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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posted Jun 1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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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바꼭질 >

- 홈페이지에 관해서


父兄처럼 나를 아끼고 야단쳐 주시던 선배님 한 분이 모처럼 전화를 주셨다. “홈페이지가 있대서 들어가 봤다. 재미는 있던데... 거, 일은 안하누?” 불의의 기습을 받고 튀어나온 나의 대답은 이랬다. “저는... 골프 안칩니다.”


그러고 나서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곰곰이 살펴보니, 아닌 게 아니라 마치 좋을 때 모습만 모아놓은 사진첩처럼 마냥 한가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잡하고 힘든 삶의 어두운 국면이나 업무와 관련된 온갖 골치 아픈 일들을 나의 은신처인 이곳에 광고처럼 올려둘 마음은 여전히 들지 않는다.


어쩌다가 나의 산만한 취미생활의 한 자락을 목격하는 분들 중에는 “도대체 언제 이런 걸 할 시간이 있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다. 반쯤은 감탄 섞인 칭찬이고 반쯤은 애정 섞인 질책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런 분들 중 상당수는 나에게 “그 긴 긴 지루한 주말을 골프도 안치고 뭘 하면서 지내냐”고 물었던 분들이었다는 점.


한량처럼 보이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해 주셨던 어머니를 포함하여, “일은 안하냐?”고 질책의 가면을 쓴 걱정을 해 주셨던 선배님의 마음을 헤아려, 한 번쯤 이런 변명을 띄워두는 것이 예의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저의 신조가 “아무것도 하지 말지 말자”는 것임을. 남들한테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그것이 저의 업무인 한 저는 그 일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로 여겨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지냅니다. 물론 그런 노력이 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합니다만, 홈페이지가 자주 업데이트 되는 것은 제가 전반적으로 삶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시험공부를 할 때 여러 과목의 책들을 다 열어놓고 한 장(Chapter)씩 돌아가며 읽어야 공부가 되던 습관처럼, 나는 일정한 기간을 두고 서로 다른 종류의 취미들을 순례할 만한 여유를 가져야 비로소 삶이 윤택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홈페이지를 열어둔 지 2년쯤 지나니 손님이 제법 많이 찾아주고 계신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손님들의 성향에 따라 방문하는 폴더가 다르고, 비교적 일정하다는 점.


한동안 영화에 관한 잡글을 써대다가, 어느날 먼지 쌓인 MTR(Multi-track Recorder)이 눈에 들어왔다. 심호흡을 하고 MTR의 전원을 연결한 뒤로부터 두어달 간은 중독성이 강한 one-man band 놀이(혼자놀기의 진수!)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로부터 “요즘은 홈페이지도 통 업데이트를 안하고, 무슨 일이 있느냐?”는 메일을 받았다. 그는 나의 영화평 말벗이었던 것.


나이 마흔이나 되어 가지고 원맨밴드 놀이에 너무 심취하면 사람이 가벼워 보일 수 있겠다는, 열성팬(어머니)의 지적을 핑계삼아 나의 악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난 주말에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화구들을 펼쳤다. 이제는 최근 들어 Music 란을 자주 찾아주고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던 나의 음악 벗들과 한 번 더 숨바꼭질을 해야 할 때인가 보다.


도화지를 앞에 두면 항상 떠오르는 물음이 있다. “도대체 뭐가 미술인가?” 허접한 유행가를 부르면서도 ‘뭐가 음악인가’라는 의문은 떠오르는 적이 거의 없는데, 제법 격식을 갖춘 화구를 손에 쥐어도 미술은 아리송할 따름이다. 이렇게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물음의 제일 큰 원인은 일군의 현대 미술작가들과 평론가들의 협잡에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림은 3차원을 2차원에 표현하려는 노력 이상의 것이 아니다. 그런 노력(술)이 있고, 그 결과물이 어느 정도 아름답다(미)면 그것은 아마도 미술일 것이다. 내가 그리는 낙서들은 미술이어도 그만이고, 아니어도 그만인 것이긴 하지만.


장기간의 훈련에 스스로를 내던질 수 없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적 아름다움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오늘날의 사진기술은 축복이다. 대중에게 미술을 가장 가까이 보급하는 가장 큰 공로가 기술진보에 있다는 사실은 어느 모로 봐도 역설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는 미술작가와 평론가들은 “현대문명”에 대해 저렇게 러다이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이 편안하게 현대성을 끌어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술은 아직도 ‘모더니티’와 투쟁중이다. 그 투쟁은 장르 종사자의 밥벌이와 아주 무관한 척 하기 때문에 더 봐주기가 불편한, 그런 투쟁이다.


보기에는 그럴싸 하지만 내용(story)이 없는 사진을, 그 업계에서는 “eye candy"라고 부른다. 영양가가 없다는 뜻이겠지. 이걸 ‘눈깔사탕’이라고 번역한다면 의미상으로는 절묘하지만 형태상으로는 너무 천박한 번역이 되려나?


화구들의 먼지를 털어내는 일과 병행하여, 그간 찍어 두었던 사진의 파일들도 정리를 해 보았다. 개중 좀 낫다 싶은 것들도.... 아아, ‘눈깔사탕’에 불과하더라는 말씀이지.


