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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7. Cross-continent Drive

posted Jul 1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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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대륙을 자동차로 가로질렀다. 왕복 8,383마일(13,500km)의 여정이었다. 다녀와서 느낀 것이지만, 이런 긴 여행은 오기로 시작할 일도 아니요, 대단한 결심과 계획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대륙을 횡단하는 류의 여행을 즐기는 비결은 되도록 아무 생각이나 욕심 없이 집을 나서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터덜터덜.


6.23. 금

퇴근 후 저녁식사를 생략하고 집을 나섰다. 저물녁, 빗방울이 뿌리고 있었다. 담배나 한 갑 사러 간다면 모를까, 먼 길을 나설 시간으로는 적당치가 않다는 점. 그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버지니아주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으려는 즈음, 빗방울은 무자비한 폭우로 변했다. 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내일 아침의 출근길을 걱정하는 대신,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을 찾아가면 그만인. 쏟아 붓는 비가 들이치지 못하는 한평 남짓 자동차 안이 이토록 아늑하게 느껴지는. 뒷자석에서 실컷 떠들다가 졸고 있는 꼬마들과의 거리가 한결 오롯이 가까워지는.

첫날부터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 밤 열한시쯤, 아직 Tennessee 주에 들어서지는 못했지만 이만하면 일상으로부터 적당히 도망쳐 왔다고 생각되는 곳에 자리잡은, Roanoke라는 도시로 들어섰다. Red Roof Inn에 AAA 할인가격 50불을 지불하고 방에 들어와 컵라면을 먹으며 내가 생각 없이 푸념했다. “Roanoke? 무슨 도시 이름이 이러냐?” 그랬더니 큰 녀석이 재미있다는 듯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선다. “어, 아빠 몰라요? 16세기에 영국 사람들이 최초로 North Carolina 앞에 있는 섬에 식민지를 건설했다가 싹 다 죽고 실패했었는데 그 섬 이름이 Roanoke였어요. 제 생각엔 아마 그 섬 이름을 딴 도시 같아요.”

지식전달의 흐름이 역류하는 건 뿌듯하고 즐거운 경험이지만, 앞으로는 내가 훨씬 더 분발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 쩝. 그건 그렇고, 처절한 실패로 끝난 식민지의 이름을 자기들이 사는 도시에 갖다 붙인 사람들의 심리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오늘은 230마일을 달렸다.

6.24. 토

아침 10시, 여태도 빗방울이 뿌려대고 있는 Roanoke를 떠나 폭우로 변한 빗속을 뚫고 테네시주에 들어섰다. 대륙의 동서를 남쪽에서 가로지르는 I-40번 도로. 이 도로는 중부지방에서 그 유명한 Route 66와 하나가 된다. 이렇게 넓은 땅덩어리에 사는 사람들에게 육로로 여행한다는 의미는 유럽에서와는 자못 달랐으리라. 좀 더 긴 호흡과, 좀 더 큰 모험심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더 사랑하지만, 좀 더 뒤로 물러나 넓고 큰 것을 조망해 볼 수 있는 경험은 언제나 값지고, 또 즐겁다.

I-40 도로 옆에 있는 Rest Area에 차를 세우고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Country Music의 본산인 Nashville을 건성건성 통과해서 도시 외곽의 캠핑장에 오후 4시경에 도착했다. 텐트와 모기장을 펼쳐두고, 아이들과 수영장에서 첨벙거리며 더위를 식혔다.

밥을 해먹고 깜깜한 캠핑장에 앉아 둘러보니, 풀벌레 우는 소리는 없지만, 아, 저 어지러운 반딧불이들의 춤. 아마도 이 동네 물이 깨끗한가보지. 오늘은 502마일 주행.

6.25. 일

아침에 눈을 떠보니 간밤에 춤을 춘 것은 반딧불이만이 아니었던 듯, 여기저기 모기에 물린 자욱들이 있다. 오늘은 Elvis를 만나러 가는 날! 텐트를 접고 아침 8시에 출발해서 11시경에 Memphis에 닿았다. Graceland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줄을 서 있었다. 안내원이 ‘다음주에는 코이즈미 일본 총리가 여길 구경 올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하고 많은 Elvis의 히트곡 중에, 코이즈미가 가장 좋아한다는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는, 희한하게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줄을 서서 관람권을 구입하고 50년대풍으로 꾸며놓은 식당에 들어가 햄버거를 사먹었다.

Graceland 안마당에 엘비스 프레슬리의 묘지가 있었다. 트럭운전수에서 일약 전세계의 우상이 되었던 한 시대의 아이콘.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때로 가수로서의 그의 노래실력이 폄하당하기도 하는 불세출의 가수. 흑인들의 음악이던 블루스는 그를 거쳐 비로소 Rock과의 접목을 완성하고 전에 없던 규모로 대중화되었다. Rock-a-billy는 누가 뭐래도 Elvis의, Elvis에 의한, Elvis를 위한 장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Louis Armstrong이 그러했듯이, Elvis는 현대음악사를 자신의 이전과 이후로 확실히 가를 수 있는 분기점에 해당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그런 성취를 이룬 Artist는 많지 않다.

Graceland의 지하 전시실에는 그 유명한 그의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흰 나팔바지에다, 소매에는 긴 술들이 달려 있는 그 번쩍번쩍한 광대 옷. 저런 옷을 입고도 손가락질이 아닌 환호를 받을 수 있다면, 세상을 그렇게 한바탕 골려먹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재미나지 않으랴.

오후 두시쯤 멤피스를 떠나 하염없이 펼쳐진 평원과 옥수수밭을 가로질렀다. Checotah라는 소읍에 들러 닭고기로 저녁을 해결하고 계속 차를 몰아 밤 10시반경 Oklahoma City, 이 엄청난 대도시에 도착했다. 어차피 텐트를 치기에 너무 늦은 바에야, 이런 대도시 외곽의 숙박시설이 저렴하겠지. Comfort Inn에 55불을 지불하고, 생각보다 넓고 편리한 방 안으로 뛰어들며 아이들이 환성을 질렀다. 여행자들에게는 몸을 눕히는 그곳이 바로 집이다.

오늘은 638마일을 운전했다.

6.26. 월

호텔에서 눈 비비고 일어나 프론트 데스크 앞에 있는 팜플랫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흠... 이곳에서는 Bricktown을 구경하면 되는 것이로군. 그러나, 그보다 먼저 가볼 것이 있지.

1995.4.19. Timothy McVeigh라는 비뚤어진 미국인이 반정부 활동을 한답시고 Alfred P. Murrah Federal Building을 폭파시켜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168명의 사상자를 낸 테러사건이 이곳에서 있었다. 9-11사건이 있기 전까지 이 사건은 미국 영토내에서 일어난 최악의 테러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무차별한 살상을 야기하는 테러사건은 오로지 인간만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이다. 이유를 막론하고, 이것을 죄악으로 규정하는 데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정신상태는 정상이 아닐 것이다.

파괴된 연방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National Memorial이 건설되어 168명의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었다. 커다란 얕은 인공연못에 비친 관람객들의 모습은, 우리중 누구라도 그러한 테러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희생자의 숫자만큼 의자로 형상화된 조형물이 잔디밭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중간중간에 있는 작은 의자들은 희생된 어린이들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했다. 작은 의자 하나 옆에는 평소 희생자가 즐겨 입었음직한 자그만 파란 티셔츠가 있었고 어떤 것 옆에는 꽃들이 놓여 있었다. 목의 울대가 아파왔다. 어린 생명을 가볍게 다루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영화 ‘바람난 가족’을 보고 나서 나는 얼마나 화가 났었던가! 작품 속에서라도, 아이를 죽이고서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있다면, 나는 그와 길거리에서 마주칠까 두렵다. 그렇다.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죽는다, 때로 잔인하게. 그러나 그것은 관객들이 아동 살인자의 시점을 경험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되지 못한다. 이 영화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어린아이를 살해한 자에게 동정적이다. 아, 비뚤어진 자들이여. 그런 사람들일수록 자기가 속한 사회의 비뚤어짐을 심하게 질타하는 법이지, Timothy McVeigh가 그랬듯이. 음, 이제야 알겠다. McVeigh를 생각하다가 왜 별안간 내가 ‘중산층’에 대한 무차별한 적개심과 멸시를 엿보인 이 영화를 떠올렸는지.)

