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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4-8 Yogyakarta

posted Oct 2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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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0.4-8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자야 카르타(Jaya Karta)를 떠나 욕야  카르타(Yogya Karta)를 다녀왔다.


    Jaya Karta는 ‘승리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Jakarta의 옛이름이다. 이슬람교가 자바섬을 석권했을 때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욕야 카르타는 실은 틀린 이름이다. 이곳 사람들은 Yogyakarta를 ‘족자카르타’라고 발음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욕야 카르타’라고 띄어 쓴 것은 족자카르타가 족+자카르타라는 뜻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어서 한번 그래 본 것이다. (족자카르타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 나를 포함해서 - 혹시 ‘족’이라는 말이 이곳 언어로 ‘소(小)’, ‘고(古)’, ‘대(大)’, 또는 ‘범(凡)’과 같은 외마디 뜻을 가진 접두사가 아니냐는 그릇된 의문을 가지곤 한다.) 이곳 사람들은 족자카르타를 줄여서 ‘족자’라고 부르는 일이 많다.



■ 왕국 족자


    ‘족자’는, 인도네시아를 구성하는 다민족중 최대 그룹인 자바인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아직 고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고,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는 고즈넉하다. 어쩌면 고층건물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거칠게 비유해서, 인도네시아의 경주 같은 곳이라고 보시면 되겠다.  물론, 여기는 경주보다 훨씬 넓고, 훨씬 더 소란하기도 하다. 자카르타에서처럼, 이곳의 길거리도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메우고 있으므로.


    족자의 주지사는 족자지역을 다스리는 왕족인 ‘술탄’이 겸임하고 있다. 족자의 술탄은 인도네시아 전역을 구성한 모든 인종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족자 시내에는 1756년에 건설된 왕궁인 Kraton이 있다. 이 건물은 자바 건축의 정수라고 불리운다. Kraton은 겉에서만 봤지만, ‘물의 궁전’이라고 불리우는 Taman Sari의 안에는 들어가 보았다. 이곳은 과거 술탄이 궁녀들의 목욕하는 모습을 감상하고, 성은을 입힐 여인을 선택하던 별궁이었다고 한다. 그런 설명이 아니었더라도 횃불과 촛불이 어른거리는 석조 풀장 주위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물빛 어른거리는 담장의 모습을 둘러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데카당트한 느낌이 들더라는 것이지.


■  이슬람 족자


    저녁시간이 되자 어김없이 기도 소리가 동네를 가득 채웠다. 확성기로 울려퍼지는 쌀라 소리는, 당연히 자카르타 같은 도회에서보다 (족자도 대도시지만) 지방으로 오면 더 정감이 있다. 그점은 중동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인도네시아어’는 동남아시아 도서지역에서 일종의 lingua franca(교역어)로 사용되던 말레이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지역을 네덜란드가 석권한 뒤에도 화란어를 금하고 말레이어의 사용을 권장했기 때문에 현재 이 말, 이른바 "Bahasa Indonesia"를 사용하는 인구는 중국어 인구에 버금가리만큼 많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전역을 비롯해서, 태국 등 일부 동남아국가의 일부지역에서 인도네시아어가 사용되고 있다.


    이슬람이 일찍이 이 지역에 뿌리를 내렸으므로, 동남아시아가 일종의 문화적 공백상태였다면 아랍어도 함께 널리 보급되었을 수도 있었겠으나, 짐작하다시피 이곳에는 이슬람에 앞서 인도, 중국의 깊은 영향을 받은 높은 수준의 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랍어는 세련되었지만 외국인이 배우기 무척 어렵다는 사정도 있어서, 인니어를 구축(驅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응 당연한 것 같지만, 이것은 인도네시아가 ‘세계 최대의 회교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점을 생각하면 그리 당연한 일만은 아니다. 아랍어는 이슬람 종교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대단히 논리적일 뿐 아니라 오랜 기간 유럽과 상호작용하며 발전시켜온 많은 추상적, 개념적 내용을 담고 있는 수준 높은 언어이므로 인종적으로 아랍인이 살고 있지 않은 곳까지 깊은 침투력을 보이며 이슬람의 전파와 함께 문화의 공백, 즉 문맹상태를 해소해온 언어이기 때문이다. 아라비아 반도는 물론 레반트, 마그레브, 수단을 포함하는 동아프리카까지.


