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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츄오구(中央区) 츠키지(築地) 와카바(若葉)

posted Jan 2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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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건 어시장에서는 평소보다 강렬한 삶의 활력을 느끼게 되는 걸까. 츠키지(築地) 어시장 앞은 긍정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대략 두 부류의 사람이었으리라. 생선을 파는 사람과 생선을 사는 사람. 도쿄에서 보기 드물게 추운 날이었다. 한낮의 하늘은 단 한 점의 구름도 이고 있지 않았다. 코끝이 시려 목이 움츠리고 어시장 앞을 걷고 있던 나는 생선과 팔지도 사지도 않을 사람이었다. 사무실 동료들을 선동하여 시장통 길가의 라면집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맛있는 라면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가 두 번이나 허탕을 친 터였다. 어시장의 생활 리듬을 따라, 이른 아침부터 점심때까지만 영업을 하는 집인 줄 모르고 저녁 때 갔었기 때문이다. 시장 입구 길목에는 해산물덮밥(海鮮どん), 고기덮밥(牛丼), 돈까츠, 라면 등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영업을 하고 있다. 손님들은 비좁은 매대 앞의 간이 의자에 앉아서 먹거나 도로 쪽에 놓인 간이 탁자에 서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격식 없이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허기가 몰려왔다.

우리가 찾아간 집은 간이의자 세 개를 두고 영업하는 와카바(若葉)라는 라면상점이었다. 와카바는 여린 새 잎이라는 뜻이다. 일본에는 면허를 갓 딴 초보운전자에게는 와카바 표시를 나눠준다. 연두색과 초록색 잎사귀를 형상화한 스티커를 달고 다니는 차량을 보면 다른 차들이 좀 양보를 해 주라는 뜻에서다. 매대 안에서는 관록이 붙은 사장님이 젊은 조수를 데리고 끊임없이 라면을 만들고 있었다. 세 번의 시도만에 드디어 와카바 라면을 먹게 되었지만 좌석이 딱 세 개뿐인 매대에는 빈 자리가 없어 라면을 받아들고 도로쪽 간이탁자에 서서 먹었다. 과연, 상점 이름과는 사뭇 다른 장인의 솜씨가 느껴졌다. 과연 선대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아 50년째 츠키지 시장바닥에서 굳건히 버텨온 맛집 다운 풍모랄까.

와카바의 라면은 간장으로 간을 맞춘 쇼유(醤油)이다. 원래 관서지방이 일찍부터 라면에 돼지뼈를 고와낸 기름진 국물을 사용한 반면, 관동지방의 라면은 담백한 맛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음식이 기름지게 변하는 것이 시류였던 모양인지, 요즘은 도쿄 시내에서 담백한 쇼유라면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돈코츠 라면 일색으로 변해버렸다. 일본어로 기름진 것은 ‘콧테리(こってり)’, 담백한 것은 ‘삿빠리(さっぱり)’하다고 표현한다. 그러니까, 와카바의 라면은 도쿄 본연의 삿빠리 라면의 본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도쿄만에서 나고 자라면서 잔뼈가 굵은 어시장 사람들을 고객으로 삼고 있는 시장통 라면집이 예전 모습의 라면을 끓여내고 있다는 것이 우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국물은 기름진 느낌이 전혀 없었고, 면은 담백한 국물에 어울릴 만큼 얇았다. 돼지고기 고명인 차슈(叉焼)는 라면 맛의 균형을 깨는 일을 삼가겠다는 듯이 적당히 얇은 두께의 것이 세 장 들어 있었다. 도쿄 생활이 나보다 오랜 두 동료들도 이렇게 맛있는 라면은 처음이라며 감탄했다. 그런 평가가 추운 겨울날 한데 서서 후후 불어가며 라면을 먹는 정취 덕을 본 것이었다면, 뭐 그 또한 라면 맛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주말에는 라면을 좋아하는 우리집 ‘구루메(グルメ)’ 둘째 아들을 데리고 한 번 더 와야겠다. 와카바의 주소는 도쿄도 츄오구 츠키지 4-9-1(東京都中央区築地4-9-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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