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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허리, 그리고 반성

posted Jun 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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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세브란스병원의 65병동 입원실. 예전에 남의 병문안을 왔을 때보다 병실은 더 비좁게 느껴졌다. 어제 입원해서 하룻밤을 났지만 병실은 여전히 낯설었다. 보호자로 함께 입원한 아내도 그런 눈치였다. 오실 필요 없대도 이른 아침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오신 어머니는 나보다 더 초조해 하셨다. "미안하다 아들. 엄마가 낫게 해주질 못해서." 나도 아비가 되어보고서야 깨달았다. 부모의 몫은 해줄 걸 다 주고도 미안해 하는 것이다. 낯선 남자 간호사가 휠체어를 몰고 들어왔다. "수술실로 모실께요." 이 초대는 내게 날아온 청구서다.


오십에 깨달은 천명이라고까지 할 거야 없겠지. 어려서부터 운동이 싫었다. 달리기나 수영은 곧잘 했으니 체격적으로 크게 모자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구기종목에서는 언제나 몸치였다. 축구를 하면 공을 몰아볼 기회가 없었고 테니스를 하면 나와 편먹은 팀이 언제나 패했다. 분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래도 친구들은 나를 살갑게 대했고 나는 내가 잘하거나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걸로 족했다.


그림을 그렸고 시를 썼고 기타를 쳤고 사진을 찍었다. 수채화를 그리면 유화를 그려보고 싶었고 서예를 해보고 싶었다. 꼭 해보고 싶어서 사모은 악기들이 이사에 지장을 주는 지경이었다. 통기타, 클래식기타, 전자기타, 베이스기타, 전자더블베이스, 우쿠렐레, 벤죠, 만돌린, 봉고, 카혼, 바이올린, 첼로, 오카리나, 리코더, 하모니카, 플륫, 클라리넷, 트럼펫, 색소폰, 전자피아노, 신디사이저... 드럼을 사들고 들어갔을 땐 정말 쫓겨날뻔 했다.


내가 입사하던 무렵 해외 지사에서는 누구나 골프를 쳤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십여년 이상 나는 혼자 골프를 안 치는 직원 노릇을 했다. 구박도 받고 지탄도 받았다. 쓰시던 골프채 일습을 건네주며 권유하시던 선배도 계셨다. 군에서 강제로 하던 축구처럼 골프가 싫었던 건 아니다. 산책도 겸해 사람들과 사귀는 좋은 운동 같았다. 다만, 이놈의 운동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들었다. 매주 주말을 홀라당 바치기에는 간절히 해보고 싶은 다른 일들이 너무 많았다.


따지고 보면 내가 버킷리스트의 일들을 제법 부지런히 할 수 있었던 것도 골프 덕분일지 모른다. 선후배들의 정다운 초대를 마다하고 필드로 나가지 않은 시간을 귀히 쓰지 않는다면 나는 자발적 왕따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트럼펫과 색소폰 연습을 했고 드럼을 배웠다. 8트랙 녹음기를 사서 혼자 원맨밴드 음반을 녹음했다. (이거야말로 혼자 놀기의 진수였다.) 영화 감상문과 여행기를 끄적였고 키신저의 저서를 번역했고 그림을 그렸다. 20년 동안 써모은 글은 여덟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제법 공들여 붓글씨 연급을 한 것이 가장 최근의 일이었다. 긴긴 주말동안 골프도 안 치고 대체 뭐하냐고 묻던 분이 당신은 도대체 무슨 시간에 책을 여러 권 쓰냐고 물을 때 답하기가 제일 난감했다.


맹세코 나는 골프 팬들을 경멸한 적이 없다. 부럽기조차 했다. 단지 내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고백컨대, 나는 내가 골프를 치는 것보다 시간을 더 귀하고 소중하게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자부심은 키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새로 출간한 책을 어루만지면서, 개중 나은 붓글씨 연습지를 골라 족자로 만들면서, 녹음한 노래들을 들으면서, 후배들과 음악연주 공연을 벌이면서 느끼던 뿌듯함 속에는 그런 알량한 자만심이 분명 함유되어 있었다.