Bricktown은 오클라호마 시티 시내를 관통하는 말쑥한 인공운하와 그것을 둘러싼 벽돌건물들로 이루어진 신흥상가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참 예쁘게 꾸며놓아, 관광객들을 태우고 운하를 돌아보는 보트가 (배도 예뻤다!) 성업중이었다. 갑자기 고질병 같은 반발심이 고개를 든다. “스케일에 있어서 청계천에 비할 바가 못되누먼, 뭐” 생각해 놓고 보니 괜히 부끄럽다. “누가 뭐라 그러던?”

간단히 점심을 먹고 12시에 다시 출발해서 오클라호마를 벗어났다. 눈 닿는 지평선 전체가 막막한 초원이던 Texas 주를 지나고 나니 어느새 New Mexico. 차창 밖의 풍경도 달라져 있었다. 서부영화에서 자주 만나보던 높고 낮은 plateau. Clint Eastwood가 눈가에 주름 잡고 모퉁이를 돌아 나올 것만 같은 야트막한 절벽들. 20킬로미터쯤 될까. 저만치 먼 동네에서는 번개가 치면서, 아래가 묵직해 보이는 먹구름이 비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빗방울 속을 지나 어두워질 무렵 Santa Fe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에는 미야자와 리에라는 일본 여배우 덕에 유명해진 이 도시는, 굳이 비유를 하자면 미국의 유성이나 온양 쯤 된다고 할까. 뉴멕시코의 정취를 잘 살려서 세련되게 꾸며놓은 관광지였다. 비도 오고 하니 텐트를 치긴 뭣해서 또 여관에 숙박했다. Luxury Inn은 그 이름처럼 luxury하달 건 별반 없었는데, 야외에 있는 자쿠지에 어린아이들도 입욕을 허용해서 (못하게 하는 데가 더 많다), 한밤중에 아이들과 첨벙거리고 나서 방으로 돌아와 통조림을 반찬삼아 햇반을 먹었다. 오늘 운전 거리는 582 마일.

6.27. 화

늦잠들 자고 일어나 체크아웃을 했다. Santa Fe 광장 앞에 동전 주차를 하고 시내를 산책했다. 원주민들이 손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들을 파는 노점상들이 도로변 그늘에 늘어서 있었다. 인디오들의 노점상은 뉴멕시코 곳곳에서 눈에 띄었어도 여기에서처럼 품질이 좋은 (따라서 값도 비싼) 물건들을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다. 품질이 좋건 예술성이 있건 말건 결국 지갑을 열진 않았다. 이런 데서 섣불리 기념품을 샀다가는 우리처럼 이사를 자주 다니는 처지엔 결국 애물단지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진작 터득한 터이므로.

Santa Fe가 선사한 건 기념품이 아니라 독특한 풍경이었다. Granada에서 Ronda로 가는 길 어디쯤 있음직한, 파란 하늘과 붉은 색 흙벽의 마을. 아, 고향이라는 것은 이다지도 집요한 것이로구나. 영국사람들은 신대륙에 와서도 영국과 기후나 풍경이 비슷한 뉴잉글랜드 해안지방에 주로 자리잡고, 프랑스나 독일인들은 비옥한 농경지에, 스위스인들은 산간지방에 정착을 했다더니, 스페인 사람들이 일찍이 터를 잡았던 뉴멕시코 땅은 건물만이 아니라 공기의 냄새까지도 Andalucia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맥도널드에서 점심을 먹고 Painted Desert/Petrified Forest National Park에 입장했다. 차창 밖에서는 세상을 날려버릴 듯한 기세로 바람이 불어대고 있었지만, 흔들리는 초목이 없는 사막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서 바람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그저 저만치 바삐 굴러가는 덤불 한 덩이, 두 덩이.

중동에서 구경했던 사막들과는 달리, Painted Desert는 그 이름처럼 가히 현란한 색채를 띄고 있었다. 돌들 위에는 선사시대의 인간들이 숯으로 그려둔 그림이 남아 있었다. 묘하다. 붉은색 광야 위에서 시간과 공간이 일정한 방향 없이 접히고 포개진다. Petrified Forest의 돌나무들은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사실 거기에 남아있는 나무는 그 모양 뿐이다. 진흙 속에서 장구한 세월동안 나무의 세포조직 속에 스며든 광물질들이 나무가 다 썩고 없어진 수만년 후에도 고스란히 나무의 모양을 우리 눈 앞에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손으로 만져지는 유령들. 시신도 사라진 等身大의 棺. 돌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덩어리들. 흐르다가 멈춰버린 시간의 침전물들. 실존은 숨쉬고 변화하는 것인가, 이름인가, 형태인가, 아니면 다만 관념인가.

또다시 세 시간쯤 차를 몰아 저녁 7시반쯤 Arizona주 Williams에 있는 캠핑장에 도착했다. 모처럼 김치통을 열어 밥을 해먹고 고양이 세수를 했다. 서쪽 하늘이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겁나게도 붉게 타오르더니 어느새 칠흙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워싱턴의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렇지. 전화라는 물건이 있었더랬지. 여기 일은 다 잊고 여행 잘 하고 있냐고. 그렇지. 염려해주고 격려해주는 선후배 동료들이 있었지. 사막 너머 저편에.

캠핑장 한구석에서 이 동네 가수 내외가 기타를 치면서 귀에 익지만 알 수 없는 무슨 노래를 가물가물 부르고 있다. 오늘은 454마일을 이동했다.

6.28. 수

밤새 큰 녀석이 잠꼬대를 하면서 텐트 안에서 잠시 부산을 떠는 통에 잠을 설치고 여섯시에 일어났다. 덕분에 캠핑장 출발여정에 걸맞게 일찍 텐트를 접었다. 이동중 차 안에서 어제 먹다 남은 찬밥을 김에 싸서 ‘못난이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일찌감치 출발한 덕분에 아침나절에 Grand Canyon National Park에 도착했다.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언제쯤 한 번 가보게 될런지 궁금했던 곳. ‘지구의 육지 위에 있는 가장 크고 깊은 구덩이(the biggest ditch on the earth's surface)’에 바야흐로 온 것이다. 방학기간중이어서인지 관광객들도 많았다. Mather Point, Yavapi Point, Desert Point 등을 차로 돌면서 사람이 많은 곳은 건너뛰고 사람이 적은 곳에서는 차를 세우고 구경했다. 물길이 흐르고 흘러 얼마만큼 흙알갱이들을 씻어 내리면 저 아득한 골짜기가 생겨날 것이냐. 평지 위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의 표정은 남다르다. 내 흉중의 알갱이 몇 알을 씻어 내리는 데는 얼마만큼의 시간의 강물이 흘러야 할 것이냐. 콜로라도여, 달 밝은 나의 강이여.

이 강을 눈높이에서 만나고 건너보고 싶었다. 방향을 돌려 다시 동쪽으로! 64번 도로를 동진해서 Grand Canyon을 벗어나 89번 도로로 북상, 160번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거슬러 가다가 왕복 2차선인 163 north로 접어드니 Monument Valley였다. 가장 많이 방송을 탄 황무지. 그래서 황무지라기 보다는 거대한 영화 세트장처럼 보이기도 하는, 낯익은 돌산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말을 타고 싶다, 느닷없이.

Mexican Hat이라고 이름이 붙은 소읍 바깥에는, 그 이름처럼 바람이 절벽위에 아슬아슬하게 조각한 챙 넓은 바위모자가 있다. 그곳에서 95번 도로로 꺾어져 다시 해 지는 방향으로 접어들면 거대한 Cedars 국립공원의 영역이다. 길을 따라 낮은 곳으로 흐르듯 달리다 보면 Glen Canoyn National Recreation Area. 꺾어지고 구부러지면서 때론 좁고 빠르게, 때론 넓고 유장하게 흐르는 콜로라도의 물줄기와 헤어지고 만나기를 몇 번 반복한다. Hite라는 지점에서 넓어진 콜로라도를 도강하면서, 강물에 비친 하늘빛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음을 알았다.