사진을 찍는 일은 김을 굽는 일과 흡사하다. 불이 일정하다면 굽는 시간(셔터속도)을 조절해야 하고, 굽는 시간이 일정하다면 불조절(조리개), 둘 다 일정하다면 김의 두께(필름감도)를 조절해야 하니까. 하지만 사진을 ‘잘’ 찍는 재주를 말하자면 이런 사진기술들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눈 앞에 천지사방으로 펼쳐진 무한대의 공간 중에 어디에다가 네모 테두리(frame)를 쳐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능력이 그 첫째요, 무한에서 무한으로 이어져 흐르는 시간 중 어느 대목을 필름 위에 얼어붙게 만드느냐를 결정하는 능력이 그 둘째다. 앙리 까르띠에 브르송이 ‘결정적 순간’이라고 불렀던 그런 찰라는 분명이 존재하는 것이다.


한 가지 재주를 더 꼽는다면, 그것은 촬영대상에 접근하는 능력이다. 여기서 ‘능력’이란, 풍경사진의 경우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감내한 기다림과 마다하지 않은 발품을 뜻할 수도 있고, 인물사진의 경우 사람 좋게 시장통의 서민들과 어울려 그들의 환한 웃음을 담아낼 수 있는 ‘변죽 좋은’ 성격이 될 수도 있겠다.


김을 적당한 정도로 바삭거리게 구워낼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은, 그 다음의 문제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출과 보정, 브라케팅을 제가 알아서 해 주는 초현대식 카메라에 의존하더라도, 좋은 사진을 찍는 어려움은 그다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도.


영화에 대한 글쓰기는, 여태껏 보았던 영화들 중 제일 좋았던 100편을 골라서 메모 정도 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좀 황당하게 지속되는 사례에 해당한다. 제일 난처한 지적은 ‘글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쉽다고 느껴지게끔 글을 쓰는 재능은 분명, 凡人의 몫이 아닌 게다.


요즘 영화팬들 기준으로 보면 영화를 별로 많이 보지도 않은 주제에 영화에 대한 글쓰기를 한없이 계속할 생각은 없고, 다만 Movies 란의 1번 게시물에 메모해 둔 영화들에 대해서 한 두 페이지씩 메모하는 일이 마무리될 때 까지는 해볼 생각이다. 아주 사적이고 기준도 모호하지만, 가까운 벗들에게 과감히 추천할 수 있는 영화들의 목록이 될 것 같다.


서책을 벗삼아 지내는 수퍼 울트라 막강 선비인 친구 publius와 sand river가 꾸준히 좋은 책들을 보내주어 남십자성 아래서 常夏의 밤을 즐거이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서책을 읽는 데 들이는 품이 영화나 그림보다 크다는 점에서는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그 즐거움도 훨씬 크고 깊다.


아쉬운 점은, 그렇게 좋은 책들도 덮고 나면 뇌리에 남아 있는 정도나 기간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에 비해서 감수성도 용량도 줄어든 두뇌의 탓이겠지만, 어쩌면 그 사이에 늘어난 고집과 선입견도 한 몫 하는 것인지 모른다. 후자에 관해서는 불평할 일만은 아니리라. 나도 내 생각을 가진 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일 터이니.


다만, 읽고 감명을 받은 책들도 어딘가에 메모해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은 든다. 일어났던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 몸에다가 문신으로 새기던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어느 날 갑자기 홈페이지에 Books 폴더가 생기면 그런 메모장이 하나 더 늘어난 것으로 여겨 주시라.


TASCAM MTR로 녹음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아이들의 덜익은 목소리를 노래로 기록해 둔 것이다. 녹음기를 한켠으로 치웠더니 아이들이 둘 다 아쉬워한다. 부르고 싶은 노래가 더 있었다며....


지금 캐나다에 살고 있는, 학교 후배이자 회사 후배이자 밴드 동호회 후배인 SB가 자기 지하실에서 MTR로 녹음한 작품을 보내왔다. 태평양과 대륙을 격하고 있으면서도, 미리 짜기라도 한 듯이 비슷한 짓거리를 하며 소일하는 동료가 있다는 점이 하도 우스워서 혼자 웃었다.


내가 녹음하는 것은 남의 노래의 흉내지만, 그가 하고 있는 것은 자작곡이라는 점에서, 그는 업무능력에서도 그러했듯이 나보다는 한 길 위였다.


그의 음악을 콩이에게 들려주었더니 콩이는 나에게 곱씹어 볼만한 질문을 했다. “이 아저씨 참 잘하시네요. 아빠 홈페이지에는 다른 사람들도 노래나 사진이나 답글을 올릴 수 있나요? 그럴 수 있으면 더 재미있을텐데...”


SB의 자작곡들도, 나에게 홈페이지라는 것을 만들 생각을 하게 해준 후배 red-bean의 멋들어진 사진 홈페이지도, 유무상통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나는 아직도 theBaldface를 사적인 앨범처럼 다루고 싶은 편이어서 이 홈페이지에 낯모르는 사람이 뭔가를 자유롭게 업로드 하도록 만들 생각은 없다. (답글이나 메일 보내기는 언제나, 누구든 환영하지만.)


섬처럼 혼자서 지하실에서 콘서트나 전시회를 펼치고 있는 지인들의 홈페이지들을 소개하는 Links 폴더를 하나 만들게 될 지도 모르겠다. theBaldface의 운영에 관해 이런 저런 조언을 해 주실 분들의 고견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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