들도 성업 중이었다. 경양식 집에서는 판에 박은 듯이 오므라이스, 돈까스, 비후까스, 모듬튀김정식 등을 팔았다. 주문을 하면 웨이터가 언제나 “수프로 하시겠습니까 샐러드로 하시겠습니까?”, 수프를 주문하면 “야채수프인지 크림수프인지”, 또 “밥으로 하실 건지 빵으로 하실 건지”를 물어보고, 끝으로 디저트는 “커피인지 홍차인지”를 물어보는 식당이다. 수프에서 커피 맛까지 어쩌면 그렇게 천편일률적일 수가 있나 싶게 표준화 되어 있던 업태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가슴 설레며 소개팅을 했고, 달콤한 데이트를 했으며, 또 쓴 이별도 맛보았다.

경양식이란 가벼운 양식이라는 뜻이다. 본격적인 양식은 비싸고, 어렵고, 복잡하고, 먹는 방법도 까다롭지만 “이정도라면” 해낼 수 있겠다는 느낌이 거기에는 배어 있었다. 양식을 서양 사람들처럼 능숙하게 먹지 못하는 식습관에 대한 약간의 부끄러움 같은 것도 그 이름 속에는 담겨 있었다. 서양식 습관을 똑같이 따라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워 했던 것을 부끄럽게 여길, 그런 시절이 올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꿈이 크다고 칭찬을 들었을 법한, 그런 시절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경양식이라는 이름, 그곳에서 파는 음식, 그것이 담고 있던 정서, 모두 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이었다. 영화 <담포포(タンポポ)>에서 묘사하는 장면처럼, 여대생들을 양식당에 모아놓고 ‘스파게티를 교양 있게 먹는 법’을 강의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던 거다.

80년대 후반부터 경양식당들은 두 종류의 운명을 겪었다. 폐업하거나 개성을 찾아나선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게 다 세계화의 효과였다. 그러더니 이제 서울에서는 추억 속의 경양식은 맛을 볼래야 볼 수도 없게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양식을 경양식으로 개조한 장본인들이 사는 일본에서는 아직도 경양식 집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 관광 삼아서라도 한 번쯤 가봄직한 식당이 긴자의 렌가테이(煉瓦亭)다.

이 식당이 개업한 것은 1895년, 서양으로부터 소개된 빵과 스테이크를 어떻게 하면 쌀밥과 함께 먹을 것인지를 고심하던 메이지 28년의 일이었다. 삶은 야채 대신 양배추를 얹고, “밥 또는 빵”의 조합을 정형화하고, 우스터 소스가 주류로 자리잡는 ‘양식 개조’의 실험이 이 식당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현재 4대째 사장이 영업을 하고 있으며, 지금의 점포는 1964년에 건축된 것이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뿌리는 날 점심시간에,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와 함께 이곳을 찾아갔다. 소문처럼 문 앞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2층으로 안내를 받아 소박한 식탁에 앉고 보니, 메뉴에는 포크 커틀릿, 치킨 커틀릿, 원조 오므 라이스, 특제모듬 커틀릿, 햄벅스테이크, 새우 튀김, 굴 튀김 등이 각각 1,000엔 안팎의 착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동료와 나는 오므라이스와 포크 커틀릿을 주문했다. 점원이 “빵으로 하시겠는지, 밥으로 하시겠는지”를 물어볼 때는 괜한 반가움에 울컥 하는 기분이 되었다.

포크 커틀릿은 돈까스의 원형이라는데, 과연 오늘날 널리 알려진 돈까스보다는 얇았다. 종잇장처럼 얇던 서울 경양식 집의 돈까스에도 나름대로 다 원류가 있었던 셈이다. 오사카의 북극성이라는 식당과 이곳 렌가테이는 서로 “최초로 오므라이스를 발명한 식당”으로 다투고 있다. 렌가테이의 오므라이스는 원조라는 주장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낯선 모양이었다. 밥을 계란부침으로 덮은 것이 아니라, 계란과 밥을 한 데 구워 낸 것처럼 보였다. 마치 미국식 오믈렛에 버섯이나 베이컨, 치즈 따위를 첨가하듯이 밥을 집어넣은 것 같았다. 토마토 케쳡으로 볶은 오늘날의 밥과는 맛도 많이 달랐다. 추억 속으로 여행하다가 여행이 내 추억을 지나쳐 훨씬 과거로 가버린 셈이다. 어쨌든 맛있는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가니, 카운터에는 줄잡아 나보다는 나이가 많을 것처럼 생긴 금전등록기가 조그만 영수증을 찍어주었다. 렌가테이의 주소는 도쿄도 츄오구 긴자 3-5-16(東京都中央区銀座三丁目5-16)이고, 전화번호는 03-3561-7258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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