사슴과 소들은 가끔 만났지만 하루 종일 운전하면서 마주오는 차도 몇 대 만나지 못한 이 적막한 산하에도 포장도로는 씩씩하게 드러누워 있었다. 길의 목적은 공익에 봉사하는 것이겠건만, 이 길은 자기가 만들어진 목적 같은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저 무연히 존재하겠다는 듯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저무는 해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겁이 덜컥 난다. 아직 로키산맥을 넘지 않았는데. 휴대전화도 먹통인데. 갑자기 자동차가 말썽이라도 부린다면? 뱀이나 들짐승이 무서울까, 아니면 이런 무인지경에서 스쳐가는 다른 자동차와 거기에 탄 사람들이 더 무서울까? 낚시대를 차에 싣고 적막한 사막을 건너가던 오만에서의 휴일을 생각하며 용기를 낸다.

24 West를 타고 Capitol Reef 국립공원을 벗어났을땐 이미 깜깜해져 있었다. 12 South로 오늘이 다 지나가기 전에 구절양장 산을 넘어가야 했다. 아까 24번 도로를 타기 전에 덩그러니 있던 Comfort Inn에 냉큼 숙박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 속으로 뛰어드는 산토끼, 사슴들을 피해가며 산을 넘었다. 천천히, 천천히. 목적지를 찾아가는 일 이외에도, 캄캄한 산길을 가는데 GPS Navigator가 유용하다는 걸 알았다. 이리저리 굽은 길들을 눈앞에 그려 보여주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해 저물기 전, 눈앞을 막아선 깎아지른 절벽을 이리저리 오르던 가파르고 좁은 길이 압권이었다. 운전석 옆으로는 지평선이 어질어질한 높이로 자꾸만 낮아지고 있었는데, 정작 꼬마들의 관심을 빼앗는 것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식으로 그려지는 GPS의 도로 그림이 제자리에서 한없이 구불구불 겹치는 우스꽝스런 모습이었다.

과학적 사고는 자주, 직관에 반한다. 순수하게 이성적인 사고의 훈련을 거친 사람들만이 인류가 수백만년동안 동굴에서 익힌 직관을 넘어선 ‘생각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나 아이작 뉴튼이 없었다면 인류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도 한참동안 지구 주변을 천체가 돈다고 믿으며 지냈을 것이다. 그랬다면, 휴대전화 로밍 서비스도, GPS Navigator도 없었겠지. 만약 갈릴레이나 뉴튼이 수학자가 아니었다면 ‘이상적인 상태에서의 물리학’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려는 플라톤적인 사고의 발전을 아마도 꾀할 수 없었을 것이고, 어쩌면 인류는 줄곧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자연관찰로서의 과학의 발전에 치우쳤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작가 Randall Garrett이 Lord Darcy 시리즈에서 그리고 있는 대체역사처럼, 과학(또는 마법)은 자연의 소음(noise) 속에 감추어진 순수한 법칙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연의 각종 소음을 잘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로 발전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회과학 중에서 과학이라는 명칭에 근접한 분야는 아직까지 경제학 뿐이다. 이상할 것이 없이, 시장의 기능에 관한 설명도 순수한 합리성에 관한 훈련 없이는 잘 받아들이기 어렵고, 일반인들의 직관에 반한다. (교환의 잇점을 더없이 단순명쾌하게 설명하는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조차도, 처음 접했을 때에는 얼마나 희한한 마술 같기만 한가!) 아직도 인류의 ‘가슴’은 수렵/채집생활 당시의 단순한 질서로 수렴하고 있으며, 덜 가진 사람이 더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을 정의로 간주하고 싶어하는 관성을 가진다. 당연하게도, 어느 사회에서든지 분배적 정의라는 관념은 상대적으로 손쉽게 자신의 후원자들을 모으고, 시장제도(market system)는 일정량 사고의 훈련을 거친 사람들 이외의 응원군을 모으기 쉽지 않다.

지난 세기 동안 시장의 성공은 사회의 총체적 무차별곡선을 (효용의 총량을) 증가시켰고 그 결과 사회 구성원들이 누리는 자유의 총량도 늘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시장제도 이외의 선택들은 명백한 실패를 경험했으므로, Fukuyama 같은 학자는 다소 성급한 목소리로 ‘역사의 종언’을 외치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지구촌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기보다는, 발전의 열매, 그 성취물이라는 성격이 짙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들 각각의 목소리를 等價化함으로써 시장제도에 대한 적들을 양산하고 있다. 직관에 반하는 진리들은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인기를 끌기 어렵다! 시장은 어쩌면 자신의 성공의 희생자가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고대 로마가 이룩한 자연법 질서가 중세의 암흑에 뒤덮이게 된 배경도 시장의 실패에 가장 직접적으로 기인한다. 로마인들이 內海(mare nostrum)라고 불렀던 지중해의 제해권을 상실하면서 지역간의 거래는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서구의 중세역사가 보여주듯이, 인류는 퇴보를 선택하기도 한다. 역사는 진보한다기 보다는 도는 것일까, 나훈아 고향의 물레방아처럼 오늘도.

12번 도로가 통과하는 로키산맥 자락은 Pixie National Forest로 명명되어 있었다. 우리 차는 연료등에 불이 들어온 채 길잃은 한 마리 Pixie처럼 산을 주춤거리면서 달리다가 산중턱에 자리잡은 Escalante에 와서야 급유를 받았다. (주유소가 어찌나 반갑던지! 우리가 돈을 지불하고 돌아서자 주유소 문 닫을 시간이라며 불을 끄고 문을 걸어잠그던 그 야곱의 천사같던 주유소 점원.) 산 발치에 자리잡은 Connonville을 막 지나서 밤11시경 Bryce Canyon Motel의 문을 두드렸다. 여기 사람들은 다 일찍 자나? 아차, 또 시간경계선을 넘었으니 밤 12시였던 것이로군. 결국 오늘 저녁을 내일 먹는 셈. 방안에서 늦은 컵라면을 끓였다. 하루종일 운전한 거리는 525마일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기다란 여정이었다.

6.29. 목

11시까지 늦잠들을 잤다. 별 말들은 없었어도 어젯밤 늦게까지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자동차를 탔던 것이 다들 피곤했던 모양이다. 까짓것. 지금까지 마구 달려오면서 번 시간을 이제부턴 좀 쓰기로 한다. 이 모텔의 청소는 Damien과 Juliette,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젊은 부부가 맡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청소도구차에는 4개월 된 꼬맹이, Seth가 얌전히 타고 있었다. 두 부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중서부지방 곳곳을 전전하며 지내다가 아이를 낳은 후 이곳에서 청소도우미 일을 하며 일단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바람처럼 자유로와 보이는 그들. 우리가 방 안의 쓰레기를 들고 나와 치우자 Damien은 그럴 필요 없다며 그냥 거기 두고 가라고 사람 좋은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조금씩 빗방울을 뿌리던 것은 지나가는 구름이었던지, Bryce Canyon에 도착하니 날은 적당히 시원했다. 계곡들은 참 예쁘긴 했는데, 어제 하루종일 멋진 광야를 가로질러서였을까, 먹먹한 감흥 같은 것은 없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간 계곡의 난간 위에서는 독수리만큼이나 커 보이는 까마귀 한 마리가 달아나지도 않고 느긋이 고개를 돌리며 계곡을 구경하는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오후 네시 경에는 Zion National Park을 통과했다. 이곳은 Grand Canyon이나 Bryce Canyon에서와는 달리 능선이 아닌 계곡을 따라 달리며 경치를 구경했다. 밑에서 부감되어서였을까, 중량감 넘치는 절벽과 돌산들은 거대한 코끼리 떼를 연상시켰다.

다시 Utah주에서 Arizona주를 거쳐 Nevada주로 들어서니 금새 저만치 Las Vegas의 생뚱맞은 스카이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 7시반쯤, 힐튼호텔에 여장을 풀고 도미노 피자를 저녁삼아 먹었다. 힐튼호텔은 2박에 세금포함 160불짜리 할인 패키지로 예약을 했었다. 설사 그보다 좀 더 비쌌다고 해도 여기다가 예약을 했을 것이다. 이곳 힐튼호텔에는 Star Trek Motion Ride(Borg Invasion, Klingon Encounter)와 Quark's Bar, 기념품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으니 당연지사!