문제는 내가 즐기던 취미생활이 주로 의자에 장시간 한 자세로 앉아서 하는 일이었다는 데 있었다. 일도 앉아서 하고 놀이도 앉아서 한 덕분에 불쌍한 내 척추의 추간판들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제자리를 뛰쳐나온 것이었다. 아프리카에 근무하면서 지팡이 신세를 지기 시작했다. 본부에 보임받아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오히려 통증은 악화되어 수술밖에 해결방법이 없는 지경이 되었다.


신발과 안경을 입원실에 벗어두고 휠체어에 올랐다. 승강기에 타고 올려다본 건강한 사람들이 일순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보였다. 자동으로 열리는 수술실 철문 앞에서 어머니와 아내와 헤어졌다. 서너 시간 걸린다니 병실에 좀 누워서 편히 쉬시라고 했다. 흰 타일이 깔린 수술대기실에서는 밖과는 좀 다른 소독약 냄새가 났다. 침상으로 옮겨드리겠다기에 그건 내가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옮겨 누웠다. 상냥한 남자 간호사는 환자복 웃도리를 벗게 하더니 시트로 몸을 감싸주었다. 맥박과 심전도 측정을 위한 전선들을 몸에 붙였다. 마취과 의사가 와서 간단한 설명을 하고 동의서를 받아갔다. 마취에서 못깨어날 수도 있는 거구나. 만약에 그렇게 되면 친구들이 조의금 대신 내 시집 한 권 출간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서 한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보냈더니 금세 답문자가 왔다. "그깟 시집, 죽기만 해준다면 백권도 내주마."


수술대기실 침대에 누워 천정을 올려다보니 거기 성경구절이 쓰여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누군가가 또 다가왔다. "저는 병원 목사입니다. 괜찮으시면 수술 들어가시는 환자분들께는 기도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침상에 누운 채 목사님의 기도를 받았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며 간호사가 침대를 밀고 갔다. 영화에서 숱하게 보던 것처럼, 천정의 무심한 형광등이 달리는 차창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믿을 수 없을 만치 상투적인 광경이었다. 골프를 즐기던 선배들이 떠올랐다. 만약 나도 뉴욕에서, 자카르타에서 골프채를 들고 그분들과 어울렸다면 시시한 책 몇 권은 출간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허리는 지금보다 건강했겠다. 공짜 점심이란 없다더니. 내가 방치하고 돌보지 않은 건강이, 내 몸이 내게 엄청나게 비싼 청구서를 들이민 것이다. 공짜인줄 알고 마구 먹었던 고급식당에서 계산서를 받는 느낌이 아마 이러하겠다.


수술실은 대기실보다 짙은 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다. 커다란 수술조명 아래 수술대가 차려져 있었다. 
"저기 엎드려서 수술을 받나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옮겨 누울까요?"
"주무시면 저희가 옮겨 드립니다."
축 늘어진 내 무거운 몸을 몇 사람이 낑낑대고 엎어 옮기는 모습은 상상하기 즐거운 그림은 아니었다. 심호흡을 하라며 호흡기를 얼굴에 대 주었다. 팔에 꽂아둔 튜브로도 차가운 액체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깨어보니 다시 대기실이다. 으슬으슬 추웠다. 수술한 자리가 찌르듯 아팠다. 맥을 재는 기계의 신호음이 삑삑 시끄러웠다. 이곳에 계속 근무하는 사람들도 여간해서는 익숙해질 수 없는 소음이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내게는 짜증스런 소음이지만 의사와 간호사들에게는 생명의 위중함을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음이라는 사실. 다행히도 내 시집 발간은 훗날을 기약하게 되었다. 요즈음 내가 확신을 가지고 하고 있는 일 중에 또 무엇이 훗날 어마어마한 청구서를 내밀까? 그 비용을 미리 알더라도 나는 그 일을 그대로 할 것인가? 불쑥, 어머니와 아내의 걱정스런 얼굴이 구르고 있던 침상 위로 나타났다.


