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lcome Page
    • drawing
    • photos
    • cinema
    • essay
    • poems
    • music
    • toons
    • books
    • mail

긴자(銀座)의 말린 생선(干物) 상점 스즈키 수산(鈴木水産)

posted Nov 12, 20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suzuki3.jpg

 


신기한 물건이나 장소에 관한 한, 나는 비교적 착한 학생이다. 누군가가 어디에 좋은 뭐가 있더라 그러면 직접 가서 봐야 직성이 풀린다. 호기심이 많다고 좋게 말해주면 고맙겠고, 귀가 얇다고 흉을 봐도 어쩔 도리는 없다. 동경에서 주로 내 선생님이 되어준 분은 일본 근무 경력이 긴 조 선배였다. 비록 일 년 밖에 함께 근무하지 못했지만, 내가 일본에 관해 아는 것은 거반 다 그를 통해 배웠다. 그러고 보니 썩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눈 셈이다. 안부 메일을 보내면서, 요즘 일본 음식에 재미가 붙었다고 했더니 다음날 이런 이야기를 담은 답장이 돌아왔다.

“일본에서 생선을 배를 갈라 벌려서 하루 정도 살짝 말린 것을 '이치야보시(一夜干し)'라고 하는데, 이걸 구워서 밥반찬으로 먹으면 아주 맛있어요. 일본생활 초기에는 별로 먹을 기회도 많지 않았는데 지난번 근무 때 맛을 들여서 자주 사다가 집에서 구워 먹었지요. 우리 식 자반은 맛이 짜고 고기 살도 날것보다 굳어 있는데, 일본의 이치야보시는 신기하게도 말린 생선이라는데도 구우면 아주 부드럽고 물기가 많아서 맛이 그만이에요. 왜 말린 것이 구워 놓으면 날생선보다도 더 물기가 많고 부드러울까 늘 궁금했습니다. 한번 연구해 보세요.

이치야보시도 천차만별이어서, 수퍼마켓에서 파는 싼 것에서부터 전문점에서 파는 비싼 것까지 다양합니다. 맛도 정말 천차만별이라 맛있는 이치야보시를 찾기가 의외로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맛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 이치야보시라는게 이렇게나 맛있구나'라고 할 정도의 물건을 취급하는 상점을 찾기는 어렵다는 얘기지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여러 군데서 사 먹어보고 비교해봐야 할 겁니다. 나도 일본생활 초기에는 주로 동네 수퍼마켓에서 싸게 나온 것 위주로 사다 먹었는데, 그러다보니 그 맛이 그리 인상적이지도 않았고, 그래서 자주 찾게 되지도 않았었습니다.

그러던 긴자에 산보를 나가다가 아주 맛있는 이치야보시를 파는 수산물 전문점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이치야보시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었습니다. 긴자 미츠코시 백화점 신관 길 건너편에 가면 스즈키 수산(鈴木水産)이라는 가게가 보일 겁니다. 거기서 이치야보시를 비롯한 각종 수산물을 팔고, 윗층에는 작은 식당도 있어서 싱싱한 생선으로 초밥도 내 줍니다. 스즈키 수산에서 파는 임연수 이치야보시가 정말 맛이 있어요. 고등어도 맛있고.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것도 아니고, 가격대비 맛은 정말 만족도가 높아서 단골로 사다 먹었답니다.”

돈 주고도 배우기 어려운 이런 가르침을 듣고 그냥 지나칠 내가 아니다. 이튿날 퇴근길에 집과는 반대방향인 긴자까지 부랴부랴 나가서 샘플을 몇 가지 사들고 집에 왔고, 그 뒤로 약 일 주일에 걸쳐서 야근 없이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마다 아내에게 성화를 부려서 구운 이치야보시 생선의 맛을 보았다. 과연,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미식가인 조 선배의 장담처럼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생선구이 작품이 나왔다. 서울의 생선은 전부 꼬랑꼬랑 상한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다고 하시던 우리 외할머니처럼 생선의 선도에 대단히 까탈스러운 사람이 아니라면 웬만한 날생선보다 훨씬 낫다고 할 만큼 부드럽고 간도 적당히 잘 배어 있었다.

이리하여 나는 일본 음식의 한 장르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드넓은 히모노(干物)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건어물’이라고 나와 있는 히모노는, 미안하지만, 우리 건어물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우리는 건어물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명태나 멸치, 마른 오징어처럼 딱딱해질 때까지 완전 건조된 어패류를 가리킨다. 유독 고등어 만큼을 자반의 재료로 쓰기 위해 간고등어로 만들지만 건조가 아닌 염장의 개념이고, 코다리나 과메기 같은 반건조 생선도 두드러져 보이는 예외에 해당한다. 청어나 꽁치를 눈을 꿰어 겨울 바닷바람에 말렸다 해서 관목어(貫目魚)라 부르던 이름이 변형되었다는 과메기도 내가 무척 좋아하는 맛있는 식재료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꾸득꾸득하게 될 때까지 말린 것이어서 일본의 일반적인 히모노보다는 훨씬 완전건조에 가깝다.

요즘은 우리나라 내륙 도회지역에서도 생선을 즐기는 방식이 다양해져서 반건조 생선이 인기를 끌고 있긴 하다. 바닷가인 내 고향 부산에서는 예전부터도 가자미(서대)나 넙치 같은 생선은 각자 집에서 딱딱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말려서 반찬으로 쓰곤 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의 생선은 날생선-반건조-건어물 정도로만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명태 정도만 유난스레 노가리, 생태, 코다리, 황태, 동태, 춘태, 북어 등 화려한 분류의 호사를 누린다.