저녁때 거리 구경이나 할까 어쩌구 하면서 방을 나섰지만 나와 두 꼬마들의 머릿속엔 Star Trek Experience에 대한 궁금증만 가득했다. 그럼 그렇지. 이곳은 Sin City. Star Trek Motion Ride도 밤 11시까지 개장하고 있었다. 내리 두 번을 탔다. Trekkie가 아니고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그 재미! (궁금하신 분들은 www.startrekexp.com을 찾아보시라)

자정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길거리는 카메라를 목에 건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인파를 따라 Bellagio 호텔 앞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분수를 구경하고, Mirage 호텔에서 분수로 화산폭발을 표현하는 쇼를 구경했다. 재미를 위해 쉬지 않고 낭비되고 있는 저 에너지... 재미?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또다른 에너지. 낭비될 수도 있고,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는.

오늘 이동한 거리는 309마일.

6.30. 금

Trekkie들이 Star Trek을 좋아하는 이유나 동기는 제각각이다. 아마 가장 큰 공통분모라면, SF 장르의 팬이라는 점으로 거칠게 묶을 수 있을 것이다. Star Trek에는 SF 팬들이 열광할 gimmickery들이 가득 있으니까. 십수년 전 모토롤라를 일약 휴대폰 시장 선두주자로 만들었던 startec 휴대폰의 flip-top 디자인은, 60년대 Enterprise호의 승무원들이 사용하던 커뮤니케이터의 생김새와 거의 동일하다. SF의 예언들은 어느 정도 철학적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예지적이기도 하고, 그 예지력은 대체로 자기충족적(self-fulfilling) 방향으로 작용한다.

60년대에 시작된 이 드라마는, 여늬 미국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미국중심적’이고, ‘남성중심적’이고, ‘백인중심적’인 구조를 가졌었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Star Trek은, 드라마가 얼마나 ‘미국중심적’, ‘지구중심적’일 수 있느냐, 백인남성이 얼마나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냐는 문제를, 다른 드라마와는 달리, 정면으로 다루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왜냐면, 지금보다 나아진 미래, 지구보다 넓은 사회를 그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Woopi Goldberg는 어린 시절, Enterprise의 commanding bridge에서 흑인여성 Uhura가 장교(Lt.) 역할을 맡고 있던 사실로부터 한없는 용기를 얻었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어쨌거나, 흑인 민권운동이 아직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1960년대였으니까. (말하지 않았는가, SF는 자기충족적이라고.)

자연히, 90년대에 다시 시작된 ‘The Next Generation’과 ‘Deep Space 9’, ‘Voyager’는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미국의 일반인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은 자유와 평등에 대한 관념이 달라진 정도가 얼마만큼인지 드러내 보여준다. (이들 시리즈에서의 ‘선장’은 각각 프랑스인, 흑인, 여성이 맡았다.) 90년대를 풍미하며 Star Trek은 마약, AIDS, 인종, 가족의 분해 등 현대사회에 당면한 현안들을 24세기에 투영하는 알레고리들을 만들어 냈다. 모든 비유가 그렇듯이, 가상세계의 알레고리는 문제의 핵심을 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데 도움을 준다.

Star Trek의 가장 중심적인 테마는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명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할 것이냐는 점인데, 이것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Star Trek은 미국 일반대중들의 inter-galactic relationship에 대한 평균적 상상력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것은 inter-national relationship에 대한 그들의 관념의 알몸을 보여준다. 당초 Gene Rodenbery라는 제작자의 극단적인 Wilsonian Dream(United Federation of Planets!)에서 출발했던 Star Trek은 90년대를 거치며 - 적어도 몇 편에서는 - 놀라울만한 정치적 현실주의를 보여주기도 한다. 어쨌든, Cardassia와 Bajor, Marqis들 사이의 드라마를 관전하며 요단강 서안이나 가자지구의 정착촌 문제를 떠올리는 일은 그 나름대로 재미있으며, Federation의 Prime Directive(문명불간섭원칙)를 둘러싼 에피소드들은 소파에 드러누워 국가주권에 관한 숱한 논의들을 이리저리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2000년대에 새롭게 시작한 다섯 번째 시리즈 Enterprise는 60년대 시리즈보다 더 현재에 가까운 22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방송 역사상 유래가 없이 한 세대가 넘는 기간에 걸쳐 조각조각 형성된 하나의 pop culture를 상대로, 감히 그 prequel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시도였는데, 용두사미가 된 감은 있지만 그 의도 만큼은 박수를 쳐줄 만 하다. 그 배경을 잠간 소개한다.

22세기, 인류는 제3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피폐한 상태에 있지만, 바깥 세상으로 눈을 돌린 소수의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미래의 행성연합 인물들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얻어) Warp 엔진을 개발한다. 이제 지구인이 Warp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을 감지하고 외계인(Vulcan)들이 지구에 첫 발을 들인다. 이름하여 First Contact. 그 후 백여년간 지구인들은 Deep Space 여행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지구에 기술지원을 위해 상주하는 Vulcan의 선의의 감독을 받으면서. Vulcan은 감정을 거의 완벽하게 통제하는 논리지상주의적 종족이다. 이들은 지구인들의 충동적 기질을 불신하면서, 지구인이 아직 외계여행에 나설 준비가 되지 못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Enterprise는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Vulcan들의 간섭을 뿌리치고 첫 임무에 나서는 Enterprise호와 그 승무원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Enterprise에 승선한 유일한 Vulcan 승무원의 역할은 표면적으로는 자문역할이고, 실상은 감시감독이다. 주인공 Archer 선장은 드라마 속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Vulcan들이 지구인을 위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그 발전을 얼마나 지체시키고 있는지, 잘난척하는 그들이 얼마나 지긋지긋한지를 토로한다. 지구에 주재하는 Vulcan 대사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는 우리의 주인공 Archer 선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한국에서의 반미감정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미국인에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쓸모 있는 비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다.

그리하여, 오후에 우리는 다시 1층에 내려가 Star Trek Ride를 한번 더 타고, 이젠 나보다 더 열성적인 Trekkie들이 된 아이들을 데리고 Enterprise-D의 bridge를 재현해 놓은 Captain's Chair에서 사진도 찍었다. (참고로, Trekkie들은 스스로를 Trekker라고 부르지 Trekkie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Las Vegas에서 힐튼 호텔을 고른 또 한가지의 이유를 들어 보라면, 그것은 Barry Manilow다. 그는 이 힐튼호텔의 얼굴사장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매일저녁 공연도 하고 있다. 1층 상점에는 그의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도 있었다. 그런 기념품들에 관심을 가질 일은 없지만, 생각해 보라, Barry Manilow 자신이 운영하는 Paradise Cafe에서 점심을 먹어보는 일은 어찌 나름대로 재미있는 것이 아니겠는지. 실망스럽게도 노래에서와는 달리, 그의 Paradise Cafe에는 밤새 지친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노 주자는 커녕 폼으로 갖다 놓은 피아노 한 대도 없긴 했어도.

늦은 오후, 힐튼 가까이에 있는 Circus Circus 호텔을 한바퀴 구경하고 호텔 수영장에서 저물도록 쉬었다. 오늘 운전거리? 0마일!

7.1. 토

아침식사 쿠폰을 써야 하므로 호텔 뷔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으며, 12시 정각에 체크아웃을 했고, 머뭇거릴 것도 없이 LA로 향했다. 약간 우회해서 Death Valley를 거쳐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사막이라면 우린 원조 중동 사막에서 여러 밤을 지새워본 사람들 아니던가. 욕심을 자제하고 LA 친구들을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 않기로 했다.

거리계가 340마일을 가리키던 네시 반경, 한인타운의 Oxford Palace Hotel에 투숙을 했고, 친구들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국민학교때 제일 친하게 지내다가 이제는 LA에서 살고 있는 녀석들. 이제 식솔들을 이끈 가장이 되어 고기집에서 소주잔을 나눴다. 이상하지? 오래 전에 사귄 친구들은 아무리 얼굴이 변해도 눈을 마주 바라보면 그 예전의 모습만 망막 속으로 쏙 뛰어들어온다. 동창회를 하면 호호백발 할머니들도 서로 “어쩜 넌 졸업하고 하나도 안변했니” 그러신다더니만...