    무슬림들은 아랍어로 쓰이지 않은 경전은 ‘코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당연히, 인도네시아인이건 한국인이건 무슬림인 이상은 아랍어로 예배를 드리고, 하루에 다섯시간씩 자카르타나 족자에 울려퍼지는 쌀라(기도) 소리도 아랍어이다. 그러니, 인도네시아에서 아랍어로는 전혀 의사소통이 안된다는 사실이 어찌 당연하기만 할 건가.


    교역어로 성장한 인도네시아어는 언어학적으로 보면 일종의 creole language에 해당하지 않겠나 싶다. 이질적인 언어집단을 한 장소에 몰아 넣고 (예를 들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처럼) 한 세대가 지나면, 주민들은 자신들의 언어에서 최대공약수를 찾고, 구성원들의 언어에서 가장 경제적인 표현들을 찾아 별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한 원시적인 제3의 언어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상태의 언어가 pidgin language이다. 이런 pidgin language가 여러 세대를 거치다 보면 그 자녀들은 필요에 따라 문법을 만들고, 보다 복잡한 추상적 표현이 가능하도록 말을 가다듬는다. 이러한 언어를 creole language라고 부른다고 한다.


    인니어의 추상명사중 상당수에는 아마도 네덜란드나 영국을 통해서 건너왔을 인도유럽어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다. 영어의 -tion으로 끝나는 명사는 거의 모두가 -si로 모습을 바꾸어 (posisi, korupsi, transformasi, informasi 등등) 인니어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짐작 하겠지만, 산스크리트어나 힌두어의 흔적, 한자의 흔적도 있고, 아랍어의 자취도 남아있다. 인니어 mungkim은 ‘아마도’라는 뜻인데, 아랍어의 mumkin('할 수 있다'는 조동사)에서 온 것이 틀림 없고, 목, 금, 토요일은 아랍어와 동일하며, 고유의 인니어에는 없다는 ‘kh’발음을 가진 단어의 상당수도 아랍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여기서 일요일은 minggu라고 부르는데, 나는 이 말이 스페인어의 Domingo와 혈연관계가 있다는 쪽에 돈을 걸어볼 마음이 있다.)


    당연하게도, lingua france였던 인니어는 초보자들이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될 정도만큼 배우기에는 다른 어떤 언어보다 쉬운 편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니어는 쉬운 언어’임을 곧장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gender), 수(number), 시제(tense), 법(mood), 태(voice) 등이 복잡하게 미리 정의되어 있는 다른 언어로 표현되는 내용들을 인도네시아인들도 당연히 서로 다 표현하면서 지내고 있다. 이것은, 문법으로 간단히 설명될 수 없는 내용까지 장기간 배워서 익히기 전에는 외국인들이 제대로 흉내낼 수 없는 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일례로, 인니어에서는 수동태를 활용해서 다양한 층의 존칭표현으로 삼는다.)


    좀 곁길로 멀리 샜는데, 어쨌든 인도네시아에서 아랍어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답이다. 그런데, 이곳 역사와 전통의 도시 족자에서 유창하고 정확한 발음의 아랍어가 쓰이는 현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족자에 자리잡고 있는 많은 숫자의 이슬람 기숙학교 중 하나인 Alma Ata (카자흐스탄의 수도와 이름이 같다) 학교를 찾아갔을 때다. 우리 일행 중 두사람이 아랍어를 구사하는 분이었는데, 이들은 학생들과 아랍어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곳의 여학생이 낭송하는 코란(당연히 아랍어이고, 당연히 노래였다)은 중동서 들어본 어떤 것보다 구성지고 멋들어졌었다.


    이슬람은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아직도 많은 일을 해내고 있었다. 빈부격차가 심하고, 최저임금수준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인구가 믿을 수 없이 큰 이곳에서 이슬람은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구석구석에 교육과 보건과 구제와 같은 강력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도네시아가 세계 최대의 회교국이라는 언급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족자에서 흰 희잡을 머리에 쓰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여학생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이다.


