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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이가타현(新潟県)의 먹거리

posted Mar 2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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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눈의 지방(雪国)이었다.” 노벨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의 소설 유키구니(雪国)는 이렇게 시작한다. 대학 시절에 절친한 친구와 함께 그의 춘부장(椿府丈)께 일어를 사사받으면서, 내가 처음 정색을 하고 접한 일본이 바로 그 문장이었다. 언감생심 도쿄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부터 내 마음 속에는 꼭 한 번 칸에츠(関越) 터널 저 편의 눈 덮인 풍경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2012년 2월 어머니께서 도쿄에 다니러 오셨을 때, 눈길에 괜찮겠냐는 주변의 걱정을 무릅쓰고 가족들과 함께 하룻밤 코스로 에치고(越後) 유자와(湯沢)를 다녀왔다. 소설 유키구니의 무대였던 곳이다. 올해 따라 니이가타현에 눈이 많이 내려 사상자도 발생했다는 점과, 그곳의 눈은 2-3월이 절정이라는 점 등을 감안해서, 무려 열일곱 살이나 먹은 우리 자동차는 포기하고, 스노우 타이어가 장착된 렌트카를 빌렸다. 칸에츠 고속도로는 서쪽으로 달릴수록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나 싶더니,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거짓말처럼 터널 반대편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었고, 길 양 옆으로는 어른 키가 넘는 높이로 눈이 쌓여 있었다. 설국이었다.

예전부터, 태평양을 면하고 있는 일본의 동해안 지역은 ‘오모테니혼(表日本)’, 즉 일본의 앞면으로, 서해안 지역은 ‘우라니혼(裏日本)’, 즉 일본의 뒷면이라고 일컬었다. 일본 중부지방의 산악은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래서 혼슈의 서해안 지역은 산세가 가파르고, 대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겨울이 혹독하며, 다른 지역과의 교통이 불편하다. 그러므로 ‘우라니혼’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이고 모멸적인 함의를 동반하게 되었다. 시골집, 폭설, 계단식 논, 단선철로, 반딧불 등이 우라니혼의 이미지다. 반면에, 오모테니혼은 큐슈 의 현해탄 연안 - 산요지방(山陽地方) - 킨키지방(近畿地方) - 간토(関東)남부지역에 이르는 메갈로 폴리스의 벨트를 이룬다. 이런 대비에서 오는 차별적인 느낌 때문에 60년대부터 NHK는 ‘우라니혼’이라는 표현 자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강원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에치고에 들어서면서 우라니혼이라는 표현을 떠올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을 가진 우리 지도를 펼쳐놓고 동서를 앞뒤로 분간한다면 바다 건너 중국을 바라보는 서쪽의 평야지대를 ‘앞’이라고 부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이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 의식, 또는 무의식 속에서 한일 양국은 내내 서로 등을 돌린 자세로 지내왔던 것이다. 만약 한국의 곡창지대가 동해안에 밀집해 있고, 일본의 대도시들이 서해안 쪽으로 발달했었다면, 한일관계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발전 경로를 걷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는 것보다 훨씬 연약한 자연의 부속물이다.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먹고 지내는지는 거의 전적으로 자연환경에 의존한다. 니이가타현에는 눈이 많이 온다. 눈이 많이 오니, 물이 좋다. 물이 좋으니, 쌀이 좋다. 물이 좋고 쌀이 좋으니, 자연히 좋은 술을 만들어낸다. 이곳은 일본 전체에서 가장 이름난 쌀과 니혼슈(日本酒)의 산지다.

■ 코시히카리(越光) 쌀

에치고(越後)는 ‘산을 넘은 직후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동쪽에서 니이가타현으로 오려면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서쪽에서 다가오는 눈구름은 이 산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산맥의 서쪽에 번번히 큰 눈을 다 부려놓는 것이다. 옛날에는 후쿠이에서 니이가타를 거쳐 야마가타까지 이르는 산악지방을 ‘코시노쿠니(越国)’라고 불렀다. 그래서 ‘코시(越)’자를 달고 있는 음식은 이 지방의 산물이다. ‘코시노칸바이(越の寒梅)’, ‘코시노사사메유키(越の細雪)’ 같은 술 이름도 그렇지만, 더 유명한 것은 ‘고시히카리(越光)’라는 쌀의 품종이다.

코시히카리는 1956년에 후쿠이현(福井県) 농업시험장에서 두 가지 품종을 결합해 탄생시킨 히트작품이다. 쌀알이 맑고 투명하며 맛이 좋아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종이 되었다. 생산지에 따라 맛은 조금씩 달라진다고 하는데, 니이가타 우오누마(魚沼)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이 단연 으뜸이다. 물론, 당연히 가격도 으뜸가게 높다. 우리가 에치고 식료품점에 들러 큰맘 먹고 산 우오누마 쌀은 2kg 작은 봉지가 무려 1890엔이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그 쌀로 밥을 지어 먹어 본 식후감은, 정당한 가격을 지불했다는 느낌이었다. 코시히카리로 지은 밥은 식어도 좀처럼 딱딱하게 굳지 않는다. 일본에서 모든 편의점이 냉장고에 온갖 도시락을 진열해두고 판매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갓 지은 밥을 먹는다면 작은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도시락으로 유통될 때 쌀의 품질 차이에서 생겨나는 차이는 크다.