7.2. 일

La Crescenta에 있는 친구 집에 가서 바비큐 점심을 배불리 얻어먹었다. 뭐하러 비싼 식당 가서 사먹냐며 이른 아침부터 어시장에 나가 게를 잔뜩 사왔다는 친구로부터 드럼 강의도 들었다.

오후에는 충실하게 관광객의 행색을 하고 Hollywood Blvd, Sunset Blvd, Beverly Hills, Rodeo Drive를 드라이브했다. 저만치 언덕위에는 HOLLYWOOD라고 나무 입간판이 서 있었다. 그 거리들은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을 보면서 상상했던 그 어떤 것과도 실은 별로 비슷하지 않았으며, 비슷하지 않다는 사실이 별다른 실망이나 감흥을 주지도 않았다. 코닥 극장 앞에서 온갖 영화 캐릭터로 분장하고 관람객을 끄는 주말 광대들을 보면서, 이 거리는 차라리 그냥 좀 막연히 궁금한 채 놔 두는 편이 나았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자나무 가로수 아래로 내 눈앞에 드러난 헐리웃 거리가 주는 느낌은 뭐랄까, 이제 철이 들었는데도 굳이 싼타 클로스 역할을 하려는 부모와 성탄전야 새벽녘에 맞닥뜨린 것과도 비슷했다. 이를테면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가다가, 모른척 해야 할지 다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할지 망설이며, 얼마나 난감해 하는 것이 예의일지 잠시 난감해 머리를 긁적이며....

바다를 보고싶다는 아이들의 희망에 부응해서 (나는 아직은 난감함과 부딪힐 일 없는 싼타 클로스?), Santa Monica의 Vienna Beach를 산책했다. 산책이라기 보다는, 아이들이 결국 못참고 반바지 차림에 바다로 뛰어드는 바람에 해수욕 감독을 했다.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나머지 인생을 살 집을 구하게 된다면, 바닷가에 구하리라. Malaga든, San Francisco든, 강구든 통영이든.

엄마 : “오늘은 옷 입은 채 바다에 뛰어들고, 아주 색다른 해수욕들을 하는군요”

Small Bean : “네- 오늘은 보라색이었어요.”

저녁에는 이곳에 살고 있는 아내 친구 내외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한밤중에 호텔로 다시 찾아온 어릴적 친구들과 또다시 소주 한잔. 한승이는 나더러 여기에 와서 함께 동전 세탁소를 하잔다. 동전 세탁소라는 말을 듣고 일순, 헌 동전들을 모아 깨끗이 닦는 모양을 상상해 보았다.

7.3. 월

대서양에서 출발해서 이제 태평양에 닿았으니 차량을 정비하는 것이 순서다. 잠을 깨자 마자 (숙취로 아픈 머리!) 정비소에 가서 엔진오일을 교체했다. 한인타운 슈퍼마켓에 가서 통조림과 햇반 등 일용할 양식도 다시 장만했다. 숨 한번 크게 쉬고 다시 출발.

5번 도로로 북상하다가 중간에 해안으로 빠져서 Monterey의 Pebble Beach, 17-mile Drive를 따라 설렁설렁 구경하며 올라왔다. 펠리컨들이 익룡들(있잖은가 왜 그, 발음할 수 없는 철자의 이름을 가진) 같은 자세로 무리 지어 비행하고 있었다. Pebble Beach라는 지명과 그 풍광은, 골프를 쳐보지 않은 나같은 사람한테 특별한 울림을 가질 수는 없지만, 어쨌든 미국의 서부와, 90210처럼 서부적인 것들과, 서부를 유난히 좋아한다는 사람들의 얼굴과 겹쳐서, 잘 어울렸다. 싫은 것은 아닌데, 그건 정확히 뭐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어도 나의 나다운 것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였다.

설렁설렁 움직인 덕분에 저녁 8시가 되어서야 San Francisco에 도착했다. 여기서는 어머니의 가장 친한 친구 내외분의 댁에 신세를 지기로 되어 있었다. 죄송스럽게도, 우리를 기다리느라 늦어진 저녁을 융숭히 대접받고, (요 며칠간은 내리 융숭하다) 아저씨 아주머니 내외분의 내실에 앉아 늦게까지 노래를 불렀다. 아저씨가 요즘 배우고 계신다는 기타를 받아 쥐고. 깜깜한데도, 호수에서 피어난 안개가 묵직한 질량을 가지고 집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짙은 안개를 만나본 적은 전에 없었던 것 같다. 안개라면... 영국에서였는데, 영국의 안개는 이것과는 다르다. 솜사탕과 아이스크림이 서로 다르듯이.

설렁설렁, 오늘 운전해 온 거리는 450마일이었다.

7.4. 화

아저씨께서 시내 구경을 시켜주셨다. Bay Bridge를 오른편으로 지나 Pier 39에 내렸다. 주변환경과 조화를 잘 이루면서 번화한 상가가 그 속에 들어 있었다. 휴일(독립기념일)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로 붐비고 있었는데, 서로 어깨가 부대끼지는 않을 만큼 적당히 북적대는 그 시끄러움도 샌프란시스코 灣 배경 속으로 잘 녹아들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하나씩 들고 따라오는 우리 두 꼬마도 풍경 속에 잘 스며들었다.

Fisherman's Wharf에는 군침 도는 먹거리들이 한가득이었다. 북미의 문명과 대륙 서안의 기후와 중국인들의 음식이, 애시당초 이렇게 하나로 만들어졌다는 듯이 시침을 떼면서 기가 막힌 짝패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 와서 보니 LA에 선뜻 정이 가지 않은 이유를 더 잘 알 것 같다. 서부를 말할 때, LA와 SF는 마치 한쌍의 도시처럼 이야기 되곤 하지만, 그 둘 사이엔 공통점이 별로 없다. 심지어 기후와 기온 까지도 그렇다. LA는 거대한 야외 Walmart 같은 인상이어서 거기에 뿌리 내리고 사는 상상이 잘 안되었는데, 샌프란시스코는 인생의 한 토막을 거기서 살아봄직 하겠다는 유혹을 느낄 만큼 매력적이었다. 과장을 좀 보태면, 미국 영화의 절반은 뉴욕이 배경이고 그 나머지 절반의 절반 정도는 샌프란시스코가 배경이다. 이제 보니 그 역시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토니 베넷이 노래했듯이, 나도 여기에 내 가슴 한 조각을 남겨두기로 한다.

아저씨는 우리를 데리고 시내를 꼼꼼이 구경시켜 주셨다. Coit Tower에 올라가니 알카트라즈 섬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아하, 저 곳에서의 수형생활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저쪽에서도 이 아름다운 도시가 쇠창살 너머로 손에 잡힐 듯이 보였겠지. 영화 The Rock이나 X-Men (3편)을 통해 알카트라즈를 만났었던 두 아이들이 먼저 이 섬을 알아보고 반가와했다.

Lombard Street의 구불구불한 꽃길을 지나고 China Town과 Union Square를 지나 우리는 금문교 앞에 내려, 이곳을 찾는 모든 관광객이 하듯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Golden Gate Park과 Presideo (Mark Harmon, Sean Connery, Meg Ryan 주연의 그 1988년도 영화!) 마저 구경하고 우리는 중국음식점에서 아주머니를 기다려 다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값을 내가 내려다가 호된 꾸중을 들었음.

불과 반나절의 시내관광이었고, 비록 “little cable cars that climb half way to the stars”를 직접 타보지는 못했지만, 이만하면 우리끼리 가이드 없이 헤매고 돌아다녔다면 한 사흘 정도 걸렸을 분량의 구경을 한 셈이었다. 게다가 어쩐지, 이 도시는 헤집고 돌아다니는 관광의 대상이 되고 싶어하기 보다는 편안하게 지내라고, 그저 보이는 만큼만 보고 가라고 타이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후를 낮잠으로 채웠다. 초저녁에 눈을 떠 보니 어제 보았던 그 짙은 안개가 저 아래 물가에서부터 다시 차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불꽃놀이 구경을 나가기로 했다. 98년에는 뉴욕주 Catskill 산중에서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만났었고 그 이듬해에는 유엔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구경했었는데, 벌써 그 또렷한 기억들이 10년 세월 밖으로 사라져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변하는 건 사람이지, 강산이 아니다. 머리 위에서 작렬하는 불꽃 몇 개를 사진기에 담았다.