■ 불교 족자


    우리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8-9세기경, 자바섬에는 불교왕국 샤이렌드라가 융성하고 있었다. 이 왕조는 인도양을 건너온 불교가 인도네시아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음을 보여주는 거대한 물증 하나를 후세에 남겼다.


    Borobudur는 산스크리트어와 자바어의 합성으로 ‘산위의 승방’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역사적 가치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쌍벽을 이룬다는 이 세계 최대 최고의 불교유적은 1814년 영국총독 Raffles에 의해 밀림 속에서 발견될 때 까지 천년 이상을 화산재 밑에 잠들어 있었다. 사원을 이루고 있는 돌과 화산재를 분석해본 결과에 따르면 이 사원은 거의 완성과 동시에 재 속에 파묻히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높이 42미터에 최하부 기단의 둘레가 124미터나 되는 정방형의 사원은 도착하자마자 그 위용으로 우리 일행을 압도했다. (아 물론, 좀 있다가 나타난 기념품 상인들이 룩소르 사원의 이집트인들을 능가하는 집요함으로 또다른 의미에서 우리를 압도하긴 했지만.)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돌(안산암)을 끼워맞춰 쌓아 올렸다는 이 거대한 사원은 두 번에 걸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작업할 때 일련번호를 매긴 흔적이 돌들에 남아있었다. 4개층의 회랑을 거쳐 올라가면서 2500개 이상의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불교 조각을 구경했다. 석가의 생애와 善財동자가 발심하는 여행기 등이 정성스레 새겨져 있었다. 천하를 파괴하는 가공한 힘으로 터져버렸던 화산과 그 재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천년 뒤인 지금까지 이런 모습으로 남아있지 못하고 풍상에 삭아버렸기가 쉬웠을 이 거대한 사원 자신의 法輪!


    제4층의 회랑을 빠져나오면 갑자기 시야가 사방으로 열리면서 3층으로 늘어선 72기의 스투파(돌로 만든 종 모양의 부처 집)가 나타난다. 해가 저무는 밀림을, 이곳의 부처들은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 사원이 지어지고 있을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불국사가 올라가고 있었겠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규모의 사원이 어찌하여 천년동안 잊혀져 있을 수 있었을까. 샤일렌드라 왕조의 뒤를 이었던 것은 힌두교국인 마따람 왕조였다고 하니, 종교가 유행따라 지나가버린 탓이었을까. 이곳을 재로 덮어버린 자연재난 탓이었을까. 아니면, 기록하고 잊고, 또 기록하고 또 잊는 습성이 세상의 여늬 인간사에 혹시 다름 아닐 뿐일런지.


    보로부두르를 내려와서 족자로 돌아오는 길가에는 Mendut 사원이라고, 작지만 야릇한 느낌을 주는 또하나의 돌 사원이 있었다. 조금 숫자가 적고, 조금 덜 집요한 잡상인들이 그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 힌두교 족자


    시바 신전을 중심으로 타오르는 불꽃의 모양을 한 Prambanan 신전은 9세기경 힌두교국 마따람 왕조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고대 인도에서는 불교를 힌두교의 한 종파로 보았다고 하는데, 쁘람바난 유적은 그러한 두 종교의 융합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의 시바 신전은 Loro Jonggrang 신전이라고도 불리운다. 이런 전설이 있다. 옛날 보고 왕의 건장한 왕자가 쁘람바난의 처녀 로로 종그랑에게 반했다. 이 왕자의 집요한 구혼에 곤란해진 처녀는 내일 아침 첫닭이 울 때까지 천개의 사원을 만들어주면 결혼에 응하겠다고 약속한다. 그 사내는 정령의 도움을 받아 999개의 사원을 완성한다. 나머지 하나가 남았을 때, 다급해진 처녀는 시녀에게 쌀을 빻도록 시킨다. 자바에서는 새벽이 오면 쌀을 빻으므로, 이 소리를 들은 닭들이 울기 시작한다. 닭이 울자 정령은 도망가버리고, 화가 난 왕자는 주문을 외어 로로 종그랑을 석상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얘기다. 자고로, 싫다는 여자한테 반하는 것만한 비극은 없다. 이들에 비하면 로미오나 줄리엣은 둘 다, 얼마나 행복한 죽음을 죽었겠는가.