■ 일본술(日本酒)

일어로 사케(酒), 또는 오사케(お酒)는 모든 술의 총칭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냥 사케라고 부르는 청주를 일본에서 마시려면 ‘니혼슈(日本酒)’를 주문해야 한다. 메뉴를 보면 어지럽다. 일본인들끼리도 읽기 버거워하는 한자 이름은 그렇다 치고, 원료 및 제조법에 따라 쥰마이쥬(純米酒), 긴죠쥬(吟醸酒), 혼죠조쥬(本醸造酒) 등의 분류가 있고, 맛에 따라 아마구치(甘口)니 카라구치(辛口)니 하는 구분도 사용한다. 자, 갈 길이 머니까 요점 정리다.

우선 정미비율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술의 레이블에는 ‘精米步合’이라고 표시된 수치다. 쌀을 추수하면 껍질을 벗기기 위해 도정 작업을 거치는데, 가령 정미비율이 70%이면 30%를 깎아서 버리고 70%만 남기는 것이다. 이것을 7부 도정이라고도 부른다. 쌀의 표면에 있는 성분들이 효모를 증식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도정을 하지 않고 술을 만들면 술맛이 변하고 숙취를 일으킨다. 그래서 많이 깎아낸 쌀로 만들수록 순하고 고급스러운 술이 만들어진다. 대략 쌀 알맹이의 30%만 남기는 3부 도정이 한계라고 알려져 있다. 나머지 7할은 버린다는 뜻이니 낭비가 심한 사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가장 흔한 후츠우슈(普通酒)라는 것은 쌀로 만든 원액에 알코올, 당분, 산미료, 화학조미료, 물 등을 섞어서 만드는, 그야말로 보통 술을 말한다. 이렇게 술을 만들면 쌀로만 만들 때보다 세 배 이상 양을 늘일 수 있다고 한다.

혼죠조쥬(本醸造酒)는 정미비율 70% 이하 쌀과 물에 양조 알코올을 첨가하여 만든 술이다. 준마이슈에 주정을 섞어 도수를 높인 다음 다시 물을 섞어 양을 늘인 것인데, 첨가하는 양조 알코올은 쌀 1톤당 120리터 미만으로 법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에 비해, 쥰마이쥬(純米酒)는 정미비율 70% 이하의 쌀과 누룩과 물만을 사용해서 만든 술이다.

긴죠쥬(吟醸酒)는 정미비율 60% 이하의 쌀을 사용하고, 과일향을 떠올리게 하는 초산이나 카프로산 등을 함유한 주정(양조용 알코올)을 첨가한다. 양조용 알코올을 첨가하지 않은 것은 쥰마이긴죠주(純米吟醸酒)라고 부른다.

다이긴죠쥬(大吟醸酒)는 정미비율 50% 이하의 쌀을 사용하고 긴죠쥬보다 더 저온에서 장기 발효시킨 술이다. 소량의 양조 알코올을 첨가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알코올을 첨가하지 않은 것을 특별히 쥰마이다이긴죠주(純米大吟醸酒)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최상급의 니혼슈다.

맛으로 분류하면 달콤한 뒷맛이 남는 것을 ‘아마구치(甘口)’라고 하고, 드라이한 것을 ‘카라구치(辛口)’라고 한다. 니혼슈의 레이블에는 + 또는 - 부호와 숫자가 적혀 있다. 플러스 수치가 높을수록 강한 카라구치이고, 마이너스 수치가 클수록 달콤한 풍미(단 맛과는 다르다)가 강해진다. 아마이건, 카라이건, 니혼슈는 확실히 맛이 너무 진하지 않은 음식과 더 잘 어울린다. 그렇다면 니혼슈는 데워 먹는 게 좋을까? 차게 먹는 게 좋을까?

정답은 자기가 좋아하는 식으로 먹는다는 것이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고급 술을 데워먹는 것은 마치 최고급 위스키로 폭탄주를 만드는 것처럼 ‘아까운 짓’으로 인식되고 있다. 술을 데우면 섬세한 풍미가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츠칸(熱燗)’이라고 뜨겁게 중탕을 해서 마시는 니혼슈는 값이 너무 비싸지 않은 후츠우슈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차가운 술이 언제나 최고인 것도 아니다. 한겨울에 불에 그을린 복어 지느러미를 넣고 뜨겁게 중탕한 ‘히레자케(鰭酒)’를 마시는 맛도 일품이다. 해가 저물면 바람이 아직은 쌀쌀한 봄날 저녁에는 체온과 비슷한 정도로만 데운 ‘누루칸(温燗)’ 니혼슈와 함께 보내는 것도 별미다. 너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치비리치비리(홀짝홀짝)’ 한기를 몰아내다 보면 술에 취한 건지 봄기운에 취한 건지 모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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