7.5. 수

어제 딤섬 집 앞에서 잔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싫어서 산 복권 하나가 50불에 당첨되었다. 주유소에서 복권 당첨금으로 주유하면서 실없이 흐뭇해 했다. 이제 이번 여정의 서쪽 끝까지 온 것이니 뒤로 돌아 앞으로 가는 길이 앞에 있을 뿐이다. 귀가하는 길은 집으로 멀어져 가는 길에 비해 반드시 더 피곤해야만 하는 것일까. 길은 어느 방향으로든 그저 뻗어나 있을 따름인데, 관념이 짓궂게 장난을 건다. 이제 아침햇살을 앞으로 받아 운전하면서, 집과 사무실에 두고 온 것들을 잠시 생각한다. 지난 한 주간 제법 안피우고 참았던 담배를 한 개피 찾아 문다.

금문교를 건너 Sonama와 Napa를 지나면서 길가에 있는 Winery 몇 군데를 구경했다. 구경만 하기 좀 미안해서 포도주 작은 병도 두 병 샀다. 프랑스 구경을 먼저 했던 탓일까, 드넓은 포도밭의 멋들어진 넝쿨들도 어쩐지 외국 땅으로 이민 온 다른 나라의 백성들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290마일만 동진하고 Yosemite의 그늘 밑에서 멈추기로 했다. Mariposa 캠핑장에 모처럼 텐트를 다시 치고 나니 울창한 삼숲 사이로 달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 배가 많이 불러진 달. 찍으려고 보니 사진기에 잡티가 잡힌다. 거울 안쪽에 이물질이 들어간 모양이다. 집에 가면 소제를 맡겨야겠다.

내일 구경하게 될 Yosemite는 흔히 “The Jewel of National Parks”로 불리운다고 알려줬더니, 작은 녀석이 Yosemite가 이름이었느냐고, 자기는 커다란 要塞 밑에 있는 캠핑장인줄 알았다고 정색을 하며 놀란다. 이 녀석이 뭐가 되려고 이러누. 돌돌 말린 슬리핑 백을 양손 사이에 끼우고 중국사람 같지 않느냐며 온 식구를 웃기는 녀석.

7.6. 목

미인대회 출전자의 다리들처럼 곧고 긴 ponderosa 나무들의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요새 밑” 국립공원의 남문으로 들어섰다. 몇 년 전 샌프란시스코 아주머니를 방문하면서 여길 다녀가셨던 어머니 말처럼, 덩치 큰 설악산 같다는 소감이 언뜻 스친다.

숲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을 보면, 나는 조건반사처럼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다니던 송추나 관악산 계곡과, 뒷걸음질로 헤엄쳐 다니던 가재들이 떠오른다. 나의 두 아이들은 나이 들어 흐르는 물을 보면 과연 무엇을 추억할른지.

이 산은 건성으로 스치고 싶지가 않다. 되도록 천천히 언덕을 따라 차를 몰았다. Glacier Point까지 가서 Half Dome을 구경했다. 덩치 큰 설악산 위로 구름이 그늘 얼룩을 드리우고 있었다. 잘 생긴 산이다. 절벽도, 계곡도, 저만치 큰 낙차로 떨어지는 두 세군데 폭포들도.

배고픔을 하소연하는 식솔들의 민생고를 더느라 부득이 공원규정을 어기고 후미진 도로 한 구석에서 사발면을 끓여 먹었다. 내리막을 따라 (엔진 브레이크 사용!) 오다 보니 물줄기가 굵어지고 더러 멱감는 선남선녀들이 눈에 띈다. Curry Villege 앞에서는 rafting을 즐기는 아이들도 있었다. 큰 산의 큰 그림자를 채 벗어나지 못하면서 국립공원의 북문으로 나왔다.

해 저무는 산 두어개를 더 넘고 보니 오늘은 Lake Tahoe를 지나쳐서 더 가기가 어렵겠다. Tahoe 호수 동쪽에 면한 도로를 따라 눈대중을 하다가 Montgomery Inn이라는 간판 밑에 “Vacancy”라는 네온사인이 깜박거리는, 허름한 모텔로 들어갔다. 인도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숙소였다. 벌써 밤 10시. 동네 어귀에서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는 Danny's에 찾아 들어가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오늘은 330마일을 움직였다.

7.7. 금

집을 떠나 온 지 2주째가 되는 날이다. 별 탈 없이 수월하게 다닌 셈이다. 시내로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높다란 동네 앞산으로 올라가며 Tahoe 호수를 조감했다. 산 위에는 만년설이 모자처럼 덮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여기까지 줄곧 여름이 무색할 정도로 서늘한 날씨였다.

비록 좀 서늘하다고는 하나, 예까지 와서 타호 호수에 몸 한번 담그지 않을 소냐. KFC에서 배를 채우고 Zahpyr Cove에 가서 호수욕을 했다. 예전에 레만호나 인터라켄 호수에는 뛰어들 엄두를 못냈었는데, 여긴 피서객들이 꽤 많았다. 물은 정신이 번쩍 날 만큼 차갑고, 깨끗했다. 이렇게 인구가 많은 도시가 둘러싸고 있는 호수인데도 지금지금한 민물냄새는 전혀 맡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물 위에 떠 있는 거위떼를 쫓아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디지털 사진기라고 사진을 헤프게 찍었더니만 1기가 짜리 CF card 용량이 가득 차버렸다. 가는 길에 Reno의 Circuit City에 들러 그리 비싸지 않은 값으로 CF card를 하나 더 샀다. 이제 다음번 목적지는 Salt Lake City라고 생각하면서 Nevada 주를 뒤로 하고 Utah주에 다시 접어들었는데, 두 주의 접경지역에서 벌써부터 salty lake의 자취를 만날 수 있었다. 80번 도로 양쪽 옆으로 마치 설원과도 같은 소금뻘이 한없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주경계의 기다란 언덕을 넘고 나니 소금나라였다!) 이런 걸 보고 자란 어린 아이들은 저절로 지질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겠지. 수십량 연결된 화물기차의 꽁지가 소금벌판 속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Salt Lake 까지는 아직 꽤 남았는데 420마일째 달리고 나니 벌써 밤 10시 반, Wells라는 소읍으로 빠져나가 Rest Inn Suite Motel이라는 곳에 투숙했다. 세탁기는 있지만 밤중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7.8. 토

아침 여덟시에 일어나 밀린 빨래를 세탁하고, 건조기가 돌아가는 동안 동네 앞산의 Angel Lake를 구경했다. 말이 앞산이고, 가로막힌 데 없는 평원이라 산이 가까워 보여서 그렇지, 얼추 추풍령을 넘었을 만큼 높이 올라가서야 이쁘장한 호수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이름이 잘 어울리는, 만년설이 녹아 자그만 폭포로 흘러 떨어지는 산정의 호수 위에서 동네 아이들이 보트를 타며 놀고 있었다. 다람쥐 몇 마리가 물색없이 장난을 걸어와,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이제 빨래가 다 말랐을까? 조심조심 내리막을 내려와(엔진 브레이크...)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또다시 동진. 사해를 구경하는 기분으로 기대감을 가지고 만나본 Salt Lake City의 호수에서 역한 냄새와 지저분한 갯뻘을 본 뒤 얼른 떠나기로 했다. 오수나 쓰레기 때문에 지저분했다기 보다는, 순환되지 않고 육지 속에 머무는 소금호수 특유의 짠내였던 것 같다. 호수 갯벌 바깥의 갈대밭 바위 위에 앉아 호수와 구름을 스케치북에 그리고 있는 멋진 아줌마를 만났다.

저녁무렵, Idaho(너무 일찍 죽어버린 River Phoenix가 남창으로 나오던 My Own Private Idaho라는 영화가 있었지) 州로 들어갔다. Pocatello에 머물며 밥을 해먹을 생각이었는데, 캠핑장이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데다 손님들도 많아서 방향을 다시 서쪽으로 고쳐잡고 Jerome까지 왔다. (왜 틈만 나면 서쪽으로 다시 가고 싶은 거지? 해 저무는 방향으로.) 하루 해는 짧았는데, 북으로 동서로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488마일이나 운전했다. 일찍 자자.