    쁘람바난에 도착했을 때, 하루해가 중천을 지나 붉은 빛을 띄어가고 있었다. 방문객들도 별로 없었고, 지난 6월에 족자를 덮친 지진 때문에 쁘람바난 주변의 돌들은 많이 무너져내려 있었다. 불꽃 모양의 탑 하나는 아직도 대대적인 보수공사중이었고, 평소 입장을 허용하던 탑 주변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큰 탑에서 굴러떨어진 꼭대기 장식이 마당에 커다랗게 널부러져 있어, 울타리가 없었더라도 감히 가까이 다가갈 엄두는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마도 평소보다 좀 더 그로테스크한 모양을 하고 있는 이 사원을 우리는 구경한 셈인데, 이 탑들의 고난을 보면서 한가지 의문을 가졌다.


    족자 지역은 아주 오래 전부터도 ‘불의 띠’ 위에 위치하고 있다. 아시아판과 유럽판이 서로 밀어붙이면서 한쪽 맨틀이 다른쪽의 안쪽으로 밀려내려가는 지점, 그 불안정한 지각을 딛고 있는 것이다. 수년마다 크고 작은 지진이 있고, 저만치 보이는 커다란 산은 그 이름 자체가 Merapi, 즉 ‘불의 산(火山)’이다.(mer 산 + api 불) 한해가 멀다하고 흔들리고 불을 뿜는 이 땅 위에다 사람들은 이렇게 거대하고 정교한 문화유적들을 지어놓은 것이다. 여러 왕조가 여러 종교에 걸쳐서. 왜?


    아마도 대답은 자명한 것 같다. 고난이 없는 곳에서 사람은 하늘에 빌지 않는 법. 이곳 족자가 각종 종교의 전시장 비슷하게 된 것은 그것이 흔들리는 지각 위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곳에서 종교적 원리주의는 자리잡기 어렵다. 사람들은 어느 신에게든 빌고 싶어할 것이고, 자신이 섬기는 신 이외의 다른 어떤 신들의 성미를 건드리는 일도 두려워 할 것이므로.


    쁘람바난 신전이 불교의 자취를 밀어내기보다 끌어않는 형국을 하고 있는 점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르겠다. 자바섬에서 융성하던 힌두교는 이슬람이 지배세력이 된 뒤 발리로 그 근거지를 옮겨 또다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러고 보면 인도네시아에서의 이슬람은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타종교에 대해 너그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새삼 깨닫게 된다.


    인도네시아의 무슬림들은 스스로를 ‘moderate islam’이라고 부르고, 그러한 사실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헌법에 기록된 5개의 건국이념, 즉 'Pancasila' 중 그 첫 번째가 “유일신에 대한 신앙”이다. 어느 신인지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 되겠다. 실제로, 인도네시아는 4대 종교의 기념일이 모두 국경일이다. 곧 현실화될 것 같진 않지만 최근에는 공자의 탄신일도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여론까지 있었다고 한다.


    다른 종교에 대해서 상당히 너그러운 태도가 널리 퍼진 사회에서의 신앙은, 자연히 느슨한 민간신앙의 모습을 띄게 된다. 그것이 종교적인 견지에서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지 어떤지는 단순하게 정해버리기 어려운 문제이겠으되, 족자에서 나는, 이렇게 넉넉한 신앙의 현장 한 곳을 더 볼 기회가 있었다.


■ 기독교 족자


    Suara Candhi라고 불리우는 석탑 앞에서 드려지는 Ganjuran 천주교회의 예배시간에 현지인들과 함께 참석해 볼 기회를 얻었다. 예배를 드렸다기보다는 구경을 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 예배가 인도네시아어도 아닌 자바어로 진행되어 단 한 단어조차도 알아들을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화란인 Schmutzer에 의해 설립된 이 교회는 1930년에 봉헌되었고, 우리 일행이 갔을 때는 약 2천여명의 신도들이 야외예배당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아니지. 신도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예배당의 중앙에 자리잡은 커다란 석탑에서는 지하수가 샘솟고 있다. 이 지하수는 기적의 생수로, 온갖 질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 예배시간에는 이 물을 얻고 신부님의 재미난 말씀을 듣기 위해서 무슬림, 불교신도들도 상당수 참석을 한다고 하니...