일본의 히모노의 경우는 좀 더 너른 분류의 개념 위에 서 있다. 우리의 건어물에 상응하는 완전건조 식품은 히모노라고 부르지 않고 칸부츠(乾物)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어물이 아닌 말린 음식도 포함되니까 역시 개념상 차이가 있다. 히모노의 종류 중 스보시(素干し)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식 건어물에 해당된다. 일반적으로 일본인이 먹는 완전건조 어물은 오징어 정도인데, 날 오징어를 이카(烏賊)라고 부르는 반면, 말린 것은 스루메(鯣)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부른다.

히모노는 생선의 등이나 배를 갈라 펼쳐놓고 말려서 히라키보시(開き干し)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멸치 따위는 내장을 따로 제거하지 않고 통채로 말려서 마루보시(丸干し)라고 부른다. 적어도 한 시간 이상 태양의 직사광선 아래서 말린 어물은 텐비보시(天日干し)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본의 소매시장에서 유통되는 히모노 중에는 이렇게까지는 말리지 않은 이치야보시(一夜干し)가 오히려 가장 일반적이다. 하룻밤 정도 살짝 말렸다는 뜻으로, 날생선 못지않게 부드러워서 나마보시(生干し) 또는 와카보시(若干し)라고도 부른다.

고등어 따위를 조미액에 절여서 말리는 것은 쵸미보시(調味干し), 그중에서도 미림을 섞은 액에 담그면 미린보시(味醂干し)가 된다. 과메기나 황태처럼 겨울바람에 건조시키면 칸푸보시(寒風干し)가 되는데, 주로 연어를 이렇게 말린다. 그 밖에도 간을 해서 말린 것을 시오보시(塩干し), 살짝 구워서 수분을 없앤 다음 말린 것을 야키보시(焼き干し), 동태처럼 얼려서 말린 것을 토오보시(凍干し), 종이에 싼 다음 재로 수분을 흡수한 것을 하이보시(灰干し), 삶은 다음 말린 것을 니보시(煮干し) 등으로 부른다. 종류가 참 많기도 하다.

이치야보시가 말린 생선인데도 부드럽고 물기가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 아주 살짝만 말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맛은 좋지만 여전히 상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굳이 말리는 보람이 크지 않다. 가정에서도 냉장고가 아닌 냉동고에 보관해야 한다. 왜 일본에서는 이렇게 ‘덜 말린 생선’이 너르고 고르게 유통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일본은 섬나라이다 보니 생선이 늘 풍부했을 뿐 아니라 무려 1200년 동안이나 육식을 삼가느라 생선을 가장 맛있는 상태로 ‘잘’ 먹는 일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치야보시 같은 물건이 큰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냉장․냉동 유통기술, 뛰어나고 신뢰성이 있는 포장기술, 맛을 까다롭게 구분하면서 생선을 가장 맛있는 상태로 먹고 싶어 하는 다수의 예민한 소비자, 기를 쓰고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애쓰면서 그것이 장사의 정도라고 생각하는 도소매업자 등 삼박자가 맞아야 할 것 같다. 냉장기술이야 요즘 세상에 어느 나라를 가건 엇비슷한 수준이겠지만, 포장의 섬세함, 예민한 소비자, 투철한 서비스 정신 등은 일본의 주특기다. 일본 만큼 그것이 발달한 나라는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일본만의’ 장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러니 나도 일본을 떠나고 나면 우리 선배처럼 스즈키 수산의 이치야보시를 그리워할 공산이 크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73 Joe Mukuna (Artist) file 2015.06.21 681 15
72 [라면] 라면 이야기 2012.01.08 732 23
71 [라면] 세타가야구(世田谷区) 아유라멘(鮎ラーメン) file 2012.01.08 1262 26
70 [라면] 시부야구(渋谷区) 아후리(阿夫り) file 2012.01.08 816 24
69 [라면] 신주쿠구(新宿区) 태양의 토마토면(太陽のトマト麺) file 2012.01.09 840 17
68 [라면] 오오타구(大田区) 하네다(羽田) 사토우(中華そば さとう) file 2012.01.28 648 25
67 [라면] 츄오구(中央区) 츠키지(築地) 와카바(若葉) file 2012.01.27 1009 18
66 通美封南이라는 괴담 2008.11.20 845 58
65 골프, 허리, 그리고 반성 2017.06.25 604 5
64 긴자(銀座) 미즈코시(三越) 백화점 2층 케익 가게 라뒤레 file 2011.11.15 1500 33
» 긴자(銀座)의 말린 생선(干物) 상점 스즈키 수산(鈴木水産) file 2011.11.12 1632 25
62 네즈(根津) 꼬치튀김가게(串揚げ処) 한테이(はん亭) file 2011.09.25 1479 21
61 니이가타현(新潟県)의 먹거리 file 2012.03.20 1129 91
60 닛포리(日暮里)의 중화국수집 바조쿠(馬賊) file 2011.09.25 1371 19
59 닝교쵸(人形町)의 스키야키 전문점 이마한(今半) file 2011.10.31 1179 21
58 다투면서 성장하는 이웃들 2008.05.15 1121 58
57 동부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르완다 2015.11.08 351 10
56 동일본 대지진 2011.03.13 667 24
55 동일본 대지진 2주 후 2011.03.29 734 23
54 르완다, 우리에게서 자국의 미래상을 찾은 나라 1 file 2015.11.19 463 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