7.9. 일

여덟시 반쯤 일어나 텐트를 접었다. Jerome까지 왔으니 옆마을 Twin Falls(Twin Peaks가 아니고)에 있다는 Shoshone Falls를 보고 가기로 한다. 작고 조용한 마을 어귀에 커다란 폭포가 있었다. Pocatello에서 Jerome으로 오는 길에 흐르는 강은, 평소에 익숙히 보아 왔던 강이라기 보다는 지괴가 두 덩어리로 가라지면서 생긴 틈 사이를 흐르는 물처럼 생겼다. 강의 양안은 모래가 쌓인 둔덕이 아니라 가파른 절벽인 곳이 많았다. 저 폭포들도 이런 지각운동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리라.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강물을 부수며, 두줄기 폭포가 떨어지고 있었다. 왼편으로 한 쌍의 무지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하, 이래서 두 형제가 샴 쌍둥이 주인공을 연기하던 그 영화의 제목이 Twin Falls Idaho였던 것로군. 폭포를 구경하러 물가로 다가가다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돌아보는 수달을 두 마리 만났다. 카약을 저으며 유유자적하는 사람들과 생업에 종사하는 수달들이 공존하는 강. 수달들이 다니는 걸로 봐선 이 강의 먹이사슬은 잘 굴러가고 있나보다.

구불구불 산길을 지나 Craters of the Moon National Monument를 들렀다. 화산이 한참 뿜어 나오다가 이제 막 식은 것 같은 곳이었다. 가벼운 화산암들이 줄곧 발에 채이고, 검은 화산재로 이루어진 높은 언덕들이 있었다. 숙취를 못이긴 지구가 속을 개워내는 장면을 잠시 상상했다. 우웩.

살짝 비가 뿌리기 시작한 몬타나의 남단을 거쳐 Yellowstone National Park의 서문으로 입장했을 때 시계는 벌써 오후 다섯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Yellowstone은 1988년 여름 7월부터 9월까지 석달에 걸친 대화재로 공원의 절반가량인 80만 에이커가 불타고 수백마리의 야생동물을 잃었는데, 연방정부는 이것을 복구하기보다 그냥 두기로 했다고 한다. 자연이 저지른 짓은 자연이 치유하게 하라. 대신, 이 국립공원은 내년부터 수년간 폐쇄하고 휴식년에 들어간다고 한다. 앞으로 몇 년간은 구경할래야 할 수 없는 국립공원인 것이다. Bill Bryson의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을 읽은 후 줄곧 한번쯤 와보고 싶던 Yellowstone 국립공원에 이번 decade의 막차를 탈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그러고 보니 집을 떠나올 때 Shenandoah 계곡을 스쳐지나며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으면서는 그의 "Walk in the Woods"를 떠올렸었군. 수시로 생각나는 걸 보더라도, Bryson이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지금은 특이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 국립공원에서는, 실은 60만 년마다 대폭발이 일어났고,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용암은 50만 제곱킬로미터를 뒤덮었다. 학자들은 이곳에서의 대폭발이 공룡이 멸종한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지난번 폭발이 있은지 벌써 63만년이 지나갔다는 옐로스톤의 땅 속은 진작부터 요동치고 있으리라. 폭발의 초읽기에 들어간 이 땅 위를, 나는 되도록 살살 딛었다. 사방의 땅과 물에서 뜨거운 김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냥 한바퀴 운전하며 돌아보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지구과학에 관심이 많은 작은 녀석이 여기까지 왔으니 Old Faithful의 간헐천을 꼭 봐야겠다고 한다. 얼마나 지독한 냄새가 나는지 꼭 맡아봐야겠다며. (Old Faithful? 그게 동네 이름이냐?) Old Faithful에 도착하니 벌써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간헐천 주위를 둘러싸고 하늘의 계시를 기다리는 신도들처럼 앉아 있었다. 두어시간을 기다렸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우린 요행히 시간을 잘 맞추어 와서 15분쯤 서 있다가 백여미터 용맹하게 치솟는 물줄기와 수증기를 구경할 수 있었다. 흡족해 하는 꼬마녀석과, 그 표정이 흡족한 나. 뭐가 되었든지, 기대하던 것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습관적으로 기대를 가지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 희한하게도, 무슨 일에든지 심드렁한 사람들도 있지. 그것도 복이라면 복이겠지만, 글쎄, 기대와 실망을 접고 사는 삶에 무슨 재미가 찾아오랴.

옐로스톤, 이 시한폭탄 국립공원 위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늑대를 비롯해서 버펄로, 사슴, 곰 등 야생동물들이 지천이라고 했겠다. 멋진 뿔을 이고 있는 큰 사슴도 만났고, 코앞에서 버펄로가 씩씩거리는 모습도 보았다. 곰을 못만난 것이 못내 서운했는데, 공원 북쪽에서 어두운 풀숲으로 사라져가는 아기곰을 만났다. 해 질 무렵이라 너무 어두워, 모처럼 만난 곰은 사진기 앞에서 포즈를 취해주진 않았지만, 이번엔 내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옐로스톤의 북문을 빠져 나왔을 때는 밤 10시. 한밤중에 로키산맥의 지선을 넘는 짓을 또 하기는 싫어서 좀 우회하는 길로 간선도로인 I-90에 들어섰다. 한시간쯤 운전하다가, 대로로 뛰어든 사슴을 거의 칠 뻔 했다. 주위가 깜깜하다보니 덩치가 소만한 사슴 한 마리가 우리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 속으로 뛰어들 때까지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운전대를 꺾어 충돌을 면할 수 있었는데, 죽음의 기로를 막 벗어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사슴 녀석은 느긋한 걸음으로 도로를 벗어나고 있었다. 왕복 6차선 간선도로라고 해서 믿고 내리 밤길을 달릴 일은 아니었다. 조금 더 가다가 Montana 주의 Billings라는 대도시로 진입해 C'mon Inn이라고 간판을 내 건 숙소에 투숙했다. Billings에는 뭐가 유명하냐고 물어봤더니 프론트 데스크에 야간 당직을 하던 두 남녀 직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 Yellowstone Park 정도..” 여기선 뭔가를 구경할 것 없이 늦잠을 자면 된다는 뜻이렸다.

오는 동안 자다가 이제서야 깬 둘째 녀석이 수영타령을 해서 밤 12시반에 호텔 실내수영장에서 둘이서 첨벙거렸다. 오늘은 무려 610마일을 이동해 왔다. 자동차 불빛을 반사하던 사슴 눈이 아직도 어른어른.

7.10. 월

10시 반쯤 일어나서 숙박비에 포함되었다는 아침식사를 놓쳤다. 매일 강행군을 할 필요야 없지. 두 녀석을 다 데리고 수영장에서 쉬며 점심시간을 기다리다가, 모텔 옆의 Fuddruckers에서 이런 버거 저런 버거로 점심을 삼았다.

Montana의 평원을 넘어, 공룡들의 화석이 많다는 Wyoming에 접어들었다. 동진을 하다 보니 시간 경계선을 넘을 때마다 한시간씩 잃어버리고는 있지만, 그래도 조금 우회를 해볼까. 저녁 6시 반쯤, 와이오밍주의 끝에 있는 Devil's Tower를 구경했다. 석양을 받아 마치 인공 구조물처럼 선명한 돌산이 눈에 들어왔다. 땅이 넓으니까 원 별 희한한 것들이 다 있다. 이런 돌덩어리는 또 어쩌다가 들판 한복판에 불쑥 솟아난 것일까. 까마득한 Tower 꼭대기에서는 솔개들이 바람을 타고 있었다.