    누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므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만 가지고는 인상적인 광경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자바의 민속악기로 연주되는 동남아 특유의 전통음악에 맞추어 2천여명의 군중이 부르는 찬송가 소리 만큼은 다른 곳에서 감히 경험할 수 없는 낯설고 독특한 경험이었다. Ganjuran 예배당 샘물이 가진 치유의 효험을 직접 확인해볼 도리는 없었지만, 어쨌든 이곳의 샘물은 전통과 현대, 남녀노소와 그들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 심지어는 다른 종교들까지도 한자리에 녹여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바어로 열성적인 설교를 하는 신부님이 상당한 재담을 장기로 하시는 듯, 수천의 예배참석자들은 수시로 일사불란하게 웃고 탄식하며 설교에 공감하고 있었다. 바틱을 입은 성모상 아래서 전통의상을 깔끔히 차려입은 소녀 복사들이 헌금함을 들고 경건하게 일어서서 군중들 틈으로 걸어들어가는 동안 신도들은 낯설지만 어쩐지 아주 낯설지만은 않은 어떤 헌금송을 제창하고 있었다.


■ Modern 족자


     마지막날, 식구들과 함께 현지 식당에 갔다. 자카르타에도 체인점이 있긴 있지만 족자가 원조라는 닭요리집 뇨냐 스와르티. 넓은 식당을 현지인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닭튀김 두 마리에 밥 네공기를 시켰는데 가격은 8불 정도에 불과했다. 닭을 통째로 머리까지 튀겨내고 있어서 아이들 엄마가 살짝 놀라긴 했어도, 맛있게 먹었다. 자기는 조류독감이 두려워서 닭은 커녕 달걀도 입에 대지조차 않는다고 남의 일처럼 얘기하던 상류층 인도네시아인 친구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


    인도에서 건너온 납염 기술이 원조로 자리잡고 있다는 이곳 족자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바틱 공방도 구경했다. 인건비가 저렴한 곳이 아니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재래식의 염색공정이 여러 사람들의 남녀 장인들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었다. 수백년 전부터 그 일을 계속 해 오고 있었다는 듯한, 익숙하고 지루한 자세로. 바틱으로 만든 셔츠를 기념삼아 사볼까 하고 가게를 돌아보았는데, 아직은 적당한 가격의 뛰어난 작품을 골라낼 감식안이 없음만을 확인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족자에 자리잡은 Gajah Mada 대학교는 그 규모만으로 치면 자카르타의 국립 인도네시아대보다 크다. 내년이면 한국학 학사과정도 생길 것이라고 한다. 학교안을 한바퀴 둘러보다가 외부인의 차량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발견하고 캠퍼스 안으로도 무단침입하여 한 바퀴 돌아보았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아이들, 남녀가 짝지어 오토바이로 캠퍼스 안을 이동하고 있는 학생들. 젊음이라는 것은 어디든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막 베낸 풀처럼 싱싱한 냄새가 난다, 어떤 옷을 걸치고 있건.


    보로부드르 사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초호화 호텔, Aman jiwo에 들렀다. 그냥 차 한잔 하고 호텔 겉만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안내원이 친절하게 실내도 보여주겠다고 해서 일박에 $1,000이라는, 개인용 수영장이 딸린 멋들어진 객실도 구경할 수 있었다. 저만치 멀리 보로부드르 사원이 손톱만하게 보이고 있었다. 투숙하면 보로부드르까지 왕복 코끼리 탑승도 가능하다고 한다. 신혼여행 한다는 후배가 있으면 추천해줘야겠다. 아이들을 데리고 투숙하기에는 너무나 고요하고 정갈한 호텔이었으므로, 우리는 마치 신전을 범한 사람들처럼 서둘러 나왔다.


    꼬타끄데라는 은세공품 판매소, 족자의 가장 번화가인 말리오보로 거리도 스쳐가듯 구경했다. 드넓은 족자의 밤거리도 택시를 타고 누벼보았다. 의미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법. 내가 오늘 찾아야 할 뭔가가 여기에도 있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또는 인도네시아 바깥에서 살아가는 일에 작은 열쇠가 될만한 무슨 무슨 일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지나 보면 알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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