***


사람의 척추는 서로 잘 연결된 서른 세 조각의 작은 뼈들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와 연결된 제일 위의 일곱개가 목뼈(경추), 그 다음 열두 개가 등뼈(흉추), 그 다음 다섯 개가 허리뼈(요추)다. 나머지는 자라면서 각각 한 덩어리로 고정되는 엉치뼈(천추)와 꼬리뼈(미추)다.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넘어선 가장 큰 장벽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유로워진 두 팔로 도구를 사용하게 되고, 뇌의 용적이 커지고, 발성기관이 언어를 발음하게 된 것도 직립보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제는, 다른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척추도 직립보행을 위해 디자인된 기관이 아니라는 데 있다.


거북목을 하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금세기의 인류는 목뼈에도 종종 문제가 생기지만, 직종을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장년기 이후가 되면 요통에 시달린다. 바깥쪽으로 둥글게 휘어진 흉추와 달리 안쪽으로 굽은 요추는 체중의 대부분을 부담할뿐 아니라 자동차의 완충장치(흔히들 "쇼바"라는 국적불명의 별명으로 부르는)처럼 몸이 받는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가장 흔히 일어나는 문제는 척추뼈들 사이의 완충과 윤활 역할을 맡고 있는 추간판이 틈새로 삐져 나오는 증상이다. 물렁물렁한 젤 모양의 수핵을 두터운 섬유륜이 감싸고 있는 추간판은 척추 원반 또는 척추 디스크라고도 부른다.


마치 지하의 파이프 속에 매설된 전선처럼 척추의 안팎으로는 가장 중요한 신경다발도 붙어 있기 때문에 삐져나온 추간판이 신경을 누르면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게 된다. 영어로는 herniated disc라고 하는데, 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디스크'라고 부르고,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헤르니아'라고 부른다. 사실 탈장도 헤르니아이기 때문에 추간판 탈출증을 헤르니아라고만 부르는 건 어색한데, 따지고 보면 디스크라고 줄여 부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어색하다.


수술을 받게 되기까지 '디스크' 증세로 고생하면서 전에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장년기의 사람들을 무작위로 조사해보면 통증을 호소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적잖이 추간판 탈출증을 발견할 수 있다든지, 상당수의 정형외과 전문의들이 최근 우리나라에서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개인병원의 레이저 치료 등 비수술형 "시술"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술로 경계하고 있다든지, 수술에도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든지 하는 등등의, 잡스럽지만 요긴한 지식이다.


지식이라고 부르기 어렵지만 어쨌든 알게 된 것들 중에는 병가를 얻기 위한 절차 같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 나를 압도한 것은 얼마나 많은 주변 사람들이 요통으로 고통받고 있었느냐 하는 사실이었다. 디스크의 일반적인 원인은 따로 없다. 수술을 받고 내 옆 침상에 입원해 있던 친절한 모씨처럼 불운하게 교통사고 따위를 당한 게 아니라면, 요통의 원인은 직립보행을 시작한 인간의 진화과정에 있고, 지구의 중력에 있고, 당신의 체중에 있을 따름이다.


동병상련이라는 네 글자는 사전 속에만 존재하는 비실비실한 관념이 아니었다. 아프리카에서 얻은 요통이 서울에 와서도 치료되지 않고 도리어 악화되어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하는 지경이 되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왜 지팡이를 짚는지 궁금해 했다. 놀라운 것은 그중의 다수가 내게 과거에 자신을 괴롭혔거나 현재 안고 있는 요통에 관해 토로하더라는 점이다. 세상이 이토록 많은 요통환자로 넘쳐나고 있었다니! 그 중 적지않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비방을 알려주기도 했고, 몇 가지는 열심히 따라해 보기도 했다. 마치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 내지는 열혈종교의 포교대상이 된 것 같은 경험을 몇 달간 했다. 이 지면을 빌어, 그 모든 분들의 자상한 '나눔'에 깊이 감사드린다.


요통을 앓았던 모든 분들처럼, 이제 나도 나만의 결론을 가지게 되었다. 경험적이고, 따라서 (모든 경험적 결론이 그러하듯) 잠정적인 결론이지만 고통을 겪는 동료 인류와 나누고 싶은 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목이나 허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면, 어금니처럼 더이상 재생되지 않는 신체 중요 부품 중 어딘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경고이니 필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 감량을 한다든지 자세를 바꾼다든지 척추에 무리를 주는 활동을 삼간다든지.
2. 지금까지 인류가 알고 있는 디스크 치료법은 대증적인 것 뿐이다. 다시 말해 나온 디스크를 들여보내는 방법은 없다.
3. 그러나 인간의 몸은 놀라우리만치 적응적이어서, 추간판이 탈출한 상태에서도 시간이 흐르면 많은 경우 통증은 완화된다. 잘 쉬고 있으면 삐져나온 추간판이 조금 작아지기도 하고 눌렸던 신경이 일종의 우회로를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기가 어렵다면 주변에서 추천하는 갖은 비방을 시험해 봐도 좋다. 특히 침은 통증 완화에는 도움이 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4. 병원에서 시행하는 치료로는 견인치료 및 도수치료를 포함하는 물리치료, 신경주사 등이 있고, 그다음은 외과적 수술이다. 내가 정형외과 의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디스크 수술은 절대 받지 말라고 하던데요." 의사가 내게 말했다. "그 사람들 중 몇명이나 수술을 받아보고 하는 얘긴지 도로 가서 한번 좀 물어보십시오."
5. 어떤 외과적 수술도 추간판이 탈출한 척추를 그 이전 상태로 돌려놓을 수는 없기 때문에, 덮어놓고 수술부터 권하는 의사는 없다. 역으로, 대학병원 협진 결과가 수술 권유라면 수용하는 게 맞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요통에 시달리는 많은 동료들이 부디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위의 1번에서, 아니면 적어도 3번에서 더 나빠지지 않기를 기원한다. 그 전에 지내던 방식대로 계속 지낸다면 더 나빠진다는 점은 확실히 증언할 수 있다. 어쩐지 금연광고 출연자가 된 듯한 기분이지만.


*****


1.


수술이라는 말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반어적이다. 수술방은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서양의학의 현주소는 외과수술의 발명과 페니실린의 발견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대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술은 현대의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거기서 죽음의 그늘을 보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생일에 외로움을 더 느끼는 까닭은 그 날이 이 땅에서의 생명이 유한함을 아프게 일깨우기 때문이다.


타인이 가하는 잠, 전신마취는 확률로 설명되는 위험성과 무관하게 죽음의 예행연습을 연상시킨다. 나는 수면 내시경을 할 때처럼 담담하게 수술실로 가고 싶었다. 시계랑 전화기랑 안경을 풀어놓을 때만 해도 무덤덤했는데, 신발을 벗어두고 탈것에 태워지면서 마음속 뭔가가 후룩 소리를 내며 허물어졌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나를 빚으신 하나님을 뵈러 갈 때와 비슷한 무방비 태세였다. 어느날 예고없이 안경 신발 벗어두고 이 땅을 떠날 때, 나는 하나님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병상에 누워, 나는 그 짧은 당혹감을 곱씹는다.


2.


외과의들은 용맹하고 유능한 투사들이다. 그들에게는 전장에서 적과 싸워본 군인에게서 느껴질법한 저돌성이 있다. 그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이승으로 데려고 돌아온 모진 목숨들 가운데는 자신의 신 앞에 당당히 설 준비가 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리라. 잃었으면 인류공동체에 큰일이었을 사람만이 아니라 장차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를 사람도 의사는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니, 그들에게는 그런 구분을 고민할 여유가 없다. 사치스런 번민을 할 여력까지, 그들은 수술에 쏟아부어야 한다.


실은 그것은 모든 분야의 프로페셔널의 세계에 요구되는 행동수칙이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 그런데도 수술집도의의 직업의식이 유난히 돋보이는 이유는 역시 그들이 다루는 일감이 생명이라는 데 있다. 수술실에서 나의 신체 신호들을 점검하던 수련의에게 말을 걸었다.


"저만 해도 서너시간이 걸리는 수술이라고 하던데 교수님들은 하루에 수술을 몇 건이나 하시나요?"


"오래 걸리는 수술은 열 시간도 넘으니까 그런 날은 한 번밖에 못하시구요, 간단한 수술들은 하루에 몇 개도 할 수 있죠. 상황에 따라 달라요."


"어이구, 체력 관리를 잘 하셔야겠네요. 외과의사들은."


"네... 그렇긴 한데, 막상 수술방에 들어가서 수술이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힘든 줄은 몰라요. 마치고 보면 세시간도 휙 흘러가 있고, 어느새 일고여덟 시간도 흘러가 있고..."


수술실에 탈의하고 누워 삶과 죽음의 의미 같은 걸 음미하다가 긴장이나 좀 풀어볼까 하고 던져본 물음이었는데, 돌아온 대답에 심경이 복잡해졌다. 과연 나는 시간의 흐름을 잊을 만큼 업무에 몰두해본 적이 얼마나 자주 있었나.


3.


수술실에서 사람의 육신은 피와 뼈와 살로 환원되지만 그의 정신은 잠시나마 형이상의 세계를 맴돈다. 하지만 수술 환자들과 그들의 간병인들이 모인 입원실은 징그러울만큼 속세의 축도다. 어떤 나라의 문화수준, 또는 공동체정신의 민낯을 보고 싶다면 병문안을 다녀볼 일이다. 간호사들은 바쁘지만 본분을 다하려 애쓰고 환자들은 지쳐 있어 활동력이 낮다. 그래서 입원실 풍속도의 주연은 간병인과 면회객들 차지다.


서로 살갑게 도와주기도 하지만, 역시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가장 이질적인 집단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병실과 복도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의 볼륨, 이어폰 없이 시청하는 TV 드라마의 취향, 병실에 풍기는 외부음식의 냄새, 새벽에도 기탄없이 전화나 알람벨을 울리는 용맹함, 옆 침상의 기색을 살피지 않고 전등을 켜는 기세가 대체로 그분들 몫이다. 병원에서 정해둔 면회시간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간병인들 중에는 배우자나 직계가족 비율도 제법 높고, 고용된 전문간병인들도 많다. 이들 중에는 오랜 경험을 가진 내국인도 있지만 우리말이 서툰 외국인도 눈에 많이 띈다. 이분들 중에서 옆사람에게 민폐를 자신있게 끼치는 분들은 후자보다는 전자로 갈수록 비율이 높아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문화수준을 운운할 필요는 없었으리라.


새벽에도 진찰이나 응급조치가 필요한 환자들이 있기 때문에, 다인실 병동에서 잠은 잘 수 있을 때, 잘 수 있는만큼 자야 한다. 옆 침상의 민폐에 밤잠을 설치고 낮잠이라도 자볼라치면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러 찾아주는 고마운 손님들을 버릇없는 자세로 드러누워 맞이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병실에서 이틀 이상 지내면 시간감각을 잃는다. 이곳은 주중도 주말도 없고 요일도 일과도 없다. 낮시간에 잠이 들었다 깨면 벌써 몇 주씩 여기 머물었다는 착각마저 든다. 아직 바깥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안되었음을 알려주는 건 끙 소리 내며 돌아누울 때 느껴지는 수술부위의 통증.


결국 병원에서의 수술체험은 기묘한 조합이 되고 만다. 그것은 하나님 앞의 벗은 몸을 깨닫고 종말론적 부끄럼에 떨다가, 내몸을 열어젖히는 의사의 직업의식을 찬탄하기도 하고, 결국 단잠을 깨우는 옆 병상의 전화벨 소리에 혀를 차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초특급 롤러코스터다. 이 몽환적 여정에서 내가 어디쯤 있는지 확인하려고, 나는 이 밤도 글을 쓴다. 양쪽에서 영감님 두 분이 코를 고신다. 잠시후 나도 저 화려한 연주에 동참할 것이다. 며칠째 내 시중 드느라 고생하는 아내가 간이침상에서 뒤척인다.


*******


P.S.


뭔가를 쓰는 일은 그 글을 읽을 다른 누구에게보다 쓰는 사람에게 유익하다. 생각을 추스리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그것이 의미있는 의사소통으로 이어지면 글쓰기는 비로소 유익함을 벗어나 즐거움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과도하게 감상적이었을 것이 틀림없는 나의 수술 체험기에 유쾌한 답글로 응대해준 친구가 있었다.


1. 절대 수술은 받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 몇명이나 수술을 받아보고 하는 얘긴지 가서 좀 물어보라던 의사의 말에 빗대어: 


- 어떤 성형미인이 "자연미인 좋다는 남자 중에 자연미인 몇명이나 보고 하는 이야기인지 물어보라"고 한 적이 있음.


2. 지팡이를 짚고 다녀보니 많은 이들이 요통을 고백하더라는 경험담에 관해:


- 아픈 것만 그런 게 아니라, 불륜이나 자식의 비행 등 그런 것 털어놓으면 사람들이 '나도', '나도' 그런다. 사람이 다 그러고 사는 건가봐.


3. 다인병실에서 자기들 침실에서처럼 새벽에도 커다란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을 겪으며 무척 당황스러웠고 화도 났다. '민도'라는 표현을 쓴건 일종의 화풀이였는데, 한 후배가 '민도ㅠㅠ'라는 답글을 적어주었길래 국어정책에 맞게 문화수준이라는 단어로 고쳤다. 민도라는 단어가 순화의 대상이 된 건 일제의 잔재라거나 한자어투라서가 아니라 이런 식의 화풀이에 너무 자주 동원된 나머지 어감이 너덜너덜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보다 너그러운 나의 의사 친구는 떠드는 환자들보다 국제적 기준에 더 미달하는 건 아마 난민수용소처럼 4인 이상의 다인병실을 운영하는 우리의 의료현실일 거라고 했다. 싸고 좋은 의료서비스라는 게 존재하겠냐며. 앞의 그 친구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알게 될 때까지 내 화는 잠시 보류:


-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시끄럽잖아. 그런데 대학 근처 술집에 가보면 여기 와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은 한국 애들보다 더 시끄럽던데 중동이나 아프리카는 어때? 혹시 전세계가 다 시끄러운데 일본만 조용한 걸, 한국만 시끄러운 줄 알고 살아온 건 아닌가. 원숭이들은 전세계가 다 시끄럽잖아.


4. 원숭이 얘기가 나온 건 직립보행 진화와 허리디스크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내가 과문해서 몰랐던 이야기를 이 친구가 알려주었다.


- 사람이 하마처럼 물속에서 살던 때가 있었다던데... 그 때 털도 없어지고 직립을 했다고. 물에서 다시 기어나오지 않았으면 디스크 따위 없었을 거라던데.


그러면서 보내준 링크를 열어보니 과연 엘리스터 하디, 일레인 모건 등의 학자들이 주장한 수생 유인원 이론(aquatic ape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원숭이에서 갈라진 인류가 초원지대에서보다 오랜 세월을 늪지대의 물속에서 지냈으리라는 주장이다. 논거는 다음과 같다


• 현대 인류는 햇빛을 반사시키는 체모 즉 털이 특정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더구나 우리 몸의 냉각 기능은 사바나 같이 덥고 건조하며 노출된 환경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포유류가 벌거숭이로 진화할 수 있는 서식지는 땅 속 아니면 물 속 뿐이다. 


• 몸에서 털이 사라진 반면 머리 쪽에는 여전히 많은 양의 털이 남아 있는 이유는 반(半) 수생 생활을 했던 인류의 조상이 호흡을 위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을 때 뜨거운 태양이나 추위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 이렇게 물속에 살면 머리를 물 밖으로 내밀기 위해 뒷다리로 서서 걸어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운 보행 형태가 된다. (내 친구의 지적처럼, 중력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물속에서 직립보행이 이뤄졌다는 대목이야말로, 척추가 중력을 견디며 직립활동을 하도록 디자인된 기관이 아니라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뒷받침해준다 .)


• 인류의 조상이 수생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약 50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대홍수가 일어났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이런 가설은 화석인류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사이의 공백기를 설명한다.


• 육상 포유동물의 경우 체모가 단열재 역할을 하는 반면 물 속에서는 지방층이 좋은 단열재이다. 인간은 영장류 가운데서 가장 지방이 많아 무려 다른 영장류보다 10배나 더 많은 지방세포를 지니고 있다. 다량의 지방이 필요한 동물은 두 종류인데 하나는 동면을 하는 동물이고 다른 하나는 물 속에서 사는 동물이다. 육상 포유동물은 주로 내부에 지방을 저장하는데 반하여 인간은 수생동물들처럼 주로 피부 밑에 지방을 저장한다.


• 현생인류의 특징인 커다란 뇌가 발달하려면 DHA라는 화학물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사바나에서는 DHA가 들어있는 식량을 구할 수 없다. DHA는 해양의 먹이사슬에 풍부하게 존재한다.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필수 지방산 중 식물의 씨앗 등 견과류에서 발견되는 오메가-6와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에서 얻을 수 있는 오메가-3가 각각 절반씩의 비율이라 한다.)


• 땀을 흘리는 행위는 영장류에게 없으며, 수생 생물들에게서 일어나는 생리 현상이다. 우리 몸에는 땀샘이 아주 많으며 그 곳을 통해 물과 소금이 빠져나간다. 그런 경우 한꺼번에 많은 물을 마실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인간의 신체구조는 그렇지 않다.


• 갓 태어난 태아는 물에서 헤엄치려고 하며, 물을 좋아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인간은 물에 몸을 담그면 저절로 심장 박동수가 낮아지고 피부조직이나 뼈, 장기 등을 제외한 생명유지의 핵심 기관인 대뇌와 심장으로만 산소가 유입되는 이른바 '잠수반응'을 보인다. 바다표범 등의 수생 생물의 잠수 반응과 유사한.


• 유전학적 분류를 통해 보면 육상 포유류보다 수생 포유류인 돌고래가 인간과 더 유사하다. 돌고래는 현생인류의 조상은 아닐지라도 인간과 동일한 조상에서 출발한 유전학적 형제일 가능성이 있다. 돌고래에게는 퇴화된 엄지손가락의 흔적이 있고, 인간의 경우처럼 (여타 영장류와는 달리) 태아가 몸을 한 바퀴 회전하며 태어난다. 


나로선 근래에 들어본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만일 다들 이미 알고 계신 이야기라면 괜히 흥분해서 죄송하다. 지금은 고요하던 새벽 한 시인데 옆자리의 젊은 환자 가족은 또 자다말고 갑자기 일어나 불을 켜고 떠들며 부산스럽다. 나야 경증 환자지만 맞은편 병상의 할아버지는 아까 듣자하니 "힘들어서 매일 죽고싶다"고 하시던데, 정말 너무한다. 이 문제에 관해 화내는 건 좀 보류하고 싶은데.... 두 사람이 소곤소곤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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