Rapid City의 Mt Rushmore에 도착한 것은 밤 9시가 다 되어가서였다. 아직도 남은 저녁햇살에 비친 네 명의 대통령 조각을 구경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관람객들의 행렬이 이 늦은 시간까지도 이어지고 있었고, Four Presidents의 턱 아래 자리 잡은 야외음악당에서는 소년소녀 합창단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애국심이라는 것은, 타고 난다기 보다 가르쳐지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애국심을 후세에 가르치는 교육현장을 구경한 셈이었다. 누군가 Rushmore 산과 김일성 동상의 차이를 묻는다면? 아무 차이가 없다고 해야겠지. 러시모어 산에는 몇 명이 되었든 별 상관 없지만 단 한명의 대통령을 조각하는 일만큼은 상상을 불허하는 반면, 평양의 특대 사이즈 동상은 혼자여야만 했다는 점을 빼면.

밤 11시쯤, Black Hills를 벗어나 다시 간선도로 쪽으로 가다가 만난 Rapid City Inn에 투숙했다. 영화에서 많이 보던 식으로 객실의 복도가 마당을 주욱 둘러싸고 있는 여관이다. 내다보니 달은 이제 있는 힘껏, 만월이다. 밝기도 하다.

오늘은 483마일 운전.

7.11. 화

Rapid City를 출발...하다 말고 다시 Black Hills로 되돌아가 Bear Country라는 사파리를 구경했다. 어제 곰을 만나고서도 사진 한 장 제대로 못 찍은 아쉬움을 풀어야지. 사파리에는 팔자 좋은 곰들이 덩지에 걸맞지 않는 재롱들을 부리고 있었다. Jellystone의 Yogi Bear나, 정글북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Bare Necessity를 부르던 Baru가 생각났다.

Taco Bell에서 산 점심을 먹으며 South Dakota를 지났다. 이젠 Minnesota다. 거의 한반도 비슷한 면적의 땅에 500만명이 채 안되는 사람들이 사는 곳. 한산하고 여유있는 곳. 고속도로변의 Rest Area도 잔디밭과 놀이터가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거기서 짜장라면을 끓여 먹을 순서였는데, 화장실을 다녀와 보니 아내가 길바닥에 쓰러져 있다. 저혈압에 긴 여정이 나름대로 힘들었었나보다. 아이들은 엄마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사내 녀석들이란. 다행히 금새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뒷자리에 쉬게 하고 여기저기 더 기웃거리지 않고 떠나기로 했다.

저녁무렵 Wisconsin 초입의 Mauston에서 묵기로 했다. 저 아래 남부지방에서 서쪽을 향해 횡단했던 미시시피 강을 다시 반대방향으로 건넌다. 오대호에서 발원하여 북미 대륙을 세로로 가르며 무려 10개 주를 거쳐 흘러가는 강. 그 강을 발원지 쪽에서 바라보노라니 강물에 몸을 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대서양과 멀리서 전화선으로 연결되듯 통화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늦은 저녁, 745마일의 여정을 접고 Mauston의 Park Oasis Inn에 투숙했다.

7.12. 수

아침 10시 경에 다시 출발해서 Milwaukee에 닿았을 땐 오후 3시가 되어 있었다. 멀쩡한 날씨였는데, 호수변으로 접어드니 신기하게도 호수 곁으로만 한 치 앞이 안보이는 짙은 안개가 서려 있었다. 호숫가 건물들의 윗토막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4시반경 Chicago 동생 집에 도착했는데, 차가 좀 비실거린다 싶더니만 알고 보니 뒷타이어가 찢어졌다. 마라톤 전투의 소식을 전하고 숨을 거둔 기특한 병사처럼, 우리를 시카고에 데려다 줄 때까지 참았다가 여기서 장렬히 터져버린 타이어를 애도했다. 서둘러 정비소를 소개받아 문을 닫기 직전인 정비소에서 레바논인 Joe의 서비스를 받았다. 자기는 어릴 적 레바논을 떠나온 후 다시 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의 레바논은 자기가 알던 레바논이 아니라고. 그래서 가기 싫다고. 아, 여기 진정한 실향민이 한 명 살고 있었구나.

차를 고치고서야 어머니, 동생, 새로 태어난 조카와 상봉했다. 꼬맹이가 보통이 아니라는 제수씨의 설명을 어머니가 거드시긴 했어도, 녀석은 내 품에 안겨서는 쌕쌕 잘만 자더라. (원통해 하는 제수씨) 식사를 마치고 신생아까지 온 식구가 시내구경을 나섰다. 시카고에 안개가 끼는 일은 드물다는데, 오늘 밤에는 도시 전체를 가린 안개에 노란 가로등불이 물들어 Batman Begins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Millenium Park을 한바퀴 돌아 동생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동생은 Digital Kitchen이라는, 이 업계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광고회사에 다니고 있다. 졸업작품은 구겐하임에 가서 전시도 되고, Adobe가 주최하는 경연대회에서 2등상을 타기도 하고, 선댄스 영화제 학생부문에 선정되기도 했었다니, 우리 삼형제 중에 뭐든 제일 열심히 노력하는 결실을 누리고 있나 보다. 동생이 DK 운운하며 회사 얘길 하고, 내 머릿속에 정치학 교과서에 나왔던 무관심층(DK층)이 잠간 떠올랐다 사라지려는 찰라. 아내 왈, “DK라길래 난 Dona Karen 얘긴 줄 알았네요.” 큰 녀석이 냉큼 이어받는다. “삼촌, 전 Donkey Kong인줄 알았어요.”

무관심과 도나카렌과 동키콩이 오늘 움직인 거리는 290마일이었다.

7.13. 목

늘어지게 점심때까지 자고서 밖으로 나와 Navy Pier를 구경했다. San Francisco보다 인구가 많은 도시여서 그런 걸까? 컨셉트는 비슷한데 여긴 도무지 Pier 39의 분위기는 나 주지를 않았다.

시카고 운하 위를 돌며 건축물들을 설명해주는 관광보트에 승선했다. 1871년, 급증하던 인구 때문에 슬럼화가 급격히 진행하던 시카고에서 불이 났다. 화재는 목조건물의 지붕에서 지붕으로 겉잡을 수 없이 번져, 결국 유일한 석조건물이던 Water Tower만을 남겨두고 도시 전체를 초토화 시켰다. 그 이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건축가들의 경연장이 되었던 시카고. 뉴욕과는 달리, 시카고는 불이 쓸고 간 자리에 새로 세워진 도시다. 재미있고 실험적인 건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클래식이 되거나 실패작으로 자리 매겨지는 건축의 전시장. 비록, 뭐라고 설명을 해 준대도, Sears Tower가 흉물스럽다는 내 생각이 달라질 것 같진 않지만.

모처럼 대도시 시내에 온 김에 Borders 서점을 구경했고, 집에서 좀 쉬다가 한 가지 빠뜨릴 뻔 한 것을 기억했다. 여기 왔으니 미시건 호수에도 뛰어들어 봐야지. 오후 다섯시 쯤 부랴부랴 아이들을 끌고 셋이서 Oak Street Beach를 찾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일광욕이나 호수욕을 하고 있었고, 더러 자전거나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있기도 했다. 주저 없이, 아이들은 물로 뛰어들었다. 그래. 여기도 한 조각 기억을 남겨두고 가거라. 머리위에서는 갈매기들이 고층건물을 배경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7.14. 금

Homeward Bound.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All good things must come to an end. 11시경, 어머니, 제수씨와 작별을 하면서 조카를 한 번 더 안아주었다. 여행의 끝을 알리려는지 빗방울이 뿌렸다. 집을 떠나 오던 날처럼.

어머니께서 바리바리 싸주신 도시락으로 차 안에서 점심을 먹었고, 미시건 주를 거쳐, 펜실베니아 주를 달렸다. 출출해지는 저녁 8시경, 쬐금만 돌아 가기로 하고 Pittsburgh의 한식당에 들렀다. 친절하고 맛있는 식당이었다.

마지막 남은 707마일을 다 달리고, 다들 꾸벅꾸벅 졸면서 집에 도착한 것은 토요일 새벽 두시가 되어서였다. 머리가 찰칵 소리를 내며, 저지르는 모드에서 정리하는 모드로 바뀐다. 800여장 찍어댄 사진은 언제 정리한담. 여행이 아무리 즐겁고, 일상으로 아무리 돌아오기가 싫었다고 해도, 집은 집 아닌 다른 그 무엇이 감히 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안식을 선사한다. William Saroyan이 The Human Comedy에서 썼듯이, East, west